[구약인물과 함께하는 치유여정] 요엘의 뿔나팔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라고 말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좀 다른 의미이긴 하지만 요즘 같아선 여우의 말이 사실인 듯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의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바이러스는 아주 작아서 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단위로만 측정할 수 있는 전자현미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바이러스가 자기보다 1000억 배나 큰 인간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엄청난 역설입니다. 우리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것은 크고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가 말해주듯 위기란 언제든 닥쳐옵니다. 하지만 위기를 직면하고 해결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삶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집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일으킨 소용돌이 속에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의 조언을 해줄 구약성경의 인물을 찾아보았습니다. 오늘 만나고자 하는 인물은 요엘 예언자입니다. 요엘 예언자의 시대에도 위대한 인간이 아주 자그마한 생물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는 재난이 발생하였습니다. 예언자는 사람들에게 이 재난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면서 재난을 극복할 수 있는 현명한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예언자의 조언이 지금 우리가 겪는 위기를 좀 더 근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고, 우리가 불안과 공포에서 해방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요엘 예언자가 등장할 무렵 유다 땅에는 메뚜기 떼의 재앙이 들이닥친 것으로 보입니다. 요엘 예언자가 언급하는 이 재앙이 정확히 언제 일어났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요엘서가 기원전 400-35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그 이유는 요엘 예언서에는 임금이나 왕실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원로들과 사제들이 공동체의 지도자 역할을 하던 시절이 그 배경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엘 예언서에는 다른 예언서들에 언급된 내용들이 직간접적으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엘 예언자는 아마도 에즈라와 느헤미야가 활동하던 페르시아 시대에 메시지를 선포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예언자는 당시 유다 땅에 닥친 재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합니다. 이 재앙이 얼마나 가혹하였는지는 예언자의 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세대대로 전해주어야 할 만큼 질겁할 일이었습니다. 온갖 종류의 메뚜기 떼가 날아오는 바람에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결과 성전에 바칠 제물과 제주가 없어서 사제들이 통곡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가뭄까지 닥쳐 곡식 농사는 망하였고, 밀과 보리, 포도나무, 무화과, 석류나무, 야자나무, 사과나무가 모조리 말라버려 햇포도주와 햇기름은 아예 기대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기쁨도 같이 말라버렸습니다.
당시 유다 지역을 뒤덮은 메뚜기 떼의 공격은 지금도 되풀이되는 재앙입니다. 2020년 2월 유엔식량농업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최근 케냐에서는 수십억 마리의 사막 메뚜기 떼가 농작물들을 초토화시키고 있다고 합니다. 이 최악의 메뚜기 떼는 단 하루에 케냐의 전국민이 소비하는 식량 수준의 농작물을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역시 이 메뚜기 떼의 피해를 입고 있으며, 이 피해는 곧 우간다와 남수단 지역까지 확대될 전망이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내전과 가뭄으로 식량부족 문제를 겪고 있는 동아프리카 지역은 이제 메뚜기 떼의 침입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측됩니다.
요엘 예언자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요? 가뭄과 기근에 이은 메뚜기 떼의 공격으로 양식은 끊기고 성전에서 누리는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진 상태를 예언자는 주님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표징으로 읽습니다. 그는 땅을 뒤덮은 메뚜기 떼를 바라보며 주님의 날에 이 땅을 덮을 주님의 군대를 연상합니다. 주님의 날이 오면 그분의 군대는 아무도 막아낼 자가 없을 만큼 크고 강력하여 살아남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언자는 주님의 날이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면서 사람들을 일깨웁니다. 그는 먼저 사제들에게 탄식하며 통곡하라고 외칩니다. 자루옷을 걸치고 밤새워 기도하며 금식을 선포하고 집회를 소집하라고 말합니다. 원로들과 주민들을 성전에 모이게 하고 함께 주님께 부르짖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이 위기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극복해야 하는지 설교합니다. 예언자의 이 설교를 우리는 재의 수요일 독서 말씀으로 듣습니다. 그는 지금이라도 단식하고 탄식하며 울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께 돌아가자고 초대합니다. 지금 경험하는 재앙이 근원적으로는 하느님의 길에서 돌아선 그들의 잘못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옷만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회개의 시늉만 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에 맞는 삶을 살려는 진정한 회심을 하라고 말합니다. 요엘은 민족 전체가 경험하는 위기 앞에서 그 위기의 근원이 무엇인지를 보게 합니다. 그는 메뚜기 떼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국경을 폐쇄하지 않은 누군가를 탓하지 않습니다. 메뚜기 떼를 몰고 들어온 어떤 개인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표면적인 원인들을 색출하는 데 매몰되어 근원적인 문제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에 빠지지 말라고 말합니다.
시대에 따라 위기는 다른 모양으로 닥쳐올 것입니다. 아무리 막아내려 해도 위기 자체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다만 위기가 어떤 모양으로 닥쳐오든 그것을 함께 이겨낼 방법을 익힐 수만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경우라도 극복할 것입니다. 메뚜기 떼의 위협 가운데 요엘이 제시하는 위기 극복의 방법은 모두가 함께 모여 거룩한 집회를 열고 단식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원로들을 불러 모으고, 아이들과 젖먹이들까지, 신방에 든 신랑, 신부도 예외 없이 함께 모여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고 단식하며 자비하신 하느님께 탄원을 하라는 것입니다. 요엘 예언자가 제시한 방법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엘 예언자는 위기를 통해 백성들이 갈라지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합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럼에도 먹을 양식이 있는 이들과 굶주리는 이들을 한데 모아 현재 그들이 겪는 위기를 우리의 위기, 공동 운명체로서 함께 겪어내야 할 위기로 만들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우리와 비슷한 위기를 겪은 것처럼 보이는 시편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밤의 공포도 낮에 날아드는 화살도, 어둠 속에 돌아다니는 흑사병도 한낮에 창궐하는 괴질도.”(시편 91,5-6) 과연 우리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재의 수요일에 사제는 재를 얹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우리는 먼지로 돌아갈 것입니다. 가장 두려워해야 할 것은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먼지로 돌아가기 이전에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어버리는 일입니다. 먼지가 되기도 전에 먼지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지 못하기에 겪는 불안과 그 불안에서 나오는 이기심과 공포는 우리 모두를 먼지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매몰된 채 다른 이들의 존재를 망각한다면 우리는 먼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에는 ‘우리’가 되지 못합니다. 너의 삶이 내 삶과 철저히 무관하게 여겨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닙니다.
요엘 예언자는 주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격려합니다. 위기 가운데 우리가 참으로 우리가 될 때 하느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곧 햇곡식과 햇포도주, 햇기름을 주실 것이며, 모든 것을 되돌려주실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합니다. 이 위기를 함께 겪어낸다면 이제 그들은 변함없이 그들 편이 되어주시는 유일한 하느님이신 주님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모든 이에게 당신의 영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 종들까지도 모두 주님의 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을 아는 이들이기에 하늘과 땅이 뒤흔들린다고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 안에 굳건히 서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오시는 크고 두려운 날에 모두 구원받게 될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기심과 편견, 아집의 마음을 찢고 하느님께로 돌아서면 비로소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를 환대하고 우리의 환대를 요청하는 형제자매의 얼굴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더욱 더 옷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찢어야 할 때입니다(요엘 2,13 참조). 바로 ‘우리’가 되어야 할 때입니다.
* 김영선 -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녀회 소속 수도자로 현재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 『마음을 치유하는 25가지 지혜』 『기도로 신학하기, 신학으로 기도하기』 등이 있다.
[생활성서, 2020년 4월호, 김영선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