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여단 안건수 소위 안내로 박창원님과 동변산의 이산표석을 확인하고 한달전의 담비 사진도 함께 올린다.
장산습지의 멸종생물 담비, 만난회수 수십차례 이렇게 촬영했다. 서식하고 있다는 사실 알리지만 행정관청 보존하기나 할까.
어떻게 훼손되는 환경을 지켜낼지 먼저 고민하고 너무 무리하지 않는 목표를 설정 천천히 실천해가는 모습만 보이면 된다.
조그마한 계획과 실천이 결국 멸종생물 서식환경을 복원하고, 이산표석은 향토역사 자긍심 고취의 기회될 수 있을 것이다.
경상좌병사 소속의 역참들은 역사 기록이 있으나, 통제사 소속의 역참에 대하여는 역사의 기록 확인이 어렵다.
그럼 지경참이 어디에 있었을까? 동래부 동하면 고문서(東萊府 東下面 古文書)의 동하사동절목책(東下四洞節目冊)에 ‘우현(右峴) 지경참에 큰 빈객의 행차가 도착하였을 때 장막, 차일, 멍석 등 항목의 공급은 삼동(중동, 우동, 좌동)에서 합력하여 거행할 것’이란 대목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우현에 지경참이 있었다는 것인데 우현은 어디일까? 동하면 고문서에 나타난 우현(右峴)이라면 오른쪽 고개란 뜻이라 어디를 중심으로 오른쪽일까? 아마 좌수영 본영을 기준으로 오른쪽이란 뜻인 듯하다. 반면 동하면 고문서외 다른 고지도에서는 우현이 우현(牛峴)으로 되어 있다. 우현(牛峴)을 풀이하면 소 고개란 말이다. 우현(右峴)일까, 아니먄 우현(牛峴)이 맞는 것일까?
우현(牛峴)이라면 와우산(臥牛山)을 말하는것 같다. 우현(右峴) 지경참과 우현(牛峴) 지경참은 동일한 곳으로 좌수영에서는 우현(右峴)으로 동래부에서는 우현(牛峴)으로 기록한것으로 풀이하여 보겠다.
이곳을 찾으려하는 이유는 조선통신사의 수신사 김기수일행이 황룡호를 타고 일본으로 갈때 묵었던 영가대 근처 임시가옥 목재가 이곳 우현지경참의 소나무를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어있기에 이곳을 확인 하려는 것이다.
수신사 일행이 76명이 였고, 건축기간이 3년 소요되었다하니 숙소도 50칸은 지어졌을 것으로 보여지며 소나무 500주 정도가 베어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현지경참은 양운로에서 기장내리로 이어지는 송정동 우치 고개다.
금년은 시간 다지나, 내년 1월중에 확인하는 수 밖에 예상지는 119 훈련장소 동편 넓은 버드나무 습지를 그 대상으로 하여 좌우사방 300m를 탐사하려합니다. 166호와 167호를 연결한 범위가 그 대상지가 될 것이다.
그때 목재 작벌 대상지 표시가 있었을 터인데, 그 표시로 봉표를 세웠고 그 봉표가 이산표석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이산표석은 동하면과 동상면이 속한 동변산과 서변산에 300기를 설치했다고 추측해 본다.
첫댓글 군부대 안의 이산표석 확인을 위해 군의 허가를 받고 또 군인과 동행하여 찾아내시는 정성과 노고에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군부대 내에 아직 발견되지 못한 더 많은 이산표석이 옥숙표선생님과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을 듯 합니다. 허가하고 안내해주신 군부대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런 역사적 흔적 제1차 조선통신사/수신사 일행의 숙소 건축 목재 벌목지가 우현지경참이 였는데 어느 역사기록에도 없다. 이번 동부산권 매장문화재 지표조사에서 꼭 확인해야 할 대상지인데 행정청에서는 무엇을 하는 것일까? 수차례 건의 하였으나 외면하고 있어 안타까움에 내년1월에 증명하려 탐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