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밀양 수용소에 입원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밀양 제7육군 병원이라고 쓴 밀양국민학교가 환자들이 많아 교실을 모두 병실로 쓸때
나도 군인들 틈바구니에서 치료를 받다가
9월초에 정부미 창고로 옮겨 졌습니다.
그곳에는 나까지 환자들이 20여명이 되었고 보호자들도 그만큼 되었습니다.
뒤에는 일반 피난민촌이라서 그곳에서 밥을 타와야 합니다.
나는 대구 도립병원에서 총맞은 왼쪽팔의 어깨밑을 치료하지만
그무렵에는 약도 부족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하여 3일에 한 번씩 치료를 해 줍니다.
나는 또 대구에서 원래 아픈다리가 자꾸 오그라 든다고 하여 깁스를 하였습니다.
9월 15일이 되자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 하였다는 뉴스가 나오자
우리들은 만세를 불렀고 나도 누워서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28일에는 서울이 수복되었다고 하여 피난민과 주민들이 모두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행진을 하며 만세를 부릅니다.
그 후부터 피난민들이 귀향을 하기 시작합니다.
11월초에 의사가 내 다리에 깁스한 것을 뜯어 내는데
시멘트인지 뭔지 단단히 굳어 톱으로 썰고 칼과 가위로 잘라냅니다.
그러자 그 안에는 보리쌀 톨만한 이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우리나라 사람치고 이가없는 사람이없습니다.
길 가에는 아무데서나 어른들이 앉아 허리춤을 벌려 이를 잡는 모습을 흔히 봅니다.
이 餌들은 거의 4개월간 내 다리에서 보호를 받으며 내 살과 피를 빨아 먹고 자라
몇대가 이어졌늦지
그동안 이들이 따뜻하고 안전한 것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냈던 것입니다.
형들이 깁스를 들고나가 문 앞에서 태우는데 이가 타는 냄새가 창고로 들어옵니다.
내 다리를 살펴보니 뼈에 살아 하나도 없습니다.
꼭 막대기 같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어 일어나지도 못합니다.
형이 매일 내 다리를 닦아주며 문질러줍니다.
그러자 점점 살이 붙기 시작합니다.
어느날 밤에 나는 일찍 잠을 깨어 한 번 일어나고픈 마음이 들어
두 손으로 땅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들어올리고
몸을 일으키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나는 똑바로 섰습니다.
그러나 아프지 않은 왼쪽 다리에만 힘을 의지하고 섰는데
이제는 양쪽발에 힘을 주고 똑바로 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나는 칼에 찔리는 듯한 통증이 와서
"으악"
하고 비명이나오는 것을 참으며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대 바로 이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느 힘센분이 나를 받아 안전하게 일으켜 주었습니다.
나는 그 순간 그분이 힘이 세고 나를 안전하게 안아주는 따뜻한 감각을 느끼며 행복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 느낌은 11월 중순에 귀향하는 기차에서 다시한번 체험을 합니다.
첫댓글 선생님은 아버지로부터 택함받은자임이
분명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