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키스 / 김행숙
두 개의 목이
두 개의 기둥처럼 집과 공간을 만들 때
창문이 열리고
불꽃처럼 손이 화라락 날아오를 때
두 사람은 나무처럼 서 있고
나무는 사람들처럼 걷고, 빨리 걸을 때
두 개의 목이 기울어질 때
키스는 가볍고
가볍게 나뭇잎을 떠나는 물방울, 더 큰 물방울들이
숲의 냄새를 터뜨릴 때
두 개의 목이 서로의 얼굴을 바꿔 얹을 때
내 얼굴이 너의 목에서 돋아나왔을 때
키스의 순간에 느껴지는 환희와 타락의 단맛은 없다. ‘목이 기울어지고’, 상대의 목에 내 얼굴이 ‘돋아나’는 순간의 객관적인 표현뿐이다. 심지어 너무나 즉물적인 집과 창문과 나무가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키스를 하고 싶어진다. 아주 진한, 내가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일 될 것 같은, 격렬하면서도 산화되어 버리는 키스를 말이다.
무엇이 이러한 힘을 갖게 하는가. 객관적이고 즉물적인 것들이 은밀하고도 미묘한 감정을 언어화 한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애당초 그것은 불립문자의 영역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이 무모한 도전이 시의 숙명일 것이다.) 알 수 없지만 그녀 시의 방법론을 나는 이 시에서 찾는다.
발 / 김행숙
발이 미운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나의 무용수들. 나의 자랑.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
그들은 길다.
쓰러질 때 손은 발에서 가장 멀리 있다.
어렵게 보지 말자. 남자 무용수들인 ‘그들은 길다’. 숙명적으로 나는 키가 작지만, 그래서 무용수들인 그들처럼 길지 않지만, 그들과 똑같이 손과 발은 신체에서 가장 멀다. 당연한 말이다. 그 당연함과 뻔함이 이 시의 출발이다.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춤을 출 때 그들은 온 힘을 다할 것이고, 시인은 기도할 때 온 힘을 다해 기도할 것이다. 기도의 순간 우리는 인생의 가장 미운 것들을 어루만지며 아름다움으로 승화한다. 그 순간의 승격을 표현하는 것이 이 시의 아주 겸손한 목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시적인 것인가. 글쎄, 모르겠다. 시적인 것인 어떤 것인지, 어떤 순간이 시적 언어로 표현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갈수록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건, 그녀의 ‘시적 대상’들이 지금까지의 일반적인 ‘시적인 것’들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그건 너무 뻔하고 일상적인 것들이며, 냄새로 소리도 없이 우리의 옆에서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있는 것들이다.
이건 시로 표현되지 않은 시적인 것들의 영역 바깥에 있었다. 그래서 김행숙의 시들은 어렵고 난해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이미 익숙한 것들이기 때문에)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다. <발>은 그저 아름다움에 대한 아주 사소한 표현이며, 그런 <발>을 읽을 때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해왔던 ‘손’은 잠시 접어주십사하는 시인의 요구사항인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까지 가져왔던 시적인 것들의 욕망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 키스는 키스일 뿐, 발은 발일 뿐. 시는 그저 언어일 뿐이다.
김행숙은 가장 쉬운 언어로 표현 불가능의 영역이었던(사실은 표현하지 않은 영역일 뿐이었던) 공간을 탐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난해한 이유는 깊이와 심층에 천착하는 우리의 시감정 때문이다. 이것을 벗어 버리자. 아주 사소한 것들을 아주 객관적이고 즉물적인 말들로 그려보자. 아스팔트에 납작하게 말라 죽어가는 개들의 시체에 대해서. 책상위에 어지럽게 놓여져 있는 잡다한 물건들에 대해서. 비가 올 때 생각하는 온갖 잡념들에 대해서.
이제 우리는 언어의 향락에 젖으면 된다. 준비가 됐다면 시집의 표제작 <이별의 능력>에 대해 생각해볼 차례다. 그저 각자가 경험했던 이별의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가장 깊은 것은 우리의 피부다.
이별의 능력 / 김행숙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단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이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