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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서 오는 기쁨을
나는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흘러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손에 손을 잡고 얼굴 마주하며
우리의 팔 밑 다리 아래로
지친 듯 흘러가는 영원의 물결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고
희망은 이토록 강렬한지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가버린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만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가는데 나는 이곳에 머무르네
너무나도 유명한 아폴리네르의 詩 <미라보 다리>에 대한 세속적 평가를 하려고 하니 미천한 필자의 문학적 한계가 형편없다는 사실이 금방 들통날 것만 같아서 다른 분의 글로 대처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시중에 <미라보 다리>에 대한 수많은 평론이 나와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중에서도 수필가이자 칼럼리스트인 <이순영님의 시평>이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하여 그분이 쓰신 대로 기사 원본을 그대로 옮겨서 아폴리네르의 <미라보 다리>에 대한 평론과 이 시에 담겨있는 사연과 배경이 되는 시대적 상황들에 대한 설명을 이순영님의 글을 통해 대신 전달하도록 하고자 함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파리를 가보지 않더라도 기욤 아폴리네르 ‘미라보 다리’를 조용히 읊조리며 한 시대의 문학은 사람들의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냥 해석 없이도 참 좋은 ‘시’가 ‘미라보 다리’이기 때문이다. 미라보 다리는 파리 사람들에게 대서사를 만들어 주는 장소다.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이 왔다가 흘러가고 삶도 흘러가고 세월도 흘러간다. 미라보 다리 위에 서성이는 시간과 회한과 사랑은 우리네 삶의 이야기다. 열정으로 불붙었던 사랑은 이별의 찬물로 꺼지고 미라보 다리 위에서 흘러가는 강물을 망연히 바라보며 삶과 죽음 사이를 망설였을지 모른다.
사랑의 열병을 앓은 사람들은 안다. 그 지독한 열병으로 사랑보다 이별을 먼저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 기욤 아폴리네르도 사랑보다 이별의 열병을 앓았다. 피카소가 소개해 준 화가 마리 로랑생을 만나고 나서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고 할 만큼 마리 로랑생에게 흠뻑 빠져 들었다. 마리 로랑생이 미라보 다리가 가까운 곳으로 이사 가자 기욤 아폴리네르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마리 로랑생이 이사한 곳 바로 옆으로 이사한다. 둘은 미라보 다리를 수없이 오가며 사랑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파리가 그들 것이었고 미라보 다리가 그들 것이었다. 흘러가는 강물에 사랑을 띄워 영원할 것 같은 마음을 흘려보냈을 것이다. 그게 사랑이니까.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도 어딘가에 숨은 이별이 불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미술품 도둑으로 몰리고 만다. 시인, 작가, 비평가이자 예술 이론가인 그가 뭐가 아쉬워서 미술품을 훔쳤다는 누명을 쓴 것인지 모르지만, 설상가상으로 마리 로랑생에게 이별 통보를 받게 된다. 그렇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법인가 보다. 기욤 아폴리네르에게 미라보 다리는 사랑의 다리가 되었다가 이별의 다리가 된다. 그의 시처럼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하고 희망은 이토록 강렬한 것인지 그 아픔이 내게도 전해오는 듯하다. 그의 영혼은 지금도 미라보 다리 위에 머무르고 있을까.”
더도 덜도 말고 딱 좋은 정확한 지점에서 충분한 설명이 아주 훌륭하게 이루어졌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분히 문학적 소양이 한참이나 부족한 필자가 이렇게, 수필가이신 이순영님의 거침없는 필력을 빌려 난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같아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칼럼리스트로서의 어떤 사명감에서였는지 이순영님은 이 정도에서 그냥 그치시지를 않았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이 되었던 <모나리자 도난 사건>과의 연관성에까지 친절한 부연 설명을 소상하게 남겨 주신 것이다.
“경찰은 훔친 조각상의 이동 경로와 ‘모나리자’ 행방을 자백하라고 압박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절친인 화가 피카소가 소환됐다. 아폴리네르와 함께 일했던 사람이 루브르에서 조각상을 훔쳐 판매한 적이 있는데, 피카소가 장물인 줄 모르고 그걸 구입한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의 집중적인 추궁에도 별다른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아폴리네르는 1주일 만에 겨우 풀려났다.
이 사건의 불똥은 엉뚱한 쪽으로 튀었다. 연인인 화가 마리 로랑생과의 사이가 벌어진 것이다. 로랑생은 파스텔 톤의 맑은 수채화를 그리는 화가다. 두 사람은 가난한 시인과 전위적인 화가들이 모여들던 몽마르트르의 낡은 목조건물에서 처음 만났다. 둘을 소개해 준 사람이 피카소였다.
그때가 1907년이었으니 아폴리네르가 27세, 로랑생이 24세 때였다.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고 사생아라는 공통점까지 지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들었다. 아폴리네르는 이탈리아 퇴역 장교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 어머니의 비밀 연애 끝에 태어났고, 로랑생은 귀족 출신 아버지와 하녀 사이에서 출생했다.
닮은 점이 많은 이들은 곧 환상의 커플이 됐다. 앙리 루소의 그림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정도였다. 루소는 이 그림에서 ‘시의 여신’인 로랑생과 그녀에게 영감을 받는 아폴리네르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렸다.
그런데 아폴리네르가 모나리자 절도범으로 몰리자 로랑생은 크게 실망했고, 결국은 관계가 틀어지게 됐다. 아폴리네르는 생미셸 광장 옆의 옥탑방에 있는 친구 샤갈을 찾아가 신세 한탄을 했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해가 뜰 무렵 집에 가려고 길을 나선 그는 미라보 다리 위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집은 미라보 다리에서 가까운 센 강 서쪽(파리 16구)의 그로 거리에 있었다. 지금의 ‘라디오 프랑스’ 건물 부근이다. 연인 로랑생이 그 근처에 살았다. 오랫동안 이 다리를 함께 건너며 사랑을 나눴던 그녀가 지금 곁에 없다니! 햇살을 받은 센 강의 물결은 눈부셨지만, 도둑으로 오인받고 사랑까지 잃은 그는 한없이 쓸쓸했다. 그 가슴 아픈 이별의 회한을 시로 쓴 것이 곧 ‘미라보 다리’다.”
그런 로랑생이 아폴리네르를 떠났다?
얼핏 <미라보 다리> 싯구에 젖어들어 잠시 생각해 보면 '하루아침에 느닷없이 여자가 남자를 뻥 걷어차 버리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서 어디론가 훌쩍 떠났다' 라고 해석될 여지가 차고도 넘친다.
자신을 차버리고 떠난 여인을 잊지 못하는 남자는 벗어날 수 없는 실의와 좌절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술독에 빠질만큼 깊이 빠져들었다가, 아주 잠깐 제정신으로 돌아왔을 때 미라보 다리 위를 걸어가면서 아래로 흘러가는 강물을 쳐다보면서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다가 유언이라도 제대로 남겨야 겠다는 생각에 책상앞에 앉아 써 내려간 것이 바로 <미라보 다리>일것 같지 않은가 말이다.
그럼 이들의 헤어짐에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
적어도 이 순간에 책임 소재를 두고 손을 들어보라고 하면 다분히 로랑생을 가리키는 손이 훨씬 많이 올라갈 것 같다. 지금 손을 든 사람들은 모두가 이미 <미라보 다리>라는 시 때문에 어느정도 정서적인 세뇌를 당한 낌새가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이 시점에서 <미라보 다리>라는 시에 화답한 답시가 있다는 사실을 사전에 고지함과 동시에 그 답시를 소개해 볼까 한다.
<미라보 다리>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마리 로랑생에게 보낸 하소연이라고 한다면, 그 하소연을 전해들은 이해당사자 마리 로랑생이 전 연인 아폴리네르에게 '내가 너를 떠났니?' '아니면 너가 나를 떠나 보냈니?'라고 따져묻는 시라고 해야 하겠다.
"잊혀진 여인"
-마리 로랑생-
쓸쓸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불행한 여자다
불행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병든 여자다
병든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버림받은 여자다
버림받은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의지할 데 없는 여자다
의지할 데 없는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쫒겨난 여자다
쫒겨난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죽은 여자다
죽은 여자보다
좀 더 가엾은 것은 잊혀진 여자다.
로랑생은 지금 이렇게 외치고 있다.
'기욤아. 너가 지금 사는게 정말 힘들다고, 그게 모두 나때문이라고 썰이라도 풀고 싶은 거니? 지금 난 이대(이화여대) 나온 여자라는게 아니라, 잊혀진 여자라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거야. 잊혀진 여자가 어떤 것인지 내가 굳이 이자리에서 까지 부연 설명을 해야 하겠니? 어디 홀렁 뒤집어서 다 까발려 볼까? 너만 그렇게 잘났냐? 나도 생길만큼은 생겼다. 남자면 다냐?'
'내가 떠난건지, 너가 떠밀어 쫓아낸건지, 한 번 따져보자는 거여? 시방?'
흔하게 불완전한 예술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처럼, 불완전한 사랑이 한껏 타오를 때는 더 뜨겁고 아름다운 것은 그안에 이미 불행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폴리네르는 세상과 등지고 군대에 입대했다. 그리고는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고 제대했다. 사회 부적응자가 되고 말았다.
로랑생은 독일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되었고, 그 또한 그리 오래가지 못하고 이혼을 한 후에 결국 파리로 돌아온게 된다. 사회에 등을 지고 사는 여자가 되었다.
1918년 11월 어느날, 로랑생은 동시에 두 통을 전보를 받아들었다. 어느 것을 먼저 읽어야 할까 한참을 망설이던 로랑생은 바람에 날려가려는 것을 겨우 붙잡은 전보를 먼저 열었다. '당신은 나에게서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나는 지금 후회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나는 곧 죽을것만 같습니다.' 라는 아폴리네르가 보낸 전보였다.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마침내 로랑생이 두번 째 전보를 열었을 때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운명하였기에 알려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운명 시간이 함께 쓰여져 있었다. 나이 38세였다.
만약에 이 두통의 전보 개봉이 바뀌었다면 당시의 상황은 어떨게 달라졌을까?
1956년 6월 8일 73세의 나이로 마리 로랑생이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하얀 드레스 차림에 한 손에는 장미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아폴리네르가 보낸 편지를 들고 흙속에 뭍혔다.
'지난간 사랑도 나를 만든 일부였다.'는 말을 남겼다.
하지만 나는(필자) 아직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을 '세기의 사랑' 이라는 낭만적인 대서사 앞에서 이대로 보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불완전하지만 더없이 아름답게 그려진 이들의 사랑과 이별의 대서사가 드러난 그대로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좀 더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이들 사이에 존재했던 그 불완전함에 대한 진실탐구를 좀 더 해보려는 것이다.
로랑생은 아폴리네르가 루브르 도난 사건에 연루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정도의 실망에서 떠난 것이었을까? 죽을 때까지 사랑한 저들의 숭고한 열정으로 보자면, 좀 더 커다란 사건이나 실수나 실망에 대해서도 너끈하게 극복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저렇듯 지고지순 오매불망의 사랑을 저버리고 떠날 정도였다면, 적어도 거기에 상응하는 정도의 커다란 일(?)이 분명이 있었다는 가정이 충분히 성립하지 않겠는가?
하여 이들에게 꾸며지거나 가공되어 첨부된 세기의 사랑에 적법한 정도의 당시 사정이 아니라, 당시의 증언과 증빙 자료와 사건 기록에 따른 당시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의 당시 내막을 꼼꼼하게 좀 더 들여다 보기로 하자.
(파블로 피카소와 페르낭드) 그리고 (기욤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
피카소가 멀쩡하게 잘 지내던 집을 버리고 갑자기 클리시 대로변의 몽마르트 언덕에 위치한 작업실 근처로 이사를 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차마 쉽게 말 못 할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이사의 과정에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몰래 무엇인가를 내다 버려야만 했다. 몰래 치워야 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한 시도 떠나지 않은 무수한 감시의 눈초리들 때문에 끝내는 처분하지 못한 채 새로운 집의 장롱 안에 다시 그대로 처박아두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마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아폴리네르의 집과 사무실을 압수 수색했던 경찰은 이미 피카소의 주변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놓고 뜸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었던 것이다.
땅거미가 지고 밤이 제법 깊었을 즈음에 새로 이사한 피카소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잠시 지나 안에서 문이 열리고 피카소를 방문한 두 사람은 이내 안으로 사라졌다.
이때, 골목 반대편 이 층의 커튼 뒤에서 이 상황을 몰리 지켜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창밖의 가로등 쪽으로 수첩을 펼쳐 들고 빼곡하게 기록을 하고 있었다. ‘9월 5일. 밤 10시 20분.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이 피카소 집을 방문. 페르낭드가 문을 열고 이들을 맞아줌. 피카소는 안쪽에 있는 것으로 추측됨. 아폴리네르의 손에 와인이 한 병 들렸을 뿐, 다른 특이 사항은 없음.’이라고 적었다. 이들은 지금 피카소를 은밀하게 감시하고 있는 파리 경시청의 사복경찰이었다.
창문을 통해 비추는 그림자들을 통해 실내 사람들의 동선이 어느 정도 드러나고 있는데, 아마도 새로 이사한 집을 살펴보고 늦었지만 식사하는 시간을 통해 축하를 전하는 집들이를 하는 것으로 추측되기에 충분했다. 다만 시간이 좀 길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그것이야 당사자들의 친근함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었기에 그것까지 의심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가 나오고 있어. 집들이를 마치고 이제 돌아가려나봐.’
‘헤어지는게 아닌가본데? 옷차림을 봐. 네 사람이 모두 외출복 차림이잖아?’
‘지금 몇 시야?’
아까 수첩에 기록을 남겼던 경찰은 다시 수첩을 펴서는 ‘12시 3분. 아폴리네르. 로랑생. 피카소. 페르낭드. 네 사람이 외출복 차림으로 집을 나섬. 방문 때의 와인은 없어졌고, 피카소가 여행 배낭을 하나 메고 나왔음.’이라고 추가로 적었다.
특별한 조짐이나 행동은 없었다.
그냥 피카소 일행은 평상시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몽마르뜨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집들이를 위해 방문해준 반가운 지인과 늦게까지 조촐한 만찬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차마 헤어지기가 아쉬워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선 사람들이 틀림없어 보였다. 아주 흔한 일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파리에 사는 사람들중에 이런 사람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들은 낭만의 도시 파리의 새로운 시대를 앞에서 이끌어 나가고 있는 나름 유명인사들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적어도 지금 당장 파리에 머물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라 할만했다.
그런데...... 동네 한 바퀴 산책이 아니었다.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를 지나서 콩코드 광장 방면의 세느 강변으로 향하는 언덕길을 꾸준히 내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몽마르트 언덕의 피카소 화실이 있는 9구역에서 세느강 까지는 가장 가까운 길을 골라 간다고 해도 4km는 넘고 거의 5km에 가까운 거리다.
젊은 여경찰과 한쌍의 연인으로 분장한 수첩에 메모를 하던 경찰이 피카소 일행 곁을 스쳐지나가면서 살피고는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뒤따라 오던 차량에 여경찰을 태우고 다시 반대편 골목으로 뛰어갔다. 그쪽의 경찰과 교대를 해서 감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지금 이곳에 일곱 명의 사복경찰이 피카소 일행을 뒤쫓고 있었다.
‘청장님께 보고는 했나?’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끝까지 따라 붙으래. 특이 사항이 발생하면 보고 받는대로 직접 오셔서 체포하시겠다고 하셨어.’
‘요즘 퇴근도 안하시고 사무실에서 대기하신다니 작정을 해도 단단히 하셨나봐.’
‘못 들었어? <파리-주르날>에 대해서 일체 함구령이 떨어졌고, 그쪽에 별도 팀을 꾸려 수사중이래. 뭔가 나온 것 같애.’
‘나왔으면 왜 언론에 안뿌려? 초반 대처 대문에 엄청 수모을 당하셨으니 이참에 보란 듯이 만회를 해야 하잖아?’
‘아직 미흡하거나, 아니면 제대로 한탕 크게 벌이려는 것이겠지. 수레테 파리지앵을 보란 듯이 깔아뭉개보려고 하시나보지?’
그때 허겁지겁 다른 경찰이 다가와 숨을 몰아쉬며 차량 문을 열었다.
‘콩코드 다리 아래로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벤치에 앉아 주변을 살피더니, 지금 루브르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누구를 만나려고 하려는 걸까? 너는 올라와 쉬고 다른 사람이 따라붙고, 너는 힘들겠지만 삥 돌아 앞질러 가서 공원의 나무 그늘에서 혹시 수상쩍은 낌새가 있는지 자리를 지키다가 저들이 더 내려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다시 여기로 와서 교대를 하도록해.’ 하면서 다른 남자 경찰이 다시 여경과 짝을 이뤄 쫓아갔다.
‘특별히 피카소가 메고 있다는 여행 배낭을 주시해 살피도록.’
세느 강변을 따라 산책을 하던 두 쌍의 여인은 솔페리노교( passerelle Solférino) 아래 벤치에 앉았다. 남자 두 명은 벤치에 가까이 붙어 앉아서 무언가를 속삭였고, 두 여인은 담배를 피워 물고 주변을 살피며 저만치 이쪽저쪽을 오고 갔다.
솔페리노교는 오늘날엔 다른 이름인 레오폴드 세다르 셍고르 인도교(Passerelle Léopold-Sédar-Senghor)로 불리고 있는데, 나폴레옹 3세 시절에 처음엔 목조 다리로 건설되었다가 낡아져서 철거되었다가 파리 박람회를 기념하면서 철제 다리로 재건되었다. 상류쪽의 ‘예술의 다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퐁데자르 다리(Pont des arts)가 보행자 전용의 인도교로 유명한 것처럼, 솔페리노교의 경우는 위쪽은 차량과 사람이 함께 통행이 가능하나, 다리 아래로 보행자 전용의 철제 계단식 다리를 이중으로 설치한 것으로 많은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색적인 다리다.
솔페리노교의 경우는 강 건너편에 오르세 기차역과 반대편의 튀를리 정원을 연결해 주는 보행자 중심의 비교적 규모가 작은 다리라고 할 수 있다. 하여 국제 야간열차 운행이 아닌 밤시간이면 이 일대는 비교적 한산하고 인적이 매우 드물었다.
‘파블로. 이쪽저쪽 모두 아무런 인기척이 없어요. 지금이 가장 좋은 타임인 것 같아요. 서두르세요.’
‘페르낭드. 금방 마칠테니까 로랑생과 다리 아래로 조금만 거슬러 올라갔다가 와요. 인기척이 있으면 기침을 하고.’
두 여인이 싸늘한 밤공기를 마시며 상류쪽으로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파블로. 배낭째로 그냥 던져버릴 것인가? 아니면 꺼내서 물속에 버리고 빈 배낭만 가져갈 것인가?’
‘그래도 눈에 띄지 않게 하려면 조금은 깊이가 있는 곳에 던져버려야 하지 않겠는가? 배낭째 버려야겠어.’
‘소리가 날텐데?’
‘자네가 아래로 조금 떨어져서 좀 커다란 돌멩이 하나를 들고 있다가 내가 던지고 나면 따라 던지시게. 돌멩이 던지는 장난이나 내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말일세.’
피카소가 아주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피면서 물가로 다가가 어깨에 매었던 무거운 여행자 배낭를 벗어 내렸다. 아폴리네르가 조금 떨어져서 머리통만한 강변의 돌을 주워들었다. 피카소가 돌덩이가 들은 배낭을 강물에 던지는 순간 뒤따라 돌덩이 하나를 자신도 강물에 던지고 나면 모두 끝나는 이 밤에 그 고생을 하게 한 모든 근심 걱정이 끝나는 것이다.
피카소는 배낭 끈을 손목에 감아쥐고 가능한 멀리 던질 준비를 했다. 아폴리네르는 그가 던지기만을 주시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단 번에 끝내고 깨끗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거야. 기욤 자 준비하시게.’
피카소가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배낭을 들어 올리려는 찰라에, 아폴리네르의 시야에 멀리서 불쑥 나타나는 번쩍거림이 있었다.
자동차 한 대가 막 강변길에 멈춰서고 있었는데, 자신들이 위치해 있는 강변의 바로 위쪽이었다. 충분히 육안으로 물체의 분간이나 움직임이 파악될 수 있는 근거리였다. 자동차에서 사람이 내리고 있었는데, 마침 반대편에서 지나치는 차량의 불빛에 막 차량에서 내리는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무엇인가가 빛에 반사되어 번쩍인것이다. 복장에 번쩍거리는 금속을 달고 다니는 사람은 군인이 아니면 경찰일 것이라는 불길한 선입견이 섬광처럼 전신을 흩고 지나갔다.
‘파블로 잠깐만. 지금 등 뒤에 멈춰선 차에서 사람이 내렸는데, 차량 불빛에 번쩍이는게 있었어. 돌아보지 말고 잠시만 행동을 멈추고 기다려 보시게. 얼핏 경찰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 시간에 여기까지 웬 경찰이? 혹 우리가 지금 감시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 하늘이 노래지고 가슴이 터질 지경이 된 피카소는 극도의 긴장감 속에 휘파람으로 두 여인을 불러들였다.
‘기욤. 차에서 내린 사람은?’
‘보이질 않아. 하류로 내려가지도 않았고, 상류로 올라가지도 않았어. 그렇다고 길을 건너가는 낌새도 보이질 않았더. 그냥 사라졌네. 만약 나무 뒤에 숨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그 사람이 내렸다는 차를 지켜보았는데, 강변을 한참을 올라가서 루브르 옆 강변길에 멈춰섰어. 차량 불을 모두 끈 상태로 정지해 있어. 주변에 우리를 감시하는 눈초리가 있다는 뜻일까?’
‘모두 왔던 길로 콩코드 다리까지 천천히 내려가도록 하시게. 내가 인도로 올라가 따라 내려가면서 주변을 살펴보도록 하겠네.’
세 사람이 콩코드 다리 인근에 도착했을 때, 기욤 아폴리네르가 허겁지겁 달려 내려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근처에 인기척이 있는 것은 틀림없네. 차에서 내렸던 자리엔 사람이 없었지만,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뜨지 않는 남녀가 있었네. 우리 같이 산책하는 연인일 수도 있겠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친근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 연인이 아닌 남녀 같기도 해 보이는군.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말일세.’
‘번쩍거리는 옷을 입은 사람은 안보이던가?’
‘없었네. 길 건너 가는 것을 우리가 보지 못했던가, 아니면 우리 시선을 피해 숨었던가 둘 중 하나겠지.’
‘이 시간에 차를 타고 와서 여기서 내리면 어디를 가겠는가? 여긴 사무실도 없고 카페도 없고 아파트도 없는 강변과 나무숲뿐이야. 영 느낌이 좋지를 않네. 우리의 움직임을 사전에 미리 알고 뭔가 때를 기다리고 있는 불길한 느낌이야.’
‘이대로 하류로 미라보까지 걸어내려 가면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할까? 우리 집으로 가는 셈 치고 말일세.’
‘파블로. 오늘은 느낌이 안좋아요.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다시 계획을 세우기로 해요.’ 지치고 두려운 표정의 페르낭드가 피카소에게 하소연을 늘어놓듯 말했다.
‘이제까지 누군가가 우리를 미행하고 감시하고 있었다면 그들도 아직은 어떤 확신이 없다는 뜻이잖아요? 지금 우리가 그 증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저들이 눈치챘다면 지금 당장 나타나 몸수색을 하겠지요. 그러니까 아직은 안전한 거예요. 이 이상 우리가 수상한 짓이나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요. 그러니까 이쯤에서 태연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밤이 좀 깊고 시간이 늦었지만 우린 모처럼 만나서 멀리까지 산책을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돌아가서 아쉬움에 술을 한 잔 더하는 것이고요. 그럼 저들도 허탈한 생각에 빠지게 될거에요.’
그들은 다시 5km 밤길을 되돌아 계속되는 언덕길을 걸어서 마침내 몽마르트 언덕 초입의 집에 도착했다. 여행배낭 속의 짐 무게가 어느 정도 있었던 터라 그야말로 초죽음이 되어서 겨우 돌아온 것이었다. 만약 누군가 감시하는 눈초리가 있었다면, 그 배낭의 무게까지도 철저하게 숨겨야만 했던 것이다. 그야말로 일행 모두가 한마디로 죽을 맛이었다.
피카소는 배낭 속의 돌덩이 두 개를 다시 붙박이장 깊숙한 곳에 넣어 감추었다.
그리고 사실은.......... 그들의 느낌은 사실 그대로 였다.
강변에 드닷없이 정지한 차에서 내린 번쩍이는 계급장을 단 옷을 입은 사람은 바로 레핀 경시청장이었으니 말이다.
미행하는 형사들의 보고를 계속 받던 레핀은 드디어 사건의 종말이 임박했다고 판단했다.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의 수상한 움직임으로 보아 무엇인가 반듯이 벌어질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루브르 도난 사건과 연계하여 피카소와 아폴리네르를 체포한다? 아침신문에 대문짝만하게 자신의 활약상이 대서특필될 것이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오늘 밤 안에 체포하여 이번 사건을 여기서 모두 끝낸다’는 생각에 기자회견을 각오하고 아예 정복 차림으로 현장출동을 했던 것이다. 그 경시청장 계급장의 번쩍거림 때문에 피카소 일행이 거사 계획을 모두 취소했다는 사실까지는 예측하지 못하고 공원 숲에 숨어서 형사들과 이들을 끝까지 지켜보았었지만 말이다.
‘뭐야? 끝내 그냥 산책이었어? 강변까지 이런 심야에?’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는 밤을 꼬박 새워가면서 이 난관을 타개할 묘책을 찾아 골몰했으나 끝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지친 로랑생의 하소연을 듣고는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은 파리 16구의 집으로 돌아갔다.
이들을 배웅하면서 동네 빵집에 들러 아침을 준비하려던 페르낭드는 그곳에서 엄청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된다.
‘페르낭드. 당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거야? 올 때마다 당신네랑 아폴리네르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 느낌이 안 좋아서 그래. 당신들 무슨 조사받고 있어?’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젠 로랑생이 와서 밤새 집들이 파티를 조촐하게 했던 것이고, 파리의 진보주의 미술이나 예술에 대해서 논의하고 행사를 준비하는 것 밖에는......... 뭐가 이상한데?’
‘아침마다 빵을 사가는 새로운 남자 손님들이 있는데, 올 때마다 당신들에 관한 사소한 이야기만 늘어놔서 말이야. 가구를 새로 들여놨느냐? 며칠씩 묵어가는 손님이 있느냐? 혹시 동네에서 소란을 피운 적이 있느냐? 새로 이사를 왔다고는 하지만 피카소가 작업실을 여기에 두고 우리와 한동네 주민으로 함께 살아온게 얼마인데 이제와서 이런저런 등등 그냥 우리 주변 사람들이 흔하게 주고받는 인사말은 아니잖아? 자기들이야말로 원래부터 이곳에 함께 살아온 주민도 아니고 낯선 처지에 말이야. 거기에다 항상 양복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일정한 시간에 찾아와서 하는 말이 그런 거란 말이야. 느낌은 얼핏 경찰 같은데....... 경찰이 왜 매일 아침에 빵을 사러 와서는 당신들 이야기만 늘어놓지? 어젠 야간 산책을 오래했다던가?’
‘그래? 누군가가 우리 단체가 벌이는 행사를 또 급진좌파들의 정치적 의도 행사라고 오해를 하고있나? 오늘도 다녀갔어? 그 사람들 어디 사는데?’
‘방금 다녀갔어. 항상 세 명정도 아침으로 먹을 만큼만 빵을 사가. 남편이 운동하다 보았는데 그 양복쟁이들이 저쪽 길모퉁이 철물점 뒤로 들어가더라는데?’
‘그래? 뭔가 오해가 있었겠지. 우린 별다른 일이 없는데 아무튼 걱정해줘서 고마워.’
태연한 척 대답을 하고 빵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페르낭드가 받은 충격과 당혹감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피카소와 방금 전에 겪은 일에 대해서 소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피카소의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 굳어졌다.
피카소가 창가로 다가가 커튼을 더 크게 여는 모습으로 창밖을 살펴보았다. 창문의 오른쪽 모서리 끝으로 저만치 철물점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는 곧 누군가가 저 건물 2층이나 3층에서 이곳을 지켜본다면, 실내에서의 움직임까지 모두 보이지는 않겠지만, 드나드는 사람이나 외부 활동에 대해서는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도 어느정도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가능해진다.
정말로 심각한 위기가 지금 목전까지 닥치고 있다는 반증인 것이다.
피카소가 혼자 집을 나섰다.
지난밤 아폴리네르와 야간 산책을 했을 때 세느 강변까지 메고 갔던 여행용 배낭을 다시 꺼내서 멘 상태였다. 피카소가 집을 나서서 작업실 방향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몽마르트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하자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부산해지기 시작한 이유는 누구라도 이내 짐작하기 쉬웠을 것이다.
지나가는 택시를 불러세워서 타고 가다 피카소가 내린 곳은 중심가 지역의 <파리-주르날> 신문사 건물이었다.
파리의 저명인사인 파블로 피카소를 알아보는 직원이 마중을 했고, 피카소는 미술부장 앙드레 살몽을 만나러 왔다고 면담을 요청했다. 피카소는 편집부의 외부와 격리된 회의실로 안내되었다.
커피와 담배가 나오고 시간이 어느정도 지났을 때, 외출했던 살몽 미술부장이 허겁지겁 뛰어 들어왔다. 피카소란 거물이 사무실로 자신을 찾아왔다는 기별을 전달받은 것이다.
피카소는 책상 위에 여행자 배낭을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배낭에서 돌덩이 두 개를 꺼냈다. 그런데 사실은 돌덩이가 아니라 두 개의 머리 조각상이었다. 부서지고 마모 상태가 심해서 원형의 훌륭한 조각품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만큼 세월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아주 오래된 고대 조각상이라는 것은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더하여, 미술부장 앙드레 살몽은 이것들이 지금 루브르 도난사건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이 훔친 세 개의 조각상 중에서 남은 두 개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라 조콘다> 도난사건이 너무나 커지자 모르므상 남작으로 거짓 행세를 하던 절도범이 자진해서 훔쳤던 세 개의 조각상 중에서 하나를 루브르 박물관에 자진 반납하겠다고 <파리 –주르날>로 가져왔고, 나머지 두 개의 조각상에 대해서는 미처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그랬는데 뜬금없이 이번엔 당대 최고의 유명 화가인 피카소가 나머지 두 개의 조각상을 가지고 나타나 루브르 박물관에 자진 반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온 것이다. 다만 단 하나의 조건으로 유출반납 경위와 출처에 대해서 비밀보장을 해달라는 사전 조건과 함께였다.
이냐스 모르므상의 도난 조각상 반납 사건이 이미 수일 동안 파리와 온 유럽의 일간지와 조간신문에 연일 대서특필 되었던 후였다. 경찰은 <조각상 도난 사건>과 <라 조콘다 도난 사건>의 배후에 한 전문적인 유럽 미술품 절도단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심하에 모르므상 남작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자 했으나, <파리–주르날>이 언론의 직업정신을 앞세운 제보자 보호 차원에서의 정보제공 거절로 사실상 수사가 정지된 상태라는 후발 기사까지 널리 퍼진 상태였다. 세상 사람들은 범인을 잡아서 <라 조콘다>를 되찾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수사당국의 몫이고, 제보자의 권익 보호와 인권 존중이라는 언론의 직업적 윤리의식을 끝까지 지켜낸 <파리-주르날>에 대한 칭송이 연일 끊이질 않고 있었다.
피카소가 지금 나머지 조각상을 가지고 루브르 박물관으로의 반납을 전재로 <파리-주르날>을 찾은 이유도 바로 그 후속 신문 기사때문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옥죄어 오고 있는 모든 불안에서 이런 해결방법을 통해 나름의 근거를 두고 벗어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조각상은 루브르로 돌아갈 것이고, 출처는 언론의 기본윤리관으로 보호될 것이며, 더 이상 조각상 도난 사건 수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되어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그가 믿을 곳이 이곳밖에 더는 없었던 것이다.
<파리-주르날>의 미술부장 앙드레 살몽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피카소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되었다.
제보자 보호를 약속으로 조각상을 인수했고, 루브르 박물관과 파리 경시청에 이 사실을 알렸다.
적어도 이제 (루브르 조각상 도난 사건)은 끝이 난 것이다. 살몽 미술 부장은 알고 있었고 확신하고 있었다. (조각상 도난 사건)과 (라 조콘다 도난 사건)은 전혀 별개의 다른 사건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전혀 별개의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여전히 두 사건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조각상 도난 사건의 주범인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을 체포하면 곧바로 <라 조콘다> 초상화를 회수 할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미 그가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의 정체까지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도르므상 남작과 아폴레네르와 피카소가 한 패라는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는 지금 왜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지금 때를 기다리면서, 모르므상 남작뿐만이 아니라, 파리와 온 유럽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이끌고 있는 시대의 거물인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를 한꺼번에 묶어서 체포할, 세상을 놀라게 할 특종을 터트릴 시간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모르므상 남작이 낌새를 채고 파리를 벗어나 어딘가로 도망친 후였기 때문이다. 지금 특별수사관들이 남작을 추적중이었다. 곧 체포될 것이다.
그렇게 이 희대의 사건을 자신이 드디어 해결해냈다는 확신에 차 있는 사람은 바로 루이 레핀 파리 경시청장이었다.
그는 고향 후배 기자로부터 (파리-주르날)에 훔친 조각상을 반납하겠다고 연락해온 모르므상 남작에 관해 제보를 받고 현장을 들이닥쳤었다. 이미 남작이 다녀간 직후였지만, 루브르의 큐레이터와 살몽 미술부장의 거래 현장을 덮칠 수 있었다. 그들의 횡설수설 변명을 들었고 언론의 직업윤리와 사명의식을 들었지만, 그런 말에 순순히 넘어가고 승복하면서 경시청장 자리에까지 오른 호락호락한 레핀은 결코 아니었다. 더군다나 레핀의 습격을 사주하고 나서 주변에 숨어서 동태를 살피던 후배 기자의 눈에 신분을 숨긴 채 신문사를 도망치듯 떠나고 있던 모르므상 남작의 모습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그는 이미 파리에서 상당히 널리 알려진 의외의 인물이었던 것이다. 레핀은 이내 남작의 정체까지 아주 쉽게 알아낼 수 있었다. 레핀은 큐레이터와 살몽 미술부장을 이번엔 파리 경시청의 취조실로 불러들였다. 그후에 벌어진 결과는 쉽게 예측이 가능한 수순에 의해서 일사천리로 이어져 나갔다.
레핀은 이제 사건의 전모를 모두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하나의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파리-주르날) 이라는 신문사의 존립과 살몽 미술부장의 현실을 존중해주고 배려하는 차원에서 사건의 전모를 알려주고, 차후의 사건 해결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선에서의 딜(거래)이 이루어졌다. 언젠가 레핀이 이 사건을 폭로하고 관련자들을 체포하고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도 가능하면 (파리-주르날)이나 살몽 미술부장의 제보와 협조가 드러나지 않게, (파리-주르날)이 올바른 공공의 언론기관이라는 체면과 자부심을 어느 정도 보장해 주는 선에서 이미 완전한 내부거래자로 포섭이 된 것이다.
그래서 당장 시간을 주고 뜸을 들이면서, 먼저 남작을 체포하고, 언론을 통한 범죄를 폭로해 가면서 최종적으로 <라 조콘다> 도난 사건을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아폴리네르와 피카소라는 거물까지 체포하는 큰 공을 세우려고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막을 전혀 모르고 지금 피카소가 화약을 지고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든 것이다.
제발로 찾아와 스스로 올가미로 걸려든 꼴이 되고 말았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는 속담이 딱 이경우에 기가막히게 잘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파리-주르날)은 다음날 조간 신문에 ‘루브르 조각상 사건 완전해결’ 이란 기사를 1면에 대서특필했다. 훔쳐갔던 조각상 3개가 이번에도 익명의 제보자 도움으로 모두 루브르 박물관으로 안전하게 다시 귀속되었다는 기사를 실었다.
같은날 저녁, 형사들이 파리 16구에 있는 아폴리네르의 집에 들이닥쳤다. 영장 제시와 함께 압수 수색이 철저하게 벌어졌으며, 수갑이 채워져 긴급체포되었다. 경찰 호송차에 채워져 최고재판소로 이송되었으며, 대통령이 이번 사건에 특별 임명한 드리우 판사의 법정에서 심문이 이루어졌는데, 자정이 넘을 때까지 심문이 길게 이어졌다.
드리우 판사는 익명의 제보를 바탕으로 당대 최고 달변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던 아폴리네르를 향해 집중 공세를 퍼부었다. 처음 아폴리네르는 현란한 말솜씨로 판사의 공세를 요리조리 잘 피하는 듯 보였으나, 판사의 입에서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라는 이름이 터져 나오는 순간 그만 하얗게 질린 얼굴이 되고 말았다. 아폴리네르는 결국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순간처럼 머릿속은 온통 헝클어져 수습불가의 상태로 엉켜버렸고, 시야는 흐려져서 판사의 얼굴조차 판별할 수가 없었다. 심장이 터질 만큼 요동쳤으며, 차라리 이대로 숨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의 귓전에는 ‘제리 피에레에게 당장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밤 기차를 타라고 종용한 사실이 있습니까?’라는 판사의 다그침이 메아리처럼 연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처음 아폴리네르가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그는 모르므상 남작과의 관계를 완전히 부정했다. 경찰은 남작의 정체를 밝히지 않는다면 범인은닉죄, 장물 소지죄, 거기에다 공무집행방해죄를 추가로 적용하겠다고 압박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제시될 증거가 없음을 확신한 아폴레네르는 즉석에서 같은 죄로 검찰에 기소되고, 속성 수사로 곧바로 최고재판소로 끌려가면서도 이대로 버티기만 하면 증거 불충분으로 아침이면 풀려 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리우 판사의 입에서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 라는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에 그는 무엇인가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루브르에서 조각상을 훔친 사람이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가 모두 저지른 일이라는 것을 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순간 그는 넋을 잃고 말았다. 이제 판사는 그 조각상 도난이 모르므상 남작이 훔쳐서 자신에게 가져온 것이었는지, 아니면 아폴리네르 자신이 훔쳐 오도록 사주하였는지를 물어 올 것이다. 이제는 아폴리네르 자신조차도 그게 처음에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건의 핵심은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으로 신분을 위장하고 루브르 조각상을 훔친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가 도대체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그가 체포되어 모든 사건의 진실을 밝히면 될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마지막에 누구에게 유익할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그와 아폴리네르는 도대체 무슨 관계인가?
거기에 더해서 어찌하여 지금 파블로 피카소의 손에서 나머지 조각상 두 점이 나왔다는 말인가?
어쨌거나 이제 이후로 파생되는 이번 사건의 엄청난 파장은 모두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의 정체에서 불거져 나오게 된다.
이쯤에서 우리는 이 사건을 보는 시선을 한 번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사건은 대단히 복잡해 지고, 관련자들이 모두 자기중심의 유리한 주장만을 되풀이하게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의 주장이 다르고, 정체가 드러난 모르므상 남작은 해외로 도피 중인 채 재판은 벌어지게 된다. 한참 시간이 지나 이집트에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모르므상 남작은 심지어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석방된다.
결국엔 이렇게 말도 안되는 허망한 상황으로 전개가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정작 이 사건이 더 유명해지는 계기는, 사건의 진위나 경중과 상관없이, 이 사건으로 인해서 죽고 못 사는 친구이자 동지였던 아폴리네르와 피카소가 철천지 원수처럼 갈라섰다는 데 있었다. 더하여 ‘세기의 연인’이라 칭송받았던 ‘아폴레네르와 마리 로랑생의 이별’이 더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여전히 지금도 ‘마리 로랑생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폴레네르만을 사랑했다가, 그가 엄청난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어 커다란 충격을 받아 그를 떠났다’라고 알려졌지만, 필자가 위에 먼저 서술한 것처럼 마리 로랑생은 이미 이번 사건의 전모에 대해 처음부터 모두 알고 있었으며 상당 부분 관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의 헤어짐은 이후로 전개되는 사건으로 인해 파생되는 새로운 상황 때문이라고 필자는 본다. 아마도 점차 드러나는 모르므상 남작의 진짜 정체에서 발생하는 여러 여파 때문이라고 추측해 본다. 그동안 알려진 바와는 상당히 다르다.
더불어 이 사건으로 인한 가장 큰 오해는, 졸지에(?) <라 조콘다>가 하루 아침에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으로 급 신분 상승을 했다는 20세기 초유의 사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어디서 어떻게 보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사실에 근접할까?
나는 진실에 가장 가깝게 다가서기 위해서는 약간의 무리가 있겠지만, 파리경시청장 루이 레핀의 입장에서 이 사건의 전반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마무리까지 모두 관여한 실무자일뿐더러 가장 많은 관계자를 만났고 가장 많은 정보를 접했다. 다만 자신의 입지 확보나 출세를 위해 개인적 사감이 들어간 부분과 강압에 의한 수사 정보가 있음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에서 나온 정보나 증거를 통해야만 이 복잡하고 미묘한 사건의 전체 정황을 그나마 그려낼 수 있기에, 어느 정도 그의 사사로운 욕심을 걸러내는 과정은 필요하되, 그의 시점으로 이번 사건을 바라보아야만 진실에 가장 근접할 수 있다고 본다. 하여 필자는 그의 시선과 당시의 수사 기록을 토대로 이들의 이야기를 마저 하고자 한다.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Honoré Joseph Géry-Pieret)는 누구인가?
그와‘이냐스 모르므상 남작(Baron Ignace de Mormusant)은 어떤 관계인가?
그가훔친 루브르 조각상이 어떻게 피카소의 손에서 나오게 되었는가?
리베리아 반도에서 출토된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훔친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Baron Ignace de Mormusant)은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가짜 이름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왜 하필 이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을까?
사실 애냐스 모르므상 남작이란 이름은 기용 아폴리네르의 단편소설 <이단 교주 주식회사(L'Hérésiarque et Cie)>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의 이름이었다. 이 소설은 종교와 철학과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마구 넘나들며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본성과 본질을 다루고 있는, 기괴함과 유머와 극단의 풍자가 섞인 20여 편의 옴니버스 형식을 빌린 단편 소설집이다. 이 책에서 모르므상 남작은 책의 서문에 해당하는 <이단 교주 주식회사>의 주인공이다. 그는 뛰어난 언변과 외모와 타고난 매력을 무기로 사기행각을 벌이고 이단 종교의 교주가 되어 사람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상천외한 종교 사업가로 그려진다.
이 대목에서 필자의 관심을 가장 강력하게 잡아끄는 것은 아폴리네르가 과연 누구에게 어던 모티브를 얻어 모르므상 남작을 창조했느냐 하는 부분이다. 아울러 그런 모르므상 남작을 자신의 가명으로 기꺼이 택한 절도범은 또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게도, 범인의 정체가 드러나고 조사를 해보니 소설 속의 남작과 절도범은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아니 빼다 박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아마도 절도범은 자신을 모르므상 남작의 환생이라 여겼고, 정말로 그런 세상을 살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생각해본다면 소설이 결코 전혀 근거 없는 허상만도 아니었던 듯 싶다.
어쨌거나, 처음에 아폴리네르는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다르게 어떤 절도범이 모르므상 남작이라는 자신이 창조한 인물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때문에 엉뚱하게 범죄 용의 선상에 올랐다. 엉뚱한 실수로 벌어진 일인데 파헤치다 보니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었던것이다. 이런 것을 우리 조상님들은‘도랑 치다가 가재 잡는다’라고 하셨었다.
‘아폴리네르가 아무 관계가 없는데 왜 하필 범인이 그 이름을 썼겠어?’ 하는 막연한 의심에 어느 순간 아폴레네르가 관여된 게 드러났고, 웬걸 고구마 줄기를 따라가며 파 보니 전혀 엉뚱한데서 파블로 피카소가 매달려 나오는 것이 아닌가?
도깨비 시장에서 다 망가져 가는 낡은 그림이 하나 있어서 거금 오만원을 주고 샀는데, 그게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세례자 요한> 진품이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천육백억 원을 줄 테니 당장 팔라는 미술관이 나왔다면 시방 그게 말이 돼?
모르므상 찾겠다고 나섰는데 아폴리네르가 나오고 피카소가 범인이라면, 그걸 밝힌 경찰관은 어떻게 되는 거지?
당시에 (알세이느 루팡)이라는 대도적 소설이 사회적으로 널리 퍼져 유명세를 톡톡히 치루고 있던 시대였으니, 루이 레핀 경시청장은 이제 <파리의 셜록 홈즈>가 되는 일만 남았지 않았을까?
이냐스 모르므상 남작(Baron Ignace de Mormusant) 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던 루브르 조각상 절도범의 정체는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Honoré Joseph Géry-Pieret)라는 당시 34세의 벨기에 청년이었다.
그럼 제리 피에레라는 이 도둑놈(?)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이냐?
정확히 200년 전, 전 유럽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트린 인물이 있었다. 베네치아 출신의 모험가이자 작가이자 시인이면서 소설가였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성직자로까지 신분을 바꾸어가며 유럽을 떠돌아다니며 온갖 전설 같은 추문(?)을 끊임없이 양산해 냈던 아주 특출한 꽃미남의 사내가 있었는데 세상은 그를 카사노바(Giacomo Girolamo Casanova)라 기억하고 있었다. 덕분에 설명이 쉬워졌다. 절도범 제리 피에레는 바로 ’벨기에 출신의 완벽한 20세기형 카사노바‘였던 것이다. 배우 이상 가는 꽃미남에다가 세련된 매너와 애교 넘치는 화술을 갖춘 데다가, 입을 열었다 하면 음유시인 버금가는 유려한 문체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끼가 넘치는 매력남에다 가끔 마초 같은 거칠고 위험한 모험을 즐겼으니 굳이 힘들게 일을 하면서 살아갈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의 주위엔 항상 돈과 시간을 싸들고 죽어라 쫓아다니는 귀부인들로 넘쳐났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여자들과만 놀아났으면 문제가 그리 커지지는 않았겠지만, 그는 여자만 좋아하는 나쁜 남자가 아니라 남자까지 좋아하는 양성애자였던 것이다.
필자가 지극히 개인적이자 주관적 생각으로 르네상스 시대를 살다간 아주 못되어 먹은 거랑말코(?) 예술가 세 사람을 꼽아 기억하고 있는데, 하나는 필리포 리피(Filippino Lipp)요, 다음은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요, 마지막은 첼리니Benvenuto Cellin) 인데, 이를 다시 정리하자면,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 = 카사노바 + 필리포 리피 + 카라바조 + 빈센초 첼리니> 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생각한다. 거론된 개개인의 성정이나 개뼉다구(?) 같은 삶에 대해서는 개별적으로 공부해 보시기를 바라면서 결론을 내련다.
벨기에 브뤼셀의 아주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가 아주 유명한 변호사였는데 갑자기 자살을하고 말았다. 변호사가 자살하는 경우에 뭔가 커다란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이 잘못될 수 있겠지만, 벨기에의 당시 사건 기록에 아버지의 잘못된 재판 기록이 전혀 없고 죽음에 대한 특별한 사유 거론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아버지의 자살 역시 아들인 제리 피에레의 청소년기 성장 과정과 연관이 있었으리라 필자는 추측하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피에레는 고향을 등지고 유럽을 떠돌면서 완전 독립을 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당시에 피에레 어머니와 주고받은 서신을 보자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수시로 거금을 지원해 주면서 절대로 영원히 집으로 돌아올 생각을 말라고 거듭거듭 확인한 대목이 유독 눈에 자주 띈다.
한마디로 어려서부터 이미 싹수가 노란 개차반(?) 이었다는 짐작이 충분히 가능해 진다.
이 세상에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모든 나쁜짓은 일찍부터 손수 체험을 통해 경력을 쌓아갔으며, 세상에 자신이 책임을 질 일은 애초부터 전혀 없는 개망나니(?)가 우리(집)에서 가출하여 야생의 세계에 나섰다는 이야기가 성립되는 것이다.
머리가 좋고 임기응변이 뛰어나며, 한 곳에 정착을하지 않으니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의 방랑자였다. 그렇게 20세기에 환생한 카사노바가 마침내 파리에 나타났다. 세상 모든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몰려드는 몽마르트 언덕에 말이다.
당시의 몽마르트는 흔히 지금 우리가 상상하는 몽마르트 언덕의 풍경과는 사뭇 달랐다.
몽마르트 하면 일단 상징처럼 가장 먼저 튀어나오는 샤크레 쾨르 대성당(Basilique du Sacré-Cœur)이 한창 공사를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샤크레 쾨르는 프랑스와 독일과의 프로이센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국민의 정서와 자부심을 하나로 묶어서 전진하기 위하여 벌인 20세기형 대역사였던 것이다. 하여 당시 이 언덕에는 호밀밭과 밀을 빻기 위한 정미소인 풍차들이 있었다. 서민들의 산자락 판자촌이었으며, 도심에 정착하지 못하는 배고픈 예술가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시대 흐름을 꾀하기 시작하던 때였다. 배고픈 파리의 철학자와 예술가과 시인과 소설가는 전부 이곳에 근거를 두고 얽히고 섥히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의 만남 장소로 길거리 카페가 생겨나서 성업하게 되었고, 모더니즘과 현대 미술이 거기에서 탄생했고, 마르크스와 레닌이 그 카페의 안쪽에서 사회주의 혁명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던 것이다.
당시 바로 이 몽마르트 언덕에 진을 치고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을 진두지휘하던 총사령관이 바로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였고, 조직 부장이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였는데, 지금 새로운 반항 정신으로 중무장한 아이돌 오노레 조셉 제리 피에레(Honoré Joseph Géry-Pieret)가 마침내 파리 몽마르트 언덕에 나타난 것이다.
제리 피에레는 금새 이 새로운 몽마르트 왕국에 빠져들게 되었다. 왕국의 지도자였던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의 눈에 꽃미남 제리 피에레가 유독 눈에 띄었다. 곧바로 패거리(?)의 막내로 온갖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다만, 그들은 제리 피에레가 어디 출신으로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고 어떻게 해서 여기 몽마르트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다. 피에레가 의도 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보이는 피에레의 언행으로 보아 그가 장래가 촉망되는 기꺼이 자신들과 함께하기에 충분한 인재라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후로 자주 벌어지는 여성 문제쯤이야 잘생긴 얼굴 탓일 뿐, 피카소 자신도 당장 유부녀인 페르낭드 올리비에랑 불륜 동거를 하는 처지였고, 아폴리네르 역시 마리 로랑생을 만나기 전까지 한창 여성 편력을 벌이고 있는 처지였으니 피에레의 자유 연애관을 뭐라 할 저지는 아니었던 것이다.
이제 당장 피에레에게 필요한 것은 직업을 갖는 것이었다. 돈 문제라면 언제든 엄마에게 요청해 해결하면 될 일이었겠지만, 카사노바 생활을 하기에는 그래도 뭔가 번듯한 직업으로 수입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자신은 화가로나 시인으로 수입이 없으니 말이다. 피에레는 피카소와 아폴리네르의 연줄을 동원하여 확실한 직업을 마침내 얻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루브르 박물관의 업무과에 취직을하게 된 것이다. 그는 루브르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정식 직원이 되었다.
그런 피에레의 패기넘치는 노력하는 모습이 어찌나 보기 좋았는지, 아폴리네르는 피에레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함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마리 로랑생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함께 동거하기 전까지였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혀 거론되지 않았던 새로운 의문이 필자는 떠올랐다.
세상은 루브르 도난 사건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던 로랑생이, 느닷없이 구속되는 아폴리네르의 잘못과 충격으로 인해 실망해서 헤어졌다고 알고 있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위에 말한 것처럼, 레핀 경시청장의 아폴리네르 조사 기록과 재판 기록에 따른 진술 내용에 따르자면,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와 피카소가 피에레가 저지른 조각상 도난 사건의 초기부터 이미 모두 알고 있었고, 이 사태의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운 것으로 드러난다. 하여, 아폴리네르의 범죄 연루가 드러나서 헤어졌다는 말은 신빙성이 지극히 떨어진다.
대신 필자는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로랑생은 절도범 제리 피에레를 잘 알았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왜냐하면 아폴리네르가 로랑생을 만나는 순간부터 사랑에 빠져 자신이 집을 비워줄 때까지 늘 함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을 주로 보냈기 때문이다.
‘어느정도 얼굴은 잘 생겨서 그 얼굴로 꼴값을 떨기는 하지만 아직은 세상 물정을 제대로 모르는 애송이가 가끔 루브르에서 도둑질을 일삼아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정도로만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이 커져 떠들썩해지고 아폴리네르가 구속되고 피카소가 구속 직전까지 몰리게 되어 좀 더 소상한 그간의 사정을 알게 되었으며, 피카소의 구속과 함께 터져 나온 제리 피에레의 정체와 과거 행적이 낱낱이 드러나게 되자 로랑생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몽마르트를 드나드는 모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조각상 절도라는 범죄보다도 이제까지 피에레가 저지른 숱한 염문들이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염문설의 대미는 그가 양성애자였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파리의 어떤 여자와 무슨 짓을 벌였는지가 입방아에 올랐고, 그가 파리의 어떤 남자와 어떤 행위를 벌였는지 대한 상상의 나래까지 동원된 난도질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피카소가 피에레를 유독 귀여워 해서 늘 옆구리에 끼고 다녔고, 아폴리네르가 너무도 사랑해서 자신의 집에 들여서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가 소문으로 번지기 시작했다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갔을까? 그가 여색을 넘어 남색의 경지까지 돌파를 했다면 혹시......... 로랑생도 어쩌면...........?
아마도 필자의 생각엔 피에레와 관련된 사건의 파장과 이후로 찾아들 불행의 예감이 로랑생으로 하여금 아폴리네르 곁을 떠나게 만들었다고 생각된다. 사건 자체보다 장차 닥쳐올 엄청난 휴유증이 더 두려웠을 것이다.
아폴리네르와 당장 함게 손잡고 세느 강에 뛰어들 결심을 하지 못한 이상, 아폴리네르와 헤어짐을 선택해 세상의 시야와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가슴속의 소중한 절대적 사랑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사건의 발단은 이미 4년이나 지난 1907년에 벌어진 일이었다.
피카소의 소개로 로랑생과 아폴리네르가 만나 활화산처럼 한참 뜨거운 사랑이 불타오르기 시작한 때였다.
‘로랑생. 혹시 루브르에서 가지고 싶은 것 있어요? 생각해 보고 이야기 해주면 내가 무엇이든 다 구해다 줄께요.’
몽마르트의 카페에서 저녁 시간을 함께 즐기던 피에레가 로랑생에게 뜬금없이 지나는 말처럼 농담을 건넸다.
‘피에레. 말씀만으로도 고마워요. 받은 것으로 할께요. 박물관은 국가의 재산인데 그걸 피에레가 어쩌려구요? 이야기하면 하나 사주실래요?’
‘눈에 띄는 아주 유명한 것 아니라면 하나 구해드릴께요.’
‘붙잡혀 가기 싫어서라도 안할래요. 대신, 피카소가 요즘 새로운 구상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던데, 그럼 대신에 우리가 같이 박물관에 가서 실컷 가까이서 만져 보기도 하면서 구경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전시실에 내놓지 않은 미술품도 엄청 많다면서요? 그런 귀한 것들도 실컷 구경하게 해 줄 수 있어요? 피카소와 페르낭드가 간다면 우리도 갈께요.’
‘그건 쉬운 일이예요. 좋아요. 네 사람을 위해서 내가 루브르를 단독 개관시켜 드릴께요. 모레 월요일 아침에 루브르에서 만나요. 휴관 일엔 직원밖에 없으니까 내가 직원 가족 방문으로 조치해 둘께요.’
그리고 이틀 뒤 아침 열시에 그들은 드농관 입구에서 다시 만났다.
그날 이들은 루브르 박물관을 온종일 쏘아다니며 보고 싶은 미술품들을 지근거리에서 만나 볼 수 있었다. 지하의 수장고와 연구실에서 복원 보수 중인 작품들에 만나볼 수 있었다.
그냥 박물관의 이곳 저곳에서 뜨문뜨문 관계 직원들을 만날 수는 있었지만, 모두가 이미 피에레와 잘 알고 있는 사이들이었는지라, 오후에 박물관을 나설 때까지 어떤 제지나 제재를 전혀 받지 않았다.
다시 몽마르트 카페에서 저녁 식사를 하며서까지도 온통 화제는 루브르 박물관의 미술품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피카소가 스페인 사람이어서였는지, 고대 전시실에서 유심히 살펴보았던 리베리아 반도에서 출토된 석 점의 고대 조각상에 대하여 끊임없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훼손이 심하기도 했고 조형미나 어떤 면으로 보아도 별반 관심을 끌지 못할 것 같은, 발굴 과정에서 흔하게 나오는 그저 그런 정도의 돌덩이 정도밖에 피에레 입장에서는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던 것을 지금 피카소는 관심을 넘어 집착에 가까운 열의를 보이는 것에 대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아폴리네르 조차도 그런 피카소의 표정에서 다소 어처구니없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사흘 지나서 아폴리네르가 피에레를 찾아왔다.
‘피에레. 로랑생에게 루브르에서 가지고 싶은 것이 혹시 있느냐고 몰었었다면서? 그게 정말로 가능해?’
‘두 분의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혹시나 있다면 선물을 대신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쑥 튀어나왔던 이야기예요. 왜요? 로랑생이 생각나시는 게 있으시대요? 말씀해 보세요. <비너스>나 <니케>는 안 되겠지만 혹 작은 소품 정도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겠어요? 말씀해 보세요.’
‘크게 잘못되는 나쁜일이 아니라면......... 피카소가 관심을 보였던 그런 정도라면?’
‘그 리베리아 반도에서 출토된 돌덩이들요? 아니 쌓이고 많은게 미술품인데 아무도 쳐다보지도 않는 그 돌덩이요? 도대체 모르겠네요? 피카소가 왜 그런 정도에 관심을 가지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기욤은 이해가 되나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꼭 자네 같은 생각이야. 안되면 어디 채석장에 가서 내가 손수 깎아다 줄 까봐.’
‘시간을 좀 주세요. 궁리를 좀 해 볼게요.’
‘경비가 들것 같으면 나에게 사전에 상의해 줘. 저런 멍충이 같은 피카소에게 선물이라도 해주고 싶으니까.’
한 달쯤 지나서 몽마르트 언덕에 있는 피카소의 작업실 ‘바토 라브와르(Bateau-Lavoir)’에 게리 피에레가 예고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그는 등에 지고 있던 여행용 배낭을 내려놓았다.
‘아폴리네르가 당신에게 꼭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고 저에게 한 달 전에 부탁하더군요. 사실은 저도 마찬가지로 피카소 당신에게 무엇인가 선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준비를 했습니다. 약간의 과정은 있었지만 아무 탈 없이 피카소에게 드리고 싶었던 것을 여기 가져왔습니다. 아마도 당신 마음에 꼭 들 것이라 생각해서 마련했습니다. 아무 문제 없으니까 잘 보관하시면서 아껴주세요. 남들에게 대놓고 너무 자랑하지는 마시고 작업실에 놓고 혼자만 보세요. 아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럼.’
말을 마친 피에레는 미처 피카소가 어떤 대답을 하기도 전에 바람처럼 문을 열고 저만치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아닌 초저녁에 홍두깨라고 해야할까?
피카소는 피에레가 놓고 간 배낭의 끈을 풀고 안을 살폈다.
배낭 안에는 얼마전 루브르 박물관 방문에서 자신의 영혼을 온통 끌어들이다시피 했던 리베리아 반도에서 출토된 조각상 두 개가 신문에 싸인 채 들어있었다.
엄청난 감동과 충격의 거센 파도가 피카소의 폐부를 사정없이 관통해 지나가기 시작했다.
아주 조심스럽게 떨리는 손으로 조각상을 하나씩 꺼내서 살피는 피카소의 눈에 어느새 북받치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고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아폴리네르의 부탁으로 게리 피에레가 이 조각상을 선물고 가져왔는데, 그것이 분명히 루브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가의 재산이고, 어떤 과정과 서연을 담고 이렇게 불쑥 자신의 손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아폴리네르나 피에레에게 해명을 들어야 했음에도 그는 이미 영혼까지 모두 두 조각상에 빼앗겨버린 후였다. 혼이 나간 상태라고나 할까?
이날부터 피카소는 일절 외부생활 없이 오로지 작업실에만 틀어박혀 버렸다. 아마도 피카소의 인생을 통털어 살펴보아도 이렇게 완전하게 은둔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때를 맞춰 페르낭드 올리비에가 식사를 챙겨서 작업실을 찾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만나주지조차 않았다. 완전 작업실 폐관에 들어갔다.
피카소는 작업실에서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는 오로지 그림 그리는 일에만 매달렸다. 여러개의 캔버스를 설치해 놓고 이런저런 다양한 구성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그리는 작업이 아니라 마치 그림을 연구하는 심정으로 분해하고 짜깁기하고 다시 조립하는 것 같은 실험실 분위기였다. 아폴리네르와 몽마르트에 몰려드는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이 찾아왔지만, 피카소의 작업실은 굳게 잠겼고, 안쪽에서 아무런 대응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보름쯤 지났을까?
가을색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는 몽마르트 언덕의 피카소 작업실 바토 라브와르(Bateau-Lavoir)의 커튼이 모두 젖혀지고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소식을 접한 화가와 작가와 지인들이 바토 라브와르로 몰려들었을 때, 작업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마친 페르낭드가 문 앞에서 서서 줄지어 찾아오는 지인들을 맞이했다. 피카소는 작업실 안쪽 구석의 소파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의 이젤에 올려진 커다란 캔버스(243.9 × 233.7cm)에 채 물감이 다 마르지 않은 피카소의 새로운 작품이 막 완성을 끝내고 첫선을 보이고 있었다.
엄청난 탄성과 공포에 가까운 전율이 바토 라브와르를 가득 채우고도 남아 열려진 문과 창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상황으로 보아 누구라도 이 그림 대문에 한동안 피카소가 폐관에 들어갔었음을 익히 짐작할 수 있었는데, 지금 새롭게 등장한 그의 새로운 작품은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건 무슨 그림이야?’‘이것도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걸까?’
다만, 아폴리네르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을 때, 다행이도 루브르의 조각상은 작업실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조각상은 지금 다시 배낭에 담겨서 피카소가 잠들어 있는 소파 아래 깊숙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피카소. 이게 뭐야?’
피카소는 캔버스 아래로 자필로 적힌 작품을 소개하는 제목을 써서 붙여 놓았던 것인데,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
이제까지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어떤 화가의 그림과도 완전히 다른, 조금은 난해하고 등장인물들이 난도질이라도 당한 듯한 사뭇 기괴한 느낌의 그림이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와중에도 해부당한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어디서 본 듯한, 전혀 낯설지만 않은 느낌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아폴리네르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누구랑 닮은 것 같은데?’
--- 글 올리는 작업중입니다. 조금 바쁜 시기다 보니 시간이 좀 걸리겠습니다. 기다려 주세요. 피안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