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사(淨巖寺) /전통사찰이 아님, 한국불교 태고종
-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정암사는 불암산 정상 가는 길에 있어 들렸다.
정암사 아미타칠존도(淨巖寺 阿彌陀七尊圖,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54호)를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절은 조금 어수선한 느낌이다. 문화재는 따로 보관하고 있는 것 같다.
절 입구, 승탑 두 기와 사적비가 있다.
대웅전
대웅전 안
마당에서 본 경치
멋진 종루는 따로 없다. 약사삼존불과 오층석탑은 문화재는 아니다.
약사여래불, 용왕당을 보고 들어가 봤다.
산신전과 관음전. 자연석을 이용하여 꾸민 곳이다.
불암산 학도암(佛巖山鶴到庵) /전통사찰
- 서울시 노원구 중계동
1624년(인조 2) 무공(無空)이 불암산의 한 암자를 지금 자리로 옮겨 창건하였다고 한다.
초기 절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전하는 말에 절 주위 불암산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학이 이곳에 날아와 노닐었다고 하여 학도암. 1878년(고종 15) 벽운(碧雲)이 중창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성담(聖曇)이 주지로 있을 때 절을 확장하였다.
1950년의 6·25전쟁 때 소실되었고, 1965년 주지 김명호가 중창하였다.
(다음-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발췌하여 정리)
힘들게 왔다. 오후 6시 가깝다. 정암사..불암산 정상..석천암..불암사..천보사..학도암.
전각 안은 볼 수 없겠지만 야외에 있는 마애불은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들렸다.
절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느낌이 좋다.
불기 2993년 병오년 3월 중건.
병오년 1966년이다. 위 백과사전엔 1965년 주지 김명호가 중창하였다고 나온다. 중창 시작과 완공에 따른 기록이 아닐까?
불기 2993년은 뜬금없다.
북방불교(입멸 기원전 949년)에 따르면 불기 2993년은 서기 2044년이다. 앞으로 21년 더 가야 한다.
남방불교(입멸 기원전 544년)에 다르면 불기 2993년은 서기 2448년이다.
요즘은 남방불교 입멸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 병오년 1866년이면 불기 2520년이다.
학도암 전망대에서 본 경치
대웅전으로 저녁 예불 드리러 가는 승려, 거대한 바위에 마애불이 있다.
저녁 예불을 드리고 있어 대웅전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학도암 마애관음보살좌상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4호
1870년 왕실 발원으로 마애불을 새겼다. 높이 13.4m,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마애불이라 한다.
고종의 사랑을 받지 못한 명성황후가 궁녀의 제안으로 경복궁을 지은 화원과 석공을 동원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마애불 완공 후 명성황후는 고종의 사랑을 얻었고 아들을 얻었다. 이 아들이 훗날 순종이다.
학도암 마애불은 선이 뚜렷하고 전체 균형과 안정감이 있다. 잘 그려진 마애불이다.
궁중 화원과 석공, 이들은 수준 높은 전문가이다. 이들의 작품이라고 하니 몇 번이고 보았다.
왼편에 마애불 제작에 참여한 사람들 이름이 있다.
증명비구(證明比丘)는 혜묵(惠默), 학윤(學閏), 천석(天錫)이다.
금어(金魚/화승)는 장엽(莊瞱), 석수(石手)는 김흥련(金興蓮), 이운철(李云喆), 원증천(元曾天), 박천(朴千), 황원석(黃元石)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마애불은 10점 정도 알려져 있다고 한다. 내가 다녀 보았지만 조선시대 마애불을 만나긴 어렵다.
학도암 마애사리탑 /서울시 문화재자료
승려 취근과 그의 제자 월영의 사리탑이다. 월영은 출가하지 않은 제자라고 한다.
<환ㅇ당 선사 취근탑>, <영주탑>은 1819년(순조 대)에 만들었다.
마애사리탑은 조선시대 말인 19세기부터 병풍석이 많은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안내문에 이렇게 적혀 있지만 나는 이런 사리탑은 처음 접한다.
파여진 곳에 사리함이 있었겠다. 지금은 공허하다.
왼편이 청신녀 영주지탑이고 오른편 취근선사탑이다.
이 마애사리탑은 그냥 지나칠 뻔하였다. 내리막을 뒤로 걷기 위해 돌아섰을 때 이 탑을 보았다.
처음 접하는 마애사리탑, 다른 절에 가서도 찾아 봐야겠다. 병풍석이 있는 곳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