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252) 장송의 환대
조조에게 쫒겨난 장송은 정욱의 배려로 곤장은 맞는 시늉만을 한 뒤에, 함께 온 시종 하나만을 데리고 황급히 앞장서 허창을 떠났다.
그리하여 말을 달리다 잠시 쉬는 중에 시종이 묻는다.
"대인, 서천은 여기서 서쪽으로 가야할 것인데 어째서 동쪽으로 가십니까 ?"
"내가 주공 앞에서 조조를 설득해 한중을 치게 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이렇게 빈 손으로 돌아가면 조정의 관리들은 비웃을 테고, 주공께도 면목이 없지 않느냐 ? 허창으로 올 때에는 서천을 조조에게 바칠 생각이었지만, 조조를 가까이에서 겪어 보니, 그렇게 속이 좁은 인간인 줄은 정말 몰랐다."
"조조가 그렇게나 오만한 사람이니, 큰일이군요. 그런 인간이 승상 자리에 있다니, 제가 볼 땐 오래 못 갈 겁니다. 대인, 그냥 익주로 가시죠. "
"음 !... 그런데 여기가 어디 쯤 이더냐 ?"
"아마... 운주 부근일 겁니다."
"으 응, 그래 ? .. 그렇다면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우리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안돼, 형주 군사들을 마딱뜨려도 우리는 서천의 행상이라고 해라."
"왜 그리 염려하십니까 ?"
"주공과 유비는 같은 황실의 종친인데, 우리는 유비를 배재하고 역적인 조조에게 조공을 바치면서 까지, 도움을 청하려고 하지 않았더냐 ? 그러니 유비가 알게되면 반드시 우리를 크게 원망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이렇게 말을 나누면서 천천히 말을 몰아가는 가운데, 앞쪽에서 일단의 수레를 군사들이 호위해 다가 오는데 틀림없이 형주의 군사들이었다.
방금 전에 장송이 염려한 현실이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수레와 군사가 지나가기를 말을 세우고 길 한편에 서 있는데, 가까이 다가온 수레를 호위하는 책임자인 듯한 장송만큼이나 못생긴 사내가 수레와 군사를 멈추게 하고, 장송 앞에 우뚝 선다. 그리고,
"하하하핫 !.."
하고, 장송 일행을 보고 크게 웃는것이 아닌가 ?
장송은 말에서 내려, 웃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누구신데 저를 보고 이렇듯 웃으시는 겁니까 ?"
"소인은 방통, 자는 사원, 호는 봉추요, 제가 소개해 드리겠소."
봉추라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뒤로 돌아서서 적토마를 타고 앉은 사내를 손으로 가르킨다.
"저 분은 관운장, 그리고 저 분 께선 남군의 장익덕 장군이시오."
"세상에 !...저 분들이 ? ...."
장송은 그동안 숱하게 말로만 듣던 관운장과 장비를 실제로 만나, 소개를 받게 되자, 입을 딱 벌리며 감탄 한다. 그러자 방통이 이어서 말한다.
"저희들은 유황숙의 명으로 장 대인이 오시기를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아, 아 !.. 난, 장씨가 아니라. 성은 정씨, 서천의 행상이오."
장송은 시치미를 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봉추는 아까 보다 더 크게 웃어 제낀다.
"아,하하하하,하 !...영년 형 !... 그만 하시죠, 조공을 바치러 허창에 간 걸 우리 주공께서 벌써 알고 계시오. 그런데도 주공께선 주공의 두 아우님과 또, 소인까지.. 장장 삼백 리밖 까지 대인을 마중 보내셨소. 영년 형 ! 저희들의 안내를 받으시죠 ! "
방통은 이렇게 말하면서 수례를 향해 손짓을 해 보인다. 그러자 장송은 본색을 드러내며 묻는다.
"유황숙이 나를 왜 찾소 ?"
"하하하, 조조는 주인될 자격이 없지만, 우리 주공께선 객(客)을 좋아하시는 현군(賢君)이시죠.
영년 형, 어서 가십시다."
"수레에 오르시죠."
장비도 한마디 거든다. 게다가 관우까지 고개를 숙여 보이며 점잖은 어조로 청한다.
"어서, 수레에 오르시지요."
"음 !...."
장송은 방통을 비롯해 관우, 장비의 깍듯한 요청을 받고, 비로서 안심한 표정을 지으며 수레를 행해 다가 갔다. 장송을 태운 수레는 방통, 관우, 장비를 비롯해 그의 병사들의 정중한 호위(에스코트: Escort)를 받으며, 형주를 향하여 출발하였다.
장송이 탄 수레가 드디어 형주에 접근하였다. 형주성을 십 리쯤 앞두고 수레가 멈추었고, 그곳에는 유비와 와룡(臥龍)이 취타대를 비롯한 환영 인파를 대동하고 붉은 양탄자를 깔아 놓고 장송의 도착을 맞이하는 것이 아닌가 ?
장송은 생전 처음 맞이하는 융숭한 환영 준비에 어리둥절하였다.
그리하여 속으로,
"아,아 ! 유비의 포부는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 명성이 헛됨이 아니다>이구나 ! ...)
하고, 감탄하였다.
유비와 공명이 함께 장송의 앞으로 다가와 먼저, 극진한 인삿말을 하며, 허리를 깊숙히 굽혀 절을한다.
"형주목 유비가 장 대인을 맞이합니다."
조조 앞에서는 오만불손하기 짝없던 장송이었지만, 유비의 환대에 감격하여 정중한 답례의 인사를 한다.
"미천한 소인을 위해, 황숙께서 친히 맞아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성대한 환영은 제 평생 처음 봅니다."
"저, 유비가 영년의 존함은 익히 들었으나, 워낙 먼 곳에 계시어 만날 수가 없었다가 , 허창에 들렀다가 서천으로 돌아가신다기에 아우들에게 영접토록 했는데, 혹시 결례를 범한 것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비록 누추한 곳이지만, 잠시 묵어가신다면, 이 유비의 복일 것입니다."
"아 ! 황숙의 융숭한 대접에 소인 감개무량 합니다만, 이런 과분한 예를 소인이 받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입니다."
"선생같은 국사(國師)께는 이 정도 예가 당연합니다. 귀 주공 유장은 황형(皇兄)이시니, 선생을 뵙는 것은 황형을 뵙는 것과 같습니다. 가시죠."
"황숙 ! 가시지요."
이들이 성문에 이르는 바닥에는 붉은색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군데 군데 군기(軍旗)가 깔려있었다.
"저 깃발은 군기(軍旗)가 아닙니까 ? 그런데 어찌 땅바닥에 깔려 있는 겁니까 ?"
장송이 군기가 땅바닥에 깔린 것이 못내 의아하였다. 그러자 유비가 하나씩 가르키며,
"저 군기는 조조와 교전할 때 노획한 겁니다. 지금 우리 발 밑에는 조조의 사령기, 조인의 장군기, 장료의 명령기, 허저의 군영기까지 있지요. 영년 ! 관우가 화용도에서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면, 조조는 이 유비의 포로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 오늘 이렇게 조조의 깃발들이 국사께서 오시는데 발판으로 쓰이는 것이 적격인 것 같습니다."
"아 ! 그간, 소인은 조조가 천하 영웅인 줄로 알았는데, 오늘 뵈오니 황숙이야 말로 천하 영웅이십니다. 적벽에서 황숙의 정예 병력에 조조가 무너졌으니, 한실 천하는 황숙께 돌아갈 겁니다."
"과한 말씀이시오. 자, 이제 들어 가시지요."
유비는 장송의 한 손을 붙들고 성문 앞으로 함께 걸어갔다.
그러자 취타대가 음률을 연주한다.
"뿌 우우 ! ~.... 뿌 우우 ! ~~...."
이윽고 유비는 장송과 함께 성궁으로 들어와, 장송을 위한 환영의 술자리를 벌였다.
"영년, 그대의 진솔한 모습과 영원한 충심에 한 잔 올리겠소. 자, 건배 !"
"고맙습니다, 건배 !"
"장 대인, 저도 한잔 올리지요."
제갈양이 술잔을 들어 보이며 건배를 제안한다.
"아, 아,아 ! 예, 예 ! 건배 !"
자신의 환대에 매우 기분이 좋아진 장송이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잔을 든다.
그러자 장비도 한 마디 하는데,
"나도, 그 옛날부터 그대를 흠모해 왔소. 자, 나도 한 잔 올리지요. 선생은 한잔 만, 나는 석잔을 ..."
"아 아, 아 !... 아니요, 장 장군, 저는 술이 약해서 조금 취했소이다."
얼굴이 붉어진 장송이 사양의 말을 한다. 그러자 장비가,
"혹시 내가 무식하다고 우습게 보는거요 ?"
하고, 말한다. 그러자 장송은,
"아,아... 그럴 리가요 ? 저는 진짜 취했습니다. 진짜 !..."
"조조도 겁내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술을 겁낸단 말이오 ? 자, 건배 !"
장비가 이쯤 말하자,. 장송은 더이상 사양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네, 건배 !"
하고, 술잔을 들어 좌중을 한바퀴 돌아 보이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장송은, 유비, 공명, 관우, 장비, 방통에 둘러싸여, 이날 밤, 고주망태가 되고 말았다.
"딸꾹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