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소녀가 보고 싶다
조규남
살이 오르기 전 산은 한기의 집. 시린 바람이 세를 불리다 떠난 곳. 나뭇가지들은 얼마나 흔들리고 또 얼마나 몸을 비틀었을까! 제 몸이 상하는 줄도 모르고 서로 부딪쳐 관절을 꺾으며 봄을 불러들였을 것이다.
얼었던 산의 살갗이 풀려 바슬바슬하다. 따듯한 기운을 숨차게 끌어당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모든 생명이 약동하는 이맘때면 다분히 염세적이고 다분히 반항적인 심사를 품고 몸부림쳤던 사춘기 시절의 한때가 떠오른다.
하얀 칼라를 빳빳이 세운 교복을 입고 등교하는 친구들을 바라볼 땐 봄날이었지만 고약한 찬바람이 도사리고 있는 한겨울이었다. 추락의 깊이를 알 수 없는 무저갱으로 줄달음치는 공허와 허탈감이 절망의 집을 지었다. 맑은 바람과 청량한 전원의 공기, 이따금 날개를 치며 날아오르는 꿩의 울음소리가 침울한 정신을 일깨웠지만 어느새 도돌이표처럼 되돌아온 우울은 줄기차게 나를 괴롭혔다.
터덜터덜 완만한 산길을 걸어 닿는 곳은 선영(先塋)이었다. 습관처럼 묘비석에 기대고 앉아 너른 백사장을 거느린 시냇물을 우두커니 내려다보았다. 큰 장마에 성이 나면 사납게 뒤척이던 시냇물은 한없이 유순하고 보드랍게 흘러 을씨년스러운 적막만 사방을 조이며 달려들었다.
햇살이 힘겨워하는 나를 데워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어떤 위로의 말이나 안온한 손길 없이도 얼굴을 어루만져 탱탱하게 부풀렸다. 눈을 감으면 스르르 잠이 들 것 같은데 묘비석은 자꾸 내 등을 밀어냈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라고 찬 기운을 딱딱하게 내뿜었다. 작은 체구를 일으켜 세울 힘이 없었다. 거침없이 열려 있는 텅빈 공간이 빠져나올 수 없는 심해였다. 묘비석에 기댄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찬바람이 불어 뺨이라도 후려쳐주면 좋으련만 바람은 딴 곳에 마음을 두어 기척하지 않았다.
울기에 적당한 장소였다. 아무도 듣는 이 없고, 아무도 간섭하는 이 없어 마음 편한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은데, 실컷 우는 대신 짐승 같은 괴성을 질러댔다. 원망인지, 하소연인지 내장 깊은 곳의 응어리를 토해냈지만 빈 메아리는 멀리 가지 못하고 나의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더 크고 단단하게 뭉쳐 명치끝을 막았다. 숨통을 쥐어짜는 무수한 의문부호, 아버지는 왜 세상을 뜨셨을까? 왜 상급학교에 진학할 무렵에 내가 극복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어놓았을까?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보다 학교에 가지 못한 괴로움에 꼬이고 비틀어지고 거칠어졌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붙들고 씨름했다. 이해할 수 없는 그 단어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극단적인 충동이 일어날 땐 서슬 퍼런 물결을 떠올렸다. 밥을 먹다가도 숟가락을 내동댕이치고 내달려 넘실거리는 시퍼런 물가에 닿으면 오금이 저려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맹독에 시달리듯 빼빼 말라 갔다. 물결에 반사되는 노을은 냉혹하도록 붉게 물들어 메마른 가슴을 바싹바싹 타들어가게 했다. 졸업생 중엔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나만 진학하지 못한 것 같았다. 교복을 입는 대열에 끼지 못했다는 소외감과 좌절감이 점령군처럼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건너편 복숭아밭은 화사한 봄볕을 걸치고 연분홍을 펼쳐놓았다. 아름다웠다. 곱고 찬란해 눈이 시렸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의 목소리가 허공중에서 들리는 듯했다. 세상엔 살아 있는 생명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살아 있어야 찬란한 것이다.
살아 있어야, 살아 있어야, 라는 말을 되뇌며 멍을 때리고 앉아 있으면 맑게 쏟아지는 햇살이 시들어가는 내 몸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그래 살아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지, 장엄한 빛은 일만 광년을 달려와 내 몸에 따뜻함을 산란하지 않는가. 천지를 비추며 찬란히 빛나지 않는가.’
죽고 싶다는 말은 살고 싶다는 항변이었다. 그랬다. 누구보다도 꿋꿋하게 살아남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세상으로 나가 보자고 마음먹었다. 도시는 나에게 기회의 땅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희망을 걸었다. 돌아가신 조상님들에게 기대어 울며불며 매달리느니 줄기차게 살아 돌아가는 세상에 합류하자고.
도시는 뿌리 없이 떠도는 타향이었다. 희망과 꿈을 실현하는 땅이었지만 힘들고 막막할 때 몸을 의탁할 수 있는 비빌 언덕은 아니었다.
간혹 질풍노도처럼 내달려 조상님들의 묘비석에 기대어 있던 시절이 떠오른다. 눈을 감으면 푸른 물결이 넘실거린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죽겠다고 아우성치던 철부지를 감싸준 햇살과 딱딱한 묘비석의 기운은 조상님들 훈계와 같은 채찍이었다. 그것들은 나의 정신을 살찌운 토양이었고 염치없이 엉겨 뭉개도 포근히 받아주는 등받이였다.
겨울을 견디어낸 나뭇가지 끝에서 새싹들이 다사다난한 세상에 발걸음을 내딛는다. 내가 무작정 상경해 낯선 길을 헤쳐 왔듯 저 여린 것들도 이정표 없는 허공에 길 없는 길을 헤쳐갈 것이다.
친구들보다 늦은 상급학교 진학이 뭐가 낭패인가!
하지만 학교가 세상의 전부였던 시절, 참으로 하찮은 것을 붙들고 몸부림쳤던 사춘기의 고뇌가 있어 나는 더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며 동네 둘레길을 걷는다. 맑게 빛나는 햇살이 내 등을 따뜻이 덥혀준다. 조상님들의 묘비석이 지키는 고향에도 찬란한 봄기운이 만연해 있을 것이다. 복숭아꽃은 여전히 아름다울 것이며 햇살은 내 몸을 부려놓던 자리를 안온하게 데워주고 있을 것이다. 그 시절 그 봄, 가장 절망적인 시간인 양, 가장 불행한 사람인 양, 염세적인 사춘기를 앓던 시절, 조상들의 묘비석에 기대어 고뇌하던 어린 소녀를 그려본다. 여리고 지순하지만 제 몸을 모두 태워버릴 불덩이 같았던 소녀가 미치도록 보고 싶다.
2012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詩 당선
경기문화재단 전문예술 창작지원금 수혜
제6회 구로문학상 수상
시집 『연두는 모른다』, 소설집 『핑거로즈』
공저 『향기의 과녘』, 『문득, 로그인』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