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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시대와 우리글 ‘ㅁ’이 머리인 낱말 6개의 수수께끼;머리가 우두머리:
‘ㅁ’자 항렬 6 오누이는 아래와 같이 서로 얽혀서 ‘나’를 만들어준다.
* 머리->두뇌, * 마음->정신, * 말->생각,
* 몸->경험, * 무리->삶, * 마을->사회/나라/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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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내 마음 나도 몰라요;
왜 그런지 나도 몰라 / 알 수 없는 내 마음.
떠나버린 그 사람을 / 잊지 못해 괴로워,
또 다시 불러보는 / 무정한 내 사랑,
미워했다 좋아했다.
이 가사는 강용주가 부른 ‘내 마음 나도 몰라.’이다. 내 마음을 나도 모른다는 건 이 노래의 말뿐 아니라,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나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나 똑같이 느끼고 있다. 왜 제 마음이라면서 모르는 걸까? 그것은 내 손이나 발, 가슴이나 얼굴처럼 눈으로(객관적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내 몸 안에 깊숙이 있기 때문도 아니다. 내 체내에 내장된 온갖 장기는 해부를 해 보면 눈으로 보게 된다. 그러나 내 마음이란 것은 해부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엄연히 ‘내 마음은 있다.’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존재하고 있다고 하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예전에는 마음이 가슴 안쪽에 있는 심장에 자리하고 있다고들 생각해 왔다. 지금도 심장 모양으로 그린 빨간 색 하트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표로 삼고 있다. 사랑이 심장에서 나온다는 생각에서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 덕분에 감정을 나타내는 마음의 움직임이 심정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머릿속에 있는 골(뇌)에서 나온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여전히 그 마음을 육안으로나 현미경이나 망원경이나 그 밖의 어떤 것으로 보지 못했다.
#.2; 인간의 지능과 AI의 인공지능은 어떻게 다른가?
(가)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 했다. 인간은 한 개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분쇄하는 데는 전 우주를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넉넉히 그를 죽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분쇄하는 경우에 있어서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한층 더 고귀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파스칼의 말이다. 그렇다. 우리 인간은 생각을 하는 동물이다. 그런데 그 생각이란 무엇이며 어디서 오는지가 의문인 것이다. 이건 아직까지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난제 중 난문이다.
여기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서 생각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하자. 사람을 ‘생각’하는 갈대라 했으니... 생각(思考)은 마음의 활동 표현이다. 마음이 있기에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부딪친다. 이쯤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독자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언을 남긴 철학자를 생각할 것이다. 독일이 낳은 근세의 위대한 철학자 루네 데카르트(Rene Descarte.1596~1650)이다. 그는 이 명언을 1641년에 낸 저서 ‘성찰’에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 나는 있다. 나는 실존한다....하지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인가? 생각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분명 그것은 의심하고, 이해하고, 긍정하고, 부정하고, 의지하고, 의지하지 않고, 상상하며, 또한 생각하는 존재이다.”
(나) AI도 생각을 하는가?
이와 같이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과 그 인간을 지능적으로 능가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AI는 어떻게 다른가? 실제로 인공지능(AI)에 관련된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새삼 인간의 지능이 훌륭하다는 것에 놀라고 그 우월성에 압도당한다고 한다. 발달한 시계로 하여금 사람과 같이 그 어떤 지적인 행위를 하게 한다. 그것은 원래 컴퓨터가 인간보다 뛰어난 수학적인 기능, 곧 복잡한 계산과 같은 것을 해낸다 해도, 그와 같은 계산이나 검색 따위가 아니고, 무엇을 보고서 듣고, 이해하며, 비서나 동업자처럼 진언을 하거나 하고, 상대방의 표정이나 말투, 음성을 통해 상대가 기뻐하느냐, 화를 내고 있느냐, 슬퍼하고 있느냐와 같은 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때그때 그와 같은 경우에 그에 상응하는 일을 해 낼 수 있는 기계가 나타난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풍요로운 세상이 될 것인가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과 같이 감정을 표현하거나 또는 사람이 학습을 시키지 않아도 제멋대로 진화해 나가는 데까지 기계는 발달하지 않았다. 아직은 그와 같은 인공지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뇌의 신경회로망을 단순화해서 모조한 뉴럴넷(腦網,neural-net)이라는 반세기의 역사를 갖는 기술에 의해, 2012년에 구굴이 고양이의 개념을 획득했다는 큰 약진이 나타나기도 하고서 2010년대에 들어 와서는 인공지능이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화상(畵像)의 내부를 설명하거나, 게임의 국면을 예상해서 이기려는 새로운 응용을 가해서 종래로 여러 가지 수법으로 부분적으로 실용되어 온 화상인식이라던가, 음성인식, 기계번역 따위 인공지능에 대한 디프러닝(deep learnig, 강화학습이라는 뜻으로서 종래에는 입력층, 중간층, 출력층의 3층이던 것을 다층화한 것을 의미한다)에 의한 정밀도가 크게 향상하고 있다. 그 밖에도 기계학습 최적화 알고리즘을 비롯해 인공지능적인 컴퓨터 소프트웨어가 실용화하고 있는 것 따위에는 1) 빅 데이터(big data)가 발생하고 유통함으로서 손쉽게 사용하게 된 것과, 2) 계산기의 파워가 이전 의 인공지능 붐 시기의 몇 천 배, 몇 만 배가 되었다는 배경이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멈추고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라는 것을 생각해 보자. 사실 이것은 AI전문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여러 가지 답이 있거나, 애매하거나 해서 실상 하나의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인공’이란 말이 딸린 것 전에 ‘지능’이란 말의 개념 자체도 그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우선 지능이란 ‘알지 못하는 문제나 처음으로 부딪친 상황에 대처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나, 그와 유사한 말, 곧 지혜, 지적임, 지식과 지능의 관계 따위 말들이 과연 과학적으로 엄밀히 장의가 내려졌는가 하면 그런 말들 간에 미묘한 뉴앙스의 차이를 보게 된다.
(다) AI의 탄생과 성장 역사;
그러면 이 인공지능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세상을 발칵 뒤집을 정도로 탄생 성장하고 있는가를 알아보자. 우리는 알파고(AlphaGo)를 통해 인공지능이 전 세계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 사실 인공지능은 오랜 침체기를 거쳐 클라우드 컴퓨팅 환경의 급속한 발전과 빅 데이터가 뒷받침되어 디프러닝(deep learning)이 구현되는 극적인 돌파구가 열리면서 전환기를 맞았으며 이제 이 인공지능은 4차 산업의 핵심 요소로 떠올랐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되기까지의 역사를 훑어보면, 아마도 2016년 알파고와 한국의 이세돌과의 대국과 인공지능이 포함될 것이다. 알파고를 통하여 인공지능이 사람들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인간의 지능을 가진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인공지능은 인간이 컴퓨터이션방법을 발전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다. 그 역사를 살펴보면 상당한 기간 동안 굴곡진 시간을 거쳐왔다. 1930~1940년대부터 생각하는 기계에 관한 기대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튜링테스트*가 개발되고 수리논리학이나 컴퓨테이션, 사이버네틱스 정보이론 등 인간의 사고 과정에 대한 이론들이 등장했다.
<*주;> 튜링테스트 = 인간의 질문에 대한 컴퓨터의 응답으로 컴퓨터의 지능을 평가하는 테스트. 제안자인 튜링에 연유하여 명명되었다.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테스트이다. 한 방에 컴퓨터, 다른 방에 사람을 두고, 어느 방에 컴퓨터가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밖에서 통신선을 통해 각 방에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고 하자.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이 모두 적절하여 컴퓨터의 답인지 인간의 답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에, 컴퓨터는 인간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튜링은 정의했다. 응답은 음성으로써가 아니라 인쇄의 형식으로 프린터에 출력되고, 그것이 비교되었다. 현 단계에서는 영역을 한정하면 이러한 레벨의 테스트에 어느 정도 합격하는 것도 있다. 전문가 시스템 중에 그런 것이 있으나 이 경우에도 완전한 응답은 어려워, 현재로서는 이 테스트에 합격하는 것은 없다.>
1956년 처음으로 인공지능, 곧 AI(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지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생가보다 어렵다는 것이 판명되어 1970년대까지 침체기를 겪어 영국의 AI연구소가 해체되고, 미국의 연구재단은 AI연구 지원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1980년대에 신경망이론(neural network theory, 인간의 기억이 신경망으로 구성돼 있고, 기억 내용들이 노드(node)사이의 연결 강도로 저장되는 이론. 이 신경망 이론에서는 단기 기억과 장기 기억이 기억 마디들의 활성화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고 설명한다)으로 인공지능이 재발견되었는데, 신경망 이론은 인간의 사고를 두뇌 작용의 산물로 보고 이 두뇌 구조를 분석하고 처리하는 메커니즘을 규명해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는 이론에서 출발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적용하기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관리할 방법이 없었으며 다시 침체기를 맞았다가 1990년대 인터넷의 발전으로 다시 부활하였다. 검색엔진 등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애기에서 기계학습을 가능하게 되어 수많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공지능 스스로 학습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간의 뇌를 모방한 신경망 네트워크구조로 이루어진 디프러닝 알고리즘으로 발전하면서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었다. 1997년 5월 IBM의 슈퍼컴퓨터디프블루가 여러 번의 도전 끝에 당시 체스 세계챔피언이었던 게리 카스파로프를 물리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2011년 2월에는 IBM의 왓슨이 미국의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인 재퍼디 퀴즈쇼에서 두 명의 참가자들을 누르고 우승했다. 세계는 기계가 인간을 이겼다는 사실에 놀랐고, 이에 따라 IBM등이 주도하는 인고지능 개발에 대한 관심도 다시 크게 높아졌다.
기존의 컴퓨터는 인간의 연산능력을 배가하는 것만으로도 인간 사회를 크게 시켜왔다. 더욱이 이는 인간이 작성한 프로그램을 통해서만 이루어졌고 인간이 관여하였으나, 컴퓨터가 인간의 관여 없이 스스로 학습해 결정하는 인공지능 능력을 만들어 낸 것이다. 지능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으로 알려져 왔던 것을 뒤집은 것이었다. 물론 동물의 다른 종도 약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나 그 정도는 매우 미약해 지능이라고 불린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만이 가진 것으로 알았던 지능을 컴퓨터가 스스로 갖게 된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던 것이다. 이는 기계학습이라는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기계학습은 기계가 수학적 최적화 및 통계분석 기법을 기반으로 사람의 도움 없이도 데이터로부터 일정한 신호와 패턴을 배우고, 그것을 바탕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측하며 적합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알고리즘을 만드는 일에 주력한다. 이런 기계학습 방법론에 기댄 인고지능 연구 흐름은 특히 2012년 6월 구글과 앤드루옹이 기계학습의 한 분야인 디프러닝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컴퓨터가 1,000만개의 유튜브 동영상 속에서 고양이 이미지를 75%정도의 정확도로 식별하도록 하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면서 커다란 도약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디프러닝은 신경망 네트워크 개념을 이용하여 가능해졌다. 클라우드 컴퓨터링 환경의 급속한 발전과 빅 데이터가 뒷받침되자 디프러닝으로 구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3; 한글의 ‘ㅁ’이 머리에 붙은 ‘6 오누이 낱말’ 중 우두머리는 ‘머리’;
(가) 6 오누이는;
‘ㅁ’자 항렬 6 오누이는 아래와 같이 서로 얽혀서 ‘나’를 만들어 준다.
* 머리->두뇌,
* 마음->정신,
* 말->생각,
* 몸->경험,
* 무리->삶,
* 마을->사회 /나라 /세계 /우주.
이들 6 오누이는 서로 연결돼 있다. 머리에서 마음이 생각을 낳으면 그것이 말이나 몸을 통해 외부로 나타나고 남과 만나서 어울려 무리를 이룬다. 이 무리가 마을, 곧 커뮤니티를 이루고, 그것들이 모여서 사회가 형성된다. 나라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 6 오누이들 중 첫 번째가 머리이다. 문자그대로 우두머리이다.
(나) 왜 머리가 우두머리인가?
머리는 뇌를 말한다. 머리의 알맹이가 뇌이다. 이 머리, 곧 뇌로 사람이나 그 밖의 동물들이 의식을 한다. 사람의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인간 구실을 못한다. 속된 말로 ‘무뇌’이라고 한다. 의식이 없으면 자기 자신조차도 알지 못한다. 뇌에 고장이 난 병 중 치매를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머리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하고, 또한 그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을 생각하는 존재라 하는 것은 뇌의 작용이 있어서 가능하다. 생각의 출발점이 곧 ‘생각’이고, 그 생각은 뇌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이 ‘생각하는 존재’를 ‘마음’이라고 말해도 과히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이란 것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으며 1인칭이고 주관적이다. 이 생각의 기능을 담당하는 에이전트가 마음이다. 다른 말로 ‘마음 활동’이나 ‘마음 과정’이라고 표현해도 좋다. 이 생각이 흘러가는 시냇물과 같이 제 갈 길을 따라 흘러가면 좋으련만, 그렇지를 않고 시시각각 변하는 요물 행세를 한다. 그래서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푸념이 생겼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남의 마음을 알려고 한다면 그건 너무나 엉뚱한 생각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은 요지경이어서 남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는 사람도 있다고 장담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그것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 곧 관상쟁이나 점쟁이가 그렇다. 하지만 그들도 진짜 마음, 그 마음의 속내, 생각까지를 꿰뚫어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 마음과 지능;
마음의 특징으로 언급되는 것 중에 이해와 공감이 있다. 이 둘은 물론 서로 다른 개념이다.이해가 포괄적인 ‘의미 이해’를 뜻한다면, 공감은 ‘타인의 심정에 대한 이해’를 가리킨다. 이런 점에서는 둘을 묶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인간의 마음은 본성상 편파적이라는 것이다. 앞의 6 오누이 중 ‘무리’에 해당한다고 하겠는데, 이해나 공감도 자기와 가까운 사람과 잘 통한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에게 이런 것까지 사람을 닮으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아무리 요구한다 해도 인공지능으로는 불가능 할 것이다. 여기 인간지능을 뛰어넘을 수 없는 인공지능의 한계가 있다.
다음으로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이성(理性)을 꼽는다. 그런데 이 이성이라는 것도 그 의미를 살펴보면 꽤나 광범위하다. 그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널리 퍼진 의미는 ‘라틴어 ratio’에서 유래 한 것으로써 합리적이라는 뜻의 영어 rational의 어원이 그것이다. 이 말은 원래 ‘계산 능력’을 뜻한다. 이성적, 합리적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계산적이라는 것이다. Ration이 ‘비(比)’라는 뜻을 나타내는 낱말이기도 한 것이 그 증거이다. 사실 인간은 수(數)에 약하고 계산이 서툴다. 수와 계산에 능해지려면 많은 훈련이 따른다. 그래도 잘 안 된다. 학생들의 속어 중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것이 등장한 연유일 것이다. 여기서 생각되는 것이 앞으로 인공지능에게 탈취(?) 당할 비율이 가장 높은 직업이 숫자, 곧 계산을 다루는 화이트컬러 직종이라는 것이다.
마음의 또 다른 특징이 ‘자유의지’ 또는 ‘의도’이다. 인간은 자유의지의 소유자라고 한다. 또한 장차 무엇을 할지 의도을 갖고 행동한다. 자유의지가 없다면 뭔가를 도모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둘을 나누지 않고 자유의지 개념에 초점을 맞춰도 무방하다. 자유의지는 ‘몸과 마음의 관계’ 문제에서 쟁점이 되며, ‘인과’라는 주제와 직접 관련이 된다.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이 완성한 고전역학에 따르면 물리세계가 인과의 사슬, 더 정확히는 인과의 그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생각을 결정론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P.S. Laplace, 1749~1827)는 ‘확률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에서 “우주에 있는 모든 원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는 뉴톤의 운동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의 모든 현상을 설명해주고 미래까지 예언할 수 있다.”
다음으로 마음이 철학적 개념인데 비해 지능은 생물학적 개념이다. 지능은 환경에 상대적이다. 특정 환경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환경 일반’이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진화 과정에서 생존과 번식에 성공하면 지능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능도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인간 아동과 비슷한 지능을 가진 동물들을 말하곤 한다. 하지만 각 종마다 일정 수준의 지능을 갖추고 있다고 해야 적절하지 않을까. 정글에서는 침판지가, 바다에서는 돌고래가 더 “똑똑하다”라고 말하지 않는가. 인간이 자기들 마음대로 꾸며낸 신화를 통해 우주의 위계를 ‘신, 인간, 동물, 식물, 무생물’순으로 설정하고 있으나, 그 사이에 AI도 침입하려는 것이 오늘과 내일의 추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