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페의 글은
2016년 4월 14일 포스팅하였습니다.
이 땅에 기독교를 박멸해야 한다는 헛소리는
안티 기독교의 다른 복음이 되었습니다.
"개독박멸"이라는 기독교를 잡는 그 엄한 소리를 따라 추적하니
제주도 4.3사건과 보도연맹과 그리고 신천 학살 사건이 연관어로 검색되었습니다.
제주도 4.3 사건......
1948년에서 1954년까지 7년 동안 제주도민 삼분의 일이 학살되었는데
개티들은 그 배후가 기독교라고 하였습니다...???
제주도 4.3 사건은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였던 제주도의 남로당이 일으킨 무력 폭동으로
당시 제주도에 남로당이 폭넓게 분포되어 있어서 서북 청년단이 투입되어 7년 동안 제거하는 과정에서
그 무지막지한 폭력으로 수 많은 양민이 학살 되었습니다.
양민을 인질로 잡고 6.25 전쟁을 포함하여 7년 동안 저항하였으며
남로당의 무장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국가 공권력이 투입되었습니다.
이것을 민중사관의 좌파들은
국가폭력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또한 보도 연맹은 당시 남한에 있었던 공산주의자가 전향하여 국가의 특별 관리를 받고 있었는데
6.25 사변이 일어 나면서 혼란의 불씨를 제거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급습하여 숙청하였습니다.
그 때도 서북 청년단이 앞장 섰는데
당시 보도 연맹의 가입자가 20만 이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처음 보도 연맹은 국가의 감시 대상이었으나 남로당은 이것을 역이용하여
보도 연맹에 가입하면 많은 혜택을 받고 또 잘 먹고 잘 살 것이라고 혹세무민하여 공무원과 교사 등
지식인과 의식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많이 가입하였고
이것은 남로당에 가입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6.25 사변이 일어나자 정부는 보도 연맹 가입자를 우선적으로 학살하였고
보도 연맹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가입한 수 많은 양민이 덩달아 학살되었습니다.
여기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소위 서북 청년단이었습니다.
보도 연맹 가입자는 서북 청년단의 표적이 되었고
그들은 산 속으로 숨어 들었으며 빨치산의 후예로 매도 되어 무차별 척살되었습니다.
6.25 사변으로 말미암은 비극의 역사는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멸공과 적화의 대립과 갈등으로 말미암은 잔혹사였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 감정은 권력이 만들어 낸 정치적 포퓰리즘이며
보도 연맹의 가입자가 유난히 전라도에 많이 있어 빨치산의 후예로 지목되었고 탄압받았으며 저항하였습니다.
서북 청년단이 보도 연맹을 색출하는 과정에서 전라도가 지역적으로 편승 되어
수 많은 양민이 빨치산의 후예로 탄압 받았으며
그들의 저항 정신은 오늘날까지 종북 세력이라는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희생되었습니다.
서북 청년단,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해방 후 북한은 김일성 공산 정권이 들어서서
지주와 자본가와 친일 앞잡이와 기독교인을 잔혹하게 숙청하였습니다.
그 때 엄청난 공산주의 폭력에 희생된 관서와 관북의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참상을 피하여 월남하였는데 그들이 서북 청년단을 조직하여 자발적으로
북한 공산당의 피해를 남한에 남아 있는 좌익의 남로당에게 앙갚음을 하였습니다.
남한의 공산주의와 남로당에 대한 그들의 폭력은 잔인 무도 그 자체였으며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은 그들의 만행을 묵인하였으며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하였습니다.
서북 청년단은 대부분 기독교인으로 영락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당시 공산당 때려잡는 악명 높은 극우 테러 분자가 되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기독교 분포는
북한 지역이 80% 이상 되었습니다.
오늘날 남한의 대형교회는
대부분 월남한 당시 북한의 기독교 지도자들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민중사관을 가진 사학자들은
반공의 이름으로 양민을 학살한 현대사의 비극을 주도한 서북청년단의 활동을 암묵적으로 묵인하였고
또 그 배후인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가 아니라 남북의 분단을 조장하였으며
일제 시대보다 더 많은 양민을 학살한 민족의 반역자라고 매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국정과 검증의 사관이 양립할 수 없는 역사관은
오늘날까지 현대사의 비극이 되었습니다.
국정 사관으로 우리 나라 음지의 역사를 담을 수 없고.
그렇다고 민중 사관과 진보 사관에 뿌리를 둔 검정 사관으로 성공한 정권의 역사를
긍정적으로 담을 수 없을 것입니다.
독립 사관과 민족 사관, 그리고 증산도의 대한 사관이 있지만
현대사의 발전과 비극을 모두 융합할 수 있는 사관으로는 객관성이 없습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기독교인이었고
기독교 국가를 만들겠다는 건국 이념을 가졌습니다.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과 서북 청년단, 그리고 그 배후로 지목된 기독교는
빨치산 후예로 매도 되어 학살 되었던 그 후손들의 영원한 공적이 되었습니다.
서북 청년단은 북한의 기독 청년으로 월남하여 남한에서 반공 투사로 활동하였으며
반공의 이름으로 무차별 폭력을 행사한 정치 깡패 집단이 되었습니다.
반도사관에 뿌리를 둔 뉴라이트 역사관은 친일을 미화하듯 이것을 미화하였고....
민중사관은 현대사의 비극을 민족의 대참사 보았습니다.
일제 시대를 미화한 반도사관은 근대화의 뿌리를 강조하였고
독립 사관은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였습니다.
기독교 인사가 주축이 된 뉴라이트 역사관에 대한 반발은
안티 기독교를 종교화 시켰으며 기독교 박멸의 종교로 발흥하였습니다.
안티 기독교의 입장은
민족의 아픈 역사를 주도하고 왜곡한 기독교야말로
이 땅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민족의 반역 종교로 인식하였습니다.
이것은 민주 정권 10년 동안 형성 되었으며
기독교 장로인 이명박 정부 시절 안티 기독교 운동은 그 절정에 달하였습니다.
서북 청년단은 4.19 혁명 후 해체 되었는데
대부분 기독교의 목사가 되어 오늘날 대형 교회의 주역이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를 박멸하여 민족의 치욕을 씻고
기독교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안티 기독교의 목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5년 8.15일을 기점으로
당시 기독교인은 인구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는 독립 운동가도 많았고
주기철, 손양원, 한상동 등 유명 목사님은 옥고를 치렀습니다.
서북 청년단은 관서와 해서, 그리고 관북에서 공산주의의 만행으로 남하한 반공 투사요,
그 가운데 기독교인이 많았지만
기독교 정신으로 제주 4.3사건이나 보도연맹의 탄압을 주도하였다는 것은 억측이요, 왜곡입니다.
반도 사관이나 뉴라이트 역사관은 기독교 인사가 주도하였으나 일부 세력일 뿐......
기독교를 대변하는 사관이 아닙니다.
뉴라이트 사관은
대부분 좌익에서 우익으로 전향한 기독교인의 정치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치욕을 겪으면서 전국적으로 싹튼 공산주의 좌익 사상은 당시 항일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민족의 정치적 희망으로 자리 잡게 되어 남한의 민주 정권을 수립하는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결국 이승만의 자유 민주 독재 정권은 주적이 항일에서 반공이 되었고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서북 청년단을 이용하여 일제의 치욕을 함께 겪었을 독립 운동가와
민족의 지도자에게 공산주의라는 옷을 입혀 총칼을 겨누었습니다.
항일 독립 운동가들 가운데 공산주의는 북한에 정착되었고
오늘날까지 민족 분단, 그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주적은 일본이 아니라 북한이 되었으며
북한의 공산당에게 가장 많은 핍박을 받았던 친일파는 반공의 투사가 되어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의 중심 세력이 되었습니다.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의 정체성은
북한의 반민특위로 최대의 피해를 입은 친일파가 수혜를 입고 득세하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친일파는 새로운 나라의 기득권층이 되어 공산주의 독립 운동가와 대립하게 되었고
독립 운동가는 민주 독재 정권의 친일 세력에게 또 다시 짓밟히고 희생되었습니다.
그 친일파 가운데는 신사참배 가결로 변절한 기독교 인사가 많았고
그들은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을 옹호하였으며 반공의 투사로 기독교를 건국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친일 종교로 매도 되었고
독립 운동가의 후손을 좌익 사상을 가진 종북 세력으로 몰아
보수 기득권을 유지하는 정치 권력에 기생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힘 있는 정치 권력에 기생하는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없는 하나님의 뜻이요, 부패와 적폐에 편승된 죄악의 굴레일 뿐입니다.
소위 기독교에서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란
일제에 순응하고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을 옹호하며 유신 독재를 찬양하며
군사 독재를 합리화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안티 기독교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반민족의 반려사관을 가진 친일의 종교라는 뿌리 깊은 안티의 종자를 가졌습니다.
역사의 비극은 일제 시대에 남한에도 공산주의자가 많았고
독립 운동가와 민족의 지도자 가운데 항일의 공산주의자가 많았습니다.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나는 정치 희망으로 민중에 자리 잡은 좌익 사상은
북한의 공산주의가 될 수 밖에 없는 시대 상황을 가졌으며 남한에도 죄악 사상을 가진 자가 많았습니다.
남로당의 괴수 박헌영은 당시 남한의 70%가 남로당에 가입되었다고 김일성에게 보고하였고
서울만 정복하면 남한은 무너질 것이라는 오판으로 김일성은 6.25사변을 일으켰습니다.
남한의 좌익 사상을 가진 사람은 이승만 민주독재 정권의 주적이 되어
보도연맹에 가입한 자는 남로당에 가입된 자로 잔혹하게 처형되었고 학살 되었습니다.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의 반공 투사는
북한 공산당의 잔혹한 핍박을 받은 서북 청년단, 곧 친일파와 기독교 인사와 자본가였습니다.
비극의 현대사는 모두가 피해자요, 모두가 가해자가 되어
혼동의 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대한민국의 역사관을 정립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건국 이념은
반민특위 해체와 반공 정책에 자연히 기독교가 편승되었고
기독교는 서청의 탈을 쓰고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친일하고 반공하는 역사 왜곡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안티 기독교의 정서는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의 주체 세력은 친일 반공의 무장으로
항일 독립 투사에게 위해를 가하였고 그 후예를 종북 세력으로 몰아
오늘날까지 정치 이념의 극대화를 주도한 기독교를 반민족 종교 집단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진보 사관과 민중 사관이 되었으나
승리한 자의 살아 있는 그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죽은 자의 사관이 되었습니다.
진보의 주체 세력은 발전된 오늘과 내일의 역사를 창조하지 못하였으며
투쟁의 역사를 통하여 또 다른 비극의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들은 항일을 말하면서 일본을 동경하였고 반미를 외치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선호하였으며
항일과 반미의 주체 세력에 편승되어 진보의 색채를 종북으로 물들였습니다.
한 때는 종북으로 매도 되었지만
종북의 올가미는 진보의 주체 사상이 되었습니다.
차별 금지를 말하면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훼손하고
그들이 민생을 등에 업고 주장하는 보편적 사회 복지는 한 때 좌익의 주체 사상이었습니다.
민주를 외치면서 공산주의 독재를 비판하지 않고
민생을 부르짖으면서 북한의 인권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진보적 가치가 공산주의를 비판하지 않는 것은
항일 정신으로 친일과 이승만 민주 독재를 타도하는 공동의 목적을 보편적 가치로
그 유서 깊은 뿌리를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회주의 사상에 편승된 진보적 가치는
경제 민주화의 봄바람이 되어 민생의 향연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 민주화는
사회주의 이상을 그리워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에 불과합니다.
경제 민주화는 실체가 없는 허상이요,
사회주의도 만들지 못한 역사적으로 실패한 유물론적 경제 정책입니다.
시장 경제는 자본주의의 생명이요,경제 민주화는 정책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의 공동체가 자본론과 유물론을 모두 배격하고 탐욕을 버리고
서로 섬기고 나누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이상입니다.
역사의 알맹이가 없는 약자의 고스프레는
민중 사관과 진보적 가치의 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진보적 가치에 편승된 안티 기독교 운동은
편향된 인본주의 주체 사관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하고 날조하는 고스프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 비극의 근현대사는
천주교를 탄압하였던 쇄국 정책과 세도 정치, 그리고 대한제국의 종말이 빚은 참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한제국은 임오군란으로 촉발된 청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전리품이며
일본의 내정개혁인 갑오경장으로 동학 농민 전쟁이 일어났으며 관군과 일본군의 연합으로 진압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1894년은 갑오경장과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이 일어난 해로
청나라의 세력이 물러나고 일본의 세력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1897년 대한제국의 탄생으로 왕의 나라가 아닌 황제의 나라가 되었으나
독립문이 말해주듯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났지만 일본의 실효적 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한제국은 청나라에서 벗어난 주권 독립 국가였지만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전리품에 불과하였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일본의 지배는 1910년 한일 합방이라는 치욕의 역사를 기록하였고
일본의 식민지배가 시작되었습니다.
주권과 영토를 빼앗긴 우리나라는
민족의 말살 정책과 함께 일본화 작업이 시작되었고 항일과 반일 독립 운동은 민족적 사명이 되었습니다.
이 때 국제 정세는 1911년에 일어난 신해혁명으로 1912년에 청나라가 멸망하고
손문의 중화민국이 탄생하였습니다.
1914년 1차 세계 전쟁이 발발하여 1918년에 종식되었고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여 제정 러시아는 무너지고 소련 공산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1931년 만주 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1937년 중일 전쟁을 일으켜
1939년에 일어난 세계 2차 전쟁의 동아시아 전쟁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은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식으로 무조건 항복하기 까지
제국주의 열강으로 위력을 떨쳤습니다.
일본의 식민 체제에 있었던 우리 나라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편승되어
대동아 전쟁의 일원이 되었고 일본말을 하고 일본의 문화에 동화 되었습니다.
독립 운동가들은 우리 나라에 발을 붙이지도 못하고
중국과 만주와 러시아와 미국 등으로 망명하여 독립 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일본의 식민 체제에서 민족 종교와 기독교는
일제의 탄압 가운데 종말론적인 신앙으로 발전하였습니다.
일제의 강점기의 희망은
종교적 소망과 함께 공산주의 좌익 사상이 항일 운동의 주체 세력이 되었습니다.
독립 운동가들이 타국에서 독립 운동을 전개하는 동안
우리 나라는 친일파가 득세하여 일본의 압제에 가세하였으며 좌익 사상이 민생의 희망으로 싹텄습니다.
친일파는 항일이 아닌 친일로 지주와 자본가가 되었고
일제의 지배층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러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맞은 해방은 스스로 쟁취한 독립이 아니라
전쟁에서 패한 일본에 편승된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습니다.
해방된 우리 나라는 갑자기 통제에서 벗어나
혼란과 혼동의 무법천지가 되었습니다.
일본의 강점기에서 해방되었지만
세계 열강에 의해서 38선을 중심으로 분할 통치 되어
남한은 미군과 북한은 소련의 군정이 시작되었습니다.
민족 독립 운동가들은 군정의 분할 통치를 반대하였고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은 남한의 단독 정부를 수립하였습니다.
군정의 분할 통치와 남한의 단독 정부 수립을 반대하였던 민족 독립 운동가들은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에 의하여 탄압받았으며 공산주의 독립 운동가로 매도되었습니다.
북한의 공산 정권은 토지 개혁을 하였고
지주와 자본가와 친일파와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인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고 숙청하였습니다.
그 때 수 많은 사람들이 탄압을 피하여 월남하엿고
그 가운데는 친일파와 기독교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북한 공산당의 탄압을 받은 친일파와 기독교인은 반공의 투사가 되었고
그들은 관서와 해서의 '서'자와 관북의 '북"자를 합하여
서북 청년단을 결성하여 남한의 민주 정권을 도와 좌익 사상을 척결하는 반공과 멸공의 전사가 되었습니다.
대부분 남한의 친일파는 복원되어 반공 투사가 되었고
기독교 인사는 신사 참배를 하며 일본의 적당이 되었는데 일본의 압제보다 더 잔혹한
공산당의 적당이 되지 않았습니다.
친일과 변절한 기독교 인사는 공산당의 탄압을 받았고
이승만 민주 독재 정권 시절 반공의 투사가 되어 또 다시 입지전적의 부귀와 영화를 누렸습니다.
신사 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한상동 목사님은 해방이 되자 출옥하였으나
신사참배를 가결한 적당의 동료에게 교회와 성도를 빼앗기고 또 다시 시련을 겪어야만 하였습니다.
신사참배로 옥고를 치른 목사님들은
목사직이 파면을 당하고 이단으로 낙인이 찍혀 해방의 기쁨은 통한의 세월이 되었습니다.
신사참배 반대로 순교한 주기철 목사님은 파면되었고
대한예수교 장로교 합동측에서 2015년에야 복권하였습니다.
그 동안 한국의 기독교는 친일의 역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였고
일제 시대의 신사 참배를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신사참배를 가결한 친일 세력은 일제의 앞잡이가 되었고
신사참배를 반대하며 항일 독립 운동을 하였던 기독교인은
한국의 순전한 기독교 역사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그 자체는
우리 나라에 다시 없을 치욕의 역사요, 굴욕의 역사요, 분노의 역사입니다.
과거사에 발목 잡혀 수난의 역사 그 한가운데 살았던 모든 사람을 부정한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으며 창조적 미래의 역사를 개척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두운 과거사는 역사의 거울로 삼아 깊이 반성하고 성찰하여
보다 발전된 미래사를 만드는 시대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이승만 자유 민주 독재 정권의 새로운 실세는
복원된 친일파와 북한 공산당의 탄압으로 월남한 서북 청년단이었습니다.
타국에서 독립 운동을 하였던 민족 인사는 모국에 돌아 왔지만 발 붙일 곳이 없었으며
오히려 좌익 독립 운동가에 편승 되어 서북 청년단의 척결 대상이 되었습니다.
남북이 분단 되면서 남한에 남아 있었던 죄익 세력은
국가의 정책으로 보도 연맹에 가입되어 국가의 감시와 보호를 받았으나
6.25 사변이 발발하자 그 수가 얼마인지 알지 못한 채 무차별 학살되고 살육되었습니다.
현대사의 비극은 그 비극의 참상으로 끝나지 않고
좌익과 빨치산이라는 올가미로 희생 당한 수 많은 양민의 후예들이
민중사관의 꽃이 되어 진보적 가치로 유신과 군부 독재와 싸우며 마침내 민주 정권을 창출하였습니다.
그들은 빨치산의 후예와 종북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 정치 포퓰리즘이며
반공의 투사로 둔갑한 친일파와 서북 청년단의 적당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진보적 가치의 민중사관일 것입니다.
민중사관은 성공한 정권이 주도한 현대사의 비극에 대한 마이너 역사의 진실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진보적 가치의 민중사관에 편승하여
기독교 박멸을 외치는 안티 기독교 운동을 어떻게 설득하며 근절할 것인가?
안티 기독교 운동은 민주 정권 10년 동안 숙성되었으며
기독교 장로로 대통령이 된 이명박 정권 때 반사회적 반기독교 운동으로 가시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 때 종교인 과세 시행령을 법제화하여
기독교를 모독하고 기독교를 사이비로 매도하였습니다.
성직의 근로화는 기독교의 위상을 떨어뜨렸으며
국가에 세금 잘 내는 종교는 사이비든 이단이든 국가의 인정을 받는 형국이 되었습니다.
또한 차별금지법을 법제화하여
성경의 복음 선포를 훼방하려고 획책하고 있습니다.
안티 기독교 운동은
종말론적인 기독교 박멸 운동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사탄의 세력에 편승되었습니다.
안티 기독교와 소통하며
그들의 사상과 화해하며 공유할 수 있는가?
바울은 나사렛 이단의 괴수를 박멸하는 포행자요, 핍박자였지만
그가 박해하였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하나님의 사도요,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안티 기독교가 신실한 크리스챤이 되는 일은
불가항력, 그 자체일 것입니다.
만약 그들의 주장대로 서북 청년단의 활동이 기독교 정신이었다면
오늘날 안티 기독교는 존재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공 투사의 정신으로 개티를 척결한다면
소위 말하는 제주 4.3사건은 지금도 곳곳마다 자행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인은
개티들의 짖는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 듣습니다.
길가다가 개 짖는다고
뭉둥이 찜질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질타와 비난을 받을 때 폭력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으로 용서하며 회개하며 성찰합니다.
성경의 초대 교회는
유대인과 헬리인과 로마로부터 환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무력 도발을 하지 않았으며 폭력 시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악과 싸우는 기독교인의 정신은
온유와 겸손이며 사랑과 믿음이며 용서와 관용으로 참고 견디며 인내합니다.
메스컴에 등장하는 폭력 시위를 주도하며 밀가루를 투척하며 혼란을 야기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이 아니라 기독교를 모독하는 사이비 집단입니다.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었다가 출옥한 목사님이 서북 청년단에 입단하여
양민을 학살하거나 거리의 폭력을 주도하고 보도 연맹을 척살하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며 억측이며 왜곡이요, 날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서북 청년단 가운데 혹시 기독교인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폭력을 주도하고 살상을 일삼는 기독교인은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안티 기독교의 기독교에 대한 왜곡된 분노는
부정적으로 형성된 자아에 대한 성격 파탄적 행보일 뿐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안티 기독교가 없다는 것은
사랑과 용서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자기 어둠에 갇혀 있는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생명의 빛을 경험한 사람은
그 은혜의 빛을 증거합니다.
사랑을 배우고 익힌 사람은 그 사랑을 함께 나누고 섬기며
화해와 소통과 공유의 미덕을 가질 것입니다.
기독교에 분노하는 사람의 정체성은 기독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기독교에 대해 왜곡된 시선에 사로잡힌 좀비, 그 자체일 것입니다.
안티 기독교는
기독교인이 믿는 그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해를 어떻게 보며 숨을 쉬는지 궁금합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빛을 창조하셨고
그 호흡으로 생명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바로 그 성경의 하나님을 믿는 종교입니다.
빛과 생명을 주신 하나님을 감사하는 기독교를 안티한다면......
안티 기독교의 가치는 이스라엘의 광야길을 방해하였던 미디안의 날이 될 것입니다.
바둑으로 말하면
안티 기독교는 호구요, 패착입니다.
세상의 모든 삶을 이해하는 기독교의 수는
호구와 패착 밖에 둘 수 없는 안티 기독교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진보적 가치의 민중사관에 편승하여
기독교 박멸을 내건 수는 헛수입니다.
진보적 가치의 민중사관은 민중의 시선을 가졌지만
민중의 희망으로 싹튼 죄악 사상은 볼셰비키 혁명의 정신,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민중의 따뜻한 시선으로 지상낙원의 희망을 가진 죄익사상은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을 살해하였지만
기독교의 하나님 사랑은 아들을 죽인 살인자를 양자로 삼아 사랑의 원자탄이 되었고
그 위대한 사랑의 주인공 손양원 목사님은 공산당의 총탄에 순교하였습니다.
당시 좌익과 공산주의자의 만행은 일본의 압제를 능가하였으며
항일과 독립을 앞세운 죄악 사상은 현대사 비극의 단초를 제공하였습니다.
공산당의 무혈 폭력을 진압하기 위한 이승만은 기독교 정신을 가졌어도
고육지책으로 현대사 비극의 왜곡된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민주 정신의 풀무로 연단된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도
해방 직후의 상황을 맞는다면 그 때 그 시절 이상의 역사를 결단코 기록하지 못할 것입니다.
현대사 비극의 불가항력적인 시대의 배경은 남북 전쟁의 영웅 링컨일지라도
죽은 자의 분노를 가진 사관의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일그러진 그의 두 얼굴은 전쟁일 상처일 것입니다.
진보적 가치의 따뜻한 민생 행보는 때로는 서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동적인 힘이지만
무상 배급의 보편적 가치는 역사의 퇴물로 별똥별이 되었습니다.
북한의 공산화는
무상배급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 죄익 사상의 혁명적 성공일 것입니다.
진보적 가치에 편승된 안티 기독교 운동은
유물사관으로 유신론을 배격하는 그 파행일 것입니다.
만일 가짜 기독교를 안티 한다면.....
미생에서 완생으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근본주의는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지만
한국의 기독교는 서북 청년단과 같은 사회적 패악질을 하지 않습니다.
안티 기독교의 헛수는
참된 진리의 가치에 대한 좀비적 마녀 사냥에 불과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고난과 핍박은 당하였지만
그들을 사회 법정에 고발하지도 않았고 무력 도발이나 폭력 시위를 전혀 하지 앉았습니다.
다만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행한대로 보응하실 것을 말씀하였습니다.
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 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였습니다.(살전2:15-16)
또한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고 하였습니다.(엡3:1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딤전2:4)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고 하였습니다.(겔18:32)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고 하였습니다.(겔33:11)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고 하였습니다.(히10:28-29)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계22:11)
안티 기독교 박멸 운동은
적그리스도에 편승된 반기독교 운동으로 종말론적인 거치는 반석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