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48년 전 이맘때쯤 우리나라 국민들은 TV에서 중계되는 신기한 화면에 시선이 사로잡혀 있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달 표면에 착륙한 아폴로 11호의 생중계가 바로 그것. 당시 중계권이 없었던 KBS는 주한미군의 AFKN을 받아 간접으로 중계했다.
1969년 7월 16일 발사된 아폴로 11호는 4일 만에 달에 진입했으며, 거기서 분리된 달 착륙선 ‘이글’호가 ‘고요의 바다’에 착륙한 건 7월 20일 20시 17분이었다. 그리고 6시간 30분 후 닐 암스트롱이 착륙선에서 내려 달에 역사적인 첫 발자국을 내딛었다. 이 장면은 전 세계에서 6억 명이 시청했다.
그런데 암스트롱을 비롯해 당시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인 3명은 달로 향하던 바로 그날, 수백 장에 달하는 자신들의 친필 사인지를 편지 봉투에 담아 발송했다. 그 이유는 지구에 남겨진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서였다.
아폴로 11호의 탑승 우주인 버즈 올드린이 달에 착륙한 장면. 당시 암스트롱 선장이 월진을 담았던 파우치가 경매에 나올 예정이어서 화제다. ⓒ NASA
사실 그때만 해도 인간이 달에까지 가서 살아 돌아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때문에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의 개인적인 생명보험 가입을 받아주려는 보험사도 없었다. 그중 한 보험사가 받아준다고 나섰으나 엄청난 보험료를 제시해 무산되고 말았다.
생명을 걸고 모험에 나선 우주인 3명은 가족들을 위해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자필 사인을 남겨두면 자신들이 만약 지구로 돌아오지 못할 경우 엄청난 가격에 팔릴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 즉, 자필 사인을 생명보험 대신 남긴 셈이다.
발사일에 맞춰 자필 사인지 발송해
아폴로 11호의 발사일에 맞춰 사인지를 발송한 것도 가치를 더욱 높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3명 모두 무사히 귀환했고, 가족들이 사인지를 팔 이유도 없어졌다. 그럼에도 암스트롱 등이 당시 남긴 자필 사인은 이후 곳곳에서 발견돼 그중 일부는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했다.
만약 우주인과 함께 달까지 갖다온 물품이라면 가치는 더욱 높아진다. 지난 2015년 10월 미국 보스턴의 RR 경매에 등장한 블로바 스톱워치가 대표적인 사례다. 아폴로 15호 선장 데이브 스콧이 착용한 이 시계는 시초가 5만 달러로 경매에 나왔으나, 플로리다 주의 한 사업가에게 162만5000달러에 팔렸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달에 간 모든 우주인에게 특별한 시계를 제공했다. 스위스의 명품 시계 회사 오메가가 알래스카 프로젝트라는 코드명으로 비밀리에 만든 ‘스피드마스터’라는 우주 시계가 바로 그것. 양극 산화 처리한 알루미늄 케이스를 장착한 이 시계는 우주의 극한 상황에서도 사용 가능한 유일한 시계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스콧 선장은 지급 받은 오메가 시계가 달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에 대비해 블로바 시계를 추가로 가져갔다. NASA에서 지급한 오메가 시계는 정부 재산이라 개인적으로 구매하거나 팔 수 없다. 그런데 스콧 선장의 블로바 시계는 개인 소유물이었던 것. 즉, 이 시계는 판매가 가능한 유일한 ‘우주여행을 다녀온 시계’였다.
다가오는 7월 20일에는 또 하나의 우주 물품이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긴 이날 소더비 경매장에 등장할 물품은 바로 30㎝ 길이의 흰색 파우치. 이 물품을 판매하는 소더비 경매회사는 지금까지 경매에 나온 것 중 가장 중요한 우주 물품이라고 밝혔다. 이 파우치는 바로 암스트롱이 달에서 다섯 숟갈 분량의 월진(月塵)을 수집할 때 사용했던 주머니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중요한 물품이라면 우주인에게 지급되던 오메가 시계처럼 미국 정부 재산으로 분류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이 파우치는 현재 시카고의 인근 도시 인버니스에 사는 평범한 변호사 낸시 리 칼슨의 소유품이다.
소송 끝에 NASA로부터 파우치 돌려받아
칼슨이 이 역사적 물품을 구입한 건 2015년 2월. 2014년 미국 법원행정처가 실시한 압수물품 경매에서 한 차례 유찰된 것을 텍사스 주의 한 경매업체에서 단돈 955달러에 구입했다.
사실 이 파우치는 2006년 한 형사 사건을 수사하던 미 연방수사국이 캔자스 우주박물관 관장으로부터 압수한 물품이었다. 관장은 박물관 소장품을 훔쳐 팔았다는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그때 파우치도 다른 소장품과 함께 수사당국에 보관돼 있다가 압수물품 경매에 나왔다.
월진이 담겨 있었다는 설명을 읽고 구입한 칼슨은 몇 개월 후 휴스턴에 있는 NASA의 존슨우주센터로 파우치를 보냈다. 진품 여부를 정확히 확인받고 싶어서였다. 감정 결과 파우치에는 진짜 달의 흙먼지가 묻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NASA 측에서 파우치를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개인이 소유할 수 없는 역사적 유물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결국 NASA는 법원에 압류물품 경매 무효 소송을 냈고, 그에 맞서 칼슨도 연방법원에 NASA의 부당 압류를 제소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몇 년 전에도 있었다. 아폴로 11호 우주인들이 사용한 카메라의 필름 카트리지에서 채취한 우주 티끌을 존슨우주센터의 직원이 몰래 빼돌렸던 것. 암시장에서 약 10년 동안이나 돌아다녔던 이 티끌은 2011년 세인트루이스의 한 경매장에 매물로 나왔다가 경매회사의 신고로 다시 회수됐다.
하지만 파우치에 대한 연방법원의 판결은 달랐다. 파우치의 주인은 칼슨이라며 NASA 측에 반환을 명령한 것. NASA는 항소하지 않았고, 파우치를 돌려받은 칼슨은 자신의 물건에 대해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소더비는 이 파우치의 경매가를 칼슨이 구입한 가격의 약 4000배인 400만 달러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워낙 귀한 물품이라 최종 낙찰가는 그 이상일 수 있다. 스콧 선장의 블로바 시계도 경매 예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팔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