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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가?
(느헤미아 3:1-14)
느헤미야3장은 성벽과 성문 재건사업에 참여했던 75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으며 그들이 예루살렘의 많은 성문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성벽을 중건했는지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몹시도 무미건조하고 지루하고 재미없는 일들이 계속하여 기록되어 있기에 어느 분들을 느헤미야 3장을 읽는 것을 중단하고 4장으로 건너 뛰는 분들도 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연속강해설교하는 목사님들 가운데서 느헤미야3장을 생략하고 2장에서 4장으로 곧장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단조롭고 무미건조해보이는 느헤미야 3장도 우리가 깊이 연구해보면 많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주고있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2장 17절에 보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성읍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를 여러분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고 그 성문들은 다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자,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여,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합시다." 느헤미야가 말하고 있는 요점은 이것입니다. "여러분! 예루살렘이 폐허가 되었고 성벽과 성문은 무너지고 불타 버린지가 150년이나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이방민족들의 조롱과 모독과 멸시를 받아왔습니다. 유대민족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그의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조롱받고, 모독과 멸시를 받는다는 것은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 이방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모독과 멸시를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재건합시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동족들의 영혼에 호소를 했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하나님의 영의 감동을 받아 2장 18절에 보면 "일어나 건축하자"하고 모두 힘을내어 이 선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성벽과 성문의 재건공사는 큰 공사였습니다. 모든 성벽의 두께는 9피트(5미터)였으며 넓은곳은 22피트(15미터)나 되는 곳도 있었고, 성문의 높이는 12-15피트가 되었습니다. 이 힘든 공사를 불과 52일만에 끝낼수 있었던 것은 느헤이먀가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이 공사에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참여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한 사람도 불필요한 사람이 없기에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쌓는 일을 여러부분으로 나누어, 각부분을 개인과 그룹에게 맡겨 그들로 하여금 책임을 지고 맡은 부분을 완성토록 했습니다. 한 개인 혼자 예루살렘 성벽을 쌓을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참여하여 함께 일한다면 아무리 난공사라할지라도 성공적으로 완성할수 있는 것입니다. 큰 문제를 바라볼 때 우리는 그 문제에 압도당해서는 아니되고, 그 문제를 여러 가지 단계로 나누워, 한단계, 한단계씩 해결해 나가면, 그 큰 문제도 다 해결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일에 75명의 이름과 15개의 그룹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그룹이 이공사에 참여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거룩한 하나님의 공사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다 참여토록 하였습니다.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1절). 양의 문은 예루살렘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는데 성전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제물로 바쳐지는 모든 짐승들은 이 문을 통과해야만 하였기에 양의 문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그런데 양의 문과 그 주변의 성벽을 증건하는 일에 대제사장 엘리아십과 그의 동료 제사장들이 이 일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영적인 일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에 그들은 자원하며 무거운 돌을 나르며 땀을 흘리는 노동을 행함으로 모든 백성들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만 영적인 일이 아니고, 세상에서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도 다 영적인 일인것임을. 제사장들은 그들의 노동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중세기때 카톨릭교회에서 교회나, 수도원에서 하나님께 미사를 드리고 기도와 말씀묵상하는 일만이 성직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에서 하는 모든일들이 다 세속적인 일로 간주했습니다. 그러나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이 종교개혁운동을 통하여 우리가 세상에서 가지는 직업도 성직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아 행하는 거룩한 일이라고 주장을 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에 느헤미야시대의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제사만 드리지 않고 백성들과 같이 돌덩이를 나르고 땀흘리며 힘써 일함으로 노동도 거룩한 일임을 사람들에게 보여 준것입니다.
제사장들만 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일에 참여한 것이 아니고 높은 위치에 있는 귀족과 가문의 출신들도 거룩한 일에 참여했습니다. 느3:9에 보면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느3:12에는 "그 다음은 예루살렘 절반을 다스리는 자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 딸들이 중수하였고"에라고 했습니다. 높은위치에 있는 귀족들은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고 명령을 내리는 일에 익숙해있지 몸소 어떠한 일을 행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 중대한 일에 참여하여 백성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들과 귀족들은 섬기는 종으로 오신 메시야처럼, 그들도 섬기는 자세로 이 일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들만 이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고 여자들도 하나님의 사역에 우리도 참여하겠다고 자원하여 모두 함께 일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전문직업 인들도 함께 일하고 잇습니다. 8절에 보면 금세공업자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과 향품제조업자인 하나냐가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31절에 말기야라고 하는 또 한명의 금세공업자, 33절에 또 여러명의 금세공업자들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숙련된 기능공들로 성벽을 쌓는일은 자신들의 전문분야가 아니라고 불평하거나, 거친일을 하다가 자신들의 직업상 섬세하게 보존해야하는 손을 행여 다칠까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 즉, 예루살렘 성을 쌓는 일에 모든 백성들과 함께 참여하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이 일에 자원하여 나왔던 것입니다. 29절에보면 동문지기 스마야가 나오는데 동문지기란 오늘날의 보안관 내지 경찰관에 해당되는 직업입니다. 경찰관들도 함께 동참했던 것입니다. 32절에보면 "성 모퉁이 누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고들이 중수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상인들은 물건을 거래하는 사람들로 육체노동보다는 정신노동을 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 성문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자기들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드고아의 귀족은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어느누구도 제외시키지 않고 모두가 참여토록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역에는 모든 사람이 차지할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모든 사람이 다 중요합니다. 에베소서4:11-13절에보면 "그가 혹은 사도로,혹은 선지자로,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라고 했습니다. 교역자의 일은 성도를 훈련하고 양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을 할수 있도록 하게 하는 일입니다. 어느분은 오늘날의 교회가 거대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축구경기처럼 되었다고 말합니다. 관중석에는 운동이 필요한 8만 여명의 관객들이 한가롭게 앉아있고 구장 잔디위에는 절대적으로 휴식이 필요한 22명의 선수들이 땀을 흘리며 뛰고 있는 모습이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리차드 니이버는 현대사회에서 목사와 성도들과의 관계가 목사(shepherd)와 양(sheep) 의 관계가 아니라 운동코치와 선수들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목사는 성도들을 잘 코치해서 그들이 실사회에서 그리스도를 위한 player(선수)로써 사역을 감당할수 있도 록 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운동 경기장의 관람객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삶의 운동시합에서 주전선수로서 뛸수 있어야 할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확장사역에는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만 합니다. 이시간 우리 모두가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다 나와같다면 우리교회가 어떤 교회가 될것인가? 우리 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다 나처럼 전도한다면, 일년동안 몇 사람이나 전도될것인가? 우리 교회의 모든 신도들이 다 나처럼 교회예배 출석을 한다면, 우리교회의 주일예배출석율은 어떠할것인가? 우리교회모든 성도들이 다 나처럼 헌금을 드린다면, 우리교회는 얼마나 선교사역을 수행할수 있겠는가? 나는 운동경기를 관람하는 사람처럼 교회에 출석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운동시합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교회의 모든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것입니까? 나는 구경하며 앉아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운동시합에 출전하는 선수처럼, 교회의 모든 사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 습니까? 나는 구경하며 앉아 있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출전하여 참여하고 있는 성도입 니까? 우리는 주님의 사역에 관람객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주전멤버로써 주님을 위해서 마 음껏 뛸수 있는 성도들이 되어야 겠습니다.
52일동안에 예루살렘성벽과 성문을 재건하는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느헤미야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도록 했습니다. 3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 는 단어는 "그 다음"이란 말입니다. 2절에서 10절에보면"(느3: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 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느3:3) 어문은 하스나 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느3: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 (느3: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 주의 역사에 담부치 아니하였으 며 (느3: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 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느3: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로 더불 어 중수하였고 (느3: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등이 중수하되 저희가 예루살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 (느3: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 (느3:10)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는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 가 중수하였고" 그 다음이란(Next to them)말이 3장에서 무려 29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왜 이말이 계속하여 나오고 있습니까? 성벽을 세우는 사람들이 각자 서있는 위치에서 자 기에게 주어진 일을 책임지고 행하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제사장들은 양의 문을 세 우고, 양의 문 주변에 있는 성벽을 쌓았고, 그 다음위치에는 여리고 사람들이 서서 성벽을 건축했으며, 또 그다음은 하스니야의 자손들이 어문을 건축했습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모 든 사람들이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현장에서서 신실하게 감당함으로, 전체적으로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조화를 이루었고, 성벽을 쌓고 성문을 세우는 난공사가 성공적으로 이루어 질수 있었습니다.
몸의 한 지체가 빠지면 온 몸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성벽을 중건하는 사역에 몇몇사람들이 빠지고 자기 몫을 잘 수행하지 않았더라면 공사를 완성하는 일에 큰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협력하여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함으로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공사를 하는데 어느 한사람이 자기의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전체적으로 볼 때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사역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느헤미야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위치에서 할당량을 신실하게 감당함으로 전체적으로 사역이 잘 이루어지도록 했습니다.
러시아의 공산당의 창시자 가운데 공산당의 볼쉐비키혁명을 주도한 리온 트롯스키가 있습니다. 레닌다음에 가는 높은 서열에 있었던 사람인데 그가 1915년 미국을 방문할 당시 시카고의 어느교회 성경공부반에 초청을 받아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성경공부반 을 가르치는 선생은 결석을 했고 또 자기대신 다른 선생을 그 반에 세우지 않아 참석했던 사람들이 잡담을 하다가 헤어졌다고 합니다. 그때 트롯스키는 신수정주의자라고 스탈린에게 몰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이 복음을 받아들일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에게 복음을 증거할 교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서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1929년 그는 유배생활을 하던 멕시코에서 스탈린이 보낸 자객에 의해 살해되었던 것입니다. 그날 그시간, 교회학교 교사가 있어야할 자리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복음을 나누었더라면 트롯스키가 그리스도를 영접할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많은 지체가 있으나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조화를 이루어 한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합니다. 몸의 한 지체가 빠져서는 안되는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선교에 필요한 사역자들로 자기가 서야할 위치에 서서 주어진 사역을 행하여야만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에보면 어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중해연안에서 잡히는 생선들은 어문을 통해 예루살렘에 공급되었습니다. 비린내와 썩은 생선냄새가 나는 곳이라, 이곳에서 일하기를 싫어한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14절 분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모든 오물을 분문밖에 버려졌습니다. 1950년대에 서울의 인분과 오물은 왕십리에 버려진 때가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가면 모두가 코를 막고 숨을 죽이고 지나가곤 했습니다. 분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필이면 왜 냄새나는 이곳에서 우리더러 일하라고 하는가, 그들이 느헤미야를 원망하고 그에게 일자리를 바꿔 달라고 말할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주어진 장소에서 기쁨으로 하나님을 사역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천한 일, 귀한 일의 구분이 없습니다. 모두가 다 귀한 일입니다. 중세기에 로렌스형제라는 수도사가 있었는데 그는 수도원에서 식당의 솟과 접시를 닦는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로렌스형제는 부엌은 바로 나의 제단이라고 말합니다. 솟과 접시를 닦는 일도 기도하는 일처럼 거룩한 일이기에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이야 말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으로 그는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롬12:4-8). 느헤미야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의 한 동역자로 서로 협력하며, 조화를 이루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잘 성취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또한 사람들을 인정해주며 격려하며 칭찬해주으로서 이 난공사를 성공시킬수 있었습니다.
L.A 다저스 야구팀에 단 서튼이란 투수가 있는데, 그는 작년도에 8 게임이나 연달아 패했습니다. 신문에서는 그가 주전선수에서 후보선수로 밀려나야 된다는 비난의 기사가 연일 보도되었고, 팬들로부터는 야유와 조롱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서튼은 심적으로 더욱 더 의기소침해 졌고, 패배의식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어느날 시합전에 다저스의 메니저인 월터 알톤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자네에게 할 말이 있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서튼은 최악의 상태, 주전선수에서 후보선수로 밀려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메니저는 그에게 말하기를 "나는 자네가 지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네, 그런데 우리 다저스팀이 금년에 우승을 하려면 자네의 Pitching으로서만 우승할 수 있다네.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자네를 주전으로 내세우겠네 나는 자네가 할 수 있다고 믿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서튼은 그후에도 2게임 연달아 패했습니다. 그러나 메니저의 격려와 위로의 말은 그에게 점점 용기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후에 14게임중 13게임을 승리하였고, 그의 선수생활중 가장 좋은 기록을 세울수 있었습니다. 다저스팀을 서부지역의 우승팀으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행했습니다. 그가 슬럼프에 빠져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 메니저의 위로와 격려의 말이 그를 다시 뛰어난 선수로 일으켜 세웠던 것입니다.
한 예를 더 든다면, 19세기 프랑스의 어느 소년이 3살 때 사고로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눈이 먼 어린이들에게는 아무런 미래의 소망이 없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이 소년의 총명과 배움에 대한 열정을 잘 알고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이 소년을 사랑했고,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소년을 파리에 있는 눈이 먼 청소년들을위한 국립학원에 등록을 시켰습니다. 이곳에서 그 소년은 몹시 외로웠지만, 그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목사님의 편지를 받고 열심히 그 학원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맹인을 위한 점자책이 너무나 안 좋음을 알게 되었고, 또 점자 책의 방식이 너무나 배우기가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을 알고 12살이 된 그 어린소년은 맹인이 가장 쉽게 읽을수 있는 점자책 방법을 연구하여, 드디어 그것을 만들었지만, 어린소년이 만든 것이라 아무도 그 방법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장하여 그 맹인학교의 가장 우수한 선생이 되었습니다. 교회의 오르간을 훌륭하게 연주하는 오르가니스트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학교에서는 옛날 점자책 방식만을 고집하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그의 건강이 폐병으로 악화되어 죽어가고 있울 때 비로서 그가 만든 Louis Braille 점자방법의 우수성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죽은 후에야 전세계적으로 맹인을 위한 점자책을 그 소년의 이름을 따라 Braille라고 불리우게 된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Louis Braille이라는 눈먼소년을 사랑하고 그를 격려하고 그를 믿어준 목사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성벽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3장에만 75명의 사람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그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성벽재건에 필요한 하나의 도구로서 생각지않고,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과 개성을 이해하고 관심과 격려을 베풀었습니다. 20절에 보면"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 힘써,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것을 느헤미야는 알고 열심히 일했다고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일하는 사람 가운데 자기에게 주어진 책임만 다하지 않고 자기의 몫을 행한 다음, 아직도 공사를 완성하지 못하고 있는 다른 형제를 도와주는 사람도 느헤미야는 칭찬하고 있습니다(11절). 또한 13절에서도 자기 몫을 행하고 다른 사람의 일까지 돕고있는 하늘과 사노아 사람들을 격려하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격려받고 칭찬 받을 때 그의 가능성을 최대한 대로 발휘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살고있는 이 시대에는 비난과 험담, 부정적인 언어, 낙담시키는 말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격려와 위로의 말을 우리의 가정과 교회앞에서도 찾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격려의 사역은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 우리에게도 바로 그일을 행하라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로마서11:8에 보면 "권면하는 사람은 격려의 말로 섬기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모든 사람을 인정해 주고 격려와 위로를 해주며 힘을 북돋아 줌으로써 사람들이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완성할수 있도록 하는 지도자였습니다.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 따뜻한 말, 격려의 말, 위로의 말, 생명의 말씀을 새로 줄 수 있어야 겠습니다. 격려와 위로와 사랑의 말로 다룬 이웃의 믿음을 세우는 일을 행하여야겠습니다. 우리들도 보혜사 성령께서 주신 사역, 서로의 믿음을 세워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다른사람에게 희망을 심어주며,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줄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 혼자 할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협력해야만 합니다. 교회의 모든 사역에 주전선수가 되어서 열심히 동참할수 있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