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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4-18
스스로 개척하라 / 임현수 목사
데일겔러웨이가 쓴 글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도무지 성장하기를 거부하는 한 교회가 있었는데 교회의 맴버는 4명이었습니다. 이 교회는 4명이 똘똘 뭉쳐서 더 이상의 성장을 거부했습니다.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그 교회의 공동묘지가 4개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허탄한 이야기 같지만 이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 본다면 지금도 그런 유형의 교회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개척 정신도 없고, 도전 정신도 없고, 지경을 넓히고자 하는 의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개척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개척자였습니다. 그는 고향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 팔레스틴 전역을 유랑하면서도 간데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제단을 쌓았고, 생활의 거점이 되는 성읍을 개척하였으며, 후손들에게까지 공급되는 샘물을 개발하였습니다. 아브라함뿐 아니라 이삭이나 야곱, 요셉, 모세등 모든 선진들도 광활한 중동천지를 주름잡으며 개척자의 생애를 살았습니다. 언제나 개척자는 더 나은 세계를 바라보며 미래를 향하여 도전하는 사람입니다(히 11:16).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하시며(마 11:12)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과 투쟁을 강조하셨습니다.
성공과 실패의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생각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과 상황에서, 어떤 사람은 긍정적으로 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면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의 구체적인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감사와 불평의 차이입니다.
언제나 감사와 도전 정신, 개척 정신을 갖고 사는 적극적으로 사람이 긍정적인 사람이고, 언제나 불평과 원망을 하며 과거 지향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세를 갖고 소극적으로 사는 사람이 부정적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있는 것에 감사하지 아니하고, 없는 것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불평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요셉 자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들 입니다. 14절을 보겠습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느 지파들과 비교해도 절대 손색이 없는 가장 좋은 분깃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도 제비뽑기를 통해 그들에게 가장 알맞고 가장 적당한 땅을 주었습니다. 이 정도가 되었으면 그들의 입에서 감사와 찬송이 흘러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의 입에서는 원망과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큰 민족이 되었는데, 왜 한 분깃만 줍니까?“
하나님의 사람 여호수아는 이렇게 투덜거리며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외치고 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무슨 말입니까?
투덜거리지 말고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입니다.
18절에도 나옵니다.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찌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수 17:18)
스스로 개척하라는 것 입니다. 어떻게 개척 할까요? 3가지 원리를 통해….
1)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원래 여호수아 자신도 요셉의 후손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자신의 출신 집안인 요셉 지파를 더 신경 써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그들의 불평에 단호하게 대처합니다.
투덜거리며 땅을 더 달라고 불평하는 자기 지파에게
“아직까지 개척되지 않은 땅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소리치고 있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불평만 하지 말고 스스로 노력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요셉 자손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큰 땅을 차지하겠다는 비전은 있었지만, 그 비전을 성취하기 위한 대가를 치르려고 하지 않고 투덜거리기만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꿈과 비전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꿈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모두 다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아닙니다. 비전을 실현하는 사람은 대가를 치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비저너리(Visionary)란 비전을 소유하고 있고, 또 그 비전을 위해서 기꺼이 대가를 치르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모세는 자기 민족을 애굽에서 구해 내고자 하는 비전이 그 가슴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버리는 대가를 치른 것입니다(히 11:24, 25). 비전을 위해서 대가를 치른 사람만이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 입니다.
운동 선수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특별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얼마나 무섭게 자기 극복 훈련을 하는지 모릅니다. 비젼을 성취하기 위해 그들은 합당한 대가를 지불 합니다. 그래서 새벽 두시에도 일어나 남보다 배나 연습을 합니다. 비전에 대한 대가를 기꺼이 치르시기 바랍니다. 비전의 땅은 아무리 머릿속으로, 멋지게 그린다 할지라도 차지할 수 없습니다.
직장 복음화, 전군 신자화, 세계를 나의 교구로, 민족 복음화라는 비젼과 구호가 아무리 거창해도 이런 비젼이 성취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가능한 것 입니다.
말만하지 말고 스스로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투덜거릴 시간이 있으면 스스로 개척하시기 바랍니다.
내 입에 넣어 줄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말고, 내가 수저를 들고 내 입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요셉 자손들은 비전을 위해서 힘차게 전진하는 비저너리가 아니라, 침대에 누워 생각만 하는 몽상가들이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아침에 “스스로 개척하라”는 이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비전을 이룰 수 있고 어떻게 개척할 수 있습니까?
2) 난관을 극복해야 합니다
비전을 이루는 일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비전을 성취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넘어야 할 장애물이 있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요셉 자손이 가로되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벧 스안과 그 향리에 거하는 자든지 이스르엘 골짜기에 거하는 자든지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요셉 자손들은 여호수아로부터 ‘스스로 개척하라’는 말을 듣고 막상 개척하려고 보니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개척할 산지에는 오늘날의 탱크라고 할 수 있는 철병거를 보유한 가나안 족속들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철병거는 커녕, 철기문화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철로 만든 무기조차 없었습니다. (삼상 13:19,22) 이 말은 쉽게 말하면 보병부대인 이스라엘과 가나안 전차부대의 싸움이 된 것입니다. 요셉 군대는 가나안 군대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그들은 어려운 난관에 부닥쳤습니다. 이제 그들은 비전을 이루기는커녕, 잘못하면 가나안 족속들에게 파멸 당할 지도 모르는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여러분! 만리장성이 하루아침에 이루어 진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어떤 사람이 돌 한 개를 땅 위에 얹어 놓은 것으로부터 만리장성은 시작된 것입니다. 힘이 들어도, 난관에 부딪혀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해야 세운 비전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비전의 사람들은 난관을 극복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그의 비전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 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수축할 때, 손쉽게 쌓았습니까? 아닙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의 방해공작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느헤미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결국 52일만에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여 비전을 성취하였습니다.
또 요셉의 생애를 보십시오.
그는 꿈을 꾸었습니다.
비전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비난이라는 난관을 만났습니다. 나중에는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리는 난관도 만났습니다. 또 종살이하는 가운데 보디발의 아내라는 난관을 만났고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난관도 만났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슴속에서 불타오르는 비전을 가지고 수많은 난관을 극복했습니다. 결국 그의 비전대로 그는 애굽의 총리대신에 올랐습니다.
오늘 본문의 요셉 자손도 마찬가지입니다.
난관을 극복해야만 개척할 수 있고, 난관을 극복해야만 비전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가로막는 철병거가 무엇입니까?
영어라는 철병거가 가로막고 있습니까?
아니면 돈이라는 철병거가 가로막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이라는 철병거가 가로막고 있습니까?
운명이라는 철병거가 방해 하고 있습니까?
어떠한 철병거가 가로막고 있습니까?
여러분 앞에 어떠한 난관이 놓여있습니까?
그 난관을 극복하시기 바랍니다.
댓가를 치루고,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가지 잊지 말고 기억 할 것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요셉 자손은 자기들이 정복해야 할 땅에 철병거를 가진 가나안 족속들이 살고 있음을 들어 개척의 어려움을 토로하자,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권능이 함께 하시는 한 능히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고 격려합니다.
17절과 18절입니다.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일러 가로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을 격려하되 일찍이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하여 요셉 지파에게 약속하고 축복한 말씀을 근거하여 확신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제가 (창 48:21,22)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일부분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즉 여호수아는 요셉 자손들이 믿음이 약화된 것을 보고서 하나님의 옛 언약을 생각하면서 다시금 담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사람을 믿으며 혈육을 권력으로 삼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복을 받는 자라고 하였습니다(렘 17:5-8).
철강왕 카네기“확신있는 사람은 확신이 없는 사람보다 성공 확률이 두 배나 더 높다.”
아이아코카 회장은 “삶의 승패는 환경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 의해 만들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외부적인 환경이나 조건이 기독교의 능력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능력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구척 장신 골리앗 앞에 달랑 물맷돌 다섯 개 들고 나간 다윗이 미쳤습니까? 아닙니다. 소년 다윗에게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허구헛날 금성철벽(金城鐵壁) 여리고성 주위를 돌았습니다.
무려 7일 동안 13바퀴를 돌았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돌았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그 말씀을 의지하여 돌고 돌고, 또 돌았던 것입니다.
천하무적 철병거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다 할지라도 우리가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다름 아닌 이 믿음입니다. 사방이 꽉 막혀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 입니다.
우리 교회 건축의 남은 과업도 이런 정신으로 하면 어려울 것이 없을 것 입니다.
약해지지 말고 스스로 개척하는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17장은 14장과는 상당히 대조적입니다. 갈렙과 유대지파는 기득권을 포기합니다. 험한 땅을 요구합니다.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가장 강력한 대적들과 더불어 싸웠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그 땅을 결국 장악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갈렙과 같은 이런 정면 돌파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이것은 역경을 정면 돌파하는 믿음입니다.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4:12)
85세라는 갈렙의 나이. 고산지대요 산악지대인 지형. 헤브론땅을 장악하고 있는 크고 강한 아낙 자손…모두는 갈렙이 넘어야 할 산이요, 장애물이었고, 역경이었고 난관이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오직 믿음으로 그 불리한 조건들을 뛰어 넘겠다는 의지로 불타올라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시면 얼마든지 정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취할 수 있다. 정복할 수 있다.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
저들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크고 강하신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보았습니다.
성전 건축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눈에 보이는 건물을 건축하기 이전에 역경을 돌파하겠다는 믿음으로 자신을 먼저 건축해야 합니다. (유 1: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
하나님을 믿고 그 다음에 최선을 다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웨슬레는 최선을 다한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그 옛날 컴퓨터도 없었던 시절에 400권의 저서를 남겼고, 10개국어를 구사했고, 말타고 25만 마일의 여행을 하며 수 만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86세 때 어느날 5시 30분에 일어나서는 너무 늦게 일어났다며 반성의 글을 썼습니다.
갈렙은 15장에 보면 드빌이라는 요새도 점령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딸을 걸어 놓고 싸우라며 격려하였습니다. 이런 갈렙의 모습속에서 우리는 최선 다하는 태도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같이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8절,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
9절,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14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며“
갈렙이 역경도 난관도 극복하고, 45년이 지나면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헤브론을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기 때문입니다.
갈렙은 이 믿음으로 초지일관 지속적으로 헌신했습니다.
갈렙은 40세 때 정탐을 간 이후 지금 85세가 되어서도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큰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한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지속적이고 기복이 없는 헌신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끝까지 가는 사람의 특징은 갈렙과 같이 말씀 붙잡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기도의 자리 지키는 자입니다.
우리가 갈렙과 같이 초지일관 말씀을 품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모델로 삼아 우리에게 주어진 헤브론 산지와 같은 문제를 점령케 하십니다..
14:11절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갈렙의 믿음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믿음이었습니다. 모세와 함께 지냈던 광야 40년, 여호수아와 함께 지냈던 가나안 정복 5년, 이 45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갈렙의 나이는 40세에서 85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세월 앞에서도, 역경 앞에서도, 어떤 상황 앞에서도 변질되지 아니했습니다. 믿음이 떨어지지 아니했습니다. 과거에 믿음이 좋았다면 지금도 좋아야 합니다. 과거에 믿음이 강했다면 지금도 강해야 합니다.
절대로 믿음이 내려가거나 뒤로 물러가서는 안 됩니다.
“(히 10:38)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듯이 여러분도 변하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 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주의 은혜의 역사는 믿음이 변하지 않는 자, 희망을 포기 하지 않는 자, 사랑이 끊이지 않는 자에게 찾아옵니다. 개척 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승리 하시고 영광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