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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제8장
죄란 무엇인가
― 하나님이 정한 규칙을 어기는 것인가, 사랑과 생명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인가
‘죄’라는 말은 기독교에서 매우 익숙하다.
인간은 죄인이다.
죄를 회개해야 한다.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오셨다.
그러나 너무 익숙한 말일수록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다.
죄란 정확히 무엇인가?
법을 어기는 것인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것인가?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인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어떤 상태인가?
아니면 사랑과 생명에서 멀어지는 것인가?
이번 장에서도 교리부터 시작하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부터 살펴보자.
1. 예수님은 죄인을 어떻게 대하셨는가
예수님 시대에도 ‘죄인’이라는 말은 있었다.
종교적으로 죄인이라고 평가받던 사람들이 있었다.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께 가까이 왔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을 피하지 않으셨다.
함께 앉으셨고,
함께 먹으셨으며,
말씀을 나누셨다.
이것 때문에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판했다.
그런데 바로 이 모습에서 죄를 이해하는 첫 번째 열쇠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죄인을 정죄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으셨다.
2. 마가복음 ― 병든 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 마가복음 2:17
그리고 자신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에서 죄인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시선이 흥미롭다.
죄인을 제거해야 할 적으로만 보지 않고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 비유하신다.
죄가 병과 같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죄인가?
아니면 치유인가?
3. 누가복음 ― 잃어버린 것을 찾는다
누가복음에는 잃은 양,
잃은 동전,
잃은 아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공통점이 있다.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다.
특히 돌아온 아들을 생각해 보자.
아들은 아버지를 떠났다.
재산을 낭비했다.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보고 달려간다.
이 이야기에서 죄는 아버지에게서 멀어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구원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4. 죄는 ‘떠남’인가
이 관점에서 죄를 묵상하면 흥미로운 그림이 나타난다.
아버지가 생명의 근원이라면,
아버지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을 잊는 것이다.
사랑의 근원을 잊고,
자신의 생명을 잊고,
이웃의 생명도 잊는다.
그 결과 탐욕과 미움과 폭력과 분리가 나타난다.
그래서 나는 죄를 단순히 규칙 위반으로만 보기보다 생명의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도 묵상하고 싶다.
5. 마태복음 ― 마음에서 시작되는 죄
예수님은 행동만을 보지 않으셨다.
산상수훈에서 살인을 말씀하시면서 분노와 관계의 문제까지 들어가셨고,
간음을 말씀하시면서 마음의 욕망까지 말씀하셨다.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
죄가 단순히 외부 행동만의 문제라면 행동만 통제하면 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음을 보셨다.
죄의 뿌리는 외부 행동보다 깊은 곳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6. 무엇이 사람을 더럽히는가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 마가복음 7:20
그리고 악한 생각과 탐욕과 속임과 교만 등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을 말씀하신다.
당시에는 무엇을 먹느냐가 정결 문제에서 중요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선을 밖에서 안으로 돌리신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보라.
이것은 죄에 대한 중요한 관점의 전환이다.
7. 죄는 외부에서 붙는 오염인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면 죄를 단순히 외부에서 묻어오는 더러움으로만 이해하기 어렵다.
마음의 방향이 중요하다.
탐욕,
미움,
교만,
속임,
악의.
이것들은 모두 관계를 깨뜨린다.
사람과 사람을 분리한다.
다른 생명을 자신의 욕망을 위한 도구로 만든다.
그렇다면 죄의 깊은 곳에는 분리와 자기중심성이 있다고 묵상할 수 있다.
8. 죄와 사랑의 계명
예수님께서는 가장 큰 계명을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그리고 말씀하신다.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 마태복음 22:40
이 말씀을 죄의 문제와 연결하면 질문이 생긴다.
율법의 중심이 사랑이라면 죄의 본질도 결국 사랑에서 벗어나는 것과 연결되지 않을까?
9. 사랑하지 않는 것이 죄인가
이것을 너무 단순한 공식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기준은 될 수 있다.
내 행동이 생명을 살리는가?
아니면 파괴하는가?
관계를 회복시키는가?
아니면 분열시키는가?
사랑으로 나아가는가?
아니면 미움으로 나아가는가?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중심에 놓으면 죄를 판단하는 기준도 조금 달라진다.
10. 죄는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것인가
종교 안에서는 죄를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행동”
으로 설명하기 쉽다.
그러면 신앙의 중심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동할 수 있다.
그러나 돌아온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는 돌아오는 아들을 기다린다.
아들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달려간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아버지를 단순히 인간의 실수를 기다렸다가 처벌하는 존재로만 이해하는 것이 충분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11. 요한복음 ― 정죄보다 새로운 삶
요한복음 8장에는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녀를 예수님 앞에 세운다.
그리고 율법에 따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리고 여인에게도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면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하신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다.
정죄하지 않음과 삶의 변화.
둘 중 하나만 빼서는 안 된다.
12. 용서는 죄를 괜찮다고 하는 것인가
아니다.
용서는 잘못을 잘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폭력은 폭력이다.
거짓은 거짓이다.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책임이 따른다.
예수님의 용서는 죄 자체를 선하다고 선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이 과거의 잘못에 영원히 갇혀 있지 않고 새로운 삶을 시작할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래서 용서와 책임은 함께 갈 수 있다.
13.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나는 이 말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예수님은 사람과 그 사람의 잘못을 완전히 동일시하지 않으신다.
잘못된 행동을 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존재 전체가 폐기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앞 장의 **“나는 무엇인가”**와 연결된다.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나의 생명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하지만 생명의 가치는 회복될 수 있다.
14. 죄책감과 회개는 같은가
죄책감은
“나는 잘못했다.”
라는 감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지나치면
“나는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
라는 자기 부정으로 갈 수 있다.
반면 회개는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성경에서 회개는 마음과 방향의 전환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따라서 회개의 목적은 자신을 끝없이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돌리는 것이다.
15. 회개란 돌아오는 것이다
돌아온 아들을 다시 생각해 보자.
아들은 자신의 상태를 깨닫는다.
그리고 말한다.
“일어나 아버지께 가리라.”
나는 이것이 회개의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잘못을 깨닫는다.
그리고 돌아간다.
죄가 생명과 사랑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회개는 다시 생명과 사랑의 방향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16. 도마복음 ― 자신을 모르는 것도 문제인가
도마복음에서는 죄라는 법적 개념보다 무지와 자기 인식의 문제가 강하게 나타난다.
도마복음 67에서는 모든 것을 알면서 자신을 모르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취지의 말씀이 전해진다.
이 관점에서 질문해 볼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자신을 완전히 분리된 존재로 보고,
그 결과 탐욕과 미움과 폭력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무지 역시 죄의 뿌리 가운데 하나로 묵상할 수 있다.
17. 죄와 분리의식
나는 오랫동안 죄를 분리의 문제와 연결해서 묵상해 왔다.
나와 너는 완전히 관계없는 존재다.
내 이익만 중요하다.
네 고통은 나와 상관없다.
내가 살기 위해 너를 희생해도 된다.
이런 생각이 깊어지면 사랑은 사라진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죄를 하나 됨을 잊고 분리된 자아에 갇히는 상태라는 관점에서도 바라보고자 한다.
18. 그러나 모든 차이가 죄는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구분이 필요하다.
‘분리’가 죄라고 해서 모든 차이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은 서로 다르다.
생각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신앙도 다르고,
개성도 다르다.
하나 됨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차이를 이유로 상대의 생명을 낮추고 미워하고 파괴하는 것이다.
19. 물질의 눈으로 보는 죄
물질과 외형의 관점에서 죄를 보면 규칙 목록이 먼저 보일 수 있다.
이것은 해라.
저것은 하지 마라.
그러면 사람은 목록을 지키는 것으로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강하게 비판하셨다.
외부 규칙을 지키면서 마음에 탐욕과 위선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20. 생명의 눈으로 보는 죄
생명의 눈에서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이 행동은 생명을 살리는가?
사랑을 깊게 하는가?
상대방을 하나의 귀한 생명으로 대하는가?
나의 욕망 때문에 다른 생명을 파괴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 관점에서 죄는 단순한 규칙 위반을 넘어 생명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이 된다.
21. 안식일과 사람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이 충돌한 대표적인 문제가 안식일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 마가복음 2:27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하다.
규칙은 생명을 위한 것이다.
생명이 규칙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 규칙을 적용할 때도 사람을 살리는가라는 질문을 놓쳐서는 안 된다.
22. 자비가 제사보다 크다
예수님은 호세아의 말씀을 인용하셨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종교 행위 자체가 잘못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종교 행위를 하면서 자비를 잃는다면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죄를 많이 찾아내는 사람이 반드시 예수님의 마음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사람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자비가 중요하다.
23.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이 말씀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까지 바꾼다.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는 관대하면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는 엄격하기 쉽다.
예수님은 먼저 자기 자신을 보게 하신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다른 사람의 죄를 논하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보라는 것이다.
이것은 정죄를 멈추게 한다.
24. 죄와 심판
죄를 이야기하면 심판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심판은 누가 하는가?
하나님인가?
예수님인가?
사람 자신인가?
이 문제는 다음 부록에서 별도로 깊이 다룰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잘못된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미움을 계속하면 관계가 무너지고,
탐욕을 계속하면 다른 생명을 해칠 수 있으며,
거짓을 반복하면 신뢰가 무너진다.
이런 의미에서 죄는 그 자체로 결과를 만들어낸다.
25. 죄와 결과
불에 손을 넣으면 뜨겁다.
그것은 누군가 화가 나서 벌을 주는 것이 아니다.
행동에는 결과가 있다.
인간관계에서도 비슷한 면이 있다.
미움을 심으면 미움의 결과가 생기고,
사랑을 심으면 사랑의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심판을 단순히 외부에서 내려오는 형벌만으로 보기 전에 삶의 선택이 만들어내는 결과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26. 『그리스도의 강론』을 참고하여
『그리스도의 강론』에서는 죄를 전통적인 법적 개념보다 무지와 분리된 의식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자신의 참된 생명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육체적 자아와 동일시하며,
아버지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두려움과 갈등이 생긴다고 본다.
이 관점에서 구원은 처벌을 피하는 것보다 자신의 참된 생명을 깨닫는 것과 깊이 연결된다.
이것은 전통적 기독교의 모든 죄론과 동일한 설명은 아니므로 구분해서 읽어야 한다.
27. 원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전통적인 기독교에는 원죄라는 중요한 교리가 있다.
특히 아담의 타락과 인간의 보편적인 죄의 상태를 연결해서 설명한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후대의 신학적 체계와 같은 방식으로 ‘원죄 교리’를 직접 설명하시는 장면은 없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원죄 교리를 부정하거나 확정하기보다 먼저 예수님이 실제 사람들의 죄를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중심에 놓고자 한다.
28. 태어난 아기가 죄인인가
이 질문은 많은 사람이 어려워한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가까이 부르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또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취지로 말씀하셨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어린아이를 먼저 ‘정죄받아야 할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순수함과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존재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목하고 싶다.
29. 죄를 강조하다 생명을 잃을 수 있다
사람에게 계속
“너는 죄인이다.”
“너는 부족하다.”
“너는 잘못된 존재다.”
라고만 말하면 어떻게 될까?
회개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자기혐오와 두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예수님의 목적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리는 데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죄를 말하는 목적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30. 그렇다고 죄를 없애버려서는 안 된다
반대쪽 극단도 피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이니 무엇을 해도 괜찮다.”
라고 말할 수는 없다.
폭력은 다른 생명을 파괴한다.
거짓은 신뢰를 무너뜨린다.
탐욕은 타인을 도구화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없앨 수 없다.
오히려 하나 됨을 믿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준 상처를 더 심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너의 생명이 나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31. 죄의 기준은 사랑인가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중심으로 본다면 매우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이것은 사랑인가?
그러나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때로는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사랑이다.
책임을 요구하는 것도 사랑일 수 있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 것도 사랑이다.
따라서 사랑은 ‘무조건 괜찮다’가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고 진실하게 관계하는 것이어야 한다.
32. 죄와 그리스도 의식
앞 장에서 그리스도 의식을 생명·사랑·하나 됨을 바라보는 의식이라고 묵상했다.
그렇다면 죄는 그 반대 방향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지 못하고,
사랑을 잃고,
분리된 자아에 갇혀,
자기 욕망을 위해 다른 생명을 이용하는 상태.
그리스도 의식의 열매가 사랑이라면 죄의 열매는 분리와 파괴로 나타날 수 있다.
33. 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죄에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규칙을 완벽하게 지키는 인간이 된다는 뜻만일까?
나는 더 깊은 자유를 생각한다.
미움에 끌려다니지 않는 자유.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는 자유.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서 자신을 높이지 않는 자유.
과거의 죄책감에 영원히 갇히지 않는 자유.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자유.
이것이 예수님의 구원과 연결되는 삶의 모습일 수 있다.
34. 저자의 묵상 ― 죄는 생명을 잊는 것이다
나는 오랜 묵상 끝에 죄를 이렇게 바라보고 싶다.
죄란 자신의 참된 생명을 잊고, 다른 사람 안의 생명을 보지 못하여 사랑과 하나 됨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기독교 죄론 전체를 대신하는 정의가 아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계명과 『그리스도의 강론』, 그리고 이 책의 생명과 하나 됨의 관점에서 정리한 저자의 묵상이다.
35. 그렇다면 회개란 무엇인가
죄가 생명을 잊는 것이라면 회개는 생명을 다시 보는 것이다.
죄가 사랑에서 멀어지는 것이라면 회개는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죄가 분리라면 회개는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회개를 한 문장으로 이렇게 묵상하고 싶다.
“회개란 두려움 때문에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깨닫고 마음의 방향을 돌려 다시 생명과 사랑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다.”
36. 예수님은 죄인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주셨는가
예수님께 찾아온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돌아가지 않았다.
용서를 경험했고,
치유되었으며,
다시 공동체로 돌아갔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예수님의 관심은
“당신은 죄인이다.”
라는 판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다음이 있었다.
“일어나라.”
“평안히 가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즉, 다시 살아가라는 것이다.
37. 죄를 한 문장으로 말한다면
전통적인 의미에서는 죄를 하나님의 뜻과 계명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묵상적 관점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죄란 생명의 근원과 자신의 참된 존재를 잊고, 이웃을 자신과 분리된 대상으로 바라보며 사랑과 생명을 해치는 방향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회개는 그 반대다.
“회개는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을 돌려 다시 사랑과 생명과 하나 됨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오늘의 묵상
오늘 다른 사람의 죄를 찾기 전에 내 마음을 바라보자.
내 안에 미움은 없는가?
교만은 없는가?
탐욕은 없는가?
누군가를 낮추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더 깊이 질문해 보자.
“나는 지금 생명을 살리고 있는가, 죽이고 있는가?”
말 한마디도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죽일 수 있다.
용서 한 번이 관계를 다시 살릴 수도 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보자.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손에 들고 있는 돌이 있다면 내려놓자.
그러나 자신의 잘못까지 외면하지는 말자.
돌을 내려놓는 것과 책임을 내려놓는 것은 다르다.
잘못을 인정하고,
필요하다면 사과하고,
바로잡고,
다시 사랑의 방향으로 걸어가자.
그것이 회개의 시작일 수 있다.
부록 제8장 한 줄 묵상
“죄는 단순히 규칙을 어긴 행위만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을 잊고 분리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며, 회개는 그 잘못을 깨닫고 다시 생명과 사랑의 길로 돌아오는 것이다.”
예수님 말씀으로 성경 이해하기 운동본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