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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유배문학 16세기 정황(丁熿)의 칠언율시 한시 세계와 문학적 특징[前篇]>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전편(前篇)--
거제도 16세기 유배객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칠언율시 한시 세계와 문학적 특징」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번 작품은 지면의 양이 너무 많아 전편(前篇)과 후편(後篇)을 나누어 게재한다. 16세기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인해 거제도로 유배왔던 유헌(游軒) 정황(丁熿)의 칠언율시 세계는 깊은 유교적 지식인의 고뇌와 고립된 섬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이 결합하여 탄생한 거제도 유배문학의 정수이다.
이번에 소개하는 15편의 칠언율시는 단순한 신세 한탄을 넘어, 사림(士林)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치열한 자기 성찰과 도학적(道學的) 초월, 그리고 유배지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유배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의 한시 세계와 문학적 특징을 4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겠다.
먼저① 도학적(道學的) 정관(靜觀)과 내면의 평정을 유지하려고 했다. 유배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저자 정황은 성리학적 수양을 바탕으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한시 「한래무사불유유(閒來無思不悠悠)」는 시제부터 송대 성학자인 정호(程顥)의 사상적 경지를 연상시킨다. 한가로움 속에서 잡념을 없애고 우주의 이치와 조화하려는 고요한 관조(靜觀)의 자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또한 「때마침 흥이 일어나(時興)」는 유배지의 고독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문득 일어나는 담백한 흥취(佳興)로 승화시키며 도학자로서의 달관을 보여준다.
두 번째② 유배지의 일상과 은거(隱居)적 삶을 영위했다. 지리적으로 격리된 거제도에서 그는 주변의 소박한 환경을 정화하여 자신만의 정신적 은거지로 삼았다. 한시 「북오재국(北塢栽菊)」은 북쪽 언덕에 국화를 심는 행위를 노래한 시다. 국화는 오만(傲慢)하지 않고 서리를 견디는 절개의 상징으로, 유배객인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는 매개체다.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군자의 덕목을 가꾸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리고 「식육변미음(食肉變味吟)」에선, 고기를 먹어도 그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유배지의 척박한 삶과 심리적 위축을 '맛의 변화'라는 일상적 감각을 통해 사실적이면서도 깊이 있게 형상화했다.
세 번째③ 소통과 교유를 통한 고립을 극복하고자 지성(知性)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육지와 철저히 단절된 섬이었지만, 정황은 시를 통해 끊임없이 외부의 지인, 동료 유배객, 혹은 산인(승려)들과 소통하며 정신적 고립감을 극복했다. 한시 「송방사운 덕기(送房士雲 德驥)」와 「서답상산목김문지 취문(書答商山牧金文之 就文)」에선, 멀리서 찾아오거나 편지를 보내온 지인들과의 석별, 그리고 답장을 시로 대신하며 선비로서의 신의와 우정을 확인했다. 이어 「증강백(呈剛伯)」 2수, 「보낙이(報樂而)」, 「보유태호자책시(步柳太浩自責詩)」은 유배 동료나 벗들의 시에 화답(和答)하거나 그들의 시운을 빌려(步韻) 쓴 시들이다. 특히 자신을 책망하는 벗의 시에 화답한 「보유태호자책시」 등은 유배객들끼리 서로를 위로하고 도학적으로 서로를 경계하며 중심을 잡으려 했던 치열한 소통의 기록이다. 이어 「별산인조희(別山人祖熙)」와 「제수(濟叟)의 시에 화답하다」 2수에선, 유배지 주변의 승려(산인)나 노인 등 소박한 인물들과 교유하며 종교적·세속적 경계를 허물고 고독을 달래는 따뜻한 시선이 나타난다.
네 번째④ 실존적 고뇌와 슬픔을 승화했다. 도학적 초월을 노래하면서도,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육체적 질병과 소중한 이들의 죽음 앞에서는 깊은 슬픔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병중서회(病中書懷)」에선, 유배지의 고독한 환경 속에서 찾아온 병마와 싸우며, 자신의 지나온 삶을 돌아보고 늙어감과 쇠약해짐에 대한 실존적 슬픔을 애절하게 서술했다. 「어대간만(魚大諫挽)」은 사림의 동료였던 어대간(魚大諫)의 죽음을 애도하는 만시(挽詩)다. 올곧은 말을 하던 인재의 죽음을 슬퍼하는 동시에, 당시 사화(士禍)로 얼룩진 어두운 정치적 정국에 대한 지식인의 깊은 탄식이 깔려 있다.
○ 칠언율시의 문학적 특징과 총평을 살펴보겠다. ①엄격한 시상 전개와 대구(對句)의 미학이 있다. 칠언율시라는 고도의 격식화된 근체시 형식을 빌려, 한 구절 한 구절 엄밀한 대구를 구사했다. 감정이 과도하게 흐르지 않도록 한시의 엄격한 형식미 속에서 슬픔과 고독을 절제하여 담아냈다. ② 거제 유배 공간의 재발견이 이어졌다. 거제도를 절망의 공간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국화를 심고(北塢栽菊) 이웃과 화답하는(和濟叟韻) 능동적인 수양과 은거의 공간으로 재해석했다. ③ 사림(士林) 정신이 작동했다. 16세기 훈구 세력에 의해 억압받던 사림파 학자로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가난과 유배를 즐거움으로 승화시키려는 '빈천락(貧賤樂)'의 태도가 시 전반에 강력한 정신적 지표로 작동하고 있다. 정황의 거제 유배 한시 총15편은 16세기 거제도가 단순한 형벌의 장소가 아니라, 조선 도학자들의 학문적 신념과 실존적 고뇌가 시문학으로 승화된 격조 높은 문화적 공간이었음을 증명하는 소중한 문학적 자산이다.
● 이번 지면에는 칠언율시(七言律詩) 「한래무사불유유(閒來無思不悠悠)」, 「북오재국(北塢栽菊)」, 「송방사운 덕기(送房士雲 德驥) 1552년(壬子)」, 「증강백(呈剛伯)」 2수(首), 「보낙이(報樂而)」, 「때마침 흥이 일어나(時興)」, 「별산인조희(別山人祖熙)」, 「제수(濟叟)의 시에 화답하다(和濟叟韻)」 2수(首). [이어 후편에 계속] 「보인운(步人韻)」, 「보유태호자책시(步柳太浩自責詩) 1558년(戊午)」, 「식육변미음(食肉變味吟)」, 「유고행(愉告行)」, 「서답상산목김문지 취문(書答商山牧金文之 就文)」, 「병중서회(病中書懷)」, 「어대간만(魚大諫挽)」 등 15편을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1) 다음 ‘尤’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한래무사불유유(閒來無思不悠悠)」 즉 ‘한가함이 찾아오니 떠오르는 생각마다 끝없이 깊고 아득하네’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비 개인 가을밤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과 이를 초연하게 달래는 마음을 담은 시다.
○ 이 율시는 전형적인 수구(首句)와 미구(尾句)의 감정 변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초반[1~2구]과 중반[3~6구]에는 가을비가 개인 서늘한 밤, 오동잎이 지고 퉁소 소리가 들려오는 고독한 배경 속에서 외로움과 옛 시름을 느낀다. 그러나 후반[7~8구]에 이르러서는 이를 서정적인 가을밤의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며, 모든 집착과 근심을 내려놓고 '담연(淡然)'과 '유유(由由)'라는 도가적이고 초연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는 선비의 격조 높은 정신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한래무사불유유(閒來無思不悠悠)」** / 정황(丁熿 1512~1560)
閒來無思不悠悠 한가로이 찾아온 생각마다 아득하지 않음이 없으니
轉感孤堂梧葉秋 외로운 대청에 오동잎 지는 가을을 문득 느끼네.
夜靜氣凉風始瑟 밤은 고요하고 공기 서늘한데 바람이 비로소 슬슬 불어오고
天淸雲盡雨纔收 하늘은 맑고 구름 다 걷히니 비가 겨우 그쳤구나.
半輪月色浮新影 반쪽달 밝은 빛은 새로운 그림자를 띄우고
數曲簫音起舊愁 몇 가락 퉁소 소리는 묵은 시름을 일으키네.
佳興此時聊自適 좋은 흥취 일어나는 이 순간 애오라지 스스로 즐기며
淡然無慮得由由 담담히 아무 걱정 없이 유유자적함을 얻노라.
○ 내용인즉, [1구]에선, 마음에 한가로움이 찾아오니 떠오르는 모든 생각(無思不~)이 끝없이 아득하고 깊어진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홀로 남겨졌을 때 밀려드는 깊은 사색을 표현했다. [2구]에선, 홀로 있는 외로운 집(孤堂) 마당에 오동나무 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비로소 가을이 깊었음을 문득 깨닫는다. 오동잎은 한시에서 가을의 시작과 쓸쓸함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어다. [3구]에선, 비가 개인 뒤의 밤 풍경이다. 사방은 고요하고 공기는 찬바람이 감도는데, 쓸쓸한 가을바람(瑟)이 이제 막 불어오기 시작한다. [4구]에선, 하늘은 거울처럼 맑고 먹구름은 모두 걷혔다. 세차게 내리던 가을비가 겨우 방금 막 그친 청명한 순간을 포착했다. [5구]에선, 비가 그친 하늘에 반달(半輪)이 떠올랐다. 그 밝은 달빛이 대지 위에 가을밤의 새로운 그림자와 풍경들을 산뜻하게 띄워 올린다. [6구]에선, 어디선가 들려오는 몇 가락의 퉁소 소리가 고요한 밤공기를 타고 흐른다. 그 처량한 소리가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옛 시름을 슬며시 깨운다. 정황 선생은 현재 유배 생활을 겪고 있던 인물이기에, 이때 느낀 고독과 옛 기억이 투영된 구절로 볼 수 있다. [7구]에선, 외로움과 시름이 일어났지만 시인은 감정에 함몰되지 않는다. 이 고요하고 아름다운 가을밤의 정취를 '좋은 흥취'로 바꾸어, 잠시나마 마음을 편안히 먹고 스스로를 달래며 즐긴다. [8구]에선, 마침내 마음을 담담하게 비워내어 아무런 걱정도 근심도 없는 상태에 이른다.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진정한 마음의 자유와 유유자적함을 얻으며 시를 마무리했다.
2) 다음 ‘魚’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북오재국(北塢栽菊)」 즉, ‘북쪽 언덕에 국화를 심다’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의 ‘북오(北塢)’는 ‘북쪽 언덕’이나 동네 이름, 혹은 유배지의 북쪽 둑을 뜻하며, ‘재국(栽菊)’은 ‘국화를 심다’라는 뜻이다. 기유년(己酉, 1549년)은 선생이 을사사화 여파로 곤양에서 거제도로 이배되어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다. 봄부터 정성스레 가꾼 국화가 가을철(중양절)이 지나도록 피지않다가, 매서운 초겨울 추위가 닥쳐서야 비로소 홀로 노랗게 피어난 모습을 보며 자신의 곧은 지조와 유배객의 쓸쓸한 처지를 대입하여 노래한 격조 높은 작품이다.
○ 이 율시는 겉으로는 유배지 북쪽 언덕에서 국화를 기르는 과정을 담은 서정시이지만, 속으로는 매서운 정치적 가시밭길 속에서도 군자의 도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담은 외물기탁(託物言志)의 시다. 봄·여름의 잡풀(소인배) 속에서 곤욕을 치르고, 남들 다 피는 화려한 가을(중양절)을 지나쳐 버림받은 듯 보였던 국화는, 음기가 가득한 혹독한 초겨울에 이르러서야 홀로 '외로운 미소(孤笑)'를 지으며 만개한다. 정황 선생은 이 늦깎이 국화의 모습에서 사화의 칼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자신의 꼿꼿한 선비 정신과 충절을 발견하고 동병상련의 유대감을 느끼고 있다.
**「북오재국(北塢栽菊)」** 1549년(己酉) / 정황(丁熿 1512~1560)
當春多思暇無餘 봄을 맞아 생각 많아 겨를이 통 없었건만
置汝叢中嫩綠初 여린 푸른빛 처음 돋던 그대(국화)를 풀숲 속에 심었었네.
生意幾回迎好雨 자라나는 기운(생의)에 좋은 비 몇 번이나 맞이했더냐
軟莖自爾困宂蔬 부드러운 줄기는 잡풀에 얽혀 절로 곤욕을 치렀었지.
栽同杜老人忘菊 두보(杜老人)처럼 국화를 잊지 않고 똑같이 심었으나
節過重陽花負余 계절이 중양절을 지나치니 꽃이 나를 저버리는구나 싶었네.
月迫純陰天不已 달은 음기 가득한 겨울에 가깝고 하늘의 추위는 그치지 않는데
苦留孤笑有心歟 모진 추위 속에 홀로 외로이 미소 짓고 있으니 참으로 무슨 마음이더냐?
○ 내용인즉, [1~2구]에선, 봄날 사화와 유배 등으로 마음과 생각이 복잡하여 한가할 틈이 전혀 없던 와중에도, 시인은 연둣빛 새순(嫩綠)이 막 돋아나던 국화(汝)를 잊지 않고 풀숲 사이에 정성스레 심어주었다. 국화를 인격화하여 '너(汝)'라고 부른 점에서 깊은 애정이 드러난다. [3~4구]에선, 봄과 여름을 지나며 국화가 자라나는 동안(生意) 다행히 좋은 비(好雨)를 여러 차례 맞으며 커 올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탓에, 부드러운 국화 줄기가 마구 자라난 잡풀에 치이고 얽혀 적잖은 고생과 곤욕을 치렀음을 보여준다. 이는 조정의 소인배들에게 핍박받는 시인 자신의 처지를 은유한다. [5~6구]에선, 시인은 당나라의 대시인 두보(杜老人)가 피란 중에도 국화를 심으며 지조를 지켰던 고사를 떠올리며 자신도 국화를 심었다. 그러나 가을의 절정인 중양절(9월 9일, 국화 축제일)이 지나도록 꽃이 피지 않자, 시인은 '국화가 나를 저버렸는가(花負余)' 하며 내심 섭섭하고 쓸쓸한 마음을 가졌다. [7~8구]에선, 계절은 이제 완연한 초겨울로 치달아 매서운 추위가 멈추지 않는 계절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모든 식물이 시들어버린 그 모진 추위(苦) 속에서, 국화가 비로소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며 홀로 외롭게 미소(孤笑) 짓고 있다. 시인은 그 장한 모습을 보며 "너(국화)가 이 추운 날씨에 홀로 피어난 것은, 군자의 변치 않는 충심과 지조를 나에게 보여주려는 마음(有心)이 있어서가 아니겠느냐?"라며 깊은 감동과 위로를 받으며 시를 끝맺었다.
3) 다음 ‘先’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송방사운 덕기(送房士雲 德驥) 1552년(壬子)」 즉, ‘방사운 덕기를 보내며, 임자년(1552년)’는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임자년(1552년, 명종 7년)에 거제도 귀양지에서 벗인 방사운(房士雲, 자는 德驥)을 떠나보내며 지은 한시다. 정황 선생은 을사사화(1545년)에 연루되어 거제도로 유배를 가 유배 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이 시는 오랜 유배 생활의 고통, 변함없는 우정, 그리고 이별의 아쉬움을 절절하게 담고 있다.
**「송방사운 덕기(送房士雲 德驥) 1552년(壬子)」** 방사운 덕기를 보내며, 임자년(1552년)에 지음 / 정황(丁熿 1512~1560)
十年不見我蓼川 십 년 동안 나의 요천(방사운)을 보지 못했더니
病喘其如久瘴煙 천식 앓는 이 몸은 오랜 귀양지의 독한 안개 속에서 어찌 지냈나.
新面海中開洞壑 바다 가운데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얼굴로 마주하여 골짜기를 열어젖히고
舊遊壟(作原)上廢園田 함께 놀던 옛 언덕(고향) 위의 논밭은 이미 황폐해졌구나.
深情直倒銜杯後 잔을 기울여 술을 머금은 뒤에 깊은 정이 곧바로 쏟아져 나오고
許分當堅蓋棺前 서로를 알아주던 의리는 관 뚜껑을 덮기 전까지 마땅히 견고하리라.
微(作不)有後前聞慣習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별하는 일은 들은 바가 익숙하여 본래 없다 할 수 없건만
臨分何以得爲然 막상 이별에 임하니 어찌 마음이 이토록 (의연하게) 되지 못하는가.
[주1] 7구의 '미(微)'는 '불(不)'로도 쓴다.
[주2] '요천(蓼川)'은 방사운이 머물던 곳이나 그의 호를 비유한 것으로, 오랜 기간 벗을 보지 못한 그리움을 나타냅니다.
[주3] '장연(瘴煙)'은 남쪽 유배지의 덥고 습한 기운에서 생기는 독한 안개를 뜻합니다.
[주4] '개관(蓋棺)'은 사람이 죽어 관 뚜껑을 덮는다는 뜻으로, 고문진보 등에서도 자주 쓰이는 표현입니다.
○ 내용인즉, [1~2구]에선, 작가 정황은 을사사화 이후 약 10년 가까이 은거와 더불어 배소를 옮겨 다니며 유배 생활을 했다. 유배지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 천식(病喘)까지 앓으며 간신히 버텨온 작가의 고달픈 처지가 잘 드러냈다. [3~4구]에선, 척박한 바다 섬(海中) 유배지에서 극적으로 벗을 다시 만나 마음을 터놓는 상황을 '새로운 얼굴로 골짜기를 열었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함께 어울려 놀던 고향의 전원(舊遊)은 오랜 세월 주인을 잃고 황폐해져(廢園田) 버렸다는 슬픈 현실을 대조시켰다. [5~6구]에선, 두 사람은 술잔을 나누며 가슴속 깊이 묻어둔 감정과 억울함을 쏟아냈다. "우리의 신뢰와 의리는 죽는 순간까지 절대 변하지 않고 견고할 것"이라는 뜨거운 다짐이다. [7~8구]에선, 유배지에서는 만남과 이별, 유배지가 바뀌어 떠나는 일 등이 흔하게 일어난다. 평소 "세상사 앞서거니 뒤서거니 헤어지는 것이 다 그렇지"라며 이별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막상 소중한 벗인 방사운을 다시 떠나보내려 하니, 평소의 의연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걷잡을 수 없이 슬퍼지는 인간적인 고뇌와 아쉬움을 토로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4) 다음 칠언율시(七言律詩) 「증강백(呈剛伯)」 2수(首)는 조선전기 문신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첫 수(首)는 정황이 지은 「증강백(呈剛伯)」 칠언율시이고 둘째 수(首)는 이에 응답하여 강백이 지은 차운시(附和)를 덧붙여 놓았다. 두 수(首)의 압운자는 ‘登’, ‘能’, ‘曾’, ‘稱’, ‘憎’이고 운목(통운) 자는 ‘蒸’이다. 이 시들은 조선 명종 시기, 고달픈 관직 생활과 변방의 고독, 그리고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선비들의 깊은 유대감을 담고 있다.
○ 내용인즉, 이 시의 주제는 변방에서 나랏일을 수행하는 고단함, 도탄에 빠진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憂國憂民), 그리고 멀리 떨어진 벗을 향한 깊은 그리움이다. 특징으로는 정황이 먼저 주변의 황폐한 풍경과 백성의 고통, 자신의 지친 심정을 읊자, 상대방(강백)이 그의 높은 뜻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반드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애틋한 문인들의 교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증강백(呈剛伯)」** 강백(剛伯)에게 드리다 / 정황(丁熿)
秋山何處不堪登 가을 산 어디인들 오르기 좋지 않으랴만
王事驅馳想未能 나랏일에 바삐 달리니 그리하지 못하겠구나.
楓嶺淸霜今有試 단풍 고개(단풍령)에 맑은 서리가 이제 내리니
稻田赤地古無曾 벼 심은 논이 붉은 땅(황무지)이 된 것은 옛날에도 없었네.
鄭監門畫當申奏 정감문의 그림처럼 상소하여 아뢰어야 하리니
潘繡衣遊豈再稱 반수의(암행어사)의 즐거운 유람을 어찌 다시 일컬으랴.
荒草本非宜馹路 거친 풀은 본래 역마가 다니는 길에 마땅치 않은데
十年面目自成憎 십 년 동안의 내 몰골은 스스로 보아도 미워지는구나.
*화답시를 덧붙임(附和), 강백이 정황의 시에 운을 맞추어 답한 시
家山楓葉幾同登 고향 산의 단풍을 몇 번이나 함께 올랐던가
千里如今恨不能 지금은 천 리 멀리 떨어져 그리 못하니 한스럽네.
共上天朝期有自 함께 조정에 올라갈 기약은 원래부터 있었거니
相思絶域意何曾 외딴 변방(절역)에서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이 어찌 가신 적 있으랴.
當時徇國惟君責 당시에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침은 오직 그대의 책임이었고
此日憂民爲我稱 이날 백성을 걱정하는 마음은 내가 칭찬할 만하네.
樽酒他年知一會 훗날 술 한 잔 나누며 한 번 만날 것을 아노니
滿樓風月亦生憎 다락에 가득한 저 바람과 달(아름다운 풍경)이 도리어 얄밉구나.
○ 한시 내용을 살펴보면, 첫 수(首)에선, 가을 산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은데 공무(王事)로 인해 여유가 없는 현실이다. 계절이 가을로 깊어가며 서리가 내린다. 가뭄이나 재해로 인해 농사를 망친 백성들의 참상을 걱정한다. 송나라 때 정협(정감문)이 백성들의 비참한 굶주림을 그림으로 그려 황제에게 올려 구제했던 고사를 인용한 것은, 백성의 고통을 임금에게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다. 또 반악(潘岳)의 고사를 인용한 것은, 지금은 한가하게 유람이나 즐길 때가 아님을 뜻한다. 거칠고 험한 변방의 길(혹은 정치적 역경)에서 오랜 세월 동안 고생하며 늙고 지친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는 자조적인 마음을 드러냈다.
둘째 수(首)에선, 과거에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며 우정을 나누던 추억을 회상한다. 현재는 서로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해 아쉽다. 언젠가 다시 조정(조정의 부름)에서 함께 일할 날을 기대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그대를 향한 그리움이 끊이지 않았음을 언급하곤, 정황이 국사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고 직언하거나 고생했던 당당한 모습을 치하했다. 앞 시에서 백성의 굶주림을 걱정(稻田赤地)한 정황의 우국충정을 높이 평가했다. 머지않은 미래에 재회하여 회포를 풀 것을 다짐한다. 그대 없이 혼자 보는 아름다운 풍월이 오히려 외로움을 더해 미워진다는 그리움의 반어적 표현이다.
5) 다음 ‘敬’, ‘靑’, ‘庚’ 자를 통운한 칠언율시(七言律詩) 「보낙이(報樂而)」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세상에 알아주는 이가 적은 외로운 처지 속에서도 선비로서의 지조와 학문적 본분을 잃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노래한 작품이다. 제목의 ‘락이(樂而)’는 사람의 이름(자 또는 호)으로 보이며, ‘락이에게 답장을 보낸다(報)’는 뜻을 담고 있다.
○ 이 글을 지은 정황 선생은 을사사화와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오랜 기간 유배 생활을 하다가 배소에서 세상을 떠난 인물이다. 그의 삶의 궤적을 고려할 때, 이 시는 정치적 시련과 세상의 외면 속에서도 술이나 잡기에 빠져 방황하지 않고, 성현의 도리를 담은 경전을 읽으며 신하로서의 정충(貞忠)과 지조를 끝까지 지켜내겠다는 선비의 엄격한 자기 절제와 기개가 잘 드러난 명작이다.
**「보낙이(報樂而)」** / 정황(丁熿 1512~1560)
知君素不閑吟咏 그대가 평소에 시 읊는 일에 익숙하지 않은 줄을 잘 알고 있는데
自是於時少眼靑 이 때문에 이 세상에서 그대를 좋게 보아주는 이가 적은 것이라네.
濡首可無千日醉 머리를 적셔가며 천 일 동안 취한들 어떠하랴마는
下帷要有一經明 휘장을 내리고 오직 하나의 경전이라도 명백히 통달해야 하리라.
國家重祿存忠信 국가에서 무거운 녹봉을 주는 것은 충성과 신의를 보존하기 위함이요,
臣子委身以敬誠 신하된 자가 몸을 바치는 것은 공경과 정성을 다하기 위함이라네.
非酒則弓多騖外 술이 아니면 활쏘기 같은 세상 밖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기 십상이지만,
滿牀賢聖絆平生 상 가득히 놓인 성현들의 책이 내 평생을 붙들어 매어 주네.
[주1] 안청(眼靑) : 진나라의 완적이 반가운 사람을 볼 때 검은 눈동자(청안)로 대하고, 미운 사람을 볼 때 흰눈자위(백안)로 대했다는 데서 유래하여 '사람을 반갑고 좋게 대함'을 뜻한다. 세상이 그대를 '청안'으로 보지 않는다는 뜻.
[주2] 하유(下帷) : 한나라의 한학자 동중서가 휘장(커튼)을 내리고 3년 동안 앞뜰을 내다보지 않은 채 학문에만 열중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여, 외부와 단절하고 학문에 전념함을 뜻한다.
[주3] 현성(賢聖) : 성현들이 남긴 경전.
○ 내용인즉, [1~2구]에선, 친구(락이)가 세상의 흐름이나 겉치레(시를 지어 사교를 맺는 일 등)에 서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그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고 냉대(少眼靑)하고 있음을 위로하는 구절이다. [3~4구]에선, 세상의 냉대 속에서 술에 흠뻑 취해 시름을 달래기도 하지만, 결국 선비가 가야 할 길은 학문에 전념하는 것(下帷)임을 강조한다. 단 하나의 경전이라도 깊이 깨우쳐 올바른 도리를 깨닫겠다는 의지다. [5~6구]에선, 시의 분위기가 개인의 수양에서 국가와 신하의 도리로 확장된다. 나라가 관리에게 녹봉을 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충성과 신의'를 지키게 하기 위함이며, 신하는 마땅히 목숨을 바쳐 '공경과 성실함'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유교적인 가치관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7~8구]에선, 사람이 갈피를 잡지 못하면 술에 빠지거나 활쏘기(유흥이나 잡기) 같은 외적인 일에 마음을 빼앗겨 방황하기 쉽다. 그러나 화자는 책상 위에 가득한 성현들의 말씀(책)이 자신을 단단히 붙잡아(絆) 주기 때문에 평생동안 엇나가지 않고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다짐하며 시를 마무리했다.
6) 다음 ‘眞’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때마침 흥이 일어나(時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유헌(遊軒) 정황(丁熿 1512~1560) 선생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단순한 풍경 시가 아니라, 을사사화(1545년)로 인해 거제도 등 변방(蛮中)으로 유배당한 처지에서 당시 조정의 간신들이 권력을 잡고 날뛰는 세태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충절과 무력한 처지를 한탄한 정치적 풍자시이자 우국시다.
그리고 정황 선생은 당시 권력을 잡은 소윤(윤원형 세력) 등의 간신들을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부정적인 인물들에 빗대어 강력하게 풍자하였으며, 지금 조정에 옛날 청렴한 선비 '장단(張彖)' 같은 올곧은 정신을 가진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 이 시의 제목 '시흥(時興)'은 겉으로는 '때마침 일어난 흥취'라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실상은 당대 조정의 정치적 타락상(時)이 극에 달해 간신들이 흥(興)하고 있는 세태를 역설적으로 비꼬는 주제다. 작가는 유배지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멀리 조정을 바라보며, 나라의 운명(天時人事)이 이미 기울어 가고 있음을 절망하고 있다. 뇌물과 아첨이 판치고 올바른 선비는 씨가 마른 현실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늙어가는(白首) 자신의 처지를 눈물(泣)로 맺음하며 깊은 충정과 슬픔을 드러낸 유배 명시다.
**「때마침 흥이 일어나(時興)」** / 정황(丁熿 1512~1560)
恐後林叢吠狗塵 수풀 뒤편에서 날뛰는 미천한 무리(간신들)가 두려우니
那聞張彖特精神 장단(張彖)처럼 홀로 꼿꼿한 정신을 가졌다는 소리 어찌 들리겠는가.
舟私得志曾何忌 사리사욕으로 뜻을 얻은 자들은 일찍이 무엇을 꺼려했으랴.
氣焰薰空可近嗔 그 기세와 불꽃이 하늘을 찌르니 가까이 가면 화를 입을 만하도다.
識字子雲猶是主 글자를 아는 양자운(揚子雲) 같은 이가 오히려 주인이 되고
深宵長伯固宜因 깊은 밤 진장백(陳長伯) 같은 자에게 뇌물 주며 매달리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구나.
天時人事無回勢 천시와 인사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형세가 되었으니
白首蠻中泣屛臣 머리 센 변방 유배지에서 내쳐진 신하는 눈물만 흘리노라.
[주1] 폐구진(吠狗塵) : '짖는 개들과 먼지'. 조정에서 권력의 가랑이 사이를 기며 아첨하고 소란을 피우는 미천한 간신 배들을 비유함.
[주2] 장단(張彖) : 중국 당나라 때 양국충(楊國忠)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 주변 사람들이 그에게 아부하라고 권하자 "양국충의 권세는 얼음산(冰山)과 같아서 해가 뜨면 곧 녹아버릴 텐데, 내가 왜 거기에 기대겠는가?"라며 거절했던 청렴한 선비다.
[주3] 주사득지(舟私得志) : 배를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하고 뜻을 얻었다는 뜻으로, 정당한 방법이 아닌 부정한 수단과 권모술수로 요직을 차지한 자들을 비판함.
[주4] 기염훈공(氣焰薰空) : 권세의 불꽃이 하늘을 훈증한다(찌른다)는 뜻으로, 당시 척신 정권(윤원형 등)의 안하무인 격인 권력 독점을 묘사했다.
[주5] 자운(子雲) : 중국 한나라의 학자 양웅(揚雄)의 자다. 뛰어난 학자였음에도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찬탈하고 신(新)나라를 세웠을 때 조정에 남아 그를 찬양하는 글(劇秦美新)을 써서 후대에 지조를 잃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장과 학식(識字)을 가지고 도리어 찬탈자나 간신의 주구가 된 자들을 꼬집은 것이다.
[주6] 장백(長伯) : 후한 시대의 인물 진장백(陳長伯)의 고사다. 당시 권력자였던 양기(梁冀)의 처남에게 아부하고 깊은 밤(深宵)에 뇌물을 바쳐 관직을 얻었던 인물이다. 즉, 밤마다 권력자의 집을 찾아가 청탁하는 세태를 폭로한 구절이다.
[주7] 만중(蠻中) : 오랑캐 땅, 즉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의 유배지(정황 선생의 경우 거제도)를 뜻한다.
[주8] 병신(屛臣) : 물리칠 병(屛) 자에 신하 신(臣) 자를 써서, 임금에게 버림받아 조정에서 내쫓긴 신하(유배객)인 자기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
7) 다음 칠언율시(七言律詩) 「별산인조희(別山人祖熙)」 즉 ‘스님(山人) 조희와 이별하며’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작가 정황은 을사사화(1545년)에 연루되어 거제도 등에서 오랜 유배 생활을 했던 선비다. 이 시는 유배지에서 교유하던 승려(山人) '조희'가 길을 떠날 때 지어준 송별시다. 마지막 구절에서 떠나는 조희 스님에게 세속의 잡념이나 잘못된 유혹에 빠지지 말고 맑은 마음을 지키라고 당부하며, 만약 중심을 잃으면 네가 짓는 시마저 가시가 되어 너를 찌를 것이라 경계하는 선비의 곧은 조언이 담겨 있다.
**「별산인조희(別山人祖熙)」** ‘스님(山人) 조희와 이별하며’ / 정황(丁熿)
紛紛易幻百年軀 어지러이 쉽게 변해버리는 백 년의 이 몸인데
焉用匏瓜繫一隅 어찌 박이나 오이처럼 한 모퉁이에만 얽매여 있으리오.
去矣萬山千水境 만고의 깊은 산과 수많은 물줄기 경계로 떠나가니
優哉南雪北花途 남쪽의 눈 내리는 길과 북쪽의 꽃 피는 길을 여유롭게 거닐겠구나.
此心更省無他引 이 마음을 다시 돌이켜 보아도 다른 데 이끌림이 없으니
孤錫須令有自娛 외로운 승려의 지팡이(불교의 석장)로 모름지기 스스로 즐겨야 하리.
若拂吾言終入誤 만약 나의 이 말을 어기고 끝내 그릇된 길로 들어선다면
詩安如棘刺渠膚 시(詩)가 어찌 가시처럼 그대의 살을 찌르는 아픔이 되지 않겠는가.
[주1] 포과(匏瓜) : 《논어》에 나오는 표현으로, 한곳에 덩굴째 묶여서 먹히지도 못하고 매달려 있는 박을 뜻한다. 즉, 세상의 관직이나 좁은 공간에 얽매여 자유를 잃은 삶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주2] 고석(孤錫) : 승려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인 '석장'을 뜻하며, 세속을 벗어나 구도와 자연 유람의 길을 걷는 스님의 정체성을 의미한다.
8) 다음 ‘寘’ 운목의 칠언율시(七言律詩) 「제수(濟叟)의 시에 화답하다(和濟叟韻)」는 조선 중기의 문신 유헌(游軒) 정황(丁熿 1512~1560)의 작품으로, 『유헌집(游軒集)』 권2(卷之二)에 수록되어 있다. 이번 편에는 거제도 유배지에서 지은 칠언율시 ①「제수(濟叟)의 시에 화답하다(和濟叟韻)」와 그 ②「제수(濟叟)의 원시(原韻)」 등 2수(首)를 소개하겠다. 이 시들은 을사사화(1545년)로 인해 오랜 기간 유배 생활을 하며 느낀 지은이의 고독, 억울함, 그리고 고향과 임금을 향한 그리움을 담고 있으며, 압운자는 ‘忌’, ‘地’, ‘淚’, ‘二’이고 운목 (운통)은 ‘寘’ 자이다. 또 제수(濟叟)는 '거제도의 노인'이라는 뜻으로, 정황과 유배지에서 가깝게 지내며 시를 주고받았던 동료 유배객이다. 당시 같은 시공간에서 유배객 두 분이 서로 극한의 공간에서 만나, 절망과 고독을 외쳤다.
○ 이 두 시편은 조선 시대 유배 문학의 전형적인 정서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원시(제수)에서 "내가 한때 잘나갔으나 시기를 받아 거제도까지 흘러왔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무의미할 정도로 괴롭다"고 토로하자, 화답시(정황)에선, 이에 격하게 공감하며 "나 역시 11년째 쥐처럼 숨어 지내며 늙어가고 있지만, 밤마다 고향을 생각하고 임금에 대한 충정(달)과 부모님에 대한 효도(송추)를 생각하며 눈물 흘린다"고 위로와 자신의 심경을 더해 응답하였다. 비극적인 당쟁(을사사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희생된 사대부들이 유배지라는 극한의 공간에서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맺은 깊은 연대감과 고독이 잘 드러나 있다.
**「화제수운(和濟叟韻)」** ‘제수(濟叟)의 운을 따서 짓다’/ 정황(丁熿)
十一年來荒草裏 십일 년 동안을 거친 풀숲(유배지)에서 지내며
病身如鼠逢人忌 병든 몸은 쥐와 같아 사람을 만나면 꺼려하네.
杜門顔厚仰高天 문 가로막고 뻔뻔한 얼굴로 높은 하늘만 우러러보며
中夜心酸思舊地 한밤중 마음 쓰라려 옛 고향 땅을 생각하네.
看月歲增犬馬懷 달을 보며 나이 들수록 임금 향한 충정만 더해가고
臨風每拭松楸淚 바람 맞을 때마다 조상 묘역 생각에 눈물 닦네.
如何金玉九霄資 만약 조정의 귀한 은혜를 입었다 한들 어찌하리.
此夕居然與余二 이 밤에 홀연히 나와 그대 둘만 남았구려.
○ 「제수(濟叟)의 시에 화답하다(和濟叟韻)」 내용인즉, 저자 정황은 을사사화 이후 거제도 등에서 11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귀양살이를 해온 처지다. 유배객이자 죄인 신세라 몸도 병들고, 사람들이 자신을 마치 쥐 보듯 피하고 꺼리는 비참한 현실을 자조적으로 표현했다. 두문불출하며 부끄러운 목숨을 이어가는 자신을 '안후(낯가죽이 두껍다)'하다고 낮추며, 오직 하늘(임금 혹은 천지신명)만 바라보는 심정이다. 깊은 밤, 고향이나 예전에 모시던 조정을 생각하며 느끼는 사무치는 슬픔이다. 달을 바라보며 시간이 흐를수록, 임금을 향한 변함없는 충성심이 깊어진다. '송추(松楸)'는 소나무와 가래나무로, 조상의 무덤을 뜻한다. 유배지에서 효도를 다하지 못하는 불효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원시에서 언급한 '금옥(훌륭한 재능)'을 받아치며, 자신의 뛰어난 재능이나 과거의 영광이 높은 조정(구소)에서 쓰이지 못함을 탄식한다. 원시의 마지막 구절인 '이(二)' 자를 받아, 고독한 유배지의 밤을 함께 나누는 처지를 읊었다.
**「제수(濟叟)의 원시(原韻)」**
我本中朝禁臠親 나는 본래 조정에서 매우 아끼던 총아였고
弱齡金玉爲人忌 젊은 나이에 재능(금옥)이 뛰어나 남들의 시기를 받았네.
前年遠謫通州郡 지난해엔 멀리 통주군으로 유배되었다가
今日又移巨濟地 오늘은 또 여기 거제도 땅으로 옮겨왔구나.
蹭蹬功名不足悲 실패하고 꺾인 공명은 슬퍼할 필요가 없으나
侵尋歲月堪垂淚 점점 흘러가는 허망한 세월에는 눈물이 흐르네.
臨風對酒醉復醉 바람 맞으며 술잔 마주하고 취하고 다시 취하니
病死愁生誰擇二 병들어 죽으나 시름겨워 사나 그 둘 중에 무엇을 고르겠는가.
○ 「제수(濟叟)의 원시(原韻)」 내용인즉, '금련(禁臠)'은 맛있는 고기 조각이라는 뜻으로, 임금의 각별한 사랑을 받던 귀한 신하를 의미한다. 과거 자신의 화려했던 처지를 언급했다. 어린 나이에 출세하고 재주가 출중하여 결국 권신들의 질투와 시기를 사서 죄를 입게 되었음을 고백한다. 유배지가 자신의 통주군에서 다시 거제도로 이배(移配)되어 점점 더 변방으로 쫓겨난 쓸쓸한 현실이다. 세상에서의 부귀영화나 관직을 잃은 것은 그리 아깝지 않다는 초연함을 담았다. 정작 슬픈 것은 유배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 한 채 늙어가는 세월의 무심함이다. 답답한 현실의 시름을 술로 달랜다. 병으로 죽는 것이나 시름 속에 고통받으며 사는 것이나 다를 바 없이 괴로우니, 어느 쪽도 선택하기 어렵다는 극도의 절망감과 슬픔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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