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식과 퇴적
한 기업에서 글쓰기 강연을 마치고 건물을 나섰다. 창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빼꼼하게 고개를 내밀었다. 티 없이 자란 앳된 꼬마 아이가 방글방글 웃으며 “삼촌”하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불현 듯 ‘볕뉘’라는 순우리말이 떠오른다. 작은 틈을 통해 비치는 햇볕이란 뜻이다. 해가 산이나 지평선 너머로 차츰 넘어가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로 ‘뉘엿뉘엿’이 있는데,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늘진 곳에 미치는 조그마한 햇볕의 기운은, 햇살보다 왠지 볕뉘라는 낱말이 잘 어울리는 듯하다.
새삼 오래전 기억이 새롭다. 작가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날,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국어사전 위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걷어내는 것이었다.
그 후 몇 권의 책을 펴내고 생각과 감정을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낱말을 매만지고 결합하면서, 우리말 사전을 뒤적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언론인 시절에는 단어의 유래와 어원을 일일일 찾아 공부하고 되씹지는 못했던 것 같다. 늘 분초를 다투며 시간과 싸워야 했으니.
‘앎’은 ‘퇴적’과 ‘침식’을 동시에 당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그나저나, ‘불현듯’이란 말이 ‘불을 켠 듯’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이 역시 흥미롭기만 하다.
―이기주, 『언어의 온도』, 말글터,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