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솔직하지 못한 이유
“ 아이 속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아이 마음만 모르는 게 아니라 남편, 시어머니, 나아가서는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는 마음이 훅 들더라구요. 그러면 그동안 내가 뭘 안다고 살았나 싶고 (한숨). 남편과 서로 지지 않으려고 악을 쓰고 싸웠던 순간이 저에게는 원망과 두려움의 감정으로 혼란스러웠어요. 마음이 많이 우울해졌어요 ”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고, 최근에 주목받는 메타 인지는 인지하는 것을 인지하는 것으로 자신이 알고 모른다는 것에 대한 인지를 말한다. 우선 알기 위해서는 밖으로 드러내고, 소통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안다고 인식된다. 글이나 이론으로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고 상황이나 사물, 사람에 대해서 알려면 솔직한 내용 (실체를)을 경험하고 실질적인 교감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안다는 표현에는 상대를 정확히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지만 실제 상황에서 우리는 그렇지 못함을 알면서도 암묵적인 무시를 하며 안다고 말하려 든다.
예를 들어 작은 것부터 보면 관심없는 이야기를 길게 듣는 게 힘들지만, 상대방의 체면과 이후 관계를 생각해서 괜찮다고 말하고 상황이 불편할때 마음에도 없는 헛말을 하기도한다. 다른 예로는 경연 프로에서 대상을 받는 게 좋음에도 상대방을 높이며 상대가 받아도 자신은 서운하지 않다는 양보의 표현을 한다.
우리는 왜 그러는 것일까? 내가 드러내고 상을 받고 싶다고 얘기하면 자신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한 염려로 인해 사회적 가면을 쓰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다소의 사회적 가면이 있다. 가면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 있을 때조차 가면을 쓰는 사람은 정신건강의학과의 진료와 동시에 상담 치료를 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가면은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다.
신데렐라 증후군은 착함을 품고 사는 자아도취, 영원한 젊음과 순수를 꿈꾸는 피터 팬 증후군, 착한 사람 콤플렉스의 콩쥐, 자기희생으로 남을 구하려는 이타적 영웅심의 심청이 등 자신의 원모습을 솔직히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유형들이 넘쳐난다. 그럼, 인간은 선한 존재로 자신의 희생을 통해 남을 구원하려는 이타적인 사람인가? 묻는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 중심의 희생, 종족 보존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고 사는 모습에서는 아이러니한 결론이 난다.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진화한 인간의 모습은 집단 즉 가족의 혈연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이득이 된다는 이론으로 설명한다.
물론 대의를 위해 소의를 희생하는 선택을 하며 인간이 진화되어온 예는 많다.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이나 나라를 위해 바치는 희생 영웅들은 분명 초월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를 먼저 생각한다는 것은 국민으로서 나라 없는 국민은 뿌리가 없어진다는 인식이 강했을 정서다. 우리와 달리 유럽의 경우는 수시로 망명하고 자신의 국적을 바꾸는 나라에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그런데 전시나 특별한 시기가 아닌 평소에는 나의 개인적인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간이 생존적인 문제 앞에서는 생명이 우선된다.
자신에게 들어올 피해나 책임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방어하게 된다. 변명, 회피, 합리화 등은 인간의 위기마다 자신을 보호하게 진화되었다. 자신을 솔직히 드러내도 해가 없다는 안심이 되는 관계에서는 두려움이 없다. 즉 솔직함이 잘 수용될 수 있는 사회라면 인간관계에서의 가면은 필요 없을 것이다. 요즘 우리들의 가면은 TV 프로그램에서도 듣게 된다. 솔직한 자신의 노래 실력을 알고 싶었다고 말한다. 외형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로 인해 우리가 많은 결정을 편향적으로 한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복잡해지는 현대사회 구조에서 가면을 벗고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야 신경증 환자가 줄어든다. 남을 의식하고 경계하다 보면 남의 눈이 자기 눈을 침습해서 남의 눈이 곧 자신의 눈이 되어버린다. 남이 평가하는 것을 자신의 실체라고 여기며 인정 받으려는 몸부림 때문에 불안과 공포가 생겨난다. 이는 우리에게 너무나 슬픈 불행이다. 점점 자신을 잃어가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줄을 밤샘을 하며 서 있는 형상이다.
남이 줄을 서면 나도 선다는 식으로 유행 한다는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서서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얻으여는게 과연 무엇인가를 멈추어 생각 해봐야만 한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 남에게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선택 한것인지 둘러보자. 슬프지 않게 살려면 자기자신을 잃어 버리면 안된다.
솔직하지 못함은 두려움으로 깊어지면 공포가 된다. 적절한 가벼운 가면으로 삶이 놀이가 되면 좋겠다. 창밖으로 손을 내밀 때 손가락을 막아 차단하지 말고 손가락을 벌려 자신의 손가락 사이로 바람결이 지나가게 두어보자. 이 바람이 자신을 위로하고 보듬어 ' 그렇게 전투적으로 애쓰지 않고 살아도 돼' 라고 말해줄것이다.
지치면 방어하게되고 이러한 방어는 자신도 모르게 솔직함을 앗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