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표로 보는 한국사사전 - 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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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jy9713
2023.10.28. 20:43조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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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표로 보는 한국사사전
백제
요약 온조가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세운 나라로 근초고왕 때 전성기를 누렸다. 백제는 한강 유역의 좋은 자연환경을 바탕으로 일찍이 고대 국가의 기틀을 닦아 발전했으며, 세련되고 우아한 문화를 발달시켜 일본 고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
유물과 유적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절벽에 새겨진 백제 시대의 마애불상이다.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국보 84호로 지정되었다. ‘서산 마애석불’ 또는 ‘운산 마애석불’이라고도 부른다.
백제 금동 대향로 | 충청남도 부여군 능산리 절터에서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백제 공예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 주는 유물로 국보 287호로 지정되었다. 백제 창왕 때인 567년에 정해 공주가 절을 지었다고 하며, 향로는 이 절에서 열린 왕실의 의식이나 제사에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송산리 고분군 | 백제 임금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다. 이 고분군에는 7개의 무덤이 있는데, 1~6호분과 가장 늦게 발견된 무령왕릉이다.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 충청남도 부여 정림사 터에 있는 백제 말기의 석탑이다. ‘백제 5층 석탑’이라고도 하며 국보 제9호로 지정되었다. 백제를 대표하는 석탑으로, 일본에도 이 탑을 본떠 만든 석탑이 있다.
연표
• 기원전 18년 - 온조가 백제 건국
• 3세기 초 - 몽촌 토성 만듦
몽촌 토성 | 흙을 쌓아 만든 성으로,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 공원 안에 있다. 나무 울타리와 성 주위에 둘러 판 못(해자)이 있으며, 성안에서 건물터가 여럿 발견되었다. 풍납동 토성과 함께 백제의 첫 도읍지인 위례성으로 짐작되고 있다.
• 371년 - 근초고왕, 고구려의 평양성 공격
근초고왕 | 백제의 전성기를 이끈 제13대 임금이다. 345년에 임금의 자리에 오른 뒤 375년까지 정복 전쟁을 벌여 백제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다.
• 375년 - 고흥이 《서기》 편찬
• 384년 - 동진에서 불교 전래
• 405년 - 일본에 한학을 전함
아직기와 왕인 | 왜(일본)에서 활동한 백제의 학자들이다. 일본의 역사책인 《일본서기》에 따르면 4세기에서 6세기 사이에 백제 임금의 명령을 받고 왜에 건너가 백제의 문화를 전했다. 이들은 일본 왕실의 스승으로 활동했으며, 일본의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 433년 - 고구려에 맞서 신라와 나제 동맹 맺음
나제 동맹 | 영토의 대부분이 북쪽에 치우쳐 있어 농사를 짓기 어려웠던 고구려가 남쪽의 기름진 땅을 얻기 위해 백제와 신라를 압박하자, 이에 맞서기 위해 맺은 동맹이다. 두 나라는 필요할 때마다 서로 병력을 지원하자고 약속했다.
• 475년 - 문주왕, 도읍을 웅진으로 옮김
• 512년 - 무령왕, 고구려를 공격하여 승리
• 525년 - 무령왕릉 만듦
무령왕릉 | 충청남도 공주시 송산리 고분군에 있는 백제 무령왕과 왕비의 능이다. 백제 고분 중 유일하게 주인을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무덤으로, 많은 양의 껴묻거리가 발견되어 삼국 시대의 고분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538년 - 성왕, 도읍을 사비성으로 옮김
성왕 | 백제의 제26대 임금이다. 《삼국사기》에 “영민하고 비범하며 결단력이 있어 나라 사람이 성왕으로 칭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쇠약해진 백제를 되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관산성 전투에 참여했다가 신라군에게 사로잡혀 죽임을 당했다.
• 552년 - 일본에 불교 전함
• 642년 - 윤충이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
• 660년 -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서 패함.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 멸망
황산벌 전투 |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때(660년) 계백이 이끄는 백제군과 김유신의 신라군이 벌인 전투이다. 5,000여 명의 백제군은 5만여 명의 신라군을 맞아 잘 싸웠지만 끝내 패배했다. 이 전투에서 패하면서 백제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황산벌은 지금의 충청남도 연산 지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