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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를 찬양 가운데 기도 가운데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또 오래간만에 뵙는 얼굴들이 있는데 너무너무 반갑고 예배를 통해서 주시려고 예비한 모든 것들 다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울이라는 사도를 알지요. 이 바울이라는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나름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 사람의 배경이나 출신이나 교육이나 열심에 있어서 하나도 부족함이 없이 오히려 충분히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니까 그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만나니까 그다음에는 이전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다 쓰레기처럼 여길 수 있고,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그 지식을 가장 고상한 것, 가장 고귀한 것, 가장 존귀한 거로 여기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는 사람들이 다 그러하며 또 우리에게도 그렇다고 믿고 그렇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렇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각 사람에게 남은 인생이 있죠. 이 남은 인생을 정말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천국의 삶으로 살기 원한다면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를 잘 배워야 합니다. 성경이 전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이 되신 하나님 말씀을 전하신 주, 또 오늘 찬양한 것처럼 장미꽃처럼 짓밟히는 고난을 당하신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은 높으신 분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겁니다.
한번 같이 해볼까요?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만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이 들을 말씀인데 잘 듣고 잘 배우고 정말 잘 기억해서 우리 삶에 적용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여기에는 엄청난 의미가 담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세상에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있다면 그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하고 만나고 싶어 하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을 보여주는 분을 가리켜서 바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외모가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과 행실을 통해서 나타난 인격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는 것이에요.
그리고 성경에서는 본다는 말에는 안다는 말도 뜻도 담겨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보여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형상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에 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을 알려주신다. 하나님 속에 있는 것,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뜻, 우리 각 사람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들 다 알게 하신다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정말로 보기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보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서 정말로 참 지식을 얻기를 원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면 된다.
물론 모두 말씀과 성경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지금도 우리가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성경 성경과 말씀을 통해서 그렇고 또 그렇게 만나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더 나아간다면 교회에 대해서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세상은 이 예수를 믿고 따르는 교회를 통해서 이제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모든 교회에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오늘 여기에 서 있는 큰 이유 중에 하나도 우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보여지는 것이 오늘 예배 중에는 교회에 처음 오신 청년도 있었는데 오늘 만남과 예배와 교재를 통해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꼭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그렇게 볼 수 있는 눈을 우리 주님께서 주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그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에요. 영어로 하면 퍼스트 본 오 크리에이션 여기 번역에는 오버 크리에이션이라고 돼 있는데 그렇게도 번역을 할 수 있어요. 이 말이 뜻하는 것은 지금 말씀하시는 말씀의 대상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조물 크리쳐 만들어진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모든 피조물보다 앞서니 그들보다 더 높으시니라는 뜻이에요. 이것을 우리 4세기에 니케아 신경이 잘 고백으로 담고 있는데 거기에 보면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아버지로부터 나신 하나님의 독생자요. 빛으로부터 오신 빛이시오 참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참 하나님이시오. 피조된 것이 아니라 나셨으며 아버지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시다. 이게 우리 신앙 고백이에요. 모든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이 서방이나 동방이나 개신교나 카톨릭이나 모든 교회들이 고백하는 신앙 고백의 담겨 있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신앙 고백에는 그리스도를 예수님을 피조물로 보는 이단에 대한 반박이 담겨 있어요. 3세기의 4세기를 살은 이 아리우스라는 장로가 있었는데 이 사람이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할 때 그리스도는 본질상 하나님과 같지 않고 피조물과 같다라는 주장을 했는데 흥미롭게 또 그때 사용한 자기 주장의 근거가 바로 본문 중에 하나가 여러 개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이겁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 오늘날로 보면 아마도 유대교 유대교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죠. 또 이슬람 그리고 기독교 안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본문을 사용해서 예수는 하나님이 아니다. 그는 피조물이다. 그는 만들어진 존재라고 주장을 할 수 있는데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말씀이 그들의 주장과 맞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부분에서 세 번째로 보면 예수 그리스도 그는 만유의 주다. 만 온 세상의 주의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죠. 그리고 그는 만물보다 먼저 계셨고 만물이 그 안에서 함께 서 있다고 말씀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 번역에 보면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 왕권이나 주권이나 권력이나 권세나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됐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고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바로 앞에서 말하는 만물보다 먼저 나신 이는 만물과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거예요.
여기에서 사용된 타이틀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는 앞에서 보듯이 왕권, 주권 아니면 통치권, 권력, 권세 이런 것들이 쭉 있잖아요. 이것들은 모두 다스리는 권세, 옥솔로티하고 룰링 오솔로티하고 연결된 말들인데 아주 높은 지위를 가리키는 말들입니다. 그래서 학자들 중에는 이것들이 천사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보든 요점은 이 부분에서 전달하려고 하는 메시지는 그리스도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받으리라 하는 것이고, 다른 모든 것들은 천사들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통치 아래에 있다는 말씀이에요.
그가 마지막 여기서 말씀하시는 다른 모든 만물은 그가 만드신 피조물이고 그리고 그와 관계를 가진 피조물이고, 그가 만드시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고, 그리고 지금 유지되는 것은 그의 능력으로 되는 것들이라는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그것들 중에는 천사라고 하더라도 하늘의 높은 것이라고 하도 이 땅에 가장 힘센 것이라고 하도 하나님께만 들여주는 마땅한 경배를 그들에게 돌리는 것은 우상숭배라 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그들을 만드신 이 일을 예배하는 것은 지금 성경이 전하고 있는 만유의 주를 예배하는 것은 그가 마땅히 받으셔야 할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라고 우리가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넷째로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여기서 머리라 하는 것은 특별히 통치 다스림과 관련된 말이에요. 칼뱅이라는 신학자는 종교개혁 신학자는 우리 장로교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신학자인데, a의 신학자는 이 부분에서 머리라는 단어가 워낙 완고한 말이기 때문에 그 말을 아무렇게나 적용할 수 없다고 얘기를 해요. 특별히 로마 카톨릭의 교황을 교회의 머리로 부를 수 없다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어떤 사도도 교회가 교회의 머리가 아니었어요. 베드로를 향해서도 바울을 향해서도 교회의 머리라고 하신 부분이 없지요.
오늘 우리 상황에서 말하자면 어떤 목사나 장로라도 또 어떤 감독이나 주라고 아츠쇼이라고 하더라도 교회에 머리가 아닙니다. 이 부분은 정확하게 아셔야 돼요. 사람은 로마 카톨록의 교황이라고 하더라도 영국 성경회 대주교라고 하더라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다스림을 받는 지체들이라 모든 사람은 몸의 지체들이라 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라 하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교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요. 중요한 겁니다.
지금까지 전해진 말씀에 따르면 예수는 누구입니까?
교회는 하나님의 형상이시고 만물의 창조자이고 만물의 회복자이신 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의 몸이에요. 교회가 그렇게 높으신 분의 몸이 교회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높으신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신 교회를 낫게 생각하거나 그 성도를 낫게 대하면 안 돼요. 우리가 형제 자매를 또 서로 서로를 대할 때 낫게 대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했죠. 그 말처럼 우리가 서로를 대함에 있어서 보상함이 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교회는 프라이빗한 부분도 있지만 퍼블릭한 부분이 있어요.
프라이빗한 거는 고정된 멤버가 이루는 기회이기 때문에 프라이빗한 부분이 있지만 퍼블릭한 부분 뭐예요?
이 기회는 우리의 것만이 아니고 가장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러므로 하나님과 연결된 것이고 이 땅에 있는 모든 교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퍼블릭한 겁니다. 이 퍼블릭한 부분이 프라이빗한 부분하고 살아있어 균형을 잘 맞춰야 건강한 교회로 갈 수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교회를 두고 너무 낫게 또 서로에 대해서 너무 낫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 전혀 기쁨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그리해왔다면 앞으로는 모든 교회에 대해서 이웃 교회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에 대해서 또 서로에 대해서 말할 때 고상함이 존귀함이 고귀함이 우리들의 말과 생각과 행실에 나타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그는 근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근본은 헬라어로 아주 잘 알려진 단어를 쓰고 있어요. 그것은 아르케라는 겁니다. 대학에서 철학을 조금 공부하면 이 말을 들어봤을 거예요. 아르케라는 말 만물의 기원 시초라는 뜻이죠. 헬라 철학에서는 이 아르케를 지금의 자연과학이나 철학이나 여러 종교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물질 비인격적인 물질 입자나 원자 같은 물질 아니면 원리나 합리적 원리나 법칙에서 찾았어요. 그러니까 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기 전의 상황이 이 지식 시장이 배경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런 것을 배경으로 지금 바울이 하는 것은 인격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르케다 만물의 기원이고 만물의 시작이라고 지금 선포를 하는 거예요.
만물의 시작, 만물의 기원 그것뿐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서 그다음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뭐라고 되어 있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웃뜸이 되려 하심이오.
여기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활은 만물의 회복을 뜻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다시 사심 안에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뜻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예수가 근본이다 그가 근본이라는 말씀에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물의 시작, 만물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시작된 창조의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기원이다 출발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 시작에 동참하고 반응한 사람들이 바로 교회라 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몸이 없으면 살 수 없죠. 그렇지만 이 몸이 우리 각 사람의 존재의 시작이 아닙니다.
그 앞에 부모의 사랑이 있었고, 그 앞에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중심에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며 그 안에서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시작한 새로운 존재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셔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가 바로 그 자리입니다.
여섯째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충만이 있습니다. 충만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속한 것을 사랑한 아들에게 부어주신 충만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께 속한 것들이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들이고 하나님이 갖고 계신 것들이라. 이것이 부어주신 충만이래 그렇게 하심에 뜻이 있는데 첫 번째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처럼 그 아들을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보고 따라야 할 모든 것을 이 그리스도에게서 얻게 하려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았죠?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듣지 그것을 어디서 듣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서 듣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듣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충만함을 주셨는데 여기에는 그다음에 이어지는 아주 큰 뜻이 있어요.
일곱 번째인데 그는 우리의 화평이십니다.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만물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어요.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 겁니다.
화목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레컨실레이션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멀리 떨어졌던 관계가 다시 가까워지는 거예요.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과 가까운 것이 복이에요. 그리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이 화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멀어지려고 할 때 하나님은 그렇게 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시는 측면이 있어요. 실제로 그렇게 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또한 그것을 피할 길도 주셨습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죄를 속하는 동물의 제사를 주셨고 그다음에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는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이제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것도 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도 모두 이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통해서 되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물어볼 수 있죠. 왜 오직 그리스도입니까?
y 크라이스트 론 아니면 와이 오니 크라이스트 이렇게 물어볼 수가 있어요.
세상에 종교들이 많이 있죠. 부처도 있어요. 근데 부처도 있고 공자도 있고 모함메트도 있고 다른 성인들도 있고 천사들도 있는데 왜 그리스도만 유일한 중보자라고 성경은 말하고 또 우리가 그렇게 믿어야 할까요?
각자 가지고 있는 대답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부분에서 제가 나눌 수 있는 대답은 그분만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사람이며 동시에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진짜 사람 사람이어야 죄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고 진짜 하나님이야 죄의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어느 누구도 죄의 문제를 그렇게 철저하게 다루고 그렇게 완벽하게 해결하신 존재가 해결한 존재가 없다 하는 거예요.
여러분 안에도 있는 믿음이라고 믿습니다. 믿는 자들이라면 전에는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서 마음으로가 원수가 되었던 사람들입니다. 멀리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났다는 것이고, 원수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수가 되었다는 것이에요.
한편으로는 악한 행실이 있고 또 다른 편에는 이 마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은 마음으로 번역하는 것은 우리 정신세계의 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 내면 세계 전체, 우리의 내면 세계에 있는 모든 것 센스 마인드 인텐션 이런 모든 부분이 그분을 가리키는 뜻으로서 마음입니다. 그 마음이 행실과 함께 모두 하나님을 떠나서 원수가 된 상태가 우리가 이전에 있었던 자리다. 믿는 사람들은 그렇게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우리를 그대로 두시지 않고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이 우리가 전해 받은 복음이에요. 이 화목을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은 없습니다. 다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기 위해서 우리가 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순전한 은혜예요.
그러나 목적은 있습니다. 그렇게 해 주신 목적이 성경에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세우시려 한다 하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말하듯이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우리가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23절에 있는 이 말씀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씀으로 해야 하는 말씀으로 지금 전달해 주고 있는 것이에요. 여기에서 말씀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믿음, 우리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여러분 다양하게 생각하고 있죠. 이 믿음이라는 것은 그냥 내 머릿속에 있는 거 내 속에 들어갔다가 떠나가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전체가 그 안에 들어가 서 있는 것이에요.
앞에서 말한 칼뱅이 말로 하면 여러 움직임으로 인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그냥 단순한 의견 같은 것이 아니라 지옥의 모든 계략을 견딜 수 있는 굳건한 경고함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믿음을 그렇게 보는 사람이 많잖아요. 여러분들은 믿음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페이트라는 것을 어떻게 생각 믿음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굉장히 사적 프라이빗한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이 프라이빗한 것 파워스는 한 측면은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믿음을 경험이나 이성 그런 것보다 더 낮은 차원의 것으로 속하는 것으로 본다면 틀린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특별히 300년 전 17세기 소위 말하는 계몽주의 철학자들, 재계몽주의 학자들을 통해서 발전하고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현대의 만연한 생각인데 아주 잘못된 이분법적 생각이에요. 그것은 카뱅처럼 칼빈은 종교개혁자로서 이 계몽주의에도 선한 영향을 준 사람인데 그 사람조차도 생각하지 않는 방식이에요.
우리가 아까 생각해 보았듯이 또 현대 과학자라도 모두 다 동의하는 부분이 아니에요. 이 부분에서 오늘날 권위 있는 학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은 팩트는 과학처럼 종교에서도 중요하고 그리고 믿음은 페이스는 종교처럼 과학에서도 중요하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이것이 맞습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종교이든, 아니 과학이든 종교이든 철학이든 문학이든 사실과 믿음이 함께 가요. 팩트와 페이스가 함께 가요. 사실과 무관한 믿음 그것은 허구입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사실 그것은 그냥 단순한 정보예요. 우리가 거기에 맞춰서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실들의 무게가 다 동일한 것이 아니고 또 모든 믿음들의 가치가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너희가 들은 복음 너희가 들은 바 복음 이 말이 그 말이 가리키듯이 복음이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닙니다.
복음에도 종류가 있어요. 그래서 그중에는 교회를 세우는 진리의 말씀으로 된 복음이 있고 복음이라 부르지만 세워진 교회를 흔드는 거짓 교훈으로 된 것이 있습니다. 골로새서가 쓰여진 목적 중에 하나, 그러한 거짓 교훈이 교회에 들어왔을 때 교회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바울이 골로새서를 지금 쓰고 있고 우리가 지금 들은 말씀 특별히 높으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을 지금 먼저 들은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를 세우는 진리로 된 복음 그것은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내어주시면서 선포하신 복음이고, 또 바울과 같이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 자기 목숨을 내어주면서 전파한 복음이고, 이것은 천하 만민에게 천하 피조물 모두에게 전파된 복음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처럼 자기 배를 위하는 자들을 통해서 일부에게 어두운 곳에서 은밀하게 퍼지는 가시거리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복음의 소망에서 그냥 간단하게 그 복음에서 떨어지지 않고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건하게 서 있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고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죠.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 그런 뜻이 아니고요. 이미 우리 죄를 가져가시고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 주신 이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세워주신다는 것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