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의 동학농민혁명 무장봉기포고문(창의문) 비교
1.<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156,157쪽 발췌
무장동학배포고문 (茂長東學輩布告文)
주인은 종에게 관대해야 하며, 종은 주인에게 순종해야 한다. 만약 우리의 고향과 법이 이러한 가르침에 기반을 두었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현재의 주인인 우리의 왕은 관대하고, 공평하고, 자비롭다. 천지신명이 그가 깨끗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정직하고 근면한 신하가 그를 보좌했다면, 우리는 요순의 덕치와 문제• 경제 시대의 치세를 누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의무를 게을리 할 뿐 만 아니라 정부의 재정을 훔치고 있는 현재의 장관들의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우리 임금의 지혜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막는 동시에, 임금께는 우리의 소망을 알리지 않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의 비참한 상황을 호소하면, 이들은 우리가 사악하고, 무지하며, 불성실하다고 치부하며 우리의 호소를 물리친다. 왕좌 가까이에는 충성스러운 관리가 한 명도 없다. 그들은 모두 무지하다. 따라서 우리 백성들은 불안하고 무질서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이 날마다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으면, 매일 정부의 폭압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사방에서 우리는 분노의 소리를 듣는다. 주인과 종 사이에 진정성이나 신뢰라곤 없다. 높은 자나 낮은 자의 운명은 마땅히 그러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 삶 자체가 우리에게는 짐이다.
관자(관중)는 사람들 사이와 사회에 불화가 만연하면 그 나라는 망한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지금 사태는 옛날보다 더 심각하다. 장관들은 나라를 위협하는 커다란 위험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부를 채우기에만 급급하다. 시험장은 수입이 짭짤한 사업이 되었고, 관직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관리들은 왕조의 금고를 채우는 대신 자신의 주머니를 채운다. 그 결과 나라는 부채로 허덕이고 있다. 우리의 팔도는 고기와 생선을 빼앗겼고, 백성은 비참한 지경에 있다. 매수와 온갖 종류의 타락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그것이 우리가 이처럼 가난하고 비참하게 사는 이유다. 백성들은 파탄 직전이며 곧 망할 것이다.
우리는 무지한 농사꾼일 뿐이다. 하지만 위험이 다가오는데도 그냥 앉아서 당할 수는 없다.
수천 명에 달하는 우리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서로 협의했고,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기꺼이 희생하고, 우리의 군주이신 임금이 나라와 백성들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할 때 함께 하기 위해 서로 손을 잡았다. 어려운 날들이 올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대들이 각자 하던 일을 평화롭게 계속하도록 요청하는 바이다. 우리는 그대들을 적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대들을 위해 싸울 것이며 그대들은 위해 죽을 것이다. 그대들의 행운을 빈다. 임금께서 만수무강하시길!
*저자는 <무장동학배포고문> 전문을 쓰기 전에 앞서서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인용 참고서: 저자 헤세 바르텍은 자신이 서울에서 구한 조선어로 된 <무장동학배포고문> 사용한다고 밝히고 있다.
2.김흥식 편 <전봉준 재판정 참관기>, 37~39쪽 발췌
창의문(昌義文,제1차 농민 봉기)
세상에서 사람을 귀하게 여김은 인륜이 있기 때문이며, 군신과 부자는 인륜 가운데 가장 큰 것이라.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곧으며 아비가 사랑하고 자식이 효도한 후에야 비로소 국가를 이루어 능히 무궁한 복을 우리게 되는 것이다.
(…)
그러나 신하 된 자들은 나라에 보답할 생각은 하지 않고 한갓 봉록과 지위만을 도둑질해 차지한 채 임금의 총명을 가릴 뿐이라.(…)
안으로는 나라를 돕는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백성에게 가혹한 관리가 많다. 백성들의 마음은 날로 변하여 안으로는 즐거운 삶이 없고 밖으로는 한 몸 지킬 방책조차 없다. 포악한 정치는 날로 심해져 원성이 그치지 아니하여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직분마저 무너져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
(…)
국가의 관리들은 모두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도 않고 오직 제 몸 살찌우고 제 집 윤택하게 하는 계책만 펼치니, 사람을 선발하는 것을 제물이 생기는 길로 여기고, 과거 보는 곳을 장사하는 저잣거리로 만들었다. 허다한 뇌물은 나라의 창고에 납부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저장고에 넣고 있으니, 나라의 빚은 쌓여만 가는데도 이를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교만과 사치, 음란을 즐기면서도 두려워하거나 거리낌이 없다. 그런 까닭에 온 나라가 결딴이 나고 만민은 도탄에 빠지고 말았다. 수령들의 탐학에 거리낌이 없으니 어찌 백성이 곤궁하지 않겠는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을 해치면 나라는 필연적으로 쇠잔해지는 것이다. 나라를 돕고 백성을 평안케 할 방책은 생각하지 않고 오직 제 몸을 온전히 보전할 계책만 내며 나라의 녹봉과 벼슬을 도둑질하고 있으니 어찌 이치에 맞는 일이겠는가.
우리는 비록 초야에 버려진 백성에 불과하나 임금의 땅에서 먹고 임금의 옷을 입고 사는 몸이니, 어찌 나라의 위기를 앉아 보고만 있겠는가. 온 나라가 마음을 모으고 수많은 백성이 의논한 후 정의의 깃발을 들어 보국안민을 위해 죽음의 맹세를 하노니, 오늘의 광경이 비록 놀랍다 해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각자 맡은 일을 평안케 하며 함께 바른 세상으로 올라가 해와 달에 빌어 모두 임금의 가르침에 감화된다면 천만다행이겠노라.
갑오년 3월 20일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 인용 참고서를 밝히지 않음
3.함재봉 저, <한국사람 만들기 Ⅳ 친일개화파>, 235~237쪽
무장현등상동학인포고문(茂長縣謄上東學布告文)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 함은 오로지 인륜이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의 의리는 인륜 중에서 자못 큰 것이다. 임금이 어질고 신하가 곧으며 아비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아비에게 효도한 연후에 비로소 집과 나라를 이루어 무한한 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성상께서는 어질고 효성스럽고 백성에게 자애로우시며 총명하고 지혜가 있으시니 만약 아래로 현량하고 정직한 신하가 있어 힘을 더하여 그 총명을 돕는다면 요, 순의 덕화와 문제, 경제의 치세를 가히 해를 보듯이 바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의 신하된 자들은 나라에 보답할 일은 생각지 아니하고 부질없이 봉록과 지위만을 도둑질해 차지하고 성상의 총명을 가리고 온갖 아부와 아양만을 일삼으며, 충성되이 옳은 말로 간하는 선비를 가리켜 요망한 말을 한다고 이를 물리치며 착하고 정직한 사람을 도리어 배도로 몰아세운다. 안으로는 나라 일을 보살필 재목이 없고 밖으로는 백성을 괴롭히는 벼슬아치가 많아서 온 백성의 마음이 날로 흐트러져 집에 들어서면 생업을 즐길 마음이 내키지 않고 밖에 나가도 한 몸을 지탱할 계책이 없다.
포악한 정치는 날로 심해가고 원망하는 소리는 그치지 아니하니, 군신의 의리와 부자의 윤리와 상하의 분별이 드디어 무너지고 말았도다. 관자가 말하기를 ⌜사유(四維):예(禮), 의(義). 염(廉), 치(恥)가 바로 서지 못하면 나라는 멸망하고 만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형세는 오히려 옛날보다도 더욱 심하다 하겠다.
공경이라 방백, 수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위태로움은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일신의 비대와 가문의 윤택만 꾀할 뿐, 벼슬아치를 뽑고 움직이는 일을 돈벌이 하는 수단으로 생각하고 과거를 치르는 마당은 마치 물건을 사고 파는 저자로 변하고 말았다. 백성에게서 걷은 세금과 물건이 국공에 들어가지 않고 도리어 세도가의 사복만 채우고 있으며, 나라에는 빚이 쌓여 있는데도 이를 갚을 생각은 하지 않고, 교만과 사치와 음란한 생활만을 일삼으면서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꺼릴 줄을 모른다. 이에 이르니 온 나라가 짓밟힐 대로 짓밟혀 결단이 나고 만민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벼슬아치들의 탐학이 이러하니 어찌 백성이 궁하고 곤하지 아니하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인데 근본이 소잔하면 나라는 반드시 멸망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이치인데도 국가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케 할 방칙은 생각지 아니하고, 밖으로 향제(鄕第: 고향집)를 꾸며 일신의 온전만을 도모하며 헛되이 국록과 지위를 도적질하고 있으니 어찌 이것이 옳은 일이라 하겠는가?
우리들은 비록 초야에 버려진 백성이지만 임금의 땅에서 나는 곡식을 먹고 옷을 얻어 입고 사는 터, 어찌 앉아서 나라의 멸망하는 꼴을 보고만 있겠는가. 온 나라가 마음을 같이하고 억조창생이 뜻을 모아 이제 의리를 들어 나라를 보전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사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하고 일어섰으니, 오늘의 곽영이 비록 놀라운 일이기는 하겠으나 결코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말고 각자의 생업에 충실할지며, 함께 태평성대를 빌어 성상의 덕화를 골고루 입게 된다면 천만다행이겠노라.
4월 25일(음력 3월 20일)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
*인용 참고서: 국사편찬위원회 편, ⌜동학난기록 상⌟142,143쪽. 유영익,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서울 일조각, 1998)19,20쪽 재인용
후 기
*작자 미상의 천도교서인 <동비토록>은 필사본으로 제1차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자료를 가장 많이 담고 있는데 책 첫 머리에 나오는 무장기포 포고문이 한문으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1893년 11월에 전봉준과 20명이 발의한 사발통문이 국문과 한문을 나란히 사용한 점을 볼 때 창의문(포고문)을 한문만으로 작성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헤세 바르텍은 자신이 조선에서 구한 조선어로 쓰여진 성명서라고 밝히고 있다.
*함재봉은 국사편찬위원회 편, ⌜동학난기록 상⌟142,143쪽. 유영익,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서울 일조각, 1998)19,20쪽 재인용했다고 밝히고 있지만 국사편찬위원회의 ⌜동학난기록 상⌟과 유영익, ⌜동학농민봉기와 갑오경장⌟의 포고문 출처가 어디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다. 쓰여진 "포고문"의 문맥으로 볼 때 한문으로 된 원문을 번역한 뉘앙스가 풍긴다.
*박흥식은 자신이 인용한 "창의문"의 출처를 밝히고 있지 않다. 문맥으로 볼 때 한문으로 된 원문을 번역한 느낌이다.
*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사발통문이나 창의문에 대한 연구를 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석학들의 연구를 기대한다.
2023.4.28. 금. 인시
우담초라하니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