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체토 마을을 떠나 남쪽으로 가는 길은 처음에는 포장도로였다가 비포장 산길이 되었습니다. 익살스러운 순례자 조형물이 길가에 있었습니다. 순례자들은 으레 늙고 구부정한 모습인 모양으로 인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실은 일반 사라들보다 더 꼿꼿하고 젊어 보이는데 … 밤나무 숲이어서 길에 밤이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도 줍지 않아 지나는 차량 바퀴에 으깨어진 것들도 있었고 아직 깨끗한 알밤도 있었습니다. 바람이라도 불면 후드득 떨어져 내릴 것입니다. 단풍 든 숲의 노랗고 주황색, 빨강, 그리고 초록이 뒤섞여 잔잔한 빛으로 아름다웠습니다.
펠가라(Felgara) 마을까지 약 4 km는 대부분 포장도로였습니다. 베르체토에서 150m를 올라왔습니다. 발자국 소리를 들었는지 개가 짖어 대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농가가 서너 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비포장 산길로 접어 들어 꾸준히 올라 갔습니다. 길은 넓었습니다. 땅이 젖은 곳에는 말 발굽 자국이 찍혀 있었습니다. 나무가 우거져 하늘이 잘 안 보일 정도였습니다. 어쩐 일인지 새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차 소리와 트랙터 소리가 희미했습니다. 가끔 사유지 경계 표시인 양울타리 친 곳도 지났습니다. 해가 비치는 곳이면 풀이 무성했습니다. 은은하 단풍이 계속되는 나무 터널이었습니다. 뉴스에는 서울에 한파가 왔다고 했는데 이곳은 제 계절입니다.
치사고개로 직접 가는 길과 치사 고개 순례자 숙소인 오스텔로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2km 동안 약 200m를 올라는 가는 경사도였습니다. 오늘 아침 숙소 이 갈림길 지점까지 약 13km입니다(카시오부터 16km). 이 갈림길은 고도 1120m입니다. 이곳에서 순례자 숙소(Ostello de Cisa) 방향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걷는다. 고도 100m 정도를 1.5km 동안 내려가서 다시 SP62번 도로로 만납니다. 숙소는 대략 해발 1000m 정도에 있습니다. 순례자 숙소에서 치사 고개까지 2 km를 더 가야 합니다. 이 오스텔로는 까시오의 순례자 숙소와 같은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 환난으로 문을 닫아 잘 수 없었습니다. 평상 시에 이곳을 지나며 묵어갔던 분들 얘기로는 깨끗하게 새로 단장한 8개의 침실에 24개의 침대, 주변에 식당이나 가게가 없어서 저녁식사는 숙소에 미리 예약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오스텔로 방향으로 내려가지 않고 직진하여 숲 속으로 더 올라갔습니다. 이 루트는 몬테 발로리아 봉우리를 지나 3.5km 떨어진 치사 고개로 이어집니다. 갈림길에서 1.2 km 동안 고도 차 100m를 올라가면 몬테 발로리아(Monte Valoria)입니다. 해발 1230m의 민둥산 언덕입니다. 워낭 소리에 둘러보니 소들이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거대한 송전탑을 지나니 정상석이 있었습니다.
풀밭 능선 꼭대기에는 앞 뒤로 엄청난 경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첩첩으로 보이는 북부 아페니노 산맥의 산들, 골짜기, 가끔 인간이 만든 도로시설이 허옇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멀리 떨어진 산은 희미한 하늘색이면서 하늘보다는 진했습니다. 산은 가까이 있을 수록 초록으로 변하면서 점 진해지고 구체적이 되었습니다. 발 아래 골짜기는 울창한 숲의 바다에 마을들이 섬처럼 박혀 있었습니다.
이 능선은 이탈리아 장거리 도보여행 코스인 “센티에로 이탈리아(Il Sentiero Italia)”가 지나는 곳입니다. 이 루트는 알프스를 동서로 관통하고 아페니노 산맥을 남북으로 지나가면서 이탈리아 전역을 도는 6166km의 장거리 루트입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산 봉우리에서 성가 2번을 불렀습니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 볼 때
하늘의 별 울려 퍼지는 뇌성 주님의 권능 우주에 찼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크시도다 주 하느님
저 수풀 속 산길을 홀로 가며 아름다운 새소리 들을 때
산 위에서 웅장한 경치 볼 때 냇가에서 미풍에 접할 때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크시도다 주 하느님
주 하느님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을 위해 보내주시어
십자가에 내 죄를 대신하여 못박히시어 돌아가셨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크시도다 주 하느님
주 하느님 세상에 다시 올 때 내 기쁨 말로 다 못하겠네.
겸손되이 주님께 경배할 때 그 크신 공덕 내가 알겠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주 하느님 크시도다.
내 영혼 주를 찬양하리니 크시도다 주 하느님
이제 아페니노 산맥에서 하산 길입니다. 몬테 발로리아(Monte Valoria)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타는 비포장 도로를 걸었습니다. 남쪽은 급경사여서 고소공포증이 있으면 가지 않는 게 좋을 듯했습니다. 가파른 경사가 가끔 무너져 내려 발 디딜 곳 찾는데 주의해야 했습니다. 철조망 울타리를 넘어가도록 나무 사다리를 걸쳐 놓았습니다. 배낭 맨 채 사다리를 오르는 게 겁이 났습니다. 2 km 를 내려가서 치사고개(Passo della Cisa)에 도착했습니다. 이 능선길이 에밀리아 로마냐(Emilia Romagna) 주와 투스카니(Tuscany)주의 경계선입니다. (투스카니 주 서쪽은 리구리아 주이며 그 다음이 프랑스 땅입니다.) 이 능선을 걷는 동안 아페니노 산맥 경치가 파노라마처럼 계속되었습니다.
치사고개(Passo della Cisa) 해발 1040m. 이 고개 길은 기원 전 109년 로마의 집정관 마르코 에밀리오 스카우로 (Marco Emilio Scauro)가 건설했다고 합니다. 겨울철에도 통행이 가능해서 물동량 관할이라는 이권을 놓고 분쟁이 끊이지 않던 곳입니다. 지금은 이 고개 길이 SS62번 도로입니다. 이 도로변에는 건물이 서너 채 밖에 없었습니다. 수백 미터 지하로 터널이 지나가면서 예전처럼 붐비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포강 유역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입니다. 이 근처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마그라 강 (Fiume Magra)이 발원합니다.
치사고개 마루에 2인용 순례자 숙소를 지어 놓기는 했는데 난방이 전혀 되지 않고 샤워가 없는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여름철 폭우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대피장소로는 좋아 보였습니다. 선전이 좀 요란했습니다. 고개 마루 식당에서 포카치아(focaccia) 빵에 햄을 넣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마셨습니다. 6유로. 손님이 없었습니다. 가게들이 영업을 못하고 건물들이 비어 있었습니다. 코로나 환난의 직격탄을 맞은 모습이었습니다.
고개 경당 앞에 오토바이 탄 중년 남자가 어슬렁거렸습니다. 잘 생기고 건장한 체구였습니다. 자신이 물리 치료사라고 소개하며 따라붙었습니다.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 칭퀘 테레(Cinque Terre)에서 왔고 밀라노로 간다는 얘기. 그냥 지나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볼일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나이를 묻길래 7학년 4반인데 발목이 아프다 했더니 떨어져 나갔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제리와 니엥케에게 똑같이 접근했다고 했습니다.
고개 길에서 언덕으로 계단을 올라 가면 경당이 있습니다. 이 고개 마루에 세워진 경당은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었습니다. 경당 이름, 마돈나 델라 구아디아(Il santuario della Madonna della Guardia)는 보호자이신 성모님의 성역이라는 뜻입니다. 이 경당의 주보랑(ambulatory)은 나무로 지어진 곳입니다. 여기에 아기 예수를 안고 성모님 상 앞에 무릎 꿇은 목동의 상과 많은 그림들을 전시하고 있었습니다. 이 건물은 1919년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과 네오 고딕 양식을 절충하여 지었습니다. 1930년에 성역으로 지정 받았습니다.
경당 옆으로 난 소로는 투스카니 관문을 지나갔습니다. 에밀리아 로마노 주를 벗어나 투스카니 주로 들어 온 것입니다. 나무로 된 간단한 관문이지만 지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기념할 만했습니다. 이어지는 날망 길은 서쪽으로 났습니다. 나무가 듬성한 사이로 보이는 길 양 옆의 가파른 내리막, 그 아래 골짜기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이 등성이 길이 500m 이상 계속되다가 남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올라갔다가 내리막이 되었습니다. 가장 높은 곳이 1122m였습니다. 길 표지는 충실하고 촘촘해서 지도나 GPX 데이터가 필요 없었습니다. 울창한 숲. 밤나무, 삼나무, 너도밤나무, ... 키 큰 나무들이 들어 찬 숲에는 풀들이 자라지 못했습니다. 햇빛이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숲 속 중간 쉼터에 벤치와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작은 물길을 건너고, 쓰러진 나무를 넘어가며 고도 차 약 150m를 내려와서 SP62 찻길을 만났습니다.
산길과 SP62번 도로를 만나는 곳이 치사고개에서 약 4 km를 내려온 곳인데, 리게토 고개(passo del righetto)라고 하는 곳입니다. 찻길 옆이어서 지나는 차들이 멈춰서 골짜기를 조망할 수 있도록 맨 바닥 공터가 있었습니다. 독일인 부부가 길 가에 식탁을 차려 놓고 느긋하게 앉아 있었습니다. 차박이라도 할 태세였습니다.
이곳에서 비아 프란치제나는 두 길로 갈라집니다. 어느 루트를 택하든 폰트레몰리(Pontremoli)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오른쪽(서쪽)으로 1.5km 가면 몬테룽고 테르메(Montelungo Terme)마을을 경유하고, 개천을 따라 내려가면 폰트레몰리입니다. 몬테룽고 테르메를 거치는 서쪽 길이 2.6km 짧고 고도 260m 를 덜 올라가게 됩니다.
왼쪽(동남쪽)으로 가면 마그라 강(Fiume Magra)을 따라가다가 아르젱죠 (Arzengio)마을을 경유합니다. 마그라 강을 건너는 해발 400m 지점까지 내려 갔다가 올라가서 해발 650m의 아르젱죠에서 다시 급경사 400m 를 내려가는 루트입니다. 예전에는 순례자들이 아르젱죠 마을을 경유하는 길을 걸었습니다. 상당수의 여행기가 이 경로를 설명하고 있다. 풍부한 순례 유적들이 있는 경로입니다.
몬테룽고 테르메를 경유하는 길은 아직 왕래가 뜸한 편이었습니다. 길 표지가 임시로 되어 있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숲에서 길 흔적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GPX 트랙 데이터 없으면 길 잃고 헤매기 쉽습니다. 숲 속에서 길 찾느라 좀 헤매다가 앙금앙금 내려갔습니다. 개천을 건너 농로를 만나면서 안심이 되었습니다. 염소농장을 지나 마을 종탑을 보고 오르막을 걸었습니다. 이 마을은 능선 위에 있었습니다. 이 곳을 지나가는 SP62 도로 역시 능선 길입니다.
몬테룽고 테르메(Montelungo Terme) 인구 60명, 해발 820m. 이 마을 이름도 몬테 바르도네의 옛 지명 “Mons Langobardorum”에서 유래했습니다. 15세기에 산사태를 만나 매몰되었던 마을은 그 옆으로 옮겨 다시 형성되었습니다. 떼르메는 병자 치료 효과가 있다고 소문 난 샘물, 폰테 델라 비르투(미덕의 샘-Fonte della Virtù) 때문에 붙었습니다. 중세시대에는 골룸반 수도회의 봉토였습니다. 10세기에는 이 수도회가 이탈리아에서 무역, 농업, 문화교류, 기술혁신을 주도하였습니다. 당시 이 수도회는 비아 프란치제나 유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골롬반 수도회는 614년 아일랜드의 수도사 성 골롬바노가 창설했습니다. 당시에는 이교도들이 유럽 곳곳에 남아 있었습니다. 또한 흉노, 게르만, 고트, 반달 족 앵글로 색슨 족 등이 서로마제국으로 밀려들어오던 민족 대이동의 혼란스러운 때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에 재기독교화를 위하여 나선 수도회였습니다. 활동가들의 단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전역에 수백 개의 수도원과 봉토가 운영 관리되다가 1810년 나폴레옹의 칙령에 의하여 재산이 몰수되고 국가 소유로 바뀌면서 쇠퇴하였습니다.
몬테룽고 테르메 마을은 비어 있는 것처럼 고요했습니다. 이 마을의 B&B는 코로나 사태 이후 문을 닫고 손님을 받지 않았습니다. 몇차례 연락을 했는데 손님 받을 형편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을 식당들 역시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식당 문에 안내문만 오지럽게 붙어 있었습니다. 11-12세기에 지은 성 베네데토 성당(chiesa di san benedetto) 마당에서 쉬면서 오늘 잘 숙소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종탑이 아름다운 건물이었습니다. 높은 천장을 아름다운 문양으로 장식하였고 아담한 파이프 오르간이 놓여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산 그늘이 지기 시작해서 좀 추웠습니다. 4km 떨어진 포데리(Poderi) 마을까지 가야했습니다. 늦은 오후에 산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어 전화 걸어 길을 물었는데 데리러 오겠다고 했습니다. 숙소 주인 남자가 차를 가지고 와서 산길을 따라 산골 농가에 도착했습니다. 닭, 염소를 키우고 화단을 가꾸어 놓아 산골체험 농장으로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멋진 침실. 물을 데우려면 30분을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사이 농장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집 개는 손님을 좋아하는 듯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산골짜기는 어둠이 빨리 내렸습니다. 맥주와 라사냐, 야채 튀김이 저녁 메뉴였습니다. 숙박 + 저녁식사 + 아침 식사 = 40유로.
아페니노 산줄기를 거의 다 지나왔습니다.
투스카니의 첫 밤이었습니다.
발목도 협조적이었습니다. 육신과 영혼이 모두 즐거웠습니다.
감사한 저녁식사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