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개신교, 불교, 원불교 각 종단 관계자가 모여 이번 특집의 주제와 관련해 좌담을 가졌다. 먼저 좌담에서는 현재의 탈종교화 현상을 엄밀하게 ‘탈제도 종교화’라는 관점에서 논의를 이끌어갔다. 각 종단이 처한 상황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국 기성종교가 신자에게 더는 감동과 매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청년의 이탈문제와 관련한 논의 속에서 기성종교가 갖는 여러 한계와 무사안일한 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현상적으로는 종교가 쇠락하고 있지만 세계의 여러 상황 속에서 오히려 종교만이 해나갈 역할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며 종교의 새로운 존재 이유를 살펴보기도 했다. 마지막에 논의된 종교의 존재 이유와 관련해서는 추후에 또 이야기할 기회를 약속하며 좌담을 마무리했다.
특집 좌담회 2023년 11월 8일(수) 오후 8시 / 줌 화상회의
좌담자
박문수: 《가톨릭평론》 편집위원장
원익선: 원불교 교무, 원광대학교 평화연구소 소장
이명호: 경희대학교 종교시민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정경일: 성공회대학교 신학연구원 연구교수
최근 몇 년 내 실시된 여러 설문조사와 통계조사를 통해 한국사회에서 탈(脫)제도종교화 현상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팬데믹을 거치며 더 심화한 것 같은데요. 한국사회에서 이런 탈제도종교 현상이 일어나는 근본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원익선: 산업화 과정에서 종교가 민주화를 비롯해 일정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혼란한 한국사회에서 종교는 초월적인 역할을 통해 국가를 정신적으로 지도해야 하는데,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지요. 종교 스스로 자본과 국가의 논리에 굴복했다고 봅니다. 더 이상 뚫고 나갈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고 봅니다. 원불교야말로 현 사회의 자본주의 문제나 아노미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태동한 종교입니다. 근대의 문제를 원불교는 수렴했고 이로써 한국사회에 새로운 희망과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00년 정도 성장하면서 교단주의로 인해 원래의 모토인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려 했던 정신이 무기력해졌습니다. 원불교도 결국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창시자의 뜻이 전복되고 왜곡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암울합니다. 끊임없이 대중의 갈등과 사회적 고통이 엄습해오고, 지구적 차원이나 국가적 상황에서는 점점 긍정보다 부정적 현상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사람들은 종교에 많은 기대를 하고 있는데, 종교마저 무너지면 대중은 더 이상 희망을 찾기 어려워질 텐데 걱정입니다.
박문수: 지금 일어나는 탈종교 현상이 이미 확립된 제도종교를 위주로 보아 그런 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종교현상은 크게 약화 한 것 같진 않고, 제도종교의 약화만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음지에 있던 무속이 양지로 올라왔는데, 그 상징적 사건이 지금 대통령을 만든 무속인의 경우라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그런 양상이 음지에 있어 다른 사람 눈을 피했지만, 이제는 당당하게 전면에 드러나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처럼 제도종교에 속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탈종교화라기보다 탈제도종교화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명호: 오늘 주제어인 ‘탈제도종교화’는 사실 처음 접한 용어입니다. 탈종교화가 일반적인 용어이죠. 저도 탈종교화를 제도종교에 한정해 이해하는 편입니다. 그런 이해의 배경에는 ‘탈종교화’라는 개념이 세속화라든지 사유화, 사사화 같은 개념들과 연결되어 구성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 개념들은 근대 이후 사회기능의 분화, 특히 서구의 경우 종교가 담당했던 다양한 기능을 정치, 가족, 교육, 예술 등이 떠맡으면서 종교의 기능이나 영향력이 약화된 현상과 맞물려 있습니다. 종교를 제도종교, 비제도권 종교 또는 개인적인 영성종교 등으로 구분해서 보면 일단 제도권 종교의 종교인구가 감소하고 종교집회에 참여하는 인구가 줄고 있습니다. 확실히 제도권 종교의 영향력은 감소하는데, 개인적 영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커지고 있다고 봅니다. 불교에 관한 관심의 증가, 마음공부, 수행, 명상에 관한 관심의 증가가 그런 징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교 인구는 계속 줄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불교 인구 감소를 탈종교화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의 불교 인구 감소 현상을 근대 이후 기능 분화에 따른 탈종교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는가 했을 때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오히려 불교가 원래 해야 했던 고유의 역할을 하지 못해서, 즉 불교 자체의 역량이 떨어지면서 근대화에 적응하지 못해 벌어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탈종교화 그리고 탈제도종교화는 그렇게 쉬운 논의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정경일: 먼저 박문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탈제도종교화’라는 개념이 오늘의 종교성을 이해하는 데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탈종교화’ 현상은 이명호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세속화’ 현상과 동일시될 수 있고, 주로 서구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종교의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이 급격하게 약화되고 종교가 개인의 문제로 사사화(私事化)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990년대 이후 종교사회학자들이 말하는 ‘탈세속화’ 현상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세속화를 뜻하는 탈종교화 현상 또 한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再)종교화’로 볼 수도 없으므로, 종교는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고 지역에 따라 성장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기존의 교리, 관습, 의례, 공동체와 같은 외적 제도가 약화되었다는 의미에서 탈제도종교화로 보는게 적절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독특하게도, 한국사회에서는 탈제도종교화와 탈종교화(세속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전 세계 80억가량 인구 중에 여전히 약 85% 정도가 종교적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2015년 한국의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를 보면 종교인 44%, 비종교인 56%로 조사 개시 이후 처음으로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비율이 뒤바뀌었습니다. 그 후 이와 약간 다른 조사 결과들도 나왔지만, 이것들도 비종교인이 느는 추세였습니다. 이는 한국사회가 매우 비종교적 또는 세속적 사회라는 것을 가리킵니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유교적 심성이나 무교(巫敎)적 심성처럼 제도종교의 표층으로 나타나지 않는 심층 종교성이 있다는 사실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종교도 갖고 있지 않다고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한국인이 매우 급격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세속화로서 탈종교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그런 세속화가 종교적·주술적 세계관에서 과학적·합리적 세계관으로 변화하는 현상보다는, 정신적·영적 가치보다 물질주의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인간의 정신적, 심리적, 사회적 불안을 종교에 기대어 해소하기보다는 물질, 즉 돈에 의지해 해결하려는 세태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탈종교화와 탈제도 종교화의 복합 현상을 정밀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하 첨부 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