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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실크로드를 따라서 2부
2010년 7월 31일
한창 잠에 빠져 있을 때 팀장이 깨웠다. 일어나 휴대폰시계를 보니 03시 10분이다. 04시 43분에 기차가 떠나니 일어날 때가 된 것이다. 세수는 생략했다. 지난밤에 빨아 널었던 양말과 수건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것을 비닐 팩에다 넣었다. 이번 여행에서 한 가지 배운 것이 있다면 비닐 팩 이용법이다. 비닐 팩에 물건을 넣으면 다른 것과 섞이지 않았고, 찾기가 쉬웠으며, 옷의 경우는 구김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고 젖은 물건을 넣으면 다른 물건에 영향을 주지 않아서 편리하다. 장거리 여행을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비닐 팩 사용법을 잘 알고 있을 터이다. 03시 30분에 초대소 앞에 집합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배낭을 짊어지고 밖으로 나가자 아직 몇 사람밖에 나와 있지 않았다.
이른 새벽 국영초대소 앞. 팀장이 제일 먼저 나와 있었다.
초대소에서 정주역까지는 7분 정도 걸린다. 우리는 길게 늘어서서 역으로 걸어갔다. 열대야 때문에 새벽공기가 그다지 상쾌하지 않았다. 03시 50분에 역 대합실에 도착했다. 다행인 것은 서안까지 침대차를 타고 간다는 것이었다. 전날 기차표를 배정할 때 무작위 가져가도록 했다. 그때 내가 가져온 기차표는 04차 14호 상층이다. 나는 기차에 오르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장거리 기차여행을 할 때 침대에 누워 간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행운이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생 처음 침대에 누워 기차를 타는 것이니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기차표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하며 애를 써준 팀장과 부팀장의 노고를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들이 아니면 내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침대칸 기차 안 풍경. 침대칸은 상중하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중국 대중가수의 애잔한 노랫소리가 기차 안에 퍼졌다. 눈을 뜨고 휴대폰시계를 보니 07시 30분이다. 나는 통로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기차 안 풍경을 내려다보았다. 사람들은 칫솔을 들고 세수하러 가거나, 간이의자에 앉아 책을 보았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어떤 이는 물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와서 찻잎을 넣고 차가 우러나기를 기다렸다. 그런 움직임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차 안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고 묵묵히 자기가 할 일을 했다. 이런 것이 내가 알지 못하고 있던 중국인의 면모일까. 아침시간이어서인지 계속해서 잔잔하고 감미로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침대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사람들이 식사를 하거나 차를 마시기 위해 간이의자에 앉아 있다.
대체적으로 침대칸에 있는 사람들은 옷차림이 세련되어 있었다. 행동도 조심스러웠고 표정에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중국에서는 나름대로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 여겨진다. 08시에 열차원이 밀대를 끌고 나타났다. 사람들이 컵라면을 샀다. 나도 컵라면을 사려고 돈을 꺼내는 사이에 열차원이 밀대를 끌고 저쪽으로 가버렸다. 얼마 후 열차원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죽과 만두를 가지고 왔다. ‘꾸어첸?’ 하고 묻자 열차원이 집게손가락 둘로 열십자를 만들며 ‘스위안’이라고 한다. 아마 내가 중국에서 제일 많이 사용한 단어가 얼마냐는 뜻의 ‘꾸어첸’일 것이다. 나는 10위안을 내고 만두와 말간 죽 한 그릇을 받았다. 3번에 베어 먹을 정도 크기의 만두는 8개였다. 간이의자에 앉자 음식을 먹었다. 담백하고 심심해서 먹기 좋았다. 내가 워낙 싱겁게 먹는 체질이어서 다른 사람에게는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다 먹고 나니 배가 불렀다. 만두 8개와 죽 1그릇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와 아침식사를 했다. 만두 8개, 죽 1그릇에 10위안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서 커피를 마셨다. 인스턴트 커피믹스는 어제 어떤 회원이 준 것이다. 나는 중국에서 쉽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커피를 가져오지 않았다. 나 홀로 간이의자에 앉자 커피를 마시고 있노라니 비로소 배낭여행의 참맛이 느껴지는 듯하다. 단체배낭여행은 패키지여행보다 자유롭다. 하지만 그래도 단체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제약이 따른다. 그렇더라도 단체배낭여행은 그런 대로 장점이 많다.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생경하고 이색적이다. 그래서 더 좋다. 철로변에 포플러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 성장 속도가 빠른 포플러는 중국에서 나무젓가락을 만드는데 주로 사용된다. 옥수수밭과 해바라기밭, 때론 호박밭도 보이고 콩밭도 보인다. 집은 거의 붉은 벽돌도 지어져 있었다. 나는 그 이유를 나중에야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중국의 토질은 황토층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은데 그 황토를 퍼다가 기계로 찍어서 구우면 바로 붉은 벽돌이 되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 보면 커다란 가마를 만들어놓고 벽돌을 굽는 곳이 많았다. 차창 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내다보고 있자니 차츰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2002년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 면적은 남북한을 합쳐서 22.3만㎢이다. 이에 비해 중국은 약 960만㎢의 땅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와 비교해서 44배나 되고 남한(약 10만㎢)만 비교하면 97배에 가까운 엄청난 면적인 것이다. 예로부터 중국은 세상의 중심이 중국이라고 표현해 왔다. 그것이 중화사상(中華思想)이다. 어쩌면 드넓은 땅 때문에 생긴 자부심인지도 모른다. 기차는 쉴새없이 달려 나갔다. 역에서 머무르는 시간은 5분 혹은 7분 이내였다. 그렇게 달려가던 기차가 어느덧 서안에 도착했다. 13시 05분이었다. 역을 빠져나가자 광장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행객 중에는 중국인도 많았다. 팀장과 부팀장 그리고 통역을 맡은 강성희 씨가 목적지인 둔황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로 갔다. 나머지 일행은 더위를 피해 역 건물에 달린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다. 간판 이름이 dicos였는데 이 가게는 미국의 유명 햄버거 체인점을 본 따서 만든 것 같았다. 가게 안은 초만원이었다. 우리는 서성거리다가 자리가 생기면 앉았다.
서안역 광경. 서안 성곽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작은 벽돌을 쌓아서 정교하게 만들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역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놀란 것은 역 앞에서 바로 보이는 기다란 성곽 때문이었다. 이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성곽은 단번에 여행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서안은 아테네, 로마, 카이로와 함께 세계 4대 고도(古都)이다. 옛 이름은 장안이다. 이곳은 기원전 11세기부터 무려 1100여 년 동안 중국의 13개 왕조가 도읍지로 삼았던 곳이다. 실크로드는 이 서안에서 시작해서 이스탄불까지 약 1만2천km의 길을 가리킨다. 중국 중원에서 항우와 패권을 놓고 격돌하던 유방은 항우를 물리치고 기원전 202년에 장안을 수도로 삼고 국호를 한(韓)나라로 하여 황제에 등극한다. 이후 중국 역사상 가장 영향력을 발휘했던 황제 중의 한 사람인 유철(한무제)이 한나라의 5대 황제에 오른다. 영토 확장에 주력하여 중국 영토의 토대를 마련했던 유철은 흉노족의 견제를 위해 장건을 서역으로 파견하게 된다. 장건은 흉노족에게 붙잡혀 감금당하는 고초를 겪으며 길을 개척했다. 장건이 갔던 길을 통해 비단을 비롯하여 도자기, 종이 등의 물자를 싣고 서역과 교역을 하게 되었는데 그 길이 오늘날의 실크로드이다. 나는 광장에서 서성거리며 역사의 손길이 배어 있는 성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한 할머니가 내게로 다가왔다. 양손에 서안의 지도가 들려 있었다. ‘꾸어첸?’ 하고 물으니 ‘얼 위안’이란다. 나는 1위안짜리 지폐 한 장을 주고 지도 한 장을 샀다. 그러는 사이 기차표를 예약한 팀장이 돌아왔다. 우리는 14시 10분에 역 앞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갔다. 많은 중국인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식당에서는 여러 종류의 반찬을 미리 만들어놓고 손님이 주문하면 퍼다 주는 일종의 뷔페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한 음식점 풍경. 더워서 웃옷을 벗고 식사하는 중국인도 있다. 에어컨이 없는 식당이다.
한 회원이 종업원 아가씨에게 식탁을 닦아달라고 했다. 그러자 걸레만큼 시커먼 행주를 들고 와서 식탁을 쓱쓱 닦았다. 우리는 식탁에다 아무 것도 올려놓지 않았다. 잠시 후 반찬과 밥을 가져왔다. 배가 고파서일까. 사람들은 별 말 없이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걸어서 숙소로 정한 광화주점(光화酒店)으로 갔다. 중국의 숙박업소는 대체적으로 호텔, 주점, 병관, 초대소, 주숙(住宿) 등으로 구별되는 것 같다. 주점은 한국의 모텔 같은 분위기였는데 방마다 침대가 있고 신발을 싣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주점 역시 샤워장이 있는 방과 없는 방으로 나뉘었다. 그런데 주점에서는 층마다 여종업원이 방문을 직접 열쇠로 열어주며 관리를 해 주고 있었다. 16시 20분에 409호실을 배정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이 시간 이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카메라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다른 회원들도 밖에 나와 있었다. 회원들이 대안탑을 보러간다고 했다. 나는 혼자 가기로 했다. 시내에 있는 종루와 위족시장을 보기 위해서다. 16시 50분에 주점에서 출발하여 시내로 걸어갔다. 구멍가게서 1.5위안을 주고 물을 한 병 샀다. 무더운 탓에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종루에서 촬영을 하고 청진대사 쪽으로 가던 중 백성상점이라는 가게에서 다시 1.5위안을 주고 물을 샀다.
서안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종루. 백화점도 있다.
종루 근처에 있는 화려한 건물.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19시 50분에 이슬람교도들의 특구인 위족시장으로 갔다. 대추, 호도 등의 열매를 팔았고 양고기를 철사에 끼워서 구워 팔았다. 시장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았다. 이런저런 장난감과 공예품을 수레에 올려놓고 파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상인들은 중국의 한족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코와 눈이 크고 얼굴이 길었다. 체형도 날씬한 사람이 많았다.
이슬람교를 믿는 위그르족들이 모여 특구를 형성한 시장.
나는 어느 손수레에서 한국의 다과처럼 생긴 떡 1곽을 10위안 주고 샀다. 조금 더 걷다가 먹음직스럽게 크고 잘 생긴 대추를 15위안어치 샀다. 걸어 다니면서 떡을 먹었는데 맛이 담백하고 맛있었다. 음식을 통해 그 사람들 문화의 일면을 느껴 본다고나 할까. 대추는 생각보다 맛이 덜했다. 조금 퍽퍽했고 단맛은 한국 대추에 못 미쳤다. 이렇게 생소한 분위기 속에 섞여 있던 중 대안탑으로 갔던 회원들과 만났다. 대안탑은 입장료가 비싸고 시간이 늦어서 관광을 포기했다고 한다. 회원들과 어울려 양고기를 사 먹고 맥주도 한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광화주점으로 돌아갈 때 택시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요금을 너무 많이 달라고 해서 포기했다. 나는 회원들에게 인력거를 타자고 제안했다. 말이 인력거지 인력거는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작은 차였다. 그런데 인력거 요금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쌌다. 광화주점까지 5분이면 갈 것을 1인당 30위안을 달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10위안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자꾸 흘러갔다. 흥정하다가 지친 우리는 아예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걸어서 왔기 때문에 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내가 앞장섰고 회원들이 동행했다. 더위 속에 30분 넘게 걸어서 숙소로 갔다. 시간을 보니 22시 10분이었다. 서안 시내를 그렇게 밤중에 걸어서 활보를 한 한국인이 또 있을까.
1일 결산 : 아침식사 10위안, 물 3병 5위안, 지도 1장 1위안, 대추 15위안, 다과 10위안 합계 41위안.
2010년 8월 1일
04시 45분에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05시에 광화주점 로비로 나갔다. 05시 35분에 승합차가 왔다. 우리는 승합차를 타고 화산(華山)으로 향했다. 차가 주유소에 들어갔을 때 그곳 상점에서 꽈배기과자 1봉지를 4.5위안, 물 1병을 1.5위안을 주고 샀다. 꽈배기과자는 기름에 튀긴 것인데 기름냄새가 전혀 없고 담백했다. 꽈배기과자 두 개로 아침밥을 대신했다. 08시에 승합차가 화산 입구에 도착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곳에서 다시 화산 중턱까지 버스를 타야 하는데 요금이 40위안이라고 한다. 중국의 관광지는 대개 이런 식이다. 어느 지점에서 배려 요금을 내고 버스로 이동하여 본래 목적지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중국을 여행하면서 내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봉이 김선달을 떠올렸다. 화산(2200m)은 서안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화음시(華陰市)에 있는데 산세가 아름다워 중국 5대명산 오악(五岳) 중에서 서악(西岳)으로 불린다. 현재 중국의 국가급 풍경구로 지정되어 있다. 팀장 설명에 의하면 입장료 120위안, 버스비 40위안, 케이블카 150위안라고 한다. 화산 입구 버스 종점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국수를 사먹는 회원도 있었다. 08시 40분에 투어버스를 타고 화산으로 향했다. 버스가 가파른 경를 올라가는 동안 화산의 절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러니까 돈 받고 버스를 운영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케이블카를 타는 곳에 도착하자 수많은 중국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생각해 보니 오늘은 일요일이었다.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09시 50분에 케이블카를 타게 되었다. 케이블카는 20분 동안 산 위로 올라갔다. 4명씩 타도록 되어 있는 케이블카에서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케이블카가 덜컹거릴 때마다 좀 어질어질하기도 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 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사람들도 가득찼다. 100m 오르자 그 유명한 자물쇠군이 나타났다. 연인끼리 언약을 한 후 자물쇠를 채우고 나서 열쇠를 골짜기에 던지면 평생 약속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연인이 변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나라 사람들이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화산의 북봉정. 안개가 밀려들고 있다. 사람들이 많아서 이 사진을 찍기 위해 한참 기다려야 했다.
나는 화산 북봉정에서 사진을 찍었다. 필름 카메라여서 사진 찍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마침 안개 저 아래에서 올라오면서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설치한 후 여러 셔터를 눌렀다. 그러다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중국인이 삼각대를 건드리는 바람에 카메라가 넘어가면서 바위에 부딪쳤다. 그가 중국 본토 사람이니 내가 뭐라도 하기도 그랬다. 카메라를 살펴보니 조금 찌그러져 있었고 셔터가 눌러지지 않았다.
사연들이 있는 자물쇠. 이곳을 다녀간 연인들의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이후 나는 그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카메라를 수리했는데 8만원이 들었다. 돈보다는 실크로드까지 가서 사진을 찍을 수 없다는 것이 내게 커다란 낭패가 되었다. 다행이 콤팩트 디카가 있어서 아쉬운 대로 촬영을 했지만 못내 아쉽기만 하다. 나는 11시 40분에 화산 버스 종점으로 돌아갔다. 회원들을 기다리는 동안 소나기가 뿌려졌다. 동네 할머니가 우산을 들고 나타나 10위안에 사라고 한다. 나는 배낭 무게가 걱정되어 사지 않았다. 그곳에서 한 소년이 말아주는 국수를 5위안 주고 사먹었다. 맛이 심심하고 담백했다. 13시 15분에 버스 종점에서 승합차가 출발했다. 다음 목적지는 병마용 갱이다. 15시 05분에 병마용 갱에 도착했다. 병마용 '병'은 병사, '마'는 말, 용은 순장 때 사용된 나무인형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가 합쳐져서 묻힌 곳이 곧 병마용 갱이다. 진시황릉과 가까운 곳이어서 진시황제를 호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입장료가 90위안이고 갱까지 가는 전동차 요금이 5위안이다. 비가 추적거리고 내리는 가운데 우리는 갱으로 향했다. 제1관인 갱으로 들어가자 매체에서나 보았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한마디로 신비스러웠다. 어떻게 이렇게 만들 수가 있을까. 말과 군인들이 가득 도열해 있었다. 이 넓은 땅 속에 병마용이 혀 있었다니. 이곳은 1974년 한 농부가 땅을 파다가 발견했다. 흙으로 구워서 만든 병사는 대략 8000명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고 세계8대 기적으로 명명되었다.
병마용 갱 풍경. 규모에 놀라고 그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병사용 갱은 1,2,3관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곳을 다 돌아보고 17시 30분에 관람을 마쳤다. 18시 10분에 병마용 갱을 출발하여 숙소로 향했다. 19시에 광화주점에 도착했다. 이날 우리는 저녁식사를 하지 않은 채 모임을 가졌다. 강성희 씨를 제외한 15명이 한 방에 모여 팀장에서 사퇴하겠다는 서까래님의 발언에 대해 토론했다. 모두 실크로드 여행은 처음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 빚어지는 문제들 때문에 회원과 팀장간의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얘기를 듣고 보면 사소한다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심기일전하여 여행을 예정대로 마칠 수 있도록 결의하고 토론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 서안에서 둔황으로 가는 기차표를 배분했다. 나는 14차 52호 좌석표를 뽑았다. 이날 총무에게 공금 1000위안을 냈다. 다음에 실크로드 팀이 꾸려져서 이 길로 여행을 떠난다면, 모두 한 발짝씩 양보하고 인내하며 동료를 배려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하고 싶다. 오늘은 샤워장이 없는 210호 방으로 옮겼다. 이 방은 어제 팀장이 쓰던 방인데 샤워장이 없어서 409호와 바꾸기로 했던 것이다. 210호 에어컨은 타이머식이었는데 미지근한 바람이 나왔다. 모터 소리가 커서 신경이 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호텔에 가면 시설이 더 좋겠지만 이번 여행은 최저 경비로 다녀오겠다는 것이 취지 중의 하나였다. 룸메이트 산지기님이 한스맥주를 사왔다. 1병에 2,5위안이란다. 한 잔 들이키니 맛이 한국의 김빠진 맥주맛과 비슷했다. 냉수를 마시려고 방 한쪽에 있는 냉온수기에 작은 물통을 꽂았는데 뜨거운 물만 나오도록 되어 있었다. 물 값은 다음날 퇴실할 때 별도로 10위안을 내야 했다.
1일 결산 : 과자 1봉지 4.5위안. 물 1병 1.5위안, 국수 1그릇 5위안, 전동차 5위안, 주점 물 1통 10위안. 총무 1000위안. 합계 1026위안.
2010년 8월 2일
06시 30분에 일어났다. 기차 출발시간은 10시 56분이다. 기차를 타기 전에 서안을 더 돌아보고 싶어서 얼른 세수를 하고 07시 05분에 주점을 나섰다. 거리에는 출근하려는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주점에서 서안역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나는 서안역 쪽으로 갔다. 역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은 법이다.
서안역 앞에서 빵과 만두를 파는 음식점. 이 남자가 사진찍히기 싫어해서 설득해야 했다.
서안역으로 가는 도중에 빵을 구워 파는 구멍가게에서 빵 1개를 1.5위안에 하나 샀다. 빵을 씹어 먹으며 걷고 있는데 보도 위에서 손수레에 빵과 음료수를 놓고 파는 것이 보였다. 음료수는 따뜻하게 데운 우유 1봉지를 1위안에 샀다. 조금 달짝지근한 것이 한국의 두유와 맛이 비슷했다. 디카를 들고 서안역 골목을 돌아다녔다. 어느 허름한 주택가에 이르자 한 여인이 손짓으로 부른다. 나는 혹시 사창가? 하고 그녀를 보았다. 사창가는 아니었다. 그녀 옆에 작은 간판이 있었는데 족욕이라고 쓰여 있었다. 족욕이라면 발마사지를 가리키는 것 아닌가. 발마사지를 마치면 그것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것이라니? 남자라면 다 알지 않을까.
서안역 인근의 족욕촌. 아침이어서인지 한적하다. 밤에는 어떨지 궁금하다.
나는 주점에서 모이는 시간이 임박해서야 주점으로 돌아갔다. 도중에 한 할아버지가 끌고 가는 과일수레에서 동그랗게 생긴 참외 1개를 3위안 주고 샀다. 숙소로 돌아와 산지기님과 나누어 먹었는데 내가 먹어본 중국 과일 중에서 제일 당도가 높았다. 아침 외출은 두 시간 동안이었다. 서안의 일면을 살짝 맛본 것이라고나 할까. 터벅터벅 걸으며 나는 여행자로서의 여유를 조금 누려보았다. 우리는 09시 30분에 광화주점에서 나갔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10시 56분에 서안을 떠났다. 언제 또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는지.
12시 10분 기찬 안에서 도시락을 사먹었다. 계란 프라이가 얹혀 있고 야채볶음이 들어 있는 도시락은 20위안이다. 한 끼 식사로 괜찮았다. 기차가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고지대 특우의 황량한 풍경이 펼쳐졌다. 가끔 다락밭도 보였다. 그리고 추수를 마친 누런 경작지도 나타났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민둥산이, 때론 사막이 차창을 스쳐지나 갔다. 구름이 옅어지면서 푸른 하늘도 보였다. 17시 55분 기차가 란주역에 도착했다. 기차는 18시 10분에 다시 출발했다. 나는 저녁식사로 다시 도시락을 20위안 주고 샀다. 쌀밥은 한국의 술밥처럼 부슬부슬했다. 사실 여행자는 맛을 따지면 안 된다. 여행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느끼려면 그 고장에서 나는 음식을 먹으며 동화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도를 파는 열차원에게 10위안을 지도책 1권을 구입했다. 열차원들은 대체적으로 친절했다. 그들은 묵묵히 쓰레기를 치웠고 이곳저곳 청소를 했다. 기차는 계속 달렸다. 나는 23시 30분에 침대칸으로 옮겼다. 101위안을 추가로 지불했다. 침대칸으로 가서 눕자 금방 잠이 들었다.
1일 결산 : 빵 1개 1.5위안. 우유 1봉지 1위안. 참외 1개 3위안. 도시락 20위안. 지도책 1권 10위안. 침대칸 추가비용 101위안 합계 : 136.5위안
2010년 8월 3일
06시 40분에 열차원이 나타나 커튼을 열라고 말했다. 나는 커튼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아침을 맞이했다. 잠시 후 칫솔을 들고 세면대로 가서 씻었다. 자리로 돌아오자 중국 소녀 4명이 간이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방학을 맞아 서역으로 여행을 가는 것 같았다. 사막 같은 황무지 가운데로 도로가 나 있다. 산업 인프라가 잘 조성되어 있는 것 같다. 도로로 커다란 화물차가 연이어 달려가고 있었다. 중국의 저력, 가능성 같은 것이 느껴진다. 09시 50분에 기차가 둔황역에 도착했다. 어느새 서안을 떠나 23시간을 달려온 것이다. 역 광장으로 나가자 택시와 승합차가 늘어서 있었다. 둔황역은 새로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인근에는 인가 거의 없었다. 이 역은 막고굴과 명사산에 관광하러 오는 여행객 편의와 여행객 유치를 위해 지어진 것 같다. 우리는 승합차 1대를 400위안에 대여했다. 우리가 관광을 마치고 유원역까지 가는 조건으로 계약을 했다고 한다. 승합차는 현대자동차의 봉고였다. 운전기사는 30대 여자였다. 이 차를 14만 위안 주고 샀다고 한다. 일종의 자영업인 것이다. 막고굴은 둔황역에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그런데 나는 기차에서 하루를 보내는 바람에 콤팩트 디카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해 사진을 찍을 수 없게 되었다. 막고굴 입구에 상점들이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배처리를 충전하기 위해 막고굴 관광을 포기했다. 막고굴 입장료는 160위안이다.
막고굴 입구. 중국인들도 많이 찾아온다.
12시 20분에 막고굴에서 출발하여 명사산으로 향했다. 12시 45분에 명사산 입구에 도착했다. 중국인들이 관광 상품을 팔고 있었다. 수박을 잘라서 봉지 담아 팔기도 했다. 나는 1봉지에 3위안을 주고 사서 회원들과 나누어 먹었다. 물 1병을 5위안 주고 샀다. 명사산은 모래로 된 작은 산이다. 그 일대는 사막이다. 그리고 그곳에 월하천이 있었다. 월하천은 오아시스였다. 명사산에 들어가기 전에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볶음면 1인분을 8위안 주고 사 먹었다. 입장료가 120위안이고 낙타를 타는 것은 80위안이다. 나는 낙타를 타지 않고 걸어서 명사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시간 때문에 낙타를 타면 명사산 등반은 어렵다.
명사산 전경.
명사산은 1시간 30분이면 족히 횡단할 수 있는 모래 산이다. 명사산에 오르려면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바르는 등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갗이 금방 타버리고 만다.
르네브님이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고 있다. 완전무장을 했다.
낙타와 친해지기. 머리를 쓰다듬자 여행객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낙타가 눈을 감았다.
명사산을 등반하고 내려와 매점에서 5위안 주고 물 1병을 샀다. 물을 다 마시고 월하천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사막 한 가운데에서 샘물이 흘러나와 이곳을 오아시스로 만들어놓았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해바라기, 뱀초, 백일홍이 활짝 꽃을 피우고 있었다.
명사산의 해바라기. 활짝 웃고 있는 해바라기에서 중국인의 끈기와 성실함이 느껴진다.
주차장으로 돌아간 나는 뭐 선물용으로 살 것이 없나 살펴보았다. 한 상점에 낙관 도장이 진열되어 있었다. 얼마냐고 하자 1개에 100위안이란다. 너무 비싸서 자리를 떠나자 주인이 계산기를 들고 쫓아오며 깎아주겠다고 한다. 그 모습이 더 싫어서 얼른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다른 가게로 가서 도장이 얼마냐고 물었다. 가게 주인여자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1개에 10위안이라고 했다. 나는 두말하지 않고 5개를 샀다.
18시에 명사산에서 유원역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유원역으로 가서 투루판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 유원역으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 쌓여 있는 수박더미를 보고 차를 세웠다. 우리는 공금에서 40위안을 주고 수박 몇 덩이를 샀다. 도중에 한덩이를 쪼개서 먹었는데 맛이 밍밍한 게 한국의 수박에 비하면 당도가 덜했다. 하지만 맛이 문제가 아니다. 사막에서 키워낸 수박을 맛본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그들 문화의 일면을 체험함으로서 그들을 이해하게 되는 것일 터이다. 승합차가 유원역에 도착한 시간은 20시 35분이다. 팀장이 서둘러 기차표를 예매했다. 22시 10분에 기차가 유원역에서 투루판을 향해 출발했다. 기차표는 입석표였는데 승객이 의외로 많아서 어디 앉아 있을 만한 곳이 없었다. 사람이 적은 객차를 찾아 16호로 옮겨 갔다. 나는 중국인이 앉아 있는 좌석에 엉덩이를 살짝 얹히고 동료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중국인이 너그러워 조금 편하게 갈 수 있었다.
1일 결산 : 물 3병 11위안. 과일 1봉지 3위안. 볶음면 1그릇 8위안. 낙관도장 5개 50위안. 월하천 입장료 120위안. 합계 : 192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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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 또한 이 카페에서 진행하여 주신 자옥란을 타고 떠났던 여행에 참여하였다가
무사히, 나름 즐겁고 보람있게 다녀 온 여행길이 좋았던 회원입니다.
그러나 여행중님의 여행기를 읽고.... 참으로 품격이 다른 여행을 했구나~ 하는
반성이 됩니다.
다음 여행에서는...여행중님의 준비,계획,하루하루 소중하게 꼼꼼하게 철저하게
담담하지만 긍정적으로 시간을 만들어 가고 이루어가신 모습
본받아야겠습니다.
실크로드 꼭 가고 싶어지는군요 ~
카페에서 또 한번 진행하여 주시면 참여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실크로드 여행 한번쯤 다녀오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해마다 이맘때쯤 팀이 만들어집니다.
즐겁게 잘보고 있습니다. 여행기를 마치신 후에, 작가의 눈을 통해서 보신 단체배낭여행객들의 희로애락과 심리상태 등에
대한 후기도 올려주시면, 매우 유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무리한 부탁이겠지요?..
지나 간 것은 지나 간 것 그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좌충우돌 하면서도 또 한페이지 멋진 추억거리를 남기셨군요... 얼마예요..라고 표시한곳은 꾸어첸..이 아니고 뚜어치엔 (多钱 )이라고 합니다. 언뜻 듯기엔 비슷하죠..^^
후기쓴것 잘 읽고 있습니다..
그래요. 효정님이 갔다면 많은 도움이 됐을 텐데요. 군청에서 무료로 가르치는 중국어 배우러 다니려고 합니다.
실크로드 여행기 잘보고 갑니당~~@@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