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락정은 1947년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 732-1에 중건하였다.
어락정(魚樂亭)은 1570년경 풍산현(豊山縣) 곡강(洛東江) 위 화산 東麓(동쪽기슭)에 어락공 김세상(金世商)이 창건(刱建)한 유서깊은 정자이다.이 정자는 문충공(文忠公)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이 “어락(魚樂)”이라 당호(堂號:정자이름) 하였다고 서애집 별집에 보인다. 임진왜란이 끝난 2년 후인 1600년(선조 28) 8월 14일에 서애 류성룡 선생이 백씨(伯氏)인 겸암 류운룡 선생과 힘께 어락정에 들렸는데, 공(公)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정자는 황폐해져 잡초만 뜰에 가득하였다. 오로지 두어 떨기 산국화가 꽃을 피워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을 뿐이어서 슬픈 감정을 이기지 못하여 시 한 수를 벽에 붙여 두고 간다.
외로운 정자는 의구히 섰는데 옛 주인은 간데없구나 孤亭猶在主人亡
세상사 창망하니 거친 세월 덧없어라. 雲物蒼茫歲月荒
가을 풀 뜰에 차오르고 오솔길은 막혔는데 秋草滿庭行逕沒
한 떨기 산국화여 누구를 위하여 향기를 품는가. 一叢山菊爲誰香 라 하였다.
또 그 서문에 또 말하기를 “김세상(金世商)은 비록 무인(武人)이지만 효도하고 우애하는 것이 남보다 뛰어나 고향 마을에서 칭찬하였다.”한다. 선생의 이 시 한수와 한마디 말로 무릇 천고(千古)에 징험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은 자취가 모두 유실되고 전해지지 않아 매우 한스럽다. 또 정자가 폐허(廢墟)되어 비었는데 길가는 사람이 들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탄식하고 한탄하였으니 그 후손된 사람이라면 마땅히 어떠하겠는가? 슬프고 섭섭함을 이기지 못하여 서로 함께 의논하여 살고 있는 소주(의성) 실업리(實業里)에 1947년(정해년) 중건하였는데, 그 위치는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 732-1(실업1길 23-26) 이다.
어락공 김세상에 대한 사적은 안동의 읍지인 영가지(永嘉誌)에 보이는데, 영가지는 문충공 서애 류성룡 선생의 명으로 편찬을 시작하여 당시 안동부사였던 한강 정구 선생 등의 노력으로 1610년 용만 권기 선생 등이 편찬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영가지 1권 : 사지촌
사지촌은 금산(현 소산) 서남쪽 2리 정산(井山)의 동쪽 1리쯤에 있는데, 효자 김세상이 대대로 살아 왔다.
영가지 3권 : 누정
어락정은 풍산현 남쪽 화산 동쪽 기슭 곡강(曲江, 낙동강) 위에 있는데, 효자 김세상이 지었다.
영가지 7권 : 선행
김세상은 군수를 지낸 김극신의 아들이요, 대사간 보백당 김계행의 손자로 풍산현 사지리에 살았는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 성심을 다해 봉양하고,
제사에는 반드시 몸소 극진히 정성을 다해 집전하고, 공경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심에 여모 삼년 동안 한 번도 집에 내려 오지 않았으며, 사특한 과일과 채소는 드시지 않으니 향리에서 모두가 효자라고 칭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