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오지랖
24기 황무선
1. 나는 오랜 기간 직장에 다녔다. 순환보직 명단에 포함되어 안동으로 발령이 났다. 대구에서 안동의 출퇴근이 거리가 멀어 회사에서 제공하는 사택에 둥지를 털었다. 아파트에 세 명의 여직원들과 지냈다.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랑과 배려가 필요하다.
2. 여럿이 한 공간에 지내면 서로의 불편함이 찾아온다. 말을 예쁘게 사용해야 한다. 친밀하다고 쉽게 대하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여직원 세 명이 각자 한 칸의 방에 짐을 풀며 재미있는 동거가 시작되었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료들을 위해 불쑥 용기를 냈다. 아침식사를 책임지며 자연스럽게 당번이 되었다. 부지런한 오지랖은 동료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침은 사택에서 먹고 점심은 구내식당을 이용했으며 저녁은 각자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3.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다. 압력밥솥에 쌀을 안치고 집에서 가지고 온 반찬과 소박한 식품 재료로 아침을 준비했다. 여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인간적인 낭만이었다. 내가 밥을 챠려주면 동료들은 엄마가 해 준 밥처럼 맛있다고 했다. 작은 수고를 들여 마음을 나누는 것이 행복한 기쁨이었다.
4. 동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자연스럽게 생활했다. 4개월이 지나고 여유가 없을 때 불현듯이 떠오른 생각은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가 된다.'라는 것이었다. 나는 타인을 경계하지 않고 내 마음처럼 아량을 베풀었다. 환경에 잘 적응하다가 상대방이 호응하지 않거나 도와주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책임감으로로 나만 힘들게 지낼까" 라며 혼잣말을 했다.
5. 당연하게 식사 준비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식사 당번은 스스로에게 올가미가 되었다. 다섯 달이 지난 어느 날 집에서 가지고 온 압력밥솥이 느닷없이 말썽을 부렸다. 밥을 하는 도중에 수증기가 공중으로 뿜어져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알고 보니 밥솥에 장착된 바킹이 헐거워져서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6. 동료에게 압력밥솥을 빌렸다. 며칠 후 동료는 밥솥을 잘못 사용하여 고장이 났다고 다짜고짜 책임지라고 했다. 당황한 나머지 밥솥을 살피며 조심히 다루었다. 나사를 천천히 제자리에 장착하니 밥솥이 멀쩡한 상태였다. 일찍 일어나 솔선수범했던 마음은 동료의 생뚱맞은 밥솥 사랑에 의아했다. 정성으로 식사 준비를 마련했지만 고맙다는 인사는 못해도 내 보따리를 돌려달라는 식이었다.
7. 며칠이 지나고 동료들과 밥상을 마주하며 말했다.
"식사 당번을 한 달씩 돌아가면서 하면 어때?"
"혼자 준비하니 마음의 여유가 없네."
두 사람은 반찬을 만드는데 자신이 없다는 이유로 각자 해결하자고 했다. 아침 당번을 시작한지 5개월이 지나서 종지부를 찍었다.
8. 동료들에게 대가를 목적으로 봉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내 마음이 좋아서 한 행동이었지만 씁쓸했다. 고장난 밥솥으로 갈등을 겪고 나서 각자 아침을 해결하니 편한 생활이다. 한 공간에서 살다보니 서로의 단점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취침 중에 라디오 볼륨을 크게 틀어놓은 소리에 화들짝 깼다. 소리가 나는 창문을 바라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고 나와 다른 것이다’라고 이해를 해도 속상한 마음은 꼬리를 문다.
9. 그녀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않는다. 변화하려는 시도조차 없는 막무가내의 표현이다. 도덕적인 사람이 스트레스와 상처를 많이 받는다는 사실을 느꼈다. 남을 의식하지 않은 자유분방한 행동은 편할지 몰라도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10. 나는 스스로 변화하기로 했다. ‘내 생각은 옳고 타인은 틀리다'의 관점에서 ‘상대방이 틀린 것이 아니고 나와 다를 뿐이다'라고 인정하기로 했다. 동료를 배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직원은 나름대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그녀는 왼쪽 귀의 불편으로 라디오 볼륨을 크게 틀어놓았다. 그런 줄을 모르고 ‘왜 저렇게 행동할까?’ 전전긍긍하며 속을 태웠고 마음은 온통 지옥 속을 헤맸다.
11. 공동체인 사택에서 생활하려면 소음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개인주의를 버리고 주방의 청소도 함께 동참해야 한다. 사람은 고칠 수 없다고 하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한다.
12. 한지붕에 여직원 세 명이 살아가는데 불편한 점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타인의 단점을 꼬집기 시작하면 부지기수이다. 여직원과의 동거는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틴 것은 수도자의 마음이었다. 삶은 공덕을 쌓아가는 과정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타인과 나의 다름을 가까스로 이해하니 스트레스가 조금씩 줄었다.
13.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오지랖이 시작되었다. 지나고 보니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봉사를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잘해 줄수록 쉽게 대하는 경향이 있다. 하여 적당한 간격으로 선을 지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 현명하리라.
14. 함께 살아가는 가족과도 불협화음이 있다. 동료들과 한 공간에서 3년을 함께한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 생각과 행동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나의 오지랖이 동료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었을 것이다.
15. 한방향으로 시작된 오지랖은 사람 사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잘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도 천천히 표현해야 빛이 나고 오래간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첫댓글 드디어 21편의 글로 성님님과 같은 편수가 되었네요.
수료일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까지 뜨겁습니다.
본인의 오지럅은 선의에서 나오는 것인데, 동료들이 당연시 받아들임에 속상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나도 그런편 이라써 ᆢ,
그래도 서로 다를 뿐임을 이해하려는 포용력이 좋습니다.
역지사지로 서로 이해하고 배려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는 상황에는 감사함을 표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겠음을 일 깨우는 글입니다.
수고하셨고 대단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진일 스님
항상 아름다운 마음에 감탄합니다.
안동에서 직원들과 사택에서
3년을 함께 했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아침밥을 대접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씁쓸한 마음이었습니다.
지나친 오지랖은 본인에게 상처를 줍니다.
적당한 거리 간격이 필요하다는 걸
'직원들과의 동거'로 깨달았습니다.
오지랖이 아니고 배려입니다.
잘하셨어요
슬기롭게 사신것같습니다.
아량도 넓고~~
잘읽었습니다~
고영숙 선생님
부족한 제게 항상 칭찬을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안동에서 여직원에게 아침을 지어서
식사 대접을 한 걸 생각하겠습니다.
심한 오지랖은 아끼려고 합니다.
마음이 통하고 진정성이 함께라면
금싸라기 닮은 오지랖을 사용할게요.
'틀림'과 '다름'을 이해하고 실천하기는 참 어렵지요.
제 경험에 적당한 거리 '불가근 불가원'은 직장생활에서는 필수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김창남 선생님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경험상 지나친 관심과 오지랖은
거리 간격을 두어야 합니다.
타인이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