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위씨의 본관은 하북성 거록 하곡양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곡양의 위치를 저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는데 인터넷 글을 보니 위치가 나와 있어서 지도와 함께 올립니다.
예전에 위징공원을 가기 위해서 석가장(스좌장)으로 비행기편으로 가서 그곳에서 진주시(진저우시)로 가서 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하곡양'의 위치는 '고성촌(鼓城村)'인데 위징공원에서 2km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근처까지 갔다가 그곳을 알지 못해서 가보지 못한 점에 대해서 아쉬운 생각이 드는데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고성촌(鼓城村)이라는 지명을 보아서 옛 성이 있는 곳이라는 짐작이 드는데 검색을 해보니 그런 사진은 볼 수 없습니다.
고성촌(鼓城)이라는 지명은 춘추시기에 "고국(鼓國)"의 도성이 인근지역에 있었던 연유에서 생겨난 지명이라 사료됩니다.
옛 고국의 도성이 진주시 진주진 십리포촌이라고 하는데 이를 소개하는 글을 옮겨봅니다.
十里铺村
河北省 晋州市 晋州镇 十里铺村 位于被称为“中国鸭梨之乡”和“魏征故里”的晋州市。
십리포 마을은 하북성 진주시 진주진 십리포 마을에 위치하고 있으며, 중국 압리(오리 머리 모양과 비슷한 중국배) 고장이자 위정고리로 불리는 진주시에 위치하고 있다.,
中文名十里铺村行政区类别村所属地区中国 河北地理位置河北省晋州市晋州镇
중문명 십리포촌은 행정구와 비슷한 특별촌으로 소속지구는 중국 하북으로 지리위치는 하북성 진주시 진주진이다.
春秋初期 ,白狄在今晋州市十里铺村附近建小诸侯国--鼓国,子爵,都鼓聚(今十里铺村)。鼓聚有昔阳亭。
춘추시대에 백적이 지금의 진주시 십리포마을 부근에 작은 제후국인 고국을 세웠는데, 자작이며, 도성은 고취로 지금의 십리포촌이다. 고취에는 옛 양정이 있었다.
周景王十五年(公元前530年),晋国大臣荀吴率军队伪装和齐国军队会盟,向鲜虞国(今正定县新城铺附近)借道,趁机包围了鼓国都城。
주경왕 15년(BC 530년)에는 진나라 대신 순오가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와 거짓으로 군사회맹을 하여 선우국(지금의 정정현 신성포 부근)으로 향하였는데 우회하여 고국도성을 포위했다.
一直围困三个月,鼓国人食竭力尽。晋军攻克鼓国,未杀一人,俘获鼓国国君鸢(革是),返回晋国,向宗庙献功之后,归晋国所辖。
계속해서 3개월 동안 포위하여 고국인의 식량은 바닥나고 지쳤다. 진군은 고국을 정복했으나 진군은 고국을 공격하여 한 사람도 죽이지 않고 국군 연鸢을 포로로 잡아 진나라에 돌아가 종묘에 공을 바친 후 진나라에 귀부하여 그곳을 관할하게 했다.
周景王二十四年(公元前521年),鼓国背叛晋国重归鲜虞国。
주경왕 24년(BC 521년) 진나라를 배신하고 선우국에 다시 귀부하였다.
次年六月,晋国荀吴率军攻取东阳(今邢台市)派兵绕道带着兵器藏在昔阳门外,偷袭鼓国成功。又将鼓国国君鸢(革是)俘获,押回晋国;并派晋国大夫涉佗驻守鼓国。自此鼓国又归晋国。
이듬해 6월 진나라의 순오가 군사를 이끌고 동양(지금의 형태시)을 공취하고 군사를 우회도로 보내 무기를 가지고 석양 문 밖에 숨어들게 하여 고국을 기습했다. 또한 고국의 국군 연을 포로로 잡아 진나라로 압송하고, 진나라 대부 섭타를 파견하여 고국을 수비하게 하였다. 이때부터 고국은 다시 진나라로 귀속되었다.
十里铺轶闻 战国时期,晋州市境内设城邑下曲阳(今鼓城村附近)、昔阳(今十里铺村)。后燕国、齐国、赵国先后攻占过
십리포는 전국시대 진주시 경내에 있는 하곡양(지금의 고성촌 부근), 석양(지금의 십리포마을 부근)에 설치되었고, 이후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가 차례로 공략하여 점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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