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너더리통신 107/181113]가을의 大尾 장식 “한라산 등반”
“봄이 온다”라는 음악공연으로 먼저 손짓을 보낸 남한에 “가을이 왔다”(김정은 위원장의 즉석 作名이라니 그것도 재밌다)라는 컨셉으로 화답을 보내기로 한 북한. 이런저런 사정으로 늦어져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그거야 두 정상들이 7천만 한반도 국민들에게 約束한 것이니만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자. 믿을 게 하나 더 있다. 어쩌면, 잘 하면 연내(연내라 해도 다음달이 끝이다)에 서울을 방문하고, 이벤트로 漢拏山 白鹿潭에 오를지 모른다는 것이 아닌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누가 뭐래도 나는 환영이다, 화닝꽝린(歡迎光臨). 무조건. 왜냐하면, 5천년을 함께 살았던 민족이니까. 헤어져 산 70년을 하루빨리 메울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요즘 연일 뉴스에도 보듯, 무시무시하게 살벌했던 DMZ(비무장지대)의 감시초소(GP)를 남북한 공히 영구폐쇄하는 조치가 취하고 있지 않은가. 소위, 南北韓에 그토록 원하던 平和의 時代가 到來했다고 하면 아직은 오버인가?
하여, 나도 마음이 무단히 급했다. 한라산 백록담을 김정은 보다는 먼저 밟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네 번이나 오르려다 오르지 못했다. 한번은 엄청난 폭설로 성판악에서 속밭대피소까지 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한번은 성판악에서 너무 늦게 출발해 진달래밭대피소까지 12시 이전에 오르지 못했다. 또 한번은 오름 중에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라오름 전망대에서 정상을 바라보는 것으로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오르리라. 몸무게가 당뇨로 졸지에 10kg가 빠지면서 부쩍 약해진 저질체력이 걱정이어서, 그 전전주에 치악산 전지훈련을 가기도 했다. 치악산는 말 그대로 ‘치가 떨리고 악-소리가 날’ 정도로 惡山이었다. 하지만 단풍구경도 제대로 했고, 苦行의 下山을 무사히 하였기에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4전5기만의 난생처음 한라산 등반은 황홀했다. 백록담에는 다행히 최근의 비로 물이 조금은 고여 있었다.
神仙이 흰 사슴을 타고 와 물을 마셨다는 백록담. 이상하여라! 白頭山의 天池와 한라산의 백록담, 이 두 山頂 火口戶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백두에서 한라까지’ 노래제목만으로도 우리의 心襟을 얼마나 울리는가 말이다. 틀림없이 무슨 설명할 수 없는 造化가 있을 것이라는 게 나의 오랜 생각이다.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名著를 남긴 함석헌 선생님은 해발 1950m라는 숫자에 歷史家답지 않게 한때 흥분한 적이 있으셨다. 1950이라는 숫자는 1945년 도둑같이 온 해방, 광복의 해를 지나 1950년이면 남북한이 統一될 거라는 豫示가 아니겠느냐고 말이다. 5천년 동안 苦難의 역사로 점철된 한반도가 굴욕의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고 마침내 하나된 나라로, 그때 1950년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백범 선생의 소원대로 文化先進國이 진즉에 되었지 않았을까.
산을 오르며 줄곧 그런 생각에 몰두했다. 民主化에 아무런 貢獻도 하지 못한, 무지랭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도 그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개념조차 모르고 외국 어디에 가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한 지도자가 있어 世間에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지만, 통일만 된다면 못추는 춤이라도 맘껏 추고 싶어라. 왜냐하면, 戰爭만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고, 우리 총생(슬하 자손)들이 살아가야 할 이 땅이기 때문이다. 登山은 힘들었다. 토요일 오전 8시 출발, 정상까지 9.6km, 예상 소요시간 8∼9시간. 12시 이전까지는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해야 오를 수 있다. 速度를 내자한들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低質體力이 된 지 이미 오래. 억지로 힘을 내본다. 아내는 나보다 몇 배 씩씩하다. 성큼성큼. 몇 년 전만 해도 아예 상대가 안됐는데, 세상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健康은 그래서 중요하다. 自尊心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세 번째 올라온 진달래밭대피소. 아이구, 매점이 불법이라며 철수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먹는 라면맛이 죽여줬는데. 이 큰 산을 오르며 김밥 세 줄과 작은 물병 2개 말고는, 준비를 거의 하지 않고 왔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고고씽’할 뿐이다. 정상 근처의 枯死木이 된 구상나무 군락지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정말 간신히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드디어 길옆 바위에 새긴 ‘해발 1900m’ 표지석이 반갑고 또 반갑다. 頂上石 앞에는 인증샷 인파가 몰려 3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대신 ‘한라산 백록담’이라고 큼직한 글씨가 새겨진 커다란 나무십자가앞에서 촬칵촬칵, 아, 나도 인증샷을 찍었다. 현장에서 현지시간으로 인증샷을 보내자. 우리 대가족 카톡방으로, 두 아들네에게, 절친한 친구들에게. 즉바로 온 “장하셔! 가을을 제대로 즐기시누만” 큰 동생의 댓글이다. 이 재미, 맛보고 누려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일단은 성공이다. 정상 근처 헬기장(H)을 내려다 본다. ‘뚱뚱한’ 북녘의 위원장동지, 거기에서부터 50여m 걸려 올라오려면 땀깨나 흘리게 생겼다. 은근한 苦笑도 비어져 나온다. 전형적인 가을 날씨, 기가 막히게 좋다. 人山人海라면 조금은 지나치지만, 알록달록, 울긋불긋 총천연색 등산복들의 집합소나 마찬가지. 善男善女들의 구슬땀이 아름답다. 귤 한 봉지 사올 걸. 할 수 없어 거지처럼 ‘여분 있으면 귤 한 개 달라’고 사정을 하여 갈증을 채웠다. 내려갈 일로 걱정이 태산이다. 정말 아무런 불상사 없이 하산할 수 있을까. 마음의 여유가 없고 걱정 때문에 발길을 재촉하다.
산길 2.3km가 이리 멀다니? 겨우겨우 왔는데, 앞으로도 7.3km를 더 가야 한다니? 참으로 죽을맛이 따로 없다. 왜 이 苦行을 自處했는가 후회가 밀물이지만, 그래도 뿌듯한, 보람찬 기분 하나로 억누르고 한 발, 또 한 발. 몸이야 천근만근이건 무조건 걸을 수밖에. 씩씩하던 아내도 하산길은 버거운 모양이다. 하지만 나처럼 엄살을 떨지 않고 멀찌감치 앞서 간다. 물병 두 개라니? 어림도 없다. 이제 내려가는 사람들이 물통만 보인다. 물이 많이 남아 있는 분들에게 구걸, 또 구걸. 體面이 말이 아니지만, 어쪄랴. 有備無患을 하지 못함을 탓할 뿐이다. 길가 안내판은 15분 간격으로 친절히 안내를 해주건만, 죄없는 안내판을 욕한다. 아직도 1시간 20분이 남았단 말이야? 차라리 안내를 말아라. 젠장. 그래서 끝은 있더라. 오후 4시. 8시간 주파하면 양호한 편이다. 9시간이 더 걸린 사람도 많다고 하던데. 그래도 결국 해내지 않았는가 말이다. 체력이 그나마 최근 좀 회복되어 가능한 일이었다. 앞에서 이끌어준 아내도 고맙고,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그날 하루 걸은 것만도 25km였다고 한다. 호들갑을 떤다고 하지 말기 바란다. 진짜 무지무지하게 힘들었고 괴로웠다. 하지만, 이 成就感이라니, 이제 숙소로 가 쉴 일만 남았다. 처음으로 타본 電氣車는 재밌었다. 내려가는 길은 自動으로 充電된다. 그 대신, 올라오는 길은 電氣가 훨씬 더 빨리 소모된다. 군데군데 충전소가 있긴 하지만, 문제는 電氣量 조절이다. 가득 충전해도 3000원이 채 안된다. 환경보호를 위해서도 정부에서 대대적인 홍보와 지원대책이 필요할 듯하다. 아내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타 세상 모르게 “다 왔다”는 말에 깨어날 때까지 곯아 떨어진채 코를 골았다한다. 조금 민망하고 廉恥가 없는 일이긴 하다.
나는, 우리는 이렇게 호들갑스럽게 가을이 끝자락, 大尾를 장식했다. 어쩐지 김정은보다야 한 발 먼저 오르고 싶었다. 다섯 번째 도전하여 성공, 이제 다시는 내 평생 오르지 않으리라, 결심하다. 한라산이여, 안녕. 제주도여, 안녕. 어느새 그 힘들었던 기억을 다 잊어버리고, 오는 24일 오대산 등반을 기대하고 있다.
推記: 금요일 오전 11시, 소처럼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牛島, 성산포항에서 20분도 채 안걸린다. 섬주변을 포위한 바다는 온통 에머럴드빛. 아름답다. 올레길 1-1(제주도엔 올레길이 모두 23개가 있다)번길 11.3km. 족히 3시간은 걸린다한다. 왜 걷는 걸까? 그 바쁜 대도시의 日常을 뒤로 한 채 마치 外國같은 제주 하늘을 이불 삼아 고고샅샅 올레길은 왜 걷는 걸까? 힐링이란 이런 것, 逸脫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이다. 또한 삶의 再充電을 위해서이다. 이렇게 2박3일, 사흘 동안 49km를 걸었다. 정년 후 동해안에 펼쳐진 해파랑길을 아내와 손잡고 걸으리라. 나아가, 스페인의 산티아고길은 어떤가. 그보다 먼저 지리산 둘레길을 다녀오자. 아내와 둘이 하는 여행은 조촐한 만큼 더욱 살갑다.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는다. 펜션에서 준비해간 음식 몇 가지에 밥을 해먹으면 된다. 벌써부터 내년 3월이 기다려진다. 나의 職場생활 “쫑파티‘를 기념하여 프랑스와 스위스, 두 나라를 한 달 동안 돌자며 마음이 들떠 있는 아내, 나와 같이 늙어가는 아내가 더욱 이쁘게 보인다.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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