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하나가 나를 움직인다
이삭빛 시인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녹슨 철로 위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가슴에
가장 아픈 대못 하나를 깊게 박는 일이라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내 가슴에 박힌 그대의 눈물겨운 그림자 하나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나는 흔들리면서도 끝내 걸음을 떼어 놓는다
그대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그대라는 먼 불빛 하나를 향해
비틀대면서도 나아가는 이 서툰 걸음이
나에게는 유일한 기도였으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가만히 멈춰 서서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상처 난 발바닥으로 얼음판을 딛고 일어서는 일
내 안의 모든 동력이 꺼지고
절망의 외마디 비명조차 들리지 않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그대라는 지독한 사랑의 자극이다
보아라,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 하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제 몸을 굴린다
내가 오늘도 죽지 않고 비겁하게 살아 움직이는 건
나를 놓아주지 않는 사랑,
오직 그 눈물겨운 에너지 때문이다
결핍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 보행의 철학
— 이삭빛의 《사랑 하나가 나를 움직인다》에 투영된 비극적 숭고
시평 윤정 시인 / 문학평론가
사랑은 달콤한 안식이 아니라, 때로 가슴에 박힌 대못처럼 아프고 시린 형벌이다. 이삭빛 시인은 이번 시를 통해 생의 동력이 소진된 녹슨 철로 위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다름 아닌 그 눈물겨운 못임을 고백한다. 상처 난 발바닥으로 차가운 얼음판을 딛고 일어서는 시인의 비장한 의지는, 고통마저 기도로 승화시키는 사랑의 위대한 역설을 보여준다. 폐허와 같은 절망 속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는 존재의 이유, 그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자극을 마주해 본다.
사랑이 없었다면/
나는 벌써 녹슨 철로 위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가슴에/
가장 아픈 대못 하나를 깊게 박는 일이라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내 가슴에 박힌 그대의 눈물겨운 그림자 하나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것이 인생이라지만 /
나는 흔들리면서도 끝내 걸음을 떼어 놓는다 /
그대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
그대라는 먼 불빛 하나를 향해 /
비틀대면서도 나아가는 이 서툰 걸음이 /
나에게는 유일한 기도였으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가만히 멈춰 서서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상처 난 발바닥으로 얼음판을 딛고 일어서는 일/
내 안의 모든 동력이 꺼지고/
절망의 외마디 비명조차 들리지 않을 때/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은/
결국 그대라는 지독한 사랑의 자극이다//
보아라, 길가에 버려진 돌멩이 하나도/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제 몸을 굴린다/
내가 오늘도 죽지 않고 비겁하게 살아 움직이는 건/
나를 놓아주지 않는 사랑,/
오직 그 눈물겨운 에너지 때문이다//
ㅡ 이삭빛의 <사랑 하나가 나를 움직인다> 전문
■폐허의 미학을 통해 본 존재의 한계 상황이다
시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녹슨 철로"는 멈춰버린 생, 혹은 용도가 폐기된 현대인의 고립된 내면을 상징한다. 시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삶을 "누군가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라는 고통스러운 성찰로 연결한다. 이는 멈춰 선 열차를 움직이기 위해 자신의 몸을 태우는 화부(火夫)의 심정과 같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내 안의 풍요가 아니라 "그대의 눈물겨운 그림자"라는 설정은, 사랑이 결핍과 부채 의식에서 시작되는 치열한 책임감임을 보여준다.
■위태로운 보행'이 지니는 종교적 숭고미이다
"그대라는 먼 불빛을 향해 비틀대며 나아가는 서툰 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닌 "유일한 기도"로 격상된다. 성과와 속도가 지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위태롭게 걷는 느린 보행은 그 자체로 저항이자 경건한 의례가 된다. 눈보라 속에서 꺼지지 않는 등불을 품고 걷는 수행자처럼, 화자는 목적지에 도달하는 결과보다 나아가는 과정 그 자체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안주(安住)를 거부하는 사랑의 역동적 실천론이다
시인은 사랑을 "기다리는 리시브"가 아닌 "얼음판을 딛고 일어서는 액션"으로 정의한다. 이는 감정의 유희에 머물지 않고 삶의 현장으로 뛰어드는 실천적 사랑을 뜻한다. 특히 "지독한 사랑의 자극"이라는 표현은 사랑이 달콤한 위안이 아니라, 우리를 끊임없이 각성시키고 일으켜 세우는 엄격한 스승임을 시사한다. 이는 수동적 공감에만 머무는 현대적 연대의 한계를 넘어서는 지점이다.
■만물 교감설을 통한 생명 공동체의 회복이다
스피노자는 '모든 존재는 자신의 존재 안에 머물려고 노력한다(코나투스, Conatus)'고 했다. 시인은 이 철학적 명제를 사랑의 관점에서 재해석하여, "길가의 돌멩이조차 누군가를 사랑하기에 몸을 굴린다"고 노래한다. 무생물조차 사랑의 동력으로 움직인다는 이 범신론적 상상력은,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 만물과 연결하고자 하는 시인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준다. 결국 "나를 놓아주지 않는 사랑"에 붙들려 사는 것이야말로, 비겁하고 비루한 일상을 가장 고귀한 생존으로 탈바꿈시키는 유일한 힘임을 이 시는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