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각시 / 양선례
점심을 먹고 관사에 들렀더니 텃밭이 환하다. 학교 울타리 안에 있는 관사 마당에는 동백 두 그루, 매화와 포도 나무가 한 그루씩 있다. 매화는 내가 심었다. 이 학교에 부임한 첫해, 섬진강 매화 마을에서 사다 심은 것이다. 교직에 들어선 지 31년 만에 한 학교를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다. 내가 어떻게 꿈꾸고 가꾸느냐에 따라 교육 활동, 학교 특색, 학교 분위기나 교사의 성장 등이 많이 달라진다. 어렵게 승진하였기에 그 감회가 남달랐다. 작게나마 여기를 스쳐 갔다는 표식으로 심은 것이 바로 매화이다. 동백도 포도나무도 그런 연유로 심은 것이지 않나 추측해 본다.
교감 관사의 담벼락을 따라 길게 이어진 그곳엔 몇 그루 나무 외에 부추와 상추 등의 푸성귀를 가꿀 수 있는 텃밭이 있다. 그런데 그 조그만 공간조차 제때 관리하지 못해 풀밭이 되기 일쑤다. 긴 가뭄 꿈의 단비였는지 지난주 봄비로 명아주가 그 세력을 한없이 넓혀가는 걸 보면서도 미처 손을 대지 못했다. 그랬는데 하룻밤 새 말끔해진 거다. 우렁각시가 누굴까? 짐작이 간다.
좁은 지역이다 보니 인사 이동철이 되면 소문이 먼저 온다. 누가 어디로 내신을 썼다더라, 이번에는 어디가 빈다더라. 하 교감은 이 지역에서 6년이나 근무해서 그를 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우리 학교로 온단다. 그를 평하는 부정적인 말이 함께 들려왔다. 교감 시절에는 배울 점이 있는 교장 선생님을 모시는 게 바람이었다. 그런데 막상 교장이 되고 보니 학교 경영에 생각이 비슷한 교감, 능력 있고 따뜻한 교사를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걱정이 되었다. 친분이 있는 전임지의 관리자는 직접 전화해서 그런 분을 보내서 미안하단다. 어쩌나! 교무 학사를 책임지는 교감의 자리는 막중하다. 학사 운영 외에도 인사나 근무 성적, 성과 상여금, 각종 위원회 운영 등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고유의 업무가 있다. 교무실에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은 그 방을 책임지는 교감의 역량에 많이 좌우된다. 전년도에 그곳은 황량했다. 도통 사람이 모이지 않았다. 어쩌다 들러보면 교감의 자리는 비어있을 때가 많았다. 교실에서만 있던 선생님들이 교무실에 들러 차와 다과를 즐기고 담소를 나누며 에너지를 충전하는 모습은 보기 어려웠다.
인근 학교 교감에게 전화했다. 그녀는 교육과정 전문가였고 품이 넓어서 학교 분위기도 좋았다. 어차피 6개월 후면 만기라서 옮겨야 하니 기회 있을 때 우리 학교로 오면 어떠냐고 물었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던 그녀는 이틀 뒤 전화하여 성의는 고마우나 기한을 채우고 싶다고 했다. 하 교감보다 이동 점수가 높은 그녀를 이용하여 선수를 치려던 꼼수가 허사로 돌아갔다. 아쉬운 한편 부끄러웠다. 내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미리 울타리를 쳤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너는 얼마나 잘하기에?’ 마음 한편이 편치 않았다.
작년 3월, 하 교감이 우리 학교로 왔다. 소문과는 달리 서글서글한 인상이었다. 표정도 온화하고 말투도 부드러웠다. 자리를 비우는 일도 거의 없었다. 선생님들이 모이면 반갑게 맞이해주니 교무실 분위기도 훈훈해졌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베풀기도 잘했다. 본가에서 오는 월요일이면 노점상을 잘 사귀어 놓았다며 딸기를 자주 사 왔다. 장날에는 붕어빵이나 도너츠 같은 간식을 사서 나누길 좋아했다. 교사를 존중하고 그들의 가려운 데를 긁어 주려는 마음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무엇보다 본가가 멀다 보니 평일에는 학교 관사에서 살았다. 간혹 야간에 응급 상황이 생겨도 학교를 지키는 사람이 있으니 든든했다. 교육과정와 연계하여 아이들이 관리하는 텃밭에 작물을 심거나 풀을 매고 이랑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밀짚 모자를 쓰고,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교실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린 학습자에게 일대일로 가르치는 일도 흔쾌히 했다. 중간 놀이나 점심 시간에는 휴대폰에 알람까지 설정해 두고 마을까지 빵빵 울리도록 동요를 틀었다. 그 음악에 맞추어 긴 줄넘기를 돌리며 아이들과 어울렸다.
교문 앞에서 매일 아이들의 아침맞이를 하고, 학교 버스에서 내리는 한 명 한 명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남학생은 안아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의 얼굴에는 선한 웃음이 가득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 년이나 먼저 온 나보다 더 많이 아이들 이름과 가정 형편을 알게 되었다. 특별한 학교 행사가 있으면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 학부모와 소통하는 단톡방에 올리는 일에도 앞장섰다. 가장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그였다.
그는 행정 업무 처리는 미숙한 편이었다. 공문을 꼼꼼하게 읽고, 그 문서가 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여 기한 내 보고하거나, 학사 운영을 매끄럽고 효율적으로 하는 일에는 서툴렀다. 부정적인 소문이 따라다닌 이유이기도 했다. 누구나 역량이 조금씩 다르다. 학창 시절 외우는 과목은 잘했으나 체육에는 젬병이었던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예체능은 우수하나 수리에는 약한 이도 있다. 그 다양성을 존중하면 의외로 해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나는 그의 따뜻한 성품을 높이 샀다. 아이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있는 곳에 늘 함께하면 충분하지 않은가. 일찍 출근하여 아침 맞이하거나 힘쓰면서 텃밭 가꾸는 일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니 마음도 편했다. 언젠가 사석에서 그는 전임지에서의 어려웠던 일을 이야기하며 새 부임지가 마음에 들어 신바람이 난다고 고백했다. 그도 나도, 또 선생님들도 만족하니 학교 분위기도 덩달아 좋아졌다.
마음 한편이 무겁다. 선입견이나 편견으로 함부로 남을 속단했구나. 며느리, 아내, 올케, 언니, 엄마, 친구, 직장인으로서의 나는 다른 사람 눈에 어떤 모습일까. 그가 내 만행(?)을 알게 될까 두렵다. 이제 곧 그는 신규 교장이 되어 우리 학교를 떠난다. 어디서든 그의 웃음과 선한 영향력이 주변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잘 손질된 텃밭 한쪽에 고추와 상추 모종도 심어져 있었다. 교감 선생님이 우렁각시였냐고 물으니 본인 텃밭 가꾸면서 몇 그루 옮긴 거라며 웃는다. 문득 정현종의 시가 떠오른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첫댓글 명아주는 나물로 무쳐 먹을 수도 있고요. 잘 키워서 지팡이로 만들어 노후(죄송)에 요긴하게 쓰셔도 되고요. 하하!
앞으론 애써 버리지 말고 꽃과 함께 키워 보세요.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제가 아는 한 멋진 분이세요. 그러니까 우렁각시도 있죠!
하하하.
명아주가 지팡이로 만들 정도로 튼튼하게 자라는 줄은 몰랐네요.
칭찬 고맙습니다.
진즉 해 주셨더라면 이 내용으로 글을 쓸 터인데....아쉽네요.
우렁각시 교감선생님도 자기를 인정해 준 양교장님때문에 더 좋은 교장선생님이 될 것 같네요.
선생님도 그렇지만 교감 선생님의 의견도 존중하고 들어야지요.
저보다 좋은 안을 많이 가시고 계시거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양선례선생님이야말로 학교의 우렁각시일 거예요.
하하. 언니!
저는 게으른 사람이라서 그러지 못한답니다.
마음만 함께할 뿐이지요.
이번 모임하면서 교장선생님의 따뜻함을 다시 한번 느꼈답니다. 교감선생님도 그마음 느끼시고 계실겁니댜.
하하, 고맙습니다.
동료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려 노력은 한답니다.
선생님의 봉사와 배려심도 돋보였습니다.
t선생님 넓은 품이 주위를 포근하게 하네요. 만나 뵙고 싶었는데 참석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번에도 저는 글 올리지 못 했습니다..
한동안 다른 분들의 글 읽는 데 열중 할 생각입니다.
저도 선생님 뵙고 싶었습니다.
글쓰는 농부는 드물거든요.
선생님 글 읽으면 한 편의 수채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광경이 그려진답니다.
함께 글공부 하게 되어 늘 고맙게 생각한답니다.
제가 낄 자리가 아닌 것만 같아 모임참여를 망설였어요. 그런데 저 어색할까봐 말도 많이 걸어 주시고 저희 아이들 교재며 챙겨 주셔서 모임 안갔으면 영영 후회할 뻔 했네요. 이 댓글을 통해 양선례 선생님을 비롯해 교수님, 여러 선생님들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아이를 서방님께 맡기고 모임에 참석하는 열의에 감동했어요.
그리고 그리 어린 아이를 여러 시간 보살펴 준 선생님 남편도 대단하신 분이세요.
저는 단 한 시간도 맡길 수가 없었어요.
제가 불안해서요.
못해도 자꾸 맡겨야 역지사지가 된다던데 제 속이 터져서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은 겁나게 후회한답니다.
아이가 저절로 큰 줄 알거든요.
얼굴 봐서 반갑고 좋았습니다.
자주 봐요. 우리!
@이팝나무 아이고 말도 마세요 선생님. 둘째긴 하지만 셋째는 발로 키운다는 말도 있다고 하죠.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니까 하늘도 길을 열어 주셨어요. 시간이 지나면 글쓰기 모임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글로 써 볼께요. 뵐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나는 더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부족한 부분은 봐주지 않고 판단했던 나를 반성했습니다.
사람마다 역량이 다르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참 와닿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덮어 주고 좋은 것을 인정하고 믿어 주는 교장 선생님 덕분에 모두 행복할 것 같습니다.
저는 되도록 좋은 점을 보고, 믿어주려고 노력한답니다. 그래도 제 생각대로 할 때가 많아 간혹 야단맞기도 한답니다. 며칠 전 실장님께도 "우리 선생님들, 행정실 직원분들" 이렇게 편갈라서 혼났지요. 무심코 썼는데 마음이 담겨있었어요. 반성했습니다.
어떤 역량을 가진 분이라도 양 교장 선생님과 함께한다면 부족한 부분은 가려지고 좋은 점은 돋보일 것입니다.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보려는 선생님의 마음 자세에 존경을 보냅니다.
아이고. 이름이 같다고 점수를 겁나게 후하게 주시는군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