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가스를 마시다 / 곽주현
중학교 진학하면서 외가에서 광주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이사를 자주 가게 되었다. 외숙은 시골에서 논밭을 팔아 도시로 나와 이런저런 일을 했지만,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겨우 방 두 칸을 얻어 살았다. 그 집은 ㅁ(미음)자 모양으로, 여러 개의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그 앞으로 겨우 한 사람 다닐 수 있는 좁은 마루가 빙 둘러 놓여 있었다. 하숙생, 자취생, 살림하는 사람 등 여럿이 살고 있어 늘 소란스럽고 크고 작은 사건이 자주 일어났다. 서로 다투기도 하고 손님이 와 술판이 벌어지기도 해서 조그만 큰 소리로 말해도 옆방까지 곧잘 들렸다. 아마 여덟 가구가 세(貰) 들었던 것 같다. 그때는 이렇게 사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 방에서 외할머니와 같이 지냈는데 겨울철 난방은 내가 맡았다.
그때는 가정 대부분이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 방마다 아궁이가 따로 있어서 내 방 연탄불을 하루에도 몇 번씩 확인해야 했다. 조그만 방심하면 꺼져버려 추운 겨울밤을 보낼 때도 있었다. 불씨를 되살리려면 매운 연기를 마시면서 몇 시간씩 불쏘시개를 지펴야 해서 여간 곤혹스러웠다.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 무거운 눈을 비벼가며 잘 타고 있는지 살폈다. 너무 화력이 세면 공기구멍을 막아 주고 약하면 더 열었다. 그 중에서도 연탄이 다 타는 시간에 맞추어 갈아주는 일은 무척 신경이 쓰였다.
연탄은 난방뿐 아니라 다른 쓰임새도 많았다. 밥도 짓고 국을 끓이는 등 요리하고 물을 데워 세수도 하고 빨래도 삶았다. 어디서 오징어라도 한 마리 생기면 얼른 연탄불에 구워서 온 가족이 나누어 먹던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길거리 상인들이 손수레에 밤이나 붕어빵을 굽은 것도 연탄불이었다. 다른 땔감보다 화력도 뛰어나고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지만, 문제는 타면서 치명적인 일산화탄소가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중독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나도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집이 없는 사람은 이사가 잦았다. 외가의 셋방이 임대 만기가 되어 어느 늦가을 거처를 옮겼다. 이사하면서 활활 타는 연탄불을 화덕에 담아 세간살이와 함께 갔다. 내 아들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불씨를 용달차에 짐과 함께 싣고 옮기느냐고 농담하지 말라며 고개를 돌린다.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일손을 보태며 부산하게 움직였더니 저녁이 되자 몹시 피곤했다.
방을 오랫동안 비웠는지 냉골이어서 연탄불을 넣고 공기통을 최대한 열어 두고 잠을 잤다. 곤하게 자다가 한밤중에가슴이 답답해서 깼다. 왜 이러지 하면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뒤척이려고 온 힘을 다해 봐도 어떻게 할 수가 없고 몸이 통나무처럼 굳어졌다. 몸부림을 치다가 자세히 살펴보니 출입문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 연탄가스에 중독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이러다가 죽겠구나 싶어 이를 악물고 창문을 향해 움직였다. 그 거리가 어찌나 멀게 느껴지던지 몇백 미터나 되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만 알겠고 그다음은 전혀 기억이 없다. 아마 어떻게 문을 발로 차고는 정신을 놓아 버린 것 같다. 새벽에 외숙이 일터로 나가려고 나왔는데 내 방문이 열려있어서 닫아 주려고 들여다보니 내가 몸이 뒤틀린 자세로 누워있더란다. 어디가 아프냐고 흔들어봐도 아무 반응이 없어서 몹시 놀랬다. 뺨을 때리고 팔다리를 주무르며 난리를 치고 있는데 눈을 떴다. 머리가 빠개지듯 아프고 힘이 전혀 없었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다 마루에 고꾸라졌다. 외숙모가 동치미 국물을 떠 와서 사발로 몇 그릇을 마셨다. 그때는 그것이 연탄가스 중독의 특효약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외할머니는 시골 내 집에 가시고 안 계셨다.
몇 년이 지나 또 그런 일을 겪었다. 추운 겨울에 외가가 다시 이사했다. 그때 중학교 3학년이었는데 같은 반 짝꿍이 그 동네에 살았다. 오늘 짐을 옮겨서 어수선할 테니 자기 집에서 재워주겠다 한다. 또 같은 마을로 온 기념으로 초대하겠다며 손을 이끌었다. 그래서 그와 하룻밤을 같이 보내기로 하고 따라갔다. 저녁밥까지 정성껏 차려줘서 맛있게 먹고 놀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여름철에만 사용하고 비워둔 방이었는데 내가 온다고 아침에야 불을 지폈다고 한다. 잠을 자다가 몇 년 전에 겪었던 일보다 더 심하게 무엇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에 눈을 떴다. 정신이 가물가물하고 몸이 전혀 움직여지지 않았다. 또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를 깨우려는데 말이 입안에서만 뱅뱅 돌았다. 어떻게 해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몸이 말을 안 들었다. 그러다가 정신을 잃었다. 친구 부모님이 잠을 자고 있는데 한밤중에 어디서 섬뜩한 괴성이 반복적으로 들렸다. 혹시 밤손님이 아닐까 겁이나서 가족들을 깨워 손전등을 켜고 나와보니 우리가 자는 방에서 그러는 것 같았다. 놀래서 문을 열어보니 내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친구는 생똥을 그만저만 싸고 뻗어 있었다. 나는 깨어났으나 친구는 바로 응급실로 옮겨졌다. 내가 소리쳤다는 기억은 전혀 없고 남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 방은 문간채에 붙어 있어 본체와 떨어진 곳인데 거기까지 소리가 들렸다며 하나님이 도왔다고 한마디씩 한다. 장판을 들쳐보니 큰 쥐구멍이 있었다. 몸을 어떻게 추스르고 점심시간이 지나 학교에 갔다. 담임에게 연탄가스 중독으로 늦었다 했더니 꾀부린 것 아니냐며 군밤을 줘서 지금까지도 서운한 마음이다. 거의 죽었다 살아났는데. 이렇게 생사를 오락가락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명(命)이 길겠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연탄에 얽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가 생각났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그래 그때 연탄은 우리 일상을 온기로 가득 채웠지.
첫댓글 아구야! 두번이나 정말 큰일 날 뻔 하셨네요. 그때는 자주 있는 일이었습니다.
큰일 날 뻔했네요. 그때는 연탄 가스 중독으로 죽은 사람이 많았어요. 죽음도 시대상을 반영해요. 곽 선생님 명 길겠어요.
정말 아찔했네요. 목숨을 두 번이나 건지셨으니, 그만큼 오래 사셔야겠어요.
매캐한 냄새 맡으며 연탄 갈기 싫은 시간들이 어느덧 먼 이야기가 되었네요.
그렇게 끝나 천만다행이네요. 앞으론 건강하고 행복한 시간만 보내시길 바랍니다.
진중하게 읽다가 끝에 안도현의 시가 나와 '앞의 내용과 어울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이나 천당 근처에 갔다 왔으니 명은 길겠네요.
잘 보셨어요. 그 시가 생뚱해서 몇 번이나 더듬거렸어요.
맞아요. 두 번이나 천당 가셨으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실 겁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남자셨어요.
제 이름 석 자도 겨우 그리고 학교 들어갔으니 1학년 때는 공부를 지지리 못했지요.
그런데 2학년 때 처음으로 학급에서 10등 안에 들어서 박수를 받았어요.
담임 선생님은 월말 평가와 성적 처리가 끝나면 학급 아이 모두(한 반 60명)의 책상을 칠판쪽으로 바짝 밀어버리고
우리를 교실 뒤의 공간에 둥글게 세웠어요.
그리고는 차례대로 순위를 불렀어요.
제가 처음으로 10등 안에 들어오자, 아이들은 깜짝 놀랐고, 선생님은 박수를 쳐 주셨지요.
그때 이후로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 번도 10위 밖으로 밀려 나간 적이 없었어요.
그러니 그 선생님이 좋은 담임으로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어느 날 숙직실에서 잠자다가 연탄 가스 중독으로 숨졌다는 말을 들었어요.
선생님 글 읽으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봅니다.
다행입니다.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