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봐야 예쁘다 / 조미숙
예전에 꽃꽂이를 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세상에서 제일 안 어울리는 일을 한다고 놀렸다. 늘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이 선머슴처럼 하고 다녔기에 더욱 그랬다. 거기에 어떤 것을 해도 내가 한 일은 어설픈 티가 났다. 야무지지 못한 손끝이 뭐든 들쭉날쭉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지만 난 외모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 반대로 여성성으로 대표되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 광고 사진에나 있을법한 뜨개질, 꽃꽂이, 음식 만들기 등, 레이스가 차랑차랑 달린 홈드레스 입고 차분하고 우아하고 조신하게 하는 것들 말이다. 뜨개질이라도 한 번 붙잡으면 다른 일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잘하지는 못한다. 공들인 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지는 실력이다. 그래도 재밌다. 희한하게도 쓸고 닦는 집안 살림은 관심도 재주도 없다.
중학교에 다닐 적에는 미술부에 들었다. 시골 학교 미술부에서 무엇을 했겠느냐마는 별다른 것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대머리인데도 미술 선생님을 좋아했다. 그래서 무작정 장래 희망에 화가라고 적었다. 그러고 보면 그 시절 만나는 사람 중에서 제일인 사람은 선생님이었다. 학교와 집만 오가면서 또래 친구들, 마을 어르신들 빼고 누군가의 영향을 받을 일이 없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은 아주 먼 나라 이야기이고. 그리고 나에겐 탱화를 그리셨던 큰아버지의 유전자가 있다고 믿었다.
사회인이 되어 멋진 취미 하나 가져 볼 요량으로 미술학원에 등록했다. 날마다 연필을 쥐고 팔을 뻗고 한쪽 눈을 감은 채 각도를 재는 일은 재미가 없었다. 이래 보나 저래 보나 매 한 가지인 것을 가지고 반복하게 하니 버티지 못했다. 데생이 기본인 것을. 이제야 다시 도전해 보고 싶다.
화가의 꿈은 종종 되살아났는데 사물을 비슷하게라도 따라 그리지 못하는 것을 알고서는 내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몇 년 전에 숲 해설하는 선생님들끼리 세밀화를 그리는 모임을 하자고 했다. 그냥 각자가 아무거나 그려서 톡에 올리는 것이 전부였다. 난 몇 달 뒤에 합류한 터라 왕초보였다. 심혈을 기울여 그렸지만 아무리 봐도 비슷하게 보이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입체적으로 그리려고 하는데 평면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효과도 없었고 일주일에 하나씩 그리라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등한시했다. 다른 사람들은 정말 실물처럼 멋지게 그리는데 난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야생화 자수를 배웠다. 아는 분이 찻집을 하면서 싼 수강료에 시간 나는 대로 지도해 주니 마음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삐뚤빼뚤 엉망이어도 선생님은 늘 칭찬해 주었다. 성실하게 한다는 점도 높이 평가했다. 일이 바쁘면 못 가고 이래저래 사정이 생기기도 하면서 손을 뗐다가 대기를 반복했지만 재미는 있었다. 그때 수 놓았던 자수 작품(?)이 집안 여기저기에 있다. 비록 열악한 솜씨지만 지금 보면 내가 어떻게 이렇게 했나 싶을 정도다. 그 선생님이 찻집을 그만두는 바람에 더이상 이어가지를 못했다. 너무 아쉬워서 독학으로 해 보려고 관련 책도 두어 권 사고 실도 다양하게 준비했는데 영 신통치 않다. 먼지만 쌓이고 있다.
그러다 우연히 천아트(페브릭 물감으로 직물에 여러 가지 꽃을 그리는 것)를 알게 되었다. 사실 지인이 한 것을 사진으로 몇 번 봤는데 너무 예뻤다. 평소 운전하고 다니는 길 상가에 그런 가게가 있는 것을 보고 꼭 한번 가 봐야지 했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다른 곳에서 천아트 하는 선생님을 만났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마음과 시간이 맞는 사람끼리 해 보기로 했다.
첫시간에는 쑥부쟁이를 그렸다. 선생님이 먼저 시범을 보이면 그다음부터는 알아서 그린다. 처음에는 밑그림도 없이 천에 바로 그리는데, 영 자신이 없었다. 아직 붓질이며 물감 사용법도 제대로 익히지 않았는데 망칠 것 같아 하얀 천에 손대기가 두렵기만 했다. 그래도 쑥부쟁이는 그런대로 쉬었다. 선생님 따라 흉내만 냈다. 잎이 마음대로 그려지지 않았지만 잘 그렸다는 칭찬을 받았다. 노란 꽃술에 음영까지 그려 넣었더니 내 눈에는 제법 멋지게 보였다. 한 시간은 연습, 다음 시간에는 작품 이런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다음 시간에 그릴 옷이나 소품 등을 준비해 오라고 해서 어차피 연습이니 자주 들고 다니는 에코백을 가져갔다. 선생님이 아주 어려운 천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물감을 먹어버려 나중에는 그림이 조금 희미해졌다. 천의 재질에 따라서 물감을 달리 사용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다.
다음에는 세필로 그리는 개망초이다. 아주 가는 붓으로 정성껏 그려야 하는데 성질 급한 난 쓱쓱 한달음에 잘도 그린다. 숙제로 백 송이를 그려 오라기에 죽어라 그려갔더니 좀 더 정성스런 붓질이 필요하다고 했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도록. 내가 한 것에 선생님의 붓질 하나만 닿아도 그림이 달라진다. 차이가 확 느껴지는 것을 보면서도 엉망인 내 작품도 예쁘기만 하다. 우리가 너무 잘 그리면 선생님이 지도할 명목이 안 서니 적당히 그려야 되지 않냐면서 너스레를 떨어본다. 같이 하는 언니가 재밌다고 너무 열심히 그려 오니 나도 적당히 미룰 수가 없어 착실하게 숙제하거나 시키지도 않았는데 밋밋한 옷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다음 시간에 자랑하면 선생님이 놀란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수강생은 처음 봤다면서. 물론 내 작품에 몇 번의 손질이 더해졌다.
그런데 위기가 찾아왔다. 강아지풀을 그리는데 영 아니다. 선생님이 자꾸만 애벌레를 그리지 말라고 했다. 아주 정성스럽게 한 가닥씩 그리는데 꼭 중간에 툭 하고 뭉툭하게 나가거나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고르게 주어야 하고 물감을 묻힌 붓도 뾰족하게 다듬어서 그려야 한다. 조금만 방심하면 망친다. 며칠을 그려봐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손수건 위에 강아지풀 말고 애벌레만 우글거린다. 짜증이 팍 올랐다. 정말 난 그림에 재능이 없는 걸까? 토끼풀 잎사귀도 맛이 안 난다. 집에 오고 가는 길에 눈을 크게 뜨고 토끼풀을 관찰해도 별반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도 무늬가 없는 옷에 토끼풀을 풍성하게 그려 넣으니 바지가 산다.
내 인내심을 시험하는 강아지풀은 접어 두고 코스모스를 그렸다. 그것은 괜찮았다. 작품을 그리는 시간에 준 천에다 나름대로 구도를 잡아서 사선으로 꽃만 그렸다. 큰 꽃부터 점차 작은 꽃으로 점점히 떨어지게 했다. 여백의 미를 살렸다. 꽤나 예쁘게 보여 만족스럽다. 선생님이 보더니 “오!”하며 감탄사를 연발한다.작은 꽃이 너무 귀엽다고 칭찬한다.
이제 세 달 째다. 막 걸음마를 뗐으니 재미가 붙어가는 중이다. 왕초보자 수준에 잘해 봤자 별거 있겠는가? 몇 년을 한 사람이 보면 엉망일 것이다. 그래서 내 작품은 아직 멀리 보아야만 예쁘다.
첫댓글 선생님은 재주가 많네요. 숲 해설뿐만 아니라 천아트까지 하시니 부럽습니다. 고맙습니다.
재주가 메주인걸요. 하하!
고맙습니다.
천 아트는 처음 들어 봐요. 소질이 없다고 하는데 이런 쪽으로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소질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잘하는 게 없으니 이것저것 하는 거죠. 고맙습니다.
무언가를 자꾸 배우고 도전하시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지현씨도 애기 키워 놓고 마음껏 도전해 보세요. 고맙습니다.
선생님이랑 어울려요! 멋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하하! 그런가요?
고맙습니다.
여러 재주가 많으시네요. 글로 옮기시면 좋은 글감이 될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작품 한 점 선물할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호기심도, 잔재주도 많으시군요.
놀랍니다. 하하!
첫문장에 빵 터졌어요. 하하하. 그분이 모르시는 말씀을 하셨네요.
제 느낌으론 딱인데 말이지요. 선생님과 꽃꽂이!
정말 재미나게 사시네요.
작품전시회 기대하며 응원합니다.
천 아트! 궁금하네요. 멀리 봐야 예쁘다. 제목도 재미있네요. 글 고맙습니다.
조선생님은 호기심이 많으시네요. 하고 싶은 것에 늘 도전하시니 활기가 넘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