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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을 주목한다 / 시의 언어, 그리고 제주
― 김윤숙, 참빗살나무 근처(작가, 2018) ― 이창선, 물장구 포물선(다층, 2018)
백애송
0. 언어
언어는 음성과 문자로 이루어진 기호체계이다. 이는 서로간의 의사소통을 전제로 한다. 인류의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언어를 통해 주위의 사물을 이야기하고 멀리는 사회의 아픔도 이야기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의 언어는 일상의 언어를 초월하는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이 두 권의 시집 김윤숙의 참빗살나무 근처와 이창선의 물장구 포물선에는 일상의 소소한 풍경을 놓치지 않고 시의 언어로 그려내고 있다. 김윤숙 시인과 이창선 시인의 시집에서 새로움은 시의 언어와 제주 토속어가 만났을 때이다. 토속어를 사용하여 시의 언어를,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1. 삶의 여행기 ― 김윤숙, 참빗살나무 근처
김윤숙 시인의 참빗살나무 근처는 일종의 여행기이다. 그런데 이 여행기는 좀 특별하다. 우선 시집에 제주도가 오롯이 들어와 있다. 그렇다고 시인의 시선이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전국의 각지로 확장되어 있는 시선을 만날 수 있다. “또 한 채의 한라산”(「석굴암 오르는 길」)인 석굴암에 있기도 하고, 또 어떤 날에는 “오월의 순천만”(「순천만」), 혹은 티벳의 “지상의 가장 높은 청라시장”(「야차굼바의 길」)에 있기도 하다. 이러한 풍경들은 시인에게 많은 생태와 조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즉 이 시집에는 여러 종류의 꽃과 나비 등 많은 식물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세이지’, ‘뱀딸기’, 멸종위기의 야생생물로 한라산고원에서만 서식한다는 ‘산굴뚝나비’, ‘술패랭이꽃’, ‘범부채꽃’, ‘한라산부추꽃’, ‘노랑줄무늬거미’, ‘가마우지’, ‘만첩빈도리’, ‘야차굼바’, ‘망초꽃’, ‘삘기꽃’, ‘구절초’, ‘맥문동잔디’ 등등이 그것이다. 주위의 풍경 즉 사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인의 관찰력이 남다름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 듣고, 만지고,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시인의 손끝에서 시로 재탄생된 셈이다.
참빗처럼 나뭇잎을 파고드는 햇살에 한라 능선 차오르는 치렁치렁 머릿결 언젠가 마주친 소녀 빛나던 이유 알겠다
어머니 나를 눕혀 서캐를 고르시던 그 손길 설핏 든 잠, 홀로 깨어 서러운 날 땀 냄새 절은 머리칼 참빗살나무 근처다
몇 번을 멈칫대다 끝내 찾지 않은 집 수직의 돌계단 산정 아래 이르러 푸르름 순명으로 받드나 붉게 익는 열매들 ― 「참빗살나무」 전문
이 시는 참빗살나무를 형상화하고 있다. 시인은 참빗살나무의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것이다. 햇살이 가득한 한라산의 구불거리는 능선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 참빗살나무에는 어린 시절 어머니의 그리움이 투영되어 나타난다. “나를 눕혀 서캐를 고르시던” 어머니의 따뜻한 “그 손길”을 통해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다. “설핏 든 잠”에서 “홀로 깨어 서러운 날”은 어머니가 더욱 그리울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다 내어주고 “뼈 마디 굽은 어머니”(「순정」)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그런데 시인은 이 집을 “몇 번을 멈칫대다 끝내 찾지 않는”다. 그저 “수직의 돌계단 산정 아래 이르러” “붉게 익는 열매들”만 보고 되돌아 나온다.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는 시인의 복잡한 내적 심리가 시를 통해 그대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 복잡한 내면은 아픔으로 남아 있지 않다. 시인은 스스로 치유하고자 한다. “내안의 빗장에도/ 초록이 흥건하여”(「빗장을 열다-걸서오름」) 마음을 열고 사물을 응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관음사 숲길 걷다 눈에 띤 짐승 발자국
접질려 중심 잃듯 철렁 가슴 내려앉는다
태풍에 뿌리 뽑힌 나무, 둥치 속 두려움 같을까
부처 찾아 올랐다는 순례길의 헛웃음에
곧게 뻗은 삼나무, 밟히는 단풍 외경에
뒤 미쳐 겨우 깨치는, 또 하나 내 안의 짐승 ― 「경전」 전문
이 시는 ‘숲길→순례길’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시의 화자인 시인은 현재 “관음사 숲길”을 걷고 있다. 이 관음사 숲길은 다름 아닌 순례길이다. 순례길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고자 한다. 열린 마음은 시인의 시선을 확장해주기도 한다. 시인은 숲길을 걷다가 “눈에 띤 짐승 발자국”을 보게 된다. 시인의 가슴은 “접질려 중심”을 잃는 것처럼 철렁 내려앉는다. 숲길에서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놀람은 “태풍에 뿌리 뽑힌 나무, 둥치 속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두려움은 시인의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다. ‘숲길’에서 ‘순례길’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 나타나는 ‘외경’의 대상 즉, 공경의 대상은 “곧게 뻗은 삼나무”와 발길에 “밟히는 단풍”이다. 그리고 “또 하나 내 안의 짐승”이다. 이때의 “내 안의 짐승”은 “뒤 미쳐 겨우 깨치는” 화자 자신으로 추측된다. 생각해보면 우리 주위 모든 것이 외경이고, 경전이다. 때론 그저 스쳐지나가는 돌부리에서도, 잎사귀 하나에서도, 꽃잎 한 장에서도 말씀을 찾을 수 있다. 참배하는 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순례길”이라는 것을 이 시는 이야기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순례길은 역사의 현장과도 맞닿아 있다.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아버지와 “부르튼 발바닥”으로 “눈물의 투쟁”을 한 할머니. “사상도 명분도” “다 태워도 뼛속에 박힌 4·3은” 결국 “헛헛한 가슴”으로 “평생을 지니고”(「흰 구두 한 켤레」) 살 수 밖에 없는 삶의 현장이었다고 시인은 이야기한다. 이는 월령포구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월령포구에는 “아직도 안 끝난 노래”가 “마른 거품”(「사월 월령바다」)으로 날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거품은 “아기별들”(「비설飛雪」)로 빛난다. 아기별들에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꽃들이 피어나길 바라는 시인의 소망이 담겨 있을 것이다. 시대의 아픔 끝에서 좌절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발견하려는 시인의 의지가 돋보인다. 김윤숙 시인은 이와 같은 시의 언어를 통해 자신의 내면과 세계의 아픔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 시의 언어에는 ‘걸서오름’(「빗장을 열다-걸서오름」), ‘하논’(「하논」) ‘고팡’(「산지, 옛집-단란한 밥상」), ‘마농지’(「마농지」)와 같은 제주 토속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또한 제주 지명도 많이 등장한다. ‘물영아리’(「물영아리」), ‘천백도로’(「편백나무-추사체로 읽다」), ‘선작지왓’(「산굴뚝나비」), ‘산록도로’(「붉은 억새」), ‘월령바다’(「사월 월령바다」), ‘소길리’(「소길리」), ‘서우봉’(「함덕-서우봉」), ‘낭끼오름’(「삘기꽃」), ‘활오름’(「달팽이관」) 등이 그것이다. 이 많은 토속어와 지명은 제주도에 대한 시인의 사랑이다. 즉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사랑의 마음인 셈이다. 이 마음들이 모여 차분하고 단정한 언어를 통해 한 편 한 편의 시로 재탄생되고 있다.
2. 시간의 흔적 ― 이창선, 물장구 포물선
이창선 시인의 물장구 포물선에는 제주에 대한, 고향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태어나 자란 고향인 제주는 그에게 유년시절과 어머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다. 또한 제주의 아픈 역사가 담겨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 아픈 역사는 시를 통해 개인만의 아픔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픔으로 다가온다. 이창선 시인은 개인의 내면에 함몰되어 시를 이야기하지 않고 시선을 멀리 확장하여 바라보고 있다. 물론 주위의 소소함 역시 놓치지 않는다.
풍랑에 물길 놓친
하멜의 스페르웨르
흔들리고 휘청이다
내 가슴에 올라앉아
산방산 갈림길에서
수평선만 바라본다 ― 「표착지漂着地에서」 전문
이 시집은 하멜을 소개하며 시작된다. 동인도 회사의 선박 서기로 일했던 하멜은, 1653년 스페르베르 호를 타고 대만을 떠나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태풍을 만나 우리나라 제주도 땅에 표류하게 된다. 당시 승무원 64명 중 생존하였던 36명은 1666년까지, 13년이라는 시간 동안 낯선 조선 땅에 체류한다. 생존자 중 한 명이었던 하멜이 조선 땅에서 보고, 듣고, 겪은 바를 보고서 형식으로 써 놓은 하멜표류기는 당시 유럽에서 조선에 대한 자료로 널리 읽혀진 바 있다. 따라서 이 시에서 “흔들리고 휘청이”는 것은 바닷물만이 아닐 것이다.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갈 수 없었던 하멜의 안타까운 심정이 흔들리고, 이런 하멜을 역시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흔들린다. 때문에 “산방산 갈림길에서” 하염없이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과거 하멜이 다녀간 그 길 위에 현재 화자가 서 있다.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조우하고 있는 셈이다. 초장·중장·종장의 단시조 형식을 2구씩 나누어 배열하여 리듬감이 있으면서도 단정한 형식을 구사하여 하멜의 심정을 대변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이 시에서 뿐만 아니라 시집의 곳곳에서 보여진다. 시조의 단조로운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지점이 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의 문제는 시인에게 남다르게 다가온다. “죄 있어도 사라졌고/ 죄 없어도 사라졌다/ 죄 있어도 죽었고/ 죄 없어도 죽었다/ 4.3은/ 피기 위해서 몸부림친 열병”(「바람꽃 지다」)이었다. “행불된 친구 부친”은 아직 소식이 없고 “저승의 차사인 듯 까마귀”만 날아와서 “4.3이 무엇이더냐고 까냑까냑 울어”(「평화공원 까마귀」)대는 상황. 까마귀의 울음소리마저 시인에게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이는 시를 통해 그들의 아픈 마음과 영혼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함이다. 시인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에 대한 경각심도 일깨워준다. 시의 소재를 개인의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곳곳에서 발생하는 사회 문제도 직시하는 넓은 혜안의 안목을 가지고 있다. “북극의 빙하가 노한 듯 물컹”이고 있다며 “세상사 제 잘난 맛에 시름대는 지구촌”(「지구」)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이 날카롭다. 결국 “새벽빛 와 닿으면” “빈손”(「빈손」)으로 가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 아무리 “욕망이 자라고 자라 높아가고 빨라가”는 것이라 하더라도 “끝없는 소유욕”(「샹그릴라의 꿈」)은 모두 부질없는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때론 시인은 “참말도 거짓말도 함구령인 돌하르방”(「돌하르방」)처럼 살고자 한다. 시인에게 산다는 것은 다음의 시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 사는 것을 뜻한다.
교래 자연휴양림 앙가슴 들춰 보니 칡넝쿨 벋어가듯, 한 많은 내 삶들이 곶자왈
다람쥐처럼 슬그머니 숨어있다
단정한 지붕 후빈 칼바람 소리에도 불안한 마음 모두 텃밭에 묻어놓고 조금씩 꺼내보는 마음 오롯이 펼쳐진다
산다는 건, 콩란처럼 얽히고설켜 사는 게지 형형한 그리움을 마음에 담아 두고 내 안의 질펀한 삶 꺼내 햇살에 말리는 일 ― 「산다는 것은」 전문
“산다는 건” 결국 “콩란처럼 얽히고설켜 사는” 것이다. 시인에게도 “칡넝쿨”처럼 벋어가는 “한 많은” 삶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시간들을 잘 지나왔기에 지금은 “꺼내보는 마음”이 “오롯”하다. 반짝반짝 빛나는 “그리움을 마음에 담아 두고” “질펀한 삶”을 꺼내 “햇살에 말리는 일”이 시인이 살아가는 방식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한 고비가 찾아오고, 이제 정말 지나갔겠지 싶으면 또 다른 일들이 다가온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러한 수많은 고비들을 견디며 넘어 일어서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해 나아가는 것이다. 이는 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다. 어떠한 삶이라도 늘 불행한 삶만 있는 것은 아니기에, 결국 보송보송 ‘햇살’이 기다리고 있기에 오늘도 우리는 고비를 넘기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이러한 삶의 기억 한 켠에는 유년의 시간들이 존재한다. “놀다가도 배고팠”던 유년 시절(「찔레꽃」). 어머니가 “망사리 가득 등에 지고 나오시면/ 미역귀 굽던” 유년. 채취한 해물을 그물로 만든 망사리에 가득 담아 어머니가 물 속에서 나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이 “어린 나의 기다림”이 화자에게는 “불턱의 주전부리”(「미역해경」)였던 것이다. ‘불턱’이라 불리는, 불을 지펴 추위를 녹이는 일종의 사랑방 같은 공간은 과거 화자의 유년을 키웠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시인은 “수평선 빨래줄 위에” 살짝 “고백”을 “걸어놓”(「뜨거운 고백」)는다. 제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말이다. 이 사랑은 ‘빙새기’(「관음사」), ‘닭텅에’(「청용사에서」), ‘영등할망’(「영등할망」), ‘수웨기’(「고향」), ‘망사리’(「미역해경」)등 제주 토속어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창선 시인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시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시가 가벼운 것은 아니다. 이에는 토속어의 사용과 감각적인 시어가 탄탄하게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물을 하나하나 응대하며 그가 걸어온 시간의 흔적들이 시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3.
김윤숙 시인과 이창선 시인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다.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으로 뭍을 그리워하며 유년의 시간을 보냈던 시인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귀한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제주 토속어라는 점이다. 제주 지역에서 나고 자라지 않으면, 오랜 시간을 제주와 함께 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는 보석을 두 시인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보석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김윤숙 시인은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곳곳을 시로 옮겨놓고 있다. 여기에는 풍경 그 자체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내면과 시대의 아픔이 스며들어 있다. 이창선 시인은 제주에 대한 사랑을 몸소 보여준다. 이 사랑은 시의 곳곳에서 향토적 시선으로 발현된다. 사물을 응대하며 걸어온 시간들이 응축되어 시 속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두 시인의 자아와 세계관의 건강한 만남이 하나의 미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또한 두 시인은 시조의 율격에 국한하여 시를 쓰지 않는다. 현대시와 단절하지 않고 현대시의 연결선상에서 리듬의 운용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역사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개인의 내면에 함몰되어 시대를 등한시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기꺼이 나의 아픔으로 맞이한다. 토속어를 통해 시를 짓는 사람들. 이들의 따뜻하고 단정한 마음을 시를 통해 맞이할 수 있다.
백애송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016년 ≪시와문화≫ 신인상 시 부문 당선, ≪시와시학≫ 평론 부문 당선.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동대학교 교수. 저서 이성부 시에 나타난 공간 인식 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