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매일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예전부터 예약되어 있는 여행을 가야 할지 망설일 때 걱정 말고 다녀오라는 그의 응원은 항상 나를 기쁘게 한다. 혼자 감당하기에 벅참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그의 넉넉한 미소는 자꾸 뒤 돌아보게 하는 내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내가 없으면 도저히 굴러가지 않을 것 같던 가게가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런 사고 없이 순조로울 때 그곳으로부터 멀리 떠나왔어도 안절부절 못하던 몸이 비로소 쉼을 얻으며 다리를 길게 편다.
둘이나 되는 손자들의 아우성이 내 일상을 허물어뜨려 온갖 장난감으로 집안이 어수선해도 그들의 끝없는 요구를 따라다니는 딸아이의 활짝 핀 얼굴은 나를 기쁘게 한다. 조절 기능이 망가진 로봇처럼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짜증과 울음과 비명으로 귀가 따가울 때 차분한 목소리로 훈육하는 사위의 가르침, 일관된 규율이 두 살 짜리의 귀에 소곤소곤 전해지고 널뛰던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고 마침내 까르르 웃음을 되찾을 때 내 입가에도 미소가 번진다.
병상에 누운 시 할머니에게 위로의 카드를 만드는 딸아이의 마음이 나를 기쁘게 한다. 종이에 나비와 꽃을 그려 잘라 내고 가늘고 긴 끈으로 한복의 실루엣을 그려 넣고, 할머니 어서 나으셔서 증손자 보러 오시라고 서툰 한글을 한자 한자 그림 그리듯 카드에 적어 넣는다. 손주며느리가 보내온 카드를 할머니들의 모임에 들고 갔다는 시 할머니, 온 동네 할머니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아 예전보다 더 건강해졌다는 소식이 너머너머 내게 전해질 때, 그런 내 딸을 "미쓰 선 샤인(miss sun shine)!”이라 부르며 흡족해하는 바깥사돈의 칭찬을 들을 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된다.
어머니날에 받은 카드에 담긴 아이들의 고백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한다. 어느 정도는 인삿말임을 알아도 엄마로 인해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다던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살아 내 자신들에게 진정한 본을 보여주었다는 칭찬은 내 가슴을 기쁨으로 요동치게 한다. 그 고난 속에서 울부짖었던 비명이나 불평을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최고의 찬사를 받는 것이 부끄러우면서도 굽었던 어깨를 우쭐우쭐 펴고 있다.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은 사람을 만났을 때,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 시절의 아픔을 그가 내 것만큼 공감하고 있음을 느낄 때, 깊이깊이 밀어 넣었던 감정들이 스르르 일어나 그에게 몰려가고 그 친구의 눈가에 맺힌 나의 아픔에 내 눈에는 그의 아픔이 뜨겁게 흘러나온다. 진정한 친구를 만났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라 오래오래 부둥켜안고 있다.
얼굴도 가물가물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오래전에 받은 도움에 감사를 전해 올 때, 문득 그 시절의 어려움이 떠오르고 그런 고난 속에서도 가진 것을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어디서 왔을까...구글에서 우리 식당을 다녀간 사람이 별 다섯 개의 평을 올렸을 때, 일부러 주인을 불러 맛있는 음식을 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을 때, 자주 오던 손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다른 주로 이사 갔다고 이메일을 보내왔을 때 그 말미에 그가 즐겨 먹던 음식의 비법을 물어올 때, 지금도 불안불안해 날마다 단단하게 뭉치는 양 어깨가 기쁨으로 흐물흐물 풀어진다.
이민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겪었던 어려움이나 혹은 수모가 이런 기쁨 속에서 하나씩 씻겨 나간다. 나의 작은 집이 두 딸, 두 사위 그리고 두 손자의 밝고 맑은 웃음으로 터져 나갈 때, 그 흐뭇함으로 남편과 나는 서로의 손을 찾아 지긋이 잡는다. 그동안 잘 살았다고 서로를 칭찬하며.
첫댓글 믿음직 하고 성격 넉넉한 인품을 지니신 남편분에게 박수보냅니다 아내 하는 일을 마음 편하게 배려해주는 흔치않는 아빠를 본받은 딸들입니다
시할머니까지 섬세이 챙긴다니 보기드문 딸의 행동을 보며 부모로써 잔잔한 기쁨이 속으로 흐르고 흐릅니다
대가족을 이루시고 그 안에서 샘솟는 기쁨부럽습니다
선생님의 행복하신 일상이 다 보이는 글입니다.
가족이 화목하시고 모든 것이 원하시는 대로 되시는 것 같아 글을 읽으면서도 훈훈합니다.
그동안 걸어 오셨던 길들에서 어려움도 있으셨겠지만 낯선 나라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신 모범 가정이십니다.
건강하시고 더 많이 행복하시길 기원 드립니다.
좋은 글, 잘 감상했습니다.
우리를 기쁘게하는 단연 일위는 자녀. 손주 사랑입니다. 누가 뭐라해도 거부할 수 없는 일이지요.
참 많은 것들이 라이락 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만큼 폭 넓게 잘 사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수고하셨지만 보람있으실 듯 합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기를요.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