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 마지막 날 밀린일기 씁니다요_ 1 휴가가 되면 큰 맘먹고 남편 따라 낚시를 가 주려고 그랜비호수 에코호수 의견이 분분했지만 그냥 가까운 늘 다니던 레져보(상수원 저수지?)로 향했습니다 새벽 잠 설치고 아니 아에 잠 한숨 자지않고 어둠을 헤치며 낚싯터를 향했는데 문을 열기도 전에 이미 자동차의 행렬은 시작 되었어요 남편의 오랜 경험으로 자기가 찍어 논 포인트를 남에게 뺏길까 봐 이른새벽을 택하기도 하지만 고기들의 식사시간이 동이틀 무렵 이라나요. 그 동안의 낚시 일지를 보면요 열 번의 계속된던 빈바구니 끝에 그후 여덟번은 한번도 빈손이 아니었거든요. 남편의 기분은 켑이었죠 그날 역시 고기잡을 건 뻔 하고(??) 사랑스런 아내가 동반을 하니 콧노래를 절로 부르드라구요 새벽날씨는 쌀쌀하여 두꺼운 털파카를 입고 지평선으로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지요 서쪽으론 록키산맥이 길게 늘어져있지만 동 남 북으론 끝없는 지평선만 이루죠 인간의 손이가지 않은(스프링쿨러가 없으면 누런 풀밭) 거대한 들판은 계절 기운도 모르고 누런소 등가죽처럼 길게 평화롭게 늘어져 있고 젊은태양 정열을 닮은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는데 그 또한 장관입디다요 아침을 여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는데 무리진 새들의 끼륵이는 소리 오리떼 가족들이 도란거리며 아침 산책을 즐기고 찰싹이는 파도소리며 호수는 너무 좋앗어요 연한 하늘빛과 고급솜 같은 구름 그리고 짙푸른 호수에 바다인 듯 파도치는 소리가 얼마나 세차던지 밀려오고 또 밀려오고... 상수원인만큼 물빛도 깨끗한 호숫가에서 연신 싱글거리는 남편과 함께 정담도 나누고 몸이 꼬여 징징거리기도 했지요(난 낚시가 체질적으로 안맞음) 시간이 지나도 기다리는 트라웃은 입질 한 번 안하니 난 따분했지만 내 남편은 무에 그리 좋은지... 심심하다 못해 산책을 했지요 도보로 호수를 한바퀴 돌려면 3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아 욕심은 채우지 못하고 3분의1만 갔다가 되돌아 왔지만 자전거가 있으면 롤러 브레이드를 탈 줄만 안다면...하고 아쉬움도 남았어요. 한숨도 자지않고 낚시터를 향한 때문에 남편옆에 길게 누워 잠을 청했지요 파도소리 자장가가 얼마나 좋던지 깊히 잠들지는 않았지만 계속 눈을 감고 있었지요 태양이 이글거리기 전까지는 공기도 기온도 잠들기에 아주 적합하더이다 낚싯대에 눈을 떼지 못하여 화장실 가는것 조차도 참고 있는 남편이지만 아내의 편안한 잠자리에 온갖 신경을 다 써주더이다 햇볕 가리워 주려고 파라솔을 이리저리 옮겨 주고요 바람이 잠깐씩 멈추면 몰려드는 모기떼들의 극성에서 날 보호하기위해 계속 부채질을 해주었구요... 그렇게 구찮을 일을 왜 한사코 나와 동반하려는지... 우리 부부는 포부도 당당하게 횟감을 낚으러 갔지만 그날은 여지없이 입질 한 번 못 받은 빈바구니 였어요 남편게 미안트라구요 내가 아니 갓음 한마리 쯤은 잡아 올렸음직한 그런 미련을 갖을만도 하것만 잡는 재미보다는 물가에 앉아있는 강태공의 한량끼를 무한 즐기는 남편이기에 이다음에도 또 그다음에도 따라가 주면 안되냐고 내게 추파를 던지는데 한번 따라가 준 것도 큰 인심인데..하며 생색을 내고는 오늘은 기어코 따라가지 않고 남편 혼자 낚시를 보냈네요. 젊은태양 -밀린일기 2- 하루는 김치를 담궜답니다 항상 쫒기듯 서둘러 김치를 담궈야 했지만 휴가 하루를 김치날로 정하니 느긋하게 정성을 쏟을수가 있엇어요 참 맛이 좋은데 가까이 살았담 누구에게라도 한보시기 아니 한 통은 보내 드릴수 있으련만... 제가요 부지런을 떨지만 떤 만큼 부엌일을 척척 해내지는 못해요 요넘의 컴이 주방옆에 버티고 있어서 자꾸만 날 꼬시거든여 그래서 우리집 식탁은 맛잇게 담근 김치와 우유빛나게 고와 논 사골국물이 고작이에요 더운날에 삼계탕 한번하고 연속적으로 사골국에 땀을 흘리더니 가족들 의견이 시원한 영순표 냉면이 그립다데요 가족의 원이라는데 워쩌나요~ 그래요! 하루는 냉면과 씨름(나만)합시다 했더니만 당장 다음날 낮에 먹을수 있게 부탁을 하는거에요 (그때 시간 밤12시었음) 시상에~ 냉면 육수 만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데 것두 야밤에 부탁을 하다니...이궁 팔자야...궁시렁~ 하면서 딸아이 대동하고 미국마켓가서(24시간 영업함) 고기를 사다가 통마늘 생강 다시마 양파 무 넣고 푹푹 삶기 시작했죠 다행이 무랑 오이랑은 냉장고에 잇었기에(한국마켓은 밤에 영업안함) 냉면용으로 무쳐놓고 룰루랄라~ 덕분에 나도 시원한 냉면을 먹자 했지요 다음날 아침 일찌기 고와논 고깃국물을 냉동실에 넣어 기름끼 굳히게 하여 베보자기에 받혀 아주 깔끔하게 맑은육수를 해놓구요 계란삶고 배도져며 겨자도 게어놓고 점심때쯤 들어올 남편 시간 맞춰 완벽한 준비를 해 놓앗습죠 힝! 그런데 집안 구석 구석 모두 뒤져보아도 삶아야 할 냉면이 없는 거야요 당면 물국수 마른국수 쌀국수 모두 있는데 우찌 냉면만 없을까요! 한국 같으면 득달같이 달려나가 구멍가게서라도 사 올수 있으련만 차를 타고 한국마켓까지 가려하니 머리손질이랑 옷 매무새며 아무런 준비가 되잇지 않았구 사실 장 보기는 나혼자 가는 것 절대로 억울하죠(ㅋㅋ~) 하여 자는 딸아이 꼬시어 냉면 사오라 했습죠 아주 큰소리로 무슨 퀴즈 놀이하 듯 푸하하~~ 냉면을 하는데 우리집에 없는게 무엇일까요~~~~~~? 하면서...시끄럽게 떠들고 다니니 지네들이 어쩌겠어요 마음약한 막내딸이 잠이 덜깬 소리로 \'할수없다 자다가 그냥 나가도 이쁜 내가 마켓을 다녀올 수 밖에\' 하며 어이 없어 웃습디다. 이리하야 우리식구는 시원한 물냉면을 먹을수 있었다는 아주 썰렁한 이야그입니다. 젊은태양 3 *짜안~~ 등산 하던 날!!* 완벽한 등산이랄순 없지만 어느정도는 차로 올라가서 폭포수 떨어지는 계곡부터는 걸어 올랐어요 saven fall(이름그대로 7개의 폭포)로 접어드는 협곡에는 정말 인디안이 튀어나올것만 같은 무시무시하고 험준한 산악지대 였지요 200년 미국 역사에 길이길이 남으라고 금 채굴 장소를 원형 그대로 보존해 두었는데 오천년 역사 자랑하는 우리에겐 코웃음밖엔 안되겠지만 얼마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던지 왠만한 장소들은 훼손치 않고 관광객들의 편의시설을 제공해 놓았더군요 금광 굴속에 엘레베이터를 설치해 전망대까지 오르게 되어있었어요 곳곳에 그 옛날 자료 사진들을 골동품 처럼 모셔두고 콜라도의 유명한 금 원석도 진열되있고... 난 그런곳은 별 관심없고 그저 가파른 절벽위로 세워진 철계단 돌계단 오르기에 열심이었죠 saven fall의 아스라한 물줄기를 내려다 보는 그 전율은 익히 느끼신 바 있으시겠죠 집에 있을적엔 항상 피곤한 엄마 일에 쫒기는 바쁜엄마 였지만 자연속에 갖다 놓으니 펄펄 날아 다녔습죠 정상에 오르니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그 시원한 바람이란! 등산해보신분 이라면 그 심정 또한 누구나가 맛보는 거겟죠. 정상 그곳엔 헬렌이라는 여류시인의 묘가 있었어요 그냥 비석만 세워있었지만 이야긴 즉 헬렌이 생전에 즐겨 찿던곳 이었기에 그녀가 죽으면서 유언을 남겻다더군요 그 장소에 묻어 달라고 훨씬후에 돌계단 철계단이 들어섰겠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시신을 그곳까지 옮기는대는 꽤 많은 날이 지났었대요 아마도 그녀는 무척 부자였나 봐요 난 그런곳에 묻히고 싶어도 경비생각에 아서라 말아라 할텐디 시인이란 타이틀에 무척 멋진 여자라 여겨졌지만 그곳에 묻히여 생전의 자기 시들을 읊으며 영혼이 나타나서 아름다운 경관을 내려다 볼지는 모르겠지만 장례 치루던 행렬들을 생각하니 정이 별로 가지 않더이다 묘비에서 처음 받은 느낌과 감동에서 오는 애잔함이 아직까지도 가시지 않은데 애써 정을 느끼지 않으려 함은 아마도 시샘이 발동한 때문일까요? 집에서 출발할때는 하얀 진바지에 핑크셔츠를 입었는데 차 안에선 행여 아이스크림의 초콜릿이라도 떨어질세라 냅킨으로 닦아가며 온갖 깔끔 다 떨었죠 크크~ 그러던 아줌마가 자연의 품에 풀어 놓으니 기기묘묘한 바위산에 올려다보며 저걸 올라? 말아? 망설이다 도전하기로 맘 먹었죠 바위들이 말에요 사람의 손길로 다듬은 것처럼 아주 매끈하면서 묘한 형상을 하고 있엇는데 이름은 모르지만(화강암 석회암등등 그런이름말요) 왕모래가 뭉쳐진 바위들이였는데 망고풍상에 시달리며 한톨씩 부스러진 바윗조각들이 모래더미처럼 쌓여 있어서 위를 향해 전진하는대 애를 먹었어요 가파른 거친 모래더미에서 애인을 안고 딩굴듯 미끄러져 내리기를 거퍼하면서도 기를 쓰고 덤빈 호기땜시 내 하이얀 바지는 온통 황토색이 되어 뿌렀구만요 그 바지를 보니 여중시절 흰체육복 바지 입고 논물 대러가던 강제성봉사를 떠난 생각이 나더군요 왜 그때는 걸핏하면 송충이 잡으러가고 모심으러가고 운동장에 깔 모래 퍼 날리고... 어린학생들에게 부역을(?)시켰는지 그런 날이 되면 전에 말했지만 노동성 짙은 일하고는 거리가 먼 체질이기에 체육복 바지만 잔뜩 더럽혀 가지고 돌아오지요 힛~! 주위에선 내가 꽤 열심히 일하는걸로 여기드라구요 왜 난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옷만 망치는 걸까? 아~ 건 까마득한 옛날얘기구요 지금은 무슨일이던 하기만 하면 끝장을 보는 열성파라구요 그 바위산에 올라 바위들 틈에 끼어 들어 사진 찍히는 것 까지 성공했음 바지가 황토색이 되었다해도 아까울 건 없겠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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