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서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여섯 가지 앎이 일어나지만, 앎의 내용은 실체가 없습니다.(無常, 無我) 끝없이 앎의 내용은 오가지만 그 가운데 어떤 것도 머물러 남아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실체도 잡을 수 없는 앎 자체는 늘 변함없이 있습니다.
자나 깨나 꿈꾸나 늘 한결같이 모든 상태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움직이지 않는 배경, 텅 비어 아무런 모양이 없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다고 부정할 수 없는 무엇이 존재합니다. 그것을 보조지눌은 공적영지(空寂靈知), 텅 비고 고요하나 신령스러운 앎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잠을 잘 때 의식이 완전히 없었다면 잠을 깬 뒤 스스로가 잠을 잤다는 사실을 알 수 없습니다. 꿈을 꿀 때도 꿈의 내용에 영향 받지 않은 누군가가 자신의 꿈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지금 깨어 있을 때도 나와 세계가 이렇게 드러나고 있음을, 생각으로 확인할 필요 없이, 알고 있습니다.
이 내용 없는 앎 자체만이 태어난 적도 없고, 나이 든 적도 없고, 병든 적도 없고, 죽지도 않습니다. 바로 지금 눈앞에서 모든 변화하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이것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지만, 동시에 모든 것은 생로병사를 벗어난 바로 이것의 현현(顯現)입니다. 색불이공(色不異空) 공불이색(空不異色)이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입니다.
따로 한 덩어리의 원만한 광명을 찾지 마십시오. 바로 지금 눈앞에 펼쳐진 현상세계가 그대로 나누어지지 않은 한 덩어리 밝은 의식의 빛 자체입니다.
지금 생각을 굴려 헤아리고, 감정의 변화와 감각을 느끼는 것이 바로 그 빛입니다. 텅 비고 투명한 순수한 의식 자체입니다. 일체가 하나의 의식입니다.
보는 자와 보이는 대상이 본래 하나의 의식입니다. 이것이 둘 아님(불이), 아드바이타(advaita)입니다.
색 그대로가 공이고, 공 그대로가 색입니다. 그렇다면 색과 공을 모두 놓아 버리면 무엇입니까? 찬바람 속에 하얀 목련 꽃망울이 흔들립니다.
출처 : "깨달음의 노래", 심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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