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가 17살 어린 소녀를 택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크시대에는 리코더가 플루트에 밀리지 않았다는 설명이 충분히 이해가 갈만했다. 힘이 있고 밝고 명랑한 느낌이었다.
2. 프란체스코 칠레아 (1866~1950)
<아드리아나 르쾨브뢰르> 중 '저는 창조주의 비천한 하녀일뿐(Io son l'umile ancella)'
- 엘리나 가랑차(메조소프라노), 로베르토 아바도(지휘), 오케스트라 델라 코무니타트 발렌시아나
(3:38)
무거운 역할과 러시아 오페라까지 그리고 소프라노를 도전한다는 그녀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3.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1756~1791)
피아노 소나타 D장조 KV 576 중 2악장 Adagio, 3악장 Allegretto
- 윤홍천(피아노)
(5:15-4:21)
지성적인 피아니스트. 모차르트가 경제적으로 어려울 베를린 시대에 만든 바흐의 영향을 물씬 받은 작품이라 그런지 웬지
바흐의 골드베르그 협주곡이 생각났다.
4. 엑토르 베를리오즈 (1803~1869)
환상 교향곡 op.14 중 2악장 '무도회(Un bal)'
- 다니엘 하딩(지휘), 스웨덴 방송교향악단
(6:26)
익숙한 선율에 몸을 맡기고 편안히 감상할 수 있었다.
분류 |
연주자>지휘자 |
출생일 |
1975년 8월 31일, 영국 옥스퍼드 |
경력 |
• 2003년~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 • 2004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 지휘자 • 2007년~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
유형 |
지휘자 |
수상 |
• 2002년 프랑스 기사훈장 • 2002년 그라모폰 상 • 2008년 그래미 어워드 최우수 오페라 앨범상 • 2011년 프랑코 아비아티 상 |
데뷔 |
1994년,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 |
요약 영국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 클라우디오 아바도, 두 거장의 눈에 띄어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현재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을 맡아 활약 중이다.
두 거장의 눈에 띈 재능
말러 스페셜리스트로서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은 차세대 지휘자 다니엘 하딩은 1975년 8월 31일 영국에서 태어나 비교적 젊은 나이부터 지휘자로 주목을 받았다. 13세부터 트럼펫을 시작했고 맨체스터 음악학교에 다니던 17세에 동료들과 함께한 오케스트라에서 쇤베르크의 〈달에 홀린 피에로〉를 처음으로 지휘했다. 그리고 이 실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은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의 지휘자 사이먼 래틀(Simon Rattle)에 의해 발탁되어 1년여의 훈련을 거친 끝에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을 지휘하면서 정식으로 데뷔 했다. 1994년, 스무 살도 안 된 젊은 마에스트로의 탄생을 알린 다니엘 하딩은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클라우디오 아바도(Claudio Abbado)와도 인연을 맺게 된다.
하딩의 재능을 눈여겨 본 아바도는 그를 자신의 조수로 삼고 1996년 베를린 필을 지휘할 수 있는 기회도 주었다. 1996년 21세의 나이로 지휘봉을 잡은 하딩은 베를린 필 역사상 최연소 지휘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아바도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은 하딩은 2003년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지휘봉도 이어받았다. 1997년 아바도가 직접 창단한 악단을 이어받으며 아바도의 후계자임을 확고히 알린 하딩은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면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갔다.
하딩의 재능을 눈여겨본 클라우디오 아바도(1988년)
너무 젊은 나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
한편, 20대의 젊은 지휘자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오케스트라와의 마찰도 있었다. 2005년에는 파리 국립 오케스트라와 모차르트 오페라 〈코지 판 투테〉를 연주하기로 했으나 단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 때문에 결국 연주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 한 단계 성장한 하딩은 그해 겨울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에서 모차르트의 또 다른 오페라 〈이도메네오〉를 성공적으로 공연하면서 리카르도 무티(Riccardo Muti)의 공백을 완벽히 채웠고 언론에서는 그를 향해 ‘밀라노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하딩은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 하우스 등의 무대에 올라 모차르트에서 브리튼과 베르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시대의 작품을 연주했다.
영국 출신인 하딩은 음악만큼이나 축구를 좋아해서 연주가 없는 날은 늘 축구장을 찾곤 한다. 또한 지휘를 하는 틈틈이 카퓌송(Capuçon) 형제와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 등 젊은 연주자들과 호흡을 맞춰 음반 녹음도 이어가고 있다.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와 스웨덴 방송 교향악단의 음악 감독을 병행하고 있는 다니엘 하딩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5. 조지 프리더릭 헨델 (1685~1759)
<줄리오 체사레> 중 '태풍으로 망가진 배가 무사히 항구에 도착했을 때(Da tempeste il legno infranto)'
- 조이스 디도나토(메조소프라노), 막심 에멜리아니셰프(지휘), 일 포모도로
(6:02)
곡과 노래가 몹시 좋아 계속 듣고 싶었는데 끊겨서 많이 아쉬웠다.
조이스 디도나토
Joyce DiDonato
분류 |
연주자>성악가>여자 성악가 |
출생일 |
1969년 2월 13일, 미국 |
유형 |
메조소프라노 |
수상 |
• 2002년 리처드 터커 상 • 2006년 로열 필하모닉 소사이어티 뮤직 어워드 • 2010년 독일 에코 클래식 어워드 올해의 가수상 • 2012년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 2012, 2016년 그래미상 최우수 클래식 보컬 솔로 부문 • 2013년 뮤지컬 아메리카 올해의 음악인 선정 |
데뷔 |
1999년, 토드 맥호버의 오페라 〈부활〉,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극장 |
요약 미국의 콜로라투라 메조소프라노 가수. 세계 유수의 오페라극장 무대에 선 그녀는 특히 헨델, 모차르트, 로시니의 작품 해석에 있어 두각을 나타내며, 꾸준히 레퍼토리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몇 번의 좌절 끝에 무대에 설 기회를 얻다
현역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는 1969년 2월 13일 미국 캔자스 주 동부에 위치한 프레리 빌리지에서 태어났다. 일곱 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무대에 오르기에는 내성적이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 때문에 성악가 대신 음악교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수업 시간에 오페라 아리아를 접하고 텔레비전에서 메조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Cecilia Bartoli)가 부르는 로시니 오페라 아리아를 들으면서 오페라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후 필라델피아에 있는 성악 아카데미에서 기초를 닦은 후 1996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젊은 성악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을 수강했다. 이후 그녀는 여러 오페라 극장과 매니지먼트 회사를 찾아다니며 오디션을 보았으나 번번이 거절당하는 좌절과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러던 중 런던의 유명한 매니저인 사이먼 골드스톤이 그녀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활동 지원을 약속했다.
1999년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에서 작곡가이자 연출가인 토드 맥호버의 작품 〈부활〉의 세계 초연 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 톨스토이가 쓴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 작품에서 그녀는 여주인공 마슬로바 역을 맡으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서 케루비노 역을, 로시니 오페라 〈알제리의 이탈리아 여인〉에서 이사벨라 등을 맡으며 배역의 폭을 넓혀 나갔다.
조이스 디도나토가 휴스턴 그랜드 오페라의 2011년 프로그램인 작곡가 제이크 히기(Jake Heggie)의 오페라 〈데드 맨 워킹〉에서 헬렌 수녀를 맡아 열연하고 있다.
드디어 빛을 발한 그녀의 재능
계속되는 실패를 겪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오페라 극장의 문을 두드린 결과, 조이스 디도나토는 2000년부터 그녀는 자신의 진가를 드러냈다. 오페라의 메카라 불리는 이탈리아 라 스칼라 극장에 진출한 2000년 이후, 2001년에는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에서 세스토 역을 맡으며 바로크 오페라에 도전했고, 존 엘리엇 가디너(John Eliot Gardiner)의 지휘로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교활한 작은 여우〉에도 출연했다. 2002년에는 베를리오즈의 〈벤베누토 첼리니〉의 콘서트 버전, 그리고 2003년에는 모차르트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주역을 맡았고, 2004년에는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로 매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5년에는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으로 뉴욕 메트로폴리탄에도 모습을 드러내면서 최고의 소프라노로 주가를 올리기 시작했다. 2009년에는 영국 코벤트 가든에서 로시니 오페라를 공연하던 중 무대에서 넘어져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으나, 깁스를 하고 휠체어를 탄 채 나머지 공연을 소화하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도니체티의 오페라 〈마리아 스투아르다〉에서 열연 중인 조이스 디도나토
시사주간지 《타임》으로부터 24캐럿의 다이아몬드보다 뛰어난 목소리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은 메조소프라노 조이스 디도나토는 그래미 어워드와 그라모폰 어워드의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으며 현역 최고의 프리마 돈나로 오페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12 그래미 어워드의 포토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이스 디도나토
그녀는 이 시상식에서 최우수 클래식 성악 솔로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