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상식 여행(8)
♣ 제야의 종은 왜 33번인가
새해 첫날이 밝는 자정, 서울 종로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을 33번 치는 것은 조선시대에 이른
새벽 사대문 개방과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타종, 즉 파루를 33번 친데서 연유한 것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 사람들은 해를 보고 시간의 흐름을 짐작했다. 해시계가 보급된 후엔 좀 나
아졌지만 밤중에 시간을 몰라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밤 시간을 알려
주는 것이정부가 맡은 큰 일 중 하나였다. 자시 축시 인시 등으로 불렀던 하루 12시간 중 밤
에 해당하는 5시간,즉 술시에서 인시까지는 이를 초경 이경 오경으로 나누어 각 경마다 북을
쳤다. 또 각 경은 다시 5점(오점)으로 나누어 각 점마다 징이나 꽹가리를 쳤다. 한 경은 오늘
날 시간으로 따지면 2시간, 한 점은 24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 소리를 모든 주민이 들을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대문이 닫히고 주민 통행금지가 시
작되는 이경(밤 10시경)과,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오경(새벽 4시경)만큼은 종로 보신각에 있는
대종을 쳐서 널리 알렸다. 이경에는 대종을 28번 쳤는데 이를 인정이라 했고, 오경에는 33번
쳐 이를 파루라 했다.
인정에 28번을 친 것은 우주의 일월성신 이십팔수(28별자리)에게 밤의 안녕을 기원한 것이고,
파루에 33번을 친것은 제석천(불교의 수호신)이 이끄는 하늘의 삼십삼천에게 하루의 국태민
안을 기원한 것이었다.
♣ 1주일의 유래
일주일은 왜 7일일까. 아주 오래 전 원시적인 날짜 세기를 하던 사람들에겐 '주일'이라는 개념
이 없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사람들은 하루보다는 길고 한달보다는 짧은 기간 개념을 필요
로 하게 됐다. 뭔가 계획을 짜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맺고 끊을 수 있는 새로운 시간의 정의가
있어야 했다. 처음의 '주일'은 장날의 간격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학자들은 추정한다.
가령 일부 서아프리카 종족들은 4일, 이집트인들은 10일, 로마인들은 9일마다 장을 열었다.
그들은 그 기간을 일주일 삼아 생활 했을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가 일주일이 7일이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지금의 일주일은 그중 하나가
아니라 몇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이루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보름 상현 하현 그믐 등 달
의 위상변화 간격이 대략 7일이라는것,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이 7을 신성한 숫자로 생각했다는
것, 오래 전 인류가 하늘에 7개의 천체가 존재한다고 믿었다는 것, 유태교의 안식일 의식에서
영향받았다는 것 등이 자주 인용되는 설이다.
그 가운데 천체의 숫자와 관련이 있다는 설은 현재의 요일명이 실제 그 천체들의 이름을 따온
것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망원경이 나오기 전까지 사람들은 하늘에 별을
제외하고 7개의 천체가 있다고 생각했다. 해, 달,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그것이다.영어
로 된 요일명은 이 천체들, 또는 각 천체에 해당하는 신화 속 신의 이름에서 따온 것들이다.
♣ 2월은 왜 짧나
1년 열두달 중 가장 작은 달은 2월이다.다른 달들은 30일 아니면 31일로 돼있는데 2월은 28일,
윤년이 돌아와도 29일 밖에 안된다. 여러 달 가운데 하필 2월이 가장 짧은 것은 왜일까.
로마인들이 쓰던 달력은 처음엔 March(1월)부터 December(10월)까지 달 이름이 10개 밖에 없
었다. 11월과 12월에 해당하는 두 달은 이름조차 없이 무시됐지만, 그 기간이 농한기이기 때문
에 로마인들은 별로 불편해 하지 않았다.기원전 8세기경 누마 폼필리우스 왕은 제대로 된 달력
의 필요성을 느끼고 새 달력을 고안했다.
누마는 1년을 355일로 정했다. 달의 움직임에 맞춘 것이었다. 누마는 비어있는 11월과 12월 자
리에 January와 February의 두 달을 추가해 열두달 체제를 만들었다.로마인들은 짝수를 불행한
숫자라고 믿었으므로, 누마는 열두달 중 일곱 달은 각각 31일, 네달은 각각 29일로 정했다.
그러다보니 1년 355일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이 28일 짜리 짝수 달이 하나 필요해졌다. 누마는
1년의 마지막 달이자 한겨울에 속해있는 February를 그 달로 선택했다. January와 February가
한해의 시작인 1, 2월의 이름으로 바뀐 것은 그로부터 수세기가 흐른 뒤의 일이다.
일설에는 로마인들이 원래 30일로 돼있던 8월을 31일로 늘리기 위해 2월에서 하루를 빼내가
는 바람에 2월이 작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아우구스트 황제를 따 이름지은 8월(August)이 30일
밖에 안되는 것을 불경스럽게 여겼기 때문이라는 설명인데, 그다지 신빙성은 없다.
February의 유래와 변천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들이 더 있으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 짧은
달을 로마인들이 매우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 사실이다.
♣ 신호등 색깔
신호등의 적색은 `정지'를, 녹색은 `진행'을 뜻한다.이는 세계 각국이 공통이다. 누가 이렇게 정
했을까? 신호등 시스템을 처음 개발해 쓰기 시작한 것은 철도 종사자들이었다. 피의 색깔인 적
색은 인류 역사 이래 '위험'의 신호로 널리 통용돼왔기 때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기차 사고를 막으려고 붉은 셔츠를 벗어 깃발 대신 흔든 어떤 농부를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건 근거없는 속설이다.적색 이외의 신호등 색깔은 몇차례 변화를 겪었다.
철도 초창기인 1830~40년대에는 녹색이 `주의',백색(무색)이 `진행'신호로 이용됐다. 그런데 백
색등은 일반 조명과 구분이 잘 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1914년경 미국의 한 역
에서 큰 충돌 사고가 났다. 적색 정지신호등의 색유리
가 깨져 있는 바람에 기관사가 백색등으로 착각하고 그냥 달려버린 것이다.
그후 철도 운영자들은 녹색을 `진행' 신호로 바꿔쓰고, `주의'신호는 황색으로 대체했다.
황색을 새로 도입한 것은 황색이 나머지 두 색깔과 가장 선명히 대비되는 색이기 때문이다.
철도 신호 시스템은 이후 일반 교통신호등으로 확산됐다. 1914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
시내에 처음 전기 교툥신호등이 설치됐을 때는 적색과 녹색의 두가지 신호만 사용했다.
그러다 1920년대 초 디트로이트에 최초의 근대적인 자동 교통신호등이 등장하면서 적-황-
녹색 시스템이 본격 채택됐으며, 이것이 모두 교통통신등의 원조가 됐다.
♣ 왼손포수 왜 없나
야구선수 중에 왼손잡이 포수(캐처)는 왜 없을까? 오케스트라 연주자 중에 왼손잡이 바이얼리
니스트는 왜 없을까? 물론 아주 없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개인적인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프로페셔널 가운데서 이 분야의 왼손잡이를 찾기는 힘들다.
그만큼 왼손잡이에게 극단적으로 불리한 분야라는 얘기다.
왼손 포수가 드문 것은 타자들 대부분이 오른손잡이인 까닭이다. 오른손 타자는 포수 쪽에서
보아 왼쪽 타석에 서있으므로,왼손 포수가 2루나 3루에 마음껏 공을 던지기 어렵다. 도루 견제
를 제대로 못하는 포수는 포수라고 할 수가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 역사상 왼손잡이 포수는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그중 이름이 남아있는 선수가 1958년 시카고 컵스의 데일 롱,1980년 시
카고 삭스의 마이크 스콰이어스 정도인데, 둘다 딱 2게임씩 뛰고 직업을 바꿨다.
오케스트라에서 왼손 현악기 연주자가 드문 이유는 연주장면을 상상해 보면 금방 짐작할 수 있
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격렬하게 활을 움직이는 바이얼린 주자의 모습은 하모니가 아니라 결투
장면을 연상시킬 것이다. 또, 단원 중에 섞여 있는 왼손 주자는 오케스트라 배치의 대칭성을 깨
뜨려 관객의 시각적 즐거움을 빼앗게 될 것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악기점에서 왼손 바이얼린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일반 바이얼린을 왼손잡이
용으로 개조할 수는 있지만, 그럴 경우 원음의 섬세함을 그대로 살리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위아
래 줄만 바꿔 끼우면 되는 게 아니라 지판이나 내부 부품들도 정교하게 재배치해야 하기 때문이
다.웬만큼 이름이 있는 제품을 왼손잡이용으로 개조할 경우 외국에서는 수천달러의 비용을 요구
한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