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암반 위를 흐르는 물에 손을 씻고 얼굴도 씻는다.
신발도 옷도 벗을까 하다가 그래도 산을 오르기로 했다.
이정표가 계곡과 능선으로 갈리는 데 만학재와 고리봉이다.
만학재를 보고 오른다.
힘들다. 땀이 비오듯 하고 가슴은 답답하다.
폭염주의보 탓이라고 오기를 낸다.
30분이 걸려도 별로 걷지 못하고 힘만 들어 주저앉을 곳만 찾는다.
소나무 사이에 가끔 나타나는 바위에 앉아 곡성 축협마트에서 사 온 오곡막걸리를 마신다.
다시 힘을 내보나 5분도 못 걷고 주저 앉는다.
만학재 2km 남짓을 두시간이 다 지나도록 바위만 만나면 들판을 보며 쉰다.
(다음날 지리산을 걸으며 친구에게 애기하니 건강검진하면 그날은 쉬는게 좋단다.
위 조영제 등이 소화를 방해한다나 어쩐다나?)ㅗ
남원의 아파트 단지 앞으로 요천을 따라 곡성으로 내려오는 벌판이 넓다.
금평 저수지 뒤로 비홍산 줄기와 가끔 올랐던 교룡산의 덕음봉도 보인다.
견두지맥 아래로 수지면과 고달면 쪽은 하얀 비구름이 남원쪽 햇볕에 대비된다.
쇠난간과 쇠발판을 몇번 올라 드디어 만학재에 닿는다.
고리봉은 1km이고 천장군 묘소가 500미터다.
못 가본 천장군 묘소르르 들러 방촌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만날 것으로 짐작하고
왼쪽 등로를 잡는다.
앞에 보이는 고리봉은 가파라서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잠깐 걸으니 초록 잔디의 큰 무덤이 나타난다.
아래 석축을 내려가니 비석 두개가 나란히 서 있다.
천장군과 그 부인의 비다.
섬진강이 힐끗 보이고 건너편 동악산 사이로 옥과 벌판이 보인다.
한참을 내려가도 왼쪽 하산 길은 보이지 않는다.
섬진강을 만나는 산줄기 끝까지 걸어야 하나 걱정하며
조금은 편해진 발걸음을 옮긴다.
방촌까지는 택시를 부를까 하며 부지런히 힘을 내 걷는데
왼쪽 능선으로 조그마한 길이 보인다.
길은 금방 사라지고 계곡으로 떨어진다.
미끌ㄹ리며 계곡을 따라 내려오다 물터널을 만나는데 그 위는 임도다.
길로 올라 차 있는 곳으로 산아래 농로를 걷는다.
지그재그 농로는 어느 포도 농원에서 끊긴다.
고등 학생인 듯한 형제에게 방촌 매촌 길을 물으니 저 아래 나무 우거진 곳으로 내려 가야 한댄다.
돌아나와 찻길을 걷는다.
수건도 모자도 안경도 없이 뙤약볕을 나오니 환봉사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 시비를 보고 담 밖에서 서원을 보고 안ㄴ내판만 찍는다.
한길을 따라 방촌마을로 걷는데 볕 속에 이슬비가 내리더니 건너 벌판에 무지가가 큰 호를 그리며 떠 있다.
방촌으로 들어가 개천을 따라 산쪽으로 걷는다.
트럭을 몰고 온 사나이가 길을 가리켜 주며 계곡가서 목욕하란다.
산길을 오르는데 사람 다닌 흔적이 오래다.
매촌마을을 짐작하고 오른쪽으로 꺾으니 지붕 높은 초가집이 나타난다.
빈 듯해 조심스레 들어 대문으로 나오려는데 아랫채에 머리를 뛰로 묶은 여성이
침입자를 경계하며 꾸짖듯 길이 아니라고 한다.
길을 잃었다고 인사하고 대문과 한참 씨름하다 밖으로 나온다.
옆 초가에 가 사진을 찍고 보니 바로 내 차가 서 있다.
길 가에 떨어져 비에 젖은 수건을 찾고 젖은 깨르르 말리고 있는 할머니께 ㅇ인사한다.
속옷과 뜨근한 맥주를 넣고 계곡에 가 씻는다.
바닥의 모래들이 까끌하게 감촉이 좋다.
옷들도 다 물속에 집어 넣고 흐르는 물에 씻는다.
6시 반 약속을 지키려 5시 반이 지나 챙기고 내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