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 보이드 태어나다.
본명 - Patricia Anne Boyd
1945년 3월 17일 영국 햄스테드에서 보이드 집안 장녀로 태어났다.
밑으로 여동생 폴라 Paula와 헬렌 Helen있다.1950년 대에는 아빠의
직업 때문에 케냐에서 상주했던 그녀는 10대 후반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는 1962년 동생 제니와 함께 영국으로 나가 모델생활을 시작한다.
모델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그녀는 뉴욕과 파리등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다가
미국 감독 리차드 레스터 Richard Lester의 눈에 띄게 된다.
2. 패티 보이드, 조지 해리슨을 만나다. (1964년)
비틀즈의 첫번째 영화 "A Hard Day's Night"의 감독을 맡게 된 리차드는 패티를 영화에 출연시키기로 마음 먹는다. 원래 그녀의 역은 Jean이라는 이름의 여고생이었는데, 아무래도 연기력이 부족했는지 "Prisoners?"라는 한 마디로 역이 줄어든다.
영화 촬영의 어느 날, 그녀를 포함한 여러 여고생 출연진들이 비틀즈 멤버들에게 사인을 받으면서 패티와 조지 해리슨의 역사는 시작된다. 조지 해리슨이 그녀에게 준 사인에 -촌스럽게도 - 하트모양을 7개나 그려 넣어준 것이다. (다른 사람은 하트가 하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조지는 패티를 촬영장에 있는 자신의 콘테이너로 초대하지만, 그녀가 거절을 하자 데이트 신청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 패티에게는 2년 동안이나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 때문에 거의 조지는 거의 포기직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와의 교제를 수락하고, 며칠 후 남자친구와는 작별을 고한다.
3. 두 사람의 교제가 시작되다.
사귄지 얼마되지 않아 두 사람은 존 레논 커플과 함께 아일랜드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이 언론의 추격을 받으면서 소위 "Beatlemania"라고 불리는 열성팬들에게 패티 보이드의 존재가 알려지게 된다.
007작전을 방불케하는 도망전이 벌어진 후 겨우 언론을 피해 하와이로 도망간 두 커플은 2주일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다.
4. 패티 보이드, 조지 해리슨과 결혼하다.
1965년 어셔에 위치한 조지의 집, 킨폰스 Kinfauns로 패티 보이드가 옮겨가면서 둘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그 해 크리스마스 이브 파티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조지가 패티에게 청혼을 한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날 둘은 약혼을 한다. 결혼식은 1966년 1월 21일 서레이 Surrey의 엡섬 등기소에서 거행되었다.
결혼 후, 자신들의 사생활이 언론에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려하는 조지 해리슨 때문에 패티 보이드는 모델 생활을 마감하게 된다.
5. 마약이 결혼생활의 문제로 떠오르다.
해리슨 커플이 처음으로 마약을 접한 건 1964년의 일이다.
조지 해리슨의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처음 경험한 LSD는 곧 이들의 생활의 중심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패티가 모델 생활을 그만 두면서부터 그녀는 급속도로 마약에 빠져들게 된다.
6. 인도를 접하게 되다.
1966년 둘은 인도로 여행을 간다. 인도에 매력에 흠뻑 빠져 돌아온 그녀에게 친구가 마하시 마헤시 요기 Maharsi Maheshi Yogi의 강의를 들으라고 권하고, 그녀는 조지를 졸라 여러 비틀즈 멤버들과 함께 강연을 들으러 가게 된다. 하지만 패티는 후에 이를 후회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조지가 이 강의를 통해 인도와 명상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고 이게 둘의 이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7. 조지 해리슨,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다.
조지 해리슨은 선한 인상과는 달리 굉장한 바람둥이였다고 한다. 그의 바람기는 결혼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다시 시작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티는 언제나 그를 용서해주었다. 물론 패티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그 중 한 명이 존 레논이라는 건 참으로 아이러닉한 일이다. - 하지만 그녀는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다.
8. 에릭 클랩튼이 둘의 인생에 끼어들다.
에릭 클랩튼이 조지 해리슨과 처음 만난 건 에릭이 몸을 담고 있던 밴드 야드버즈 The Yardbirds가 1964년 12월 24일부터 1965년 1월 16일까지 열린 The Beatles Christmas Show에 찬조출연을 할 때이다. 하지만 에릭이 조지의 곡인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기타를 연주해주면서부터 둘의 사이는 급속도로 진전하게 되었다.
조지와 친해진 에릭은 해리슨 커플과 자주 어울리게 되었는데, 남편의 관심이 자신에게서 멀어졌다고 생각한 패티 보이드는 조지의 질투를 일으키기 위해 에릭 클랩튼을 유혹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패티는 자신이 친 덫에 자기가 걸려들고 만다. 에릭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녀의 여동생과 사귀기도 한다. 동시에 그녀가 종교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믿은 에릭은 종교를 거부하게 되고, 패티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면서 둘은 짧은 기간동안 교제를 하게 된다. 그의 사랑에 패티는 기뻐하긴 했지만 겁을 먹고 그로부터 달아난다. 그녀의 거부와 자신의 친한 친구 지미 헨드릭스 Jimi Hendrix의 죽음으로 커다란 충격을 받은 그는 그 후 4년 동안 좌절 속에서 마약에 의지해 생활하게 된다.
이 동안 에릭은 그녀에게 바치는 곡을 쓰는데, 그 곡이 바로 1970년 데릭 앤 도미노스 Derek and the Dominoes에서 활동하던 시절 발표한 "Layla"이다. "The Story of Manjun and Layla"라는 작품에서 차용한 이름으로, 이 작품은 레일라라는 여인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바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고 한다.
9. 몇 번의 이별 끝에 패티 보이드 끝내 조지 해리슨을 떠나다.
조지 해리슨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기 싫어하던 패티 보이드는 링고 스타 Ringo Starr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조지가 링고의 부인 모린 Maureen을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모델활동을 재개하고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의 기타리스트 론 우드 Ron Wood와 교제를 시작한 그녀는 1972년 조지 해리슨이 과속으로 모는 차 안에 탑승해있다가 중상을 입게 된다. 갈비 뼈가 부러지고, 온 몸에 타박상과 찰과상을 입은 그녀는 몇 주동안의 입원을 한다. 그 후, 재활시설에 다니던 그녀는 조지 해리슨과 재결합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활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는 법. 이 이야기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우연히 파티에서 해리슨 부부를 만나게 된 에릭은 패티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조지에게 다가가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한다. 이에 대한 조지의 대답은 그야말로 황당무계했다. "그래? 그럼 네가 내 부인이랑 사귀어. 내가 네 여자친구랑 사귀지 뭐. Fine. You get her, I get your girlfriend."
그리고 우연히 이 대화를 엿들은 패티 보이드는 커다란 충격을 받고 조지의 곁을 영원히 떠나기로 결심을 한다. 이 때가 1974년의 일이다. 조지는 뒤늦게 일을 수습하려 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패티는 믹 플리트우드와 결혼한 동생 제니를 찾아 L.A로 가고, 자신의 공연에 초대를 한 에릭의 전화를 받고 마이애미에 있는 그에게 찾아간다.
그리고 1977년 6월 9일, 조지와 패티는 합법적인 이혼절차를 밟는다.
10. 에릭 클랩튼, 패티 보이드와 결혼하다.
1979년 3월 27일,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결혼을 한다.
다음 날 저녁, 턱슨 Tucson에서 가진 공연 무대에 패티를 올린 그는 "Wonderful Tonight"을 불러준다. 하지만 에릭의 원래 신조 "여자친구나 부인은 절대 공연에 데리고 다니지 않는다."에 따라 패티는 홀로 남겨지게 된다.
11. 에릭 클랩트과 패티보이드 이혼에 합의하다..
에릭 클랩튼의 문제는 알코올 중독이었다. 마약을 끊는 대신 알코올에 의지하기 시작한 그의 알코올중독 증세는 갈수록 심해지고 끝내 치료기관의 신세를 지기에 이른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좋다고 쫓아다닐 때는 언제고..- 1985년까지 그는 두 여자와의 사이에서 2명의 아이를 낳아 자신의 호적에 올린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패티는 이 모든 굴욕을 참다가 1986년 8월 21일 이탈리아 여배우 로리 델 산토 Lori Del Santo와의 사이에서 아들 코너 Conor가 태어나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혼을 결심한다.
그리고 1989년 둘은 이혼에 합의한다.
12. 이혼, 그 후...
에릭 클랩튼은 이혼 후 이탈리아 여배우와의 관계를 계속하였으나, 바람기는 여전했다. 1990년 4살이 된 아들 코너가 창문에서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면서 자신의 고통을 담은 노래 <Tears in Heaven>을 발표하여 다시 한 번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건재를 알렸다.
패티 보이드는 이혼 후 사진작가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으며,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자선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91년 바바라 바하 Barbara Bach와 공동으로 마약과 알콜중독자들을 돕는 단체 SHARP을 설립하였다 (글, 퍼옴, 사진은 인터넷에서.....)
출처 :Tong Guitar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 dada(김태형)
첫댓글 Wonderful Tonight
참 오랫만에 들어봅니다.
80년대에
참 많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바이올랫님!
Wonderful Today...^^
네원더풀 예스터데이였슴당
제가 워낙 에릭의 광팬이라 잘 알고 있는 그의 사생활이었지만
오랫만에 읽어 보니 또 재미있는데요
저도 위의 포크락님 글 보고미로웠던 각관계에 관해 궁금해 다시 읽어보았어요
ㅎㅎ 전 제가 읽었던 그 신문기사를 올리셨는줄 알았는데... 매우 상세한 스토리를 스크랩하여 올려주셔서 잘 읽었고 새로운 사실도 알았습니다. 저렇게 미모의 여인을 돈 많고 유명한 사람들이 그냥 놔뒀을 리가 없었을거라는 생각이 당연히 드네요^^
대충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저렇게 전은 이렇고 후는 이렇고 한 사실들은 저도 첨 알았어요
자우당간 여자는 이뿌고 볼 일이여
ㅎㅎ 요즘은 성형이 있잖아요. 패티의 최근 사진을 보니 제가 좋아하는 배우 킴베신저를 조금 닮은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