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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 : 19 - 지혜를 멸하고 총명을 폐하리라 - 고전 1 : 21 -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고전 1 : 19 - 지혜를 멸하고 총명을 폐하리라 -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
기독교는 반지성적(反知性的)인 종교가 아니다. 바울 자신이 당대의 탁월한 지성인이었다.
여기에서 바울이 강조하는 요점은 멸망하는 자들 곧 불신자들의 지혜와 지식은 결코 그들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런 헛되고 무지한 지식을 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바울은 인간의 지식은 그들을 교만하게 만든다고 가르쳤다(8: 1). 이와 같이 인간 지식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바울은 그것을 뛰어넘는 영적인 지혜 곧 하나님의 능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도를 소개하였다.
이것이야말로 유대인들의 지혜와 헬라인들의 사상체계를 미련하게 만드는 참된 지식으로, 사람이 그들의 죄를 깨닫게 하여 마침내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1] 기록된바 ... 폐하리라 하였으니
바울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방법으로 인간의 지혜를 채택하지 않고 버리셨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사 29: 14 (LXX)을 인용하고 있다.
* 사 29: 14 -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다만 70인 역에서 '가려지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립소'(*)가 본 절에서는 '폐하리라'의 헬라어 '아데테소'(*)로 대치되고 있다.
이사야서의 문맥을 살펴보면 인간이 입술로만 경배하고 마음은 멀리 떠났으므로 인간의 지혜와 총명이 가려진다고 되어 있다.
* 사 29: 13 -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바울은 이 사상을 자신의 논쟁에 적용시킴으로써 독특한 방법으로 자신의 논리를 펴나가고 있다.
본문에서 '지혜'와 '총명'은 차이가 별로 없다. 의미상 전자는 뛰어난 마음 상태를 뜻하며 후자는 어떤 일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적 판단력을 의미한다(Morris).
이것들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들이다.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없애버린다는 사실을 예로 들어 인간의 지혜가 상대적이고 의존적(依存的)이며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사야서 이 부분의 배경은 유다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지혜로 애굽과 동맹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멸망하였음을 책망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는 전적으로 다른 것임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결국 본 절의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지혜를 믿고 살 때 자신들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버려두시겠다는 것이다.
즉, 아무에게나 하나님 지혜의 비밀을 가르쳐주시지 않겠다는 뜻이다.
고전 1 : 20 - 어디 있느냐?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
지혜 있는 자라고 할 때 지혜는 <소포스>인데, 여기서는 세상 기준의 지혜가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앎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는 지혜를 말한다.
고린도전서에서 가르치는 지혜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다.
보통 지혜라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세상에서 잘 되기 위하여 얻으려고 애쓰는 세상살이에 필요한 지혜(20절)를 말한다.
그러나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로서 세상을 구원할 최고의 지혜이며, 곧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속(2: 7)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지혜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앎으로써 생명을 얻게 하는 지혜(10: 15)가 있다.
1] 지혜 있는 자가 ... 선비가 ...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인간의 지혜가 갖는 한계를 명확히 제시한 후, 본 절에서는 그렇다면 십자가의 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고 질문한다.
여기서 '지혜 있는 자'란 바울이 헬라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22절).
'선비'의 헬라어 '그람마튜스'(*)는 '서기관'을 가리킨다.
* 마 23: 2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 눅 20: 39 -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 행 19: 35 -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율법에 능통하여 '율법을 가르치는 자'(teacher of the law, NIV)를 지칭하기도 했다. 흔히 서기관이라고 하며, 문자적으로는 글을 기록하거나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담겨 있는 성경의 진정한 의미를 아는 자가 없다는 뜻이다.
* 마 23: 2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 눅 20: 39 - 서기관 중 어떤 이들이 말하되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 하니
* 행 19: 35 -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용어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해하기가 적절한 단어였다.
'변론가'의 헬라어 '쉬제테테스'(*)는 무슨 문제든지 인간의 이성으로 해결하려 드는 사람을 가리키며 본 절에서는 지적인 노력으로 구원을 획득하려는 유대인과 헬라인을 동시에 지칭한다. (Mare).
이러한 용어들을 번갈아가며 사용한 것은 당시 고린도 교회가 헬라인들과 유대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헬라적 개념과 유대적 개념을 같이 사용해야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세상의'의 헬라어 '코스무'(*)는 앞 구절의 '세대'(*, 아이오노스)와 동의어로 원래 질서 정연한 배열을 의미하다가 나중에는 비기독교적인 세계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Robertson).
'아니냐'(*, 우키)는 '우'(*, '아니')의 강조형이다.
본 절에서는 의문문 초두(初頭)에 사용되어 긍정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수사적 의문문이 되었다.
바울이 여기에서 염두에 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다. 즉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의 사역은 세상의 지혜와는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냐? 라고 하는 말은 사 29: 14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지혜를 어둡게 하셨기 때문에 세상에서 자기 지혜로 구원 얻을 자가 없다는 뜻으로 한 말이다.
* 사 29: 14 -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
고전 1 : 21 -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전도의 내용뿐 아니라, 또한 전도라는 방식도 가리키는 것 같다.
전도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며 또 말로 전하는 방법도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은 전도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지혜와 웅변과 아름다운 말로 사람을 구원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의 방법인 전도로 구원해야 한다.
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이 구절은 해석이 난해하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테소피아 투 데우'(*)는 '하나님의 지혜로' 혹은 '하나님의 지혜 안에서' 등으로 직역할 수 있다.
그 의미는
Ⓐ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 '하나님의 지혜의 드러남 가운데서'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의 해석을 따르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 곧 하나님의 지혜라는 의미이다(Alford, Lightfoot).
Ⓑ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세상에 나타내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셨으나(롬 1: 20) 세상이 알지 못했다는 의미이다(Chrysostom, Meyer).
* 롬 1: 20 -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이 가운데 Ⓑ의 견해가 더욱 타당하다. 이 견해를 따라 해석하면 사람이 비록 창조와 섭리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에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구원하시는 지식을 얻는 데는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계시(啓示)는 분명하지만, 인간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할지라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함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간은 빛 가운데서도 눈이 먼 상태로 있고 자신의 지식 안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 롬 1: 28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의 지혜란 온 우주를 지으시고 질서 있게 운행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생각할 때 인간으로서 가히 측량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지혜 가운데서도 으뜸이란 인간을 구원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보여주셨음을 가르치고 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한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통하여 인류를 구속하시려는 것이야말로 자연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전도'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뤼그마토스'(*)는 선포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선포하는 내용도 가리킨다.
본 절에서는 전하는 행동 자체보다는 그 내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었다.
* 롬 16: 25 -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바울은 이러한 복음 전파가 '미련한 것'이라고 규정함으로써 기독교의 전도가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음을 가르친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세상 사람이 보기에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방법으로 인간을 구원하신 것이 미련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적 삶에만 집중하고 있으므로 영의 죽음과 영적 생명의 부활에 관하여 관심이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세상이 보기에 미련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깊은 지혜를 나타내셨고 그것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자들이 구원을 얻는 것을 기뻐하셨다.
바울은 말한다.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傳道)(케뤼그마)[전도 혹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전도 혹은 설교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
전도의 미련한 것이란 전도의 내용뿐만 아니라, 전도라는 방식도 가리키는 것 같다.
전도와 설교의 내용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죽으신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며 또 말로 전하는 그 방법도 사람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은 복음 설교와 복음 전파를 통해 사람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운 방법을 따라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지혜, 우리의 웅변, 우리의 아름다운 말로 사람을 구원하려 하지 말자.
미련하게 보이는 그 십자가의 말씀이 오늘날도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방법임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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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사람은 망설이지만 시간은 망설이지 않는다
잃어버린 시간은 되돌아 오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오늘도 내일도...순간 순간을 놓치지 말고
최고의 하루를 보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