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학교고3에 6,25 사변이 났고
초등학교 3,4학년 때 일로(日露)전쟁이 났고
중고다닐 때는 세계대전이니 역시 수학여행따윈 생각도못했다.
부산으로 피난을 갔으니 학교만 겨우 다녔지 감히 수학여행은 엄두도 못났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모두들 우리도 수학여행이라는 것 가보자고 의견이 생겨
경주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서울에서 경주까지의 여행이였으나 기차의 유리창도 없는 곳이 많아서
신문지로 유리창 대신 붇치고 갔으니 얼마나 추웠는지~~~~!!
그러나 즐겁게 경주에가서 불국사도 가고 여러 곳을 구경을 잘하고 왔다.
그러니까 입학은 부산에서 했지만 졸업은 서울로 돌아와서 했고
그 시절 나는 공부도 열심히 하지않는 날나리 학생이 였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그 증거로 내가 마국에 이민을 가서 집에 있었더니 아는분이
집에서 놀지 말고 찬값이라도 벌지 그러냐고 해서 미국은행(Union Bank)에 취직을 했다.
이력서에 공부 않던 영어실력이 창피해서 국문과 졸업이라고 했네.
그러나 그 짧은 영어가 효력을 봐서 은행에서 숫자를 찍는 일을 하는데 들어가자마자
서기로 승진을 하고 한국사람들이 들어오면 가르치는 supervisor 팀장으로 승진을 했다.ㅋㅋㅋ
그러나 내 상사는 "Young is using limited English라고 했다~~~~!!
내 남편은 미국이 싫다고 여러해 전에 서울로 돌아갔으나 나는 애들이 학교에 다니니
한국으로 돌아 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나이 55새때 조기 은퇴의 기회가 생겨 나는 은퇴를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 덕에 나는 미국에서 $1,700의 연금을 받고 있다.
참기를 잘 한것이지여~~~~!!
첫댓글 그시절에 그리 사셨다면
지금으로 치면 금수저 물고 태어나신 셈이지요.
거기다 공부를 열심히 하셨다면
지금쯤 외무부 장관 자리나
미국 대사로 근무하시다 정년퇴직을 하셨을듯...ㅎㅎ
와 부러워요~~~~종달새 선배님~~~~~^*^
은숙방장님께서 부럽다시니 황송한데여
역시 대한민국. 국민누나. 자격
있습니다.
1700불 약200만원. 우하 부럽습니다.
요즘 환율이 자꾸 내려가서~~~ㅠㅠㅠ
대단하십니다~~~^^박수 쫙쫙쫙~~~
대단하다고 하시니 고맙네여.
저힌 학교때 노일전쟁이라 배워서 일로전쟁이란 말이 참 생소합니다
똑같은 말인데요 ㅎㅎ
역시 사람은 어렸을때 배운게 평생을 가나 봅니다
그때는 기차에 유리창도 없었다니 상상이 안갑니다 아주 많이 추운 여행이셨겠어요
그 때는 일어만 쓰던 시절이였으니까요.
그런 시절이였고 꼭 수학여행을 가고 싶었었으니까여.ㅎㅎㅎ
역시 종달새 누님은 신세대 여성 이었고 선견지명이 탁월 했었군요 ^.^
ㅎㅎㅎ
대단하십니다.
미국에서 연금을 받으시다니~
미국에서 찬값이라도 벌자고 들어간 은행이 노후대책이 되었네요.
그랬네여.ㅎㅎㅎ
참으로
격변에 시대에 살았군요.
아직
글에서 삶의 힘이 보입니다.
건강 바라오며
선배님의 글
늘 기다리겠습니다.
글재주가 없어서 좋은 예기는 기대하지 마세여~~~~!!
격변의 시대를 살아오신 선배님은 미국에서 연금받는 애국자이십니다...ㅎ
ㅋㅋㅋ
옛말에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속담이 생각이 납니다.
참기를 참 잘하셨어요~
달리는 기차안에서 유리창이 없었다니 세찬바람에 얼마나 추웠겠어요?
이해는 안가지만,그런 격변의시대를 살아오신 산역사의증인임을 인정합니다.
맞습니다. 격변의 시대를살았다고 볼수 있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