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 말리 출신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아프리카 흑인으로는 처음 수상한 술레이마네 시세가 지난 19일(현지시간) 말리 수도 바마코에서 여든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국내 언론은 부음조차 전하지 않고 있다. 다음날 미국 일간 뉴욕 타임스(NYT)는 프랑스 영화감독이며 친구인 프랑수아 마르골랭이 아프리카 대륙 영화의 개척자이며 큰어른인 고인의 죽음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19일 아침에도 페스파코로 알려진 와가두구(Ouagadougou)에서 열린 범아프리카 영화 및 텔레비전 페스티벌에 앞서 두 상을 시상하는 기자회견에 심사위원장 자격으로 나타났던 터라 갑작스런 사망 소식이 놀랍기만 하다. 고인이 "얘기를 나누며 농을 주고받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낮잠을 잤는데 깨어나지 못했다고 마르골랭은 전했다.
반 세기 넘게 영화계에서 활동한 고인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Yeelen'(그의 고향 밤바라 말로 '빛' 또는 '밝음', 1987)을 개봉하면서였다.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1989년 스피릿 상 최우수 외국영화 후보로 지명됐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 작품을 “내 영화보러가기(moviegoing) 인생 중에 가장 크게 벌거벗겨진 경험”이라고 평가했다.
부산 해운대에 있는 영화의전당은 지난해 5월 '2024 아프리카영화제'를 열며 14개 작품의 하나로 상영했다.
마르골랭은 고인이 생애 마지막까지 일하고 세계를 돌아다니는 데 기운찼다고 말했다. 6개월 전에 고인을 만난 것이 마지막이었다고 털어놓은 마르골랭은 "고인은 한 번도 노인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시세가 연출한 첫 장편 영화는 'Den Muso'(아가씨, 1975)로 강간 당해 임신하는 바람에 가족으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청각장애 소녀 얘기를 그렸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은 2022년 연례 국제영화보존축제의 일환으로 이 작품 시사회를 열면서 시세가 "그의 데뷔작으로 한 방을 날리진 않았다"고 말했다. 말리 당국은 이 작품을 검열했고, 시세는 MoMA가 묘사한 대로 “날조된(trumped-up) 혐의들”로 잠깐 수감됐다.
그러나 네 번째 장편 'Yeelen'으로 고인은 일류 영화감독의 지위를 확고히 다졌다. 이 영화는 마술 능력을 갖춘 젊은 남자가 삼촌과 여행하며 마법사 아버지와 대결을 청하는 내용이다. NYT는 “산업 시대를 유일하게 암시하는 것은 대장장이의 존재 뿐인 현대 이전의 밤바라 문화 세계를 재창조한 것”이라고 적었다.
스콜세지는 이 작품이 세계 곳곳의 소외된 영화들을 복원하는 비영리 단체 월드 시네마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2023년에 “술레이마네의 작업은 내게 깊고 오래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고인은 1940년 4월 21일 바마코에서 태어났다. 칸영화제에 따르면 그는 세네갈 다카르에서 고교를 다닌 뒤 모스크바에 있는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유족으로는 자신과 함께 긴밀히 작업한 영화감독인 딸 파투와 마리암을 남겼다.
고인의 가장 최근 작품은 'O Ka'(우리 집, 2015)으로 칸영화제에 출품한 다섯 번째 작품이다. 이 작품은 경찰들이 시세의 네 자매를 어린 시절의 집에서 강제로 쫓아내는 과정을 그렸다.
2023년 칸은 고인을 프랑스감독협회가 시상하는 황금마차상(Carrosse d’Or)을 안겼다. 그에겐 세네갈 우스마네 셈베네 가 2005년 수상한 데 이어 아프리카 감독으로는 두 번째 영예를 차지했다. 시세는 같은 해 프랑스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감독 직업군이 당신이 만든 영화를 인정해주면, 내 생각에 예외적인 보상"이라고 말했다.
그 인터뷰에서 고인은 아프리카 출신의 다른 감독이 또 이 상을 수상하는 데 15년이 걸릴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아프리카 영화제작의 미래를 낙관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아프리카 영화제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프리카가 프랑스나 유럽이나 미국으로 옮겨갈 수는 없다. 아프리카는 이미지로만 옮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