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 쫓는 부채라는 것이 있나? 누구, 그런 것에 관해 들어 본 사람 있나? 나도 들어 본 적이 없어서 말이야. 들어 본 적도 없으면서 왜 물어 보냐고? 들어 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거든. 내 눈으로 보았다는 말이야. 보통의 둥근 부채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것은 아니다. 집에서 손으로 만든 것이야. 도톰한 골판지(라면 박스)로 되어 있으며, 가장자리는 노란 색 스카치 테이프로 감싸여있고, 손잡이도 제대로 달려 있다. 어느 집 아파트 현관문 근처에 매달려 있더라. 그 집 안 쪽이 아니라 바깥 쪽으로 말이야. 그리고 부채에는 검은 매직 잉크로 떡하니 “모기 쫓는 부채”라는 글자가 쓰여져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었으며, 그 글자 밑에는 “가져가지 마시오”, 또 그 밑에는 “505호”라는 글자가 쓰여 있더라. 나는 궁금해서 한번 만져 보았지. 약간 묵직했어. 그리고 뒤집어 보았더니, 뒷 면에도 똑 같이 세 줄이 쓰여 있더라고. 이 놈의 정체는? 물론 모기 쫓는 부채지. 그런데, 어떤 식으로 모기를 쫓냐 말이야. 주술(呪術)로? 예컨대 그 부채를 두 손으로 받들어 머리 위로 쳐들고 “모기야 물러가라 수리수리 사바하”라고 외친 후 한 발로 서서 땅에 침을 세 번 뱉으면, 반경 10미터 안쪽으로는 모기가 얼씬거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505호 현관문 앞에 갔던 것이지. 우리 아파트는 1605호로, 16층이야. 505호는 5층이고. 나는 11시가 훨씬 넘은 늦은 시간에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505호에서는 응답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나왔는데 상당히 경계하는 듯하더라고. “누구세요?” “1605호인데요.” “누구시라구요?” “1605호예요.” 저러면서 끝까지 안 열어주면 어떻게 하나 하고 약간 조바심을 내면서, 들고 있던 파운드 케익 봉지를 다른 손으로 바꿔들 때, 안에서 “아, 1605호!”라고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더군. 나는 안도를 했지. “됐다.” 여자가 문을 열어주면서 머드팩을 바른 얼굴을 내밀더군. “고마와서 이것을 들고 왔습니다.” 하면서 케익을 내밀었지. “어머, 뭐 이런 걸......” 나는 한, 두 마디 더 하고 돌아섰지. 그 때 문제의 부채가 보였던 거야. “모기 쫓는 부채” 나는 일단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 엘리베이터를 불러 놓고는 엘리베이터가 도착할 때까지 그 부채를 조사하였던 것이지. 만져도 보고, 뒤집어도 보고 하면서 말이야. 그냥 파리채 대신으로 쓰는 것일까? 모기가 벽에 앉아 있는 것이 보이면 그것으로 모기를 때려잡는다는 말이지. 그러나 그런 용도로 쓰기에는 그 물건이 너무 크고 무거우면서도 약하거든. 그렇다면 부채 표면에 모기를 유인하여 포획하는 특수 약품이라도 묻혀 있었나? 내가 만져 볼 때에는 그냥 평범한 골판지에, 평범한 테이프였는데......
오늘 따라 이상하게 출출한 느낌이 들어서 뭘 좀 사다 먹을까, 참을까 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겠어? 밤 1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말이야. 약간 불안하며 짜증나는 기분으로 문을 열어 보았더니 어떤 여자가 서서, 자동차가 어떻고 주차가 어떻고 하는 말을 하더라고. 나는 생각해 보았지. 내가 엉터리로 주차를 하고 올라왔나? 그렇지 않은데. 그렇다면 이 여자는 어째서 내 차를 빼달라고 여기까지 찾아 올라온 것이지? 옳거니, 그 차를 내 차라고 잘못 안 모양이로군. 그래서 나는 자동차 번호를 물어 보았지. 그랬더니 1605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거야. “잘못 오셨습니다, 제 차는 9457입니다”하고 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이 여자가 하는 말: “미등이 켜져 있어서 알려드리려고 왔는데, 이 집 차가 아닌 모양이네요.” 아차 싶었지. 황급하게 고맙다고 말하고, 그것으로는 모자라 몇 호에 사시느냐고 물어보는 척도 하였지. 이 아주머니는 미등이 켜진 채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한 대를 발견하고는 앞 유리에 붙어 있는 스티커에서 아파트 동수와 호수를 알아내어 그 늦은 시간에 찾아와 준 것이잖아? 삼례 인심 좋지? 나 같이 동네 물 흐려놓는 뜨내기도 섞여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이왕 내려가는 길에 뭘 좀 사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주머니에 넣고 나왔어. 하마터면 큰 일 날 뻔했던 차를 끌고 빠리바게뜨 ― 삼례에는 없는 게 없어 ― 에 가서 빵을 고르다가, 내가 오랜 만에 기특한 생각을 하나 하게 되었던 것이지. 파운드 케익(호도 파운드 케익 ― 8,000원)은 선물할 것이니 따로 담아달라고 말하고는, 나는 우리 또래의 빵집 주인에게, 주차가 어떻고, 미등이 어떻고, 방전이 어떻고, 아침 출근이 어떻고, 우리 동네 아줌마가 어떻고 하면서 한참이나 떠들어댔네.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은 거야. 나도 이젠 늙었지? 그런데, 4월 달에 모기가 있나? 아니, 4월 달이 문제가 아니야. 그 부채는, 거기에 걸려 있는 품새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겨울에도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던 것이 틀림없어. 그렇다면, “모기 쫓는 부채”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서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그 이름은 그 물건의 정체를 위장하기 위해 붙인 것이고, 그 물건은 전혀 엉뚱한 용도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예컨대 방범용 같은 거 말이야. 그것이 어떻게 도둑을 퇴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면 운동용?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것을 들고 태극권 같은 자세를 취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예술 작품? 전위 예술에 쓰이는 소품이라거나. 행위 예술이라고 하나? 그런 부채를 걸어 놓고 있다가, 손님이 와서 초인종을 누르면, 머드팩한 얼굴을 쓱 내밀면서 “어머, 뭐 이런 걸......” 하고 대사를 치는 퍼포먼스 말이야.
첫댓글 삼례에는 사람사는 냄새가 물씬 나네..글 보며 505호 머드팩 아줌마(?)가 참 스스럼 없고 정겹다고 느껴진다 글쎄 부채가 어떻게 모기를 쫓겠냐..그저 그러기를 바랠 뿐이겠지..그 모기 쫓는 부채와 같은 것은 이제 도시에서는 사라진지 오래인 듯하다..영태야 다음 주에 비온다니 자동차 창문 잘 잠그고 글구 미등도 잘 끄고~~ ㅎㅎ
우리 약국엔 모기 쫓는 팔찌는 있는데~~
모기 잡는 부채, 거 참 호기심 생기네, 여름에 모기가 많을때 다시 한번 연구해보면 어떨까?
자동차에 관한 행동은... 약간 수상타만, 그래도 영태가 치매에 걸릴 확률은 0에 가깝다고 확신 꽝! ㅎㅎㅎ~
매우 수상해. 차 찾는 것은 정말 어려워. 난 항상 노천 주차장에 세우면서도 말이야. 모기 쫓는 부채, 이상하지? 505호에 가서 물어보면 되는데, 어떻게든 내 힘으로 알아내 볼께. 알게 되면 다시 보고하마. 팔찌 효과있나? 505호 아줌마를 길에서 보면 인사를 해야하는데,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으니 참 내.....
다시찾아가 얼굴도 익히고 부채에 대해서도 물어보면 되겠네.. ― 삼례에는 없는 게 없어 ―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