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 So he got up and came to his father. But while he was still a long way off, his father saw him and felt compassion for him, and ran and embraced him and kissed him...
James Tissot
James Tissot 1836 ~1902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862) oil on canvas - 1862 private collection
The Prodigal Son in Modern Life: The Return (1882) oil on canvas — c. 1882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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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Harmensz. van Rijn
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68) oil on canvas (262 × 206 cm) — 1668-69 Hermitage, St. Petersb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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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1669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42) drawing with pen and brush (19 × 23 cm) - ca. 1642 Teylers Museum, Haarlem | |
Rembrandt Harmensz. van Rijn 1606 ~ 1669
The Return of the Prodigal Son (1636) etching (16 × 14 cm) - 1636 Rijksprentenkabinet, 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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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성경을 펼쳐 눈으로 읽어 마음에 둘 때, 머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 둘 있습니다.
첫째는 말씀이 기록되던 당시, 그 시대와 상황을 이해하고 그 글을 쓰도록 선택받은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에 최대한 가까이 가려는 노력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동일한 그 말씀을
오늘날, 지금 이순간, 여기서 내가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지요.
역시 동일한 작업이 진행됩니다.
내가 사는 이 시대, 현실이라고 하는 시점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상황에 대한 이해와 감각을 끌어옵니다.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저의 반응과 심정을 살핍니다.
아, 솔직히 이러한 작업을 의도적으로 인식하여 끌어오려고 노력하진 않는군요.
성경을 대할 때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이르는 과정입니다.
그러한 시각에서 저는 화가들이 그려주는 성화라는 영역에서
이를 저는 화가들의 '성경해석'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자들의 신학적 해석이 아닌 화가들의 작가적 해석인 거지요.
그들이 이해하고 묵상한 묵상의 결과물로서 작품이 세상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는 거지요.
본래 성경의 저자들에 의해 성경이 씌여진 그 영향력,
이차 해석되어 그려진 그림을 통한 영향력,
그것이 오늘날 제가 성경을 묵상하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을 통해 듣고 보는 하나님의 심정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창조주 당신의 언어일 것입니다.
이런 자연스런 사고의 과정과 신앙의 방식을 가진 제게
위에 올려드린 제임스 티소의 그림과 같은 그림은
참 친근하게 느껴지고 고맙게 느껴집니다.
화려하고 섬세하며 사실적인 묘사로 잘 알려진 그의 작품 속에 드러나지는 섬세함이
여기선 외형적 화려함으로 눈길을 끄는 것이 아니라 등장 인물들의 사실적 표정, 심상으로 이끌어 감동을 줍니다.
그런가 하면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그림은 '헨리 나우웬 신부님'의 저서, [탕자의 귀향]과 더불어 너무도 잘 알려져 있지요.
참도 무딘 것이 저를 사랑하시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제 마음입니다.
그런 저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저를 기다리시며 "너는 내 것이라" 하시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기 소원하는 마음으로 포스팅 하였습니다.
Posted(written) by Mizmor S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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