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미운 오리]
한인고등학교 2학년
김민혜
"주희, 준식이 그만 괴롭히고 니네 집으로 가! 이노무 지지배"
우리 할머니께서 나에게 가장 많이 하신 말이다.
주희, 준식이는 정말 귀여운 내 사촌동생들이다. 주희는 나보다 1살 어린 예쁜 여자동생이고 준식이는 4살 어린 귀여운 남동생이다.
내가 어렸을 때 주희와 준식이는 외할머니, 삼촌, 외숙모 이렇게 우리 집 앞에 살았었다.
온 동네를 여자깡패로 휩쓸던 나에게 주희, 준식이는 나의 '밥'이었다.
그 당시의 할머니 표현으로 하자면 내 성격은 "지랄 맞은 년"이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그런 할머니의 보물들을 건드리는 말썽꾸러기였던 것이다.
내가 주희네 집에 놀러갈 때면 주희와 준식이는 겁을 집어먹고는 할머니 뒤에 숨기 먼저 했었다. 어떤 날에는 주희에게 롤러브레이드 가르친다고 타기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태워 연습시키다가, 머리통 깨진다고 너나 타라는 불호령 듣고는 놀라서 도망 온 적이 있었는데 내가 무슨 생각으로 주희와 준식이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을까? 지금도 생각하면 너무 재밌는 일들이다.
피아노도 못 치면서 주희한테 피아노를 가르친 적도 있었다. 악보를 펴놓고는 틀릴 때마다 머리를 쥐어박았다가 할머니가 보시고 기겁을 하시고는 날 쫓아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었다.
우리 집과 주희네 집 사이에는 큰 놀이터가 하나 있다. 그 곳은 내가 집처럼 생각하고 뛰어 놀던 곳이다.
비록 지금 가면 몰라보게 바뀌어져서 아쉽지만 아직도 놀던 기억이 난다.
그 때 할머니께서 달려나오신 일도 종종 일어났었다. 그네를 밀어주다 준식이가 퉁겨져 나가 코피 나고 할머니한테 욕을 한바가지 얻어먹고는 울면서 집에 들어갔었다.
난 할머니의 미움을 독차지한 미운 오리새끼였다.
어떤 하루는 너무 서러워 지금까지도 생생한 기억이 있다.
늘 내가 미움 받았던 사실은 알았지만 그땐 너무 억울하고 서러웠다.
베란다와 창문을 오가며 주희와 준식 그리고 나와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며 한참 바쁘게 도망 다니고 있을 때였다.
오늘은 무사히 넘어가나 기대했었는데 '쨍그랑'하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서 창문을 올라가도록 도와주던 장독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그 주인공은 준식이... 할머니가 놀라셔서 달려오셨다.
행여나 준식이가 다쳤을까 준식이를 끌어안으며 토닥거리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다가 할머니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그 쏟아지던 욕들이 어찌나 서럽던지 준식이는 할머니 품에서 울고 나는 집으로 혼자 가는 그 길에서 울었다.
왜 그런 슬픈 기분이 들었을까?
나도 어쩌면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였을까?
한참을 그렇게 소란스러웠다. 늘 그럴 것만 같았던 시간이 조금씩 가고 있었나보다.
할머니께 혼나고 몇 번의 내 울음보가 터지고 내가 얌전해질 조짐을 보일 쯤이었을 것이다. 할머니께서 몸이 점점 안 좋아지셨고 병이 나셨다. 그리고는 일어나시는 모습 보단 누워있던 날이 늘어나게 되셨다.
그 때 내가 철이 없어서였는지 할머니가 아프셨을 때도 어김없이 찾아가 주희와 준식이를 괴롭혔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진심으로 할머니가 아프시다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마음을 갖고 찾아간 날 난 할머니 방에 들어갔다가 1분도 못 되어서 나와야 했다.
"민혜란년 나가라고 해라, 얼른!"
할머닌 아프신 중에도 그 말은 정확하게 하셨다.
내가 그렇게도 미우셨던 것일까? 정말 그렇게도...
할머니께 들었던 그 많은 욕과는 비교도 안 되는 슬픔에 정말 많이 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도 그 생각하면 약간은 서글퍼지기도 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몇 개월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또다시 주희와 준식이를 괴롭히러 갔을 땐, 그 어린 나이에도 뭔지 모를 '쏴∼'한 느낌...
그 많은 욕을 하신 할머니가 갑자기 보고 싶었다. 날 미워하신 할머니가 그 땐 그렇게도 밉고 야속했는데 그리고 나도 할머니가 너무 미웠었는데 그런 자질구레했던 작은 감정보다, 보고싶다 그립다라는 말이 더 진하게 남았었다.
엄마도 어렸을 때 매정하고 차갑던 할머니가 밉고 야속했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도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많은 것을 다시 느꼈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그 감정들을 말하지 않고 품으며 살아오셨다는 사실에 맘이 아팠다.
엄마가 나중에 말하셔서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할머니가 날 예뻐하셨다고, 그래서 그러신 거라고, 원래 표현 잘 안하고 못하신다고,
내 동생은 나와 반대로 하얗고 눈이 크다. 그래서 어렸을 때 엄마가 굉장히 예뻐하셨다. 그 때 할머니께서 하셨다던 말은 아마 평생 내 맘에 남을 것이다.
"넌 이년이 더 이쁘지이... 난 민혜란년이 더 이쁘다."
*인터넷 특성을 감안하여 단락구성을 무시하고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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