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바라보는 가을하늘이 청명도 하다.
푸르러 높고, 길게 보이는 양떼구름이 연한 곳에 하늘끝 지평선도 멀리만 보인다.
주섬주섬 행장을 꾸며서 문득 생각나는 곳으로 달려가기로 하였다.
불편한 眞實,
마음을 가위누르는 그 진실이라는 이름은 언제나 내 주위를 배회하고
또,실천적 접근을 애써 요구한다.
그로 인하여 내 반평생은 외로 갈 수 밖에 없었고
내 정체성은 경계인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
고은이라는 꽤 유명한 시인은 자신의 글의 모태는 백지라고 주장하던데
나역시, 누구의 요구도 없이 목적없는 만행을 했기로 그와 내용으로는
다를 바가 없다.
그래야지......
고개로 곤댓짓을 해대며 "나"이면서 또다른 나를 위하여
신발끈을 매어본다.
158km ...... 네비로 찍어 본, 목적지 까지의 거리이다.
외길로 걸어왔던 인생,역시나 고속도로 매표소부터가 속을 우빈다.
전에 다닐때에는 한 쪽은 자동이고 두 쪽은 수작업용 게이트였는데
오늘보니 두개가 자동이고 수작업용은 하나로 바꿔졌네.......또 인간이
기계에 자리를 내줬구먼,하고 쓴웃음을 지우며 고속도로로 들어선다.
비록 두어마디의 간단한 허드렛말 일 망정 주고받는 인사가 얼만데......
기어코 편리와 이익이라는 귀신들보다 정녕 못낫다는 말인가?
개운치않은 마음을 애써 보듬어 가며 악셀레이터를 밟기 시작한다.
충청도 괴산 (槐山) !
회화나무,양반수,느티나무.....
괴산이라는 처녀지를 목적지로 하여 출발하면서 그 이름 자체가 호기심을 끌었었다.
느티나무가 많은 동네인가?아님,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동네인가?
그러한 허접한 생각을 뒤로하고 원래 이 여행에 품고있었던
여러 연관된 사실관계를 정리해 보기로 했다.
조선후기의 3대천재로 칭송을 받았던 벽초(碧初)홍명희의 생가를 둘러보며
그가 지은 "임꺽정"이라는 불멸의 소설의 탄생과정을 짐작 해 보고자
발걸음을 내딛고 있지만,그것과 덧붙어 그의 부친이자 금산군수로 재직중
을사보호조약에 항의의 뜻으로 자살을 선택한 홍범식(洪範植)선생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싶은 뜻이 지밀했다는 것이 어쩌면 더 진한
가슴속 얘기일 수 도 있겠다........
홍범식은 무너져가는 조선왕조의 제단에 목숨을 내놓았고,벽초는 글로써...그리고 중국으로 망명해서 항일전선에 온몸을 던졌지만 결과는 참혹,그 자체였다.
월북해서 부귀를 누렸다는 이유로 집안전체가 6,25 중 총살로
몰살을 당하였으니......
비슷한 비유가 생각난다.
일제치하의 일본제국주의자들이,그리고 친일로 먹고살던 이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인물이 바로 의열단 단장,약산(若山) 김원봉이었는데
역시 같은 이유로 집안이 몰살을 당하였었지......
일제치하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무장독립투쟁에 가담한 지역은 바로 약산의
고향,밀양이라고 볼 수가 있고...... 또 밀양하면,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인물이
또하나 있었다.......
바로, 황용주(黃龍珠)!
이사람이 중요한 것은, 약산의 가까운 친척이기도 하거니와
또한 박정희와 대구사범 동기이자 일본육사 동창생이라는 점........
그러나 가장 핵심은 박정희에게 지속적으로 쿠데타의 동기부여를 해 줬다는 것 !
또한 황용주와는 일본유학시절 절친한 사이였지만 일본군 출신 박정희와는
죽는 그순간까지도 화해하지 않았던 독립군 출신 장준하까지........
박정희를 생각하면 또 육영수여사가 생각나는데 그의 부친 육종관이
천하에 내놓을만한 악덕 친일파 지주였다는 것......
참, 역사라는 이름이 가지는 이 아이러니 !
많은 사람들의 이름들이 머리속을 왱왱 오가고 있자니 머리가
지근 아파오고........잠시, 창을 열고 밖을 바라보니 누렇게 변해가는 山色과
그 비탈에서 내려오는 산가지들이 자못 조울 해 지는 마음과 조율 해 간다.
마음을 바꿔보려고 애는 쓰지만 벽초가 월북 직전에 했던 말이
긴 여운으로 가슴에 늘어 앉는다.
"이승만이가 구성한 정부에 친일파들이 반 만 있었어도 이곳에 남아 있을텐데..... "
괴산의 홍범식 선생의 古家이자 벽초의 生家이다.
조선시대 중부지역 양반가의 전형적인 주택양식이었다.
전형적인 양반가의 주택양식답게 뒤로는 넉넉한 동산이 있고
남향의 양지바른 곳에 사랑을 두었다.
그 전경 !
이곳은 대문(大門)......
보통 몇 개의 담을 두었다.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하인들이 사는 곳을 엄밀하게 나눠주는 역할을 하였다.
이곳은 사랑채......
말그대로 친구들이나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는 곳이고
주인이 하루중 주로 머물러 있던 곳이다.
사진에 보이는 사랑채는 3,1운동 당시, 괴산의 유지들이 모여 독립만세운동을 기획했던
역사적인 자리이기도 하다.
이곳이 中門,
사랑채로 들어서는 문이다.
주인은 낮에는 이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유객들을 상대하든가 하다가
저녁뜸이 들면 저 중문을 넘어 안채로 들어갔다.
이곳이 안채 !
집의 핵심인지라 가장 안쪽에 자리잡았다.
마님이 살던 곳이다.
저녁이면 바깥양반이 들어와서 어화둥둥 ~ 애기를 만들던 곳이다.
서방외의 남자들은 출입금지 !
조선前期만 해도 우리가 알고있는 상식과는 달리 적어도 집안내에서는 여권이 훨씬 쌨다.
여기는 광채,
보통 "광"이라고 부른다.
재물창고이다.
왼쪽이 뒤주이고 오른쪽이 김치광이다.
뒤주는 주로 쌀같은 것을 넣었고 壹,貳,參,肆,伍 ......같은 숫자를 써서
남은 잔량을 확인하곤 했다.
장독대와 서고(書庫)
뒤주의 정면모습 .......
김치광.......
우리 조상님들이 가장 애용했던 주식인지라
특별히 근처에 두어 수고를 덜하게 하였다.
사랑채(왼편)와 안채(오른편) 사이.........
짧고도 먼 길.........
안채를 들어갈 때에는 주로 기침이라는 수단을 사용해서
준비라는 신호를 보냈다.
어떻게 보면 가장 인간다운 소통 !
나에게
늘 어릴적을 되새기게 하는
밥솥...... 부지깽이...... 화목 ......
땅거미가 지고 사위가 어둑 해 지면
집이 없는 나그네가 또 잘 곳을 찾는다.
노래도 있지 않은가?
인생은 나그네길.............
시동이 걸려있는 내 애마는 주인의 심정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작은 소음으로 응석을 부린다.
어서 가자고...........
오늘은 여기,
그리고 다음에는 어느 허공에 매달린 달을 바라보며
송별가를 부르고 있을까 ?
감사합니다.
野汀,
j
첫댓글 야정님
역사탐방에 행차이신 가을 향기가 그윽하게 물들어져
우리들에 가슴속 심열을 울림으로 다독여 주는 펜에 자국이
어쩜 더 정날하게 역사에 현장 가슴으로 이야기하듯
나를 발견하며 정진에 발 걸음이 편안하게 해 주는 사색
가을에 여행길이 참 아름답고 멋 들어보여집니다 ^^
야정님에 깊이있는 글향이 어쩜 그리도 빛나올까요
남들에 흉내낼수없는 독특한 미소띤 모습이 연상되네요
건강 유희하시면서 가을 향기 듬북 담아가시길요
멋 들어진 글 향에 감사 드립니다 야정님
지 미소가 독특했던가요 ??
ㅎㅎㅎㅎㅎㅎㅎㅎ
얼굴이 좀 거북스럽스럽게 생겨서리
가능한 한 웃고자 한답니다.
향기님도 멋진 가을을 마음껏 만끽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문득 저곳으로 떠나고 싶어 집니다
너무나 상세하게 소개시켜 주셔서 더더욱 그런가 보아요
바쁜 일상에서 잠시 쉼을 가져보는 여유
우리네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되어요
잘 보았습니다
고운 밤 보내세요
어휴 ~~
여인네들은 지모양 돌아댕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장똘뱅이의 자세를 가져야 유람하는데 버겁지 않고 탈이 없답니다.
감사합니다 ~~ ^^
우리에게는 잊혀져 가는... 또한 교과서에서는 다루지도 않는...
역사기행을 하며 우리의 마음을 다잡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지는 않지만 그 가치는 오래토록 보존이
되어 후손에게는 올바른 정신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교육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네요...
남보다는 나를 위하고 정의보다는 실리를 챙기는 그런
정신을 조장하는 듯한 느낌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세상의 모든 일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가라는 조직도 약한 개인을 보호한다는 측면에서는 善이지만
다르게 풀리면 악의 축이 되기도 합니다.
근세의 잘못 엮인 실타래는 지 예측으로는 아마 몇세기 정도는
우리에게 지속적인 고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요......
답글을 적다가 문득 생각나는 문구가 있습니다.
씨알 함석헌 선생이 생전에 쓰던 말,
"백성이 깨어나야 된다~~~ "는 .....
그러나 지금의 사회현상으로는 요원한 이야기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이기심이 막판 끝장까지 왔다고 보거든요.....
감사합니다 ~~^^
여행길 돌아 한번쯤 가보고 싶네요^^ 고마워요^^
야정님^^ 건강하게 지내세요^^
재치와 위트가 넘치는 노을님 ~!
아마도 지가 이런저런 말씀을 안드려도 개인적으로는
즐겁고 유익한 하루하루를 진행하고 계시리라 믿어집니다.
게시판에 보이는 님의 흔적들은 정성과 애정,사랑을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
역사에 관해 해박한 지식과
몸소 발로 직접 그 현장을 밟아보는 야정님의 깊고 깊은 마음에 늘 감명 받습니다
역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들을 들려 주시는 야정님!
늘 건강에 유의하시기를 빌어 봅니다.
사업을 한다는 지가, 지난 한 달을 들여다 보면
위기와 기회,실패와 성공,슬픔과 기쁨이 뒤섞이는 애증관계가
똑같은 선을 밟아가며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지난 달에도,그리고 그 전 달 ,또 전 전달 마저도....... 말이죠.
슬픔의 강을 넘어서면 또다른 즐거움의 강이 있을 것이고......
희망과 기대는 사람이 살아가는 마지막 의지처입니다.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희망에 대한 결실이 생길 확률이
훨씬 많다는 것을 말하지 않는가하고 생각 해 봅니다.
正明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지기님 !
항상 건승하시고~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