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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현대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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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토 론 방 무(아) -> 유아로 -> 무아로 -> 유아로..
효진 추천 0 조회 158 14.09.09 19:37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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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9.09 21:53

    첫댓글 자기라는 의식이 없던 동물적인 상태???

    과연 동물에게 자기라는 의식이 없을까요?
    왜 동물들은 먹이를 놓고 싸우고
    짝을 놓고 경쟁을 하고
    질투를 하고...

    과연 동물이 자의식이 없을까요?
    나, 나의 것 이란 생각이 없을까요?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이 없을까요?

    한국에서 방영된 동물 농장이란 프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하이디라는 동물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여자가 나와서
    그 동물들의 사연을 듣고
    그 동물들과 주인 사이의 문제를 다 해결해 줍니다.
    개, 고양이, 말, 원숭이...

    따라서 제 생각에는 동물들에게도
    '자기'라는 의식이 분명히 있습니다.

  • 14.09.09 22:26

    부처님은 자기에 대한 반성의 결과로???

    부처님께서 사유를 하셔서 반성을 통해서 무아라고 이해하셨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군요!
    무아가 수행을 통해서 확인한 '실체적' 내용이시지
    생각을 통해서 만들어 낸 하나의 철학이란 말인가요???

    무아가 부처님의 생각의 산물이라니요?
    불교를 공부했다면서
    어떻게 이런 엉터리 같은 이야기가 어떻게 가능할까요?

    불성, 무아, 여래장, 주인공, 케왈라(독존)....
    모두 한 군데를 지칭하는 말이 아닐까요?
    유아를 주장한 것이 아니라
    '고정될 수 없어서 말로 정의될 수 없는 그곳'을 지칭한 것이 아닐까요?

  • 14.09.09 21:58

    소위 성품을 본다는 것이
    수행의 시작이겠지만
    과연 이게 끝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중간 과정으로서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면
    그것이 최종 결과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한에는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진리에 대한 이해는 비단 불교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슬람, 유대교에서도 신의 이를을 언어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
    꺼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언어, 개념으로 표현하면
    전체를 아우를 수가 없으므로...

  • 14.09.09 21:51

    현상적으로는, ‘없던’ 자아가 ‘생겼다’가 다시 ‘없어진’ 것이다???

    현상 자체는 변한게 하나도 없다.
    단지 인간들의 인식이 변화한 것 뿐이다.
    누가 뭐라고 했어도 무아일 뿐이다!

  • 14.09.09 22:08

    ‘현대과학이라는 새로운 눈’을 얻은 21세기 인간이 새로운 세상을 보기는커녕???

    현대 과학이란 도구는 오히려 인간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반쪽짜리 바보로 만드느데 일조한 것은 아닐까?

    강교수의 글을 읽어보니
    일부 과학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식의 윤회등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예를 든 과학적인 사실은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인간이, 존재가 무엇인지 이해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척 섯부른 주장인것 같다.

    그의 무아설은 불교적인 용어를 사용하지만 마치 단멸론 같은 느낌을 주고 있더군요!

  • 14.09.09 22:16

    우리가 DNA를 알고 난 이후에 마치 생명현상을 다 이해한 것으로 묘사한다.

    대체 DNA란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났는가?
    우리의 정신이란 무엇인가?
    뇌의 작용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많은 것을 과거에 비해 알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아는 것에 비해 훨씬 크다.

    S56:31 심사빠 숲 경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것들 가운데
    내가 가르치지 않은 것이 훨씬 더 많다. 내가 가르친 것은 아주 적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무엇을 가르쳤는가?

    비구들이여, 나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가르쳤다.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가르쳤다.

  • 14.09.09 22:18

    나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이라고 가르쳤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왜 나는 이것을 가르쳤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고, 염오로 인도하고, 탐욕의 사라짐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가르쳤다.”

  • 작성자 14.09.10 01:09

    저는 강교수가 어떤 말로 설명을 하던.. 그가 말하려는 바..
    무(아) -> 유아로 -> 무아로 -> 유아로.. 는 방향을 바르게 잡은 것으로 봅니다..^^

    다만 석가세존께서 유아가 주류인 무아를 가르친 것은 상당한 갈등을 야기한 만큼.. 금방 세간의 인정을 받은 게 아니듯..
    그 다음에 전개되는 유와 무의 갈등은 항상 있었던 걸로 압니다.
    마찬가지로 지금도 유아와 무아의 갈등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지요.

    그 말은 유아든 무아든 상대를 알고 자기 주장을 펼치기기에 불자라 하더라도 어느 게 옳은지.. 판단하기 어려워졌습니다.

  • 14.09.10 05:10

    시절따라 변하는 것은 중생의 알음알이 분별이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닐 것입니다.
    하물며 열반의 경지가 변함이 있겠습니까.

  • 14.09.10 13:11

    부처님 출현 전 세상의 모든 동물과 인간들은
    천신까지 포함해서
    내가 이 세상을 경험하는 자로 알고 행동했고,
    부처님께서 나라는 것이
    세상을 경험하는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무상한 것을 나로 알아서 괴롭다.
    무상한 것이 나란 존재가 아니다.
    라고 설명해 주신 후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유아의 상태이고,
    불자들 가운데서는
    무아에 대한 이해에 헷갈림이 있을 뿐 아닐까요?

  • 14.09.10 08:30

    이미 앞서 말씀드린
    하이디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찾으실 수 있는데

    동물들의 마음은
    사람들에 비해 단순해 보이지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물의 자기 보호 행동이란
    나의 감각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혹은 화내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곳은 아닐까요?

  • 작성자 14.09.10 19:14

    동물에게도 자아 의식이 있는지.. 없다고 단정짓는 것은 문제가 있겠지요.
    자아라는 말은 알지만.. [자아] 의식이 어디까지 말하는 것인지 그것은 서로 이해가 된 상태가 아니니..^^

    그런데 강 교수가 말하는 "자기라는 의식이 없던 동물적인 상태에서 ‘자기라는 의식’이 생기고," 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알 수 있습니다. 마치 아기가 자라면서 자아라는 의식이 점점 더 드러나게 되는데.. 그렇게 자아라는 의식이 알 수 있도록 드러나기 전을 프레 자아(무) 시대라고 이름 한 것이라는 겁니다.

  • 작성자 14.09.10 19:16

    그 말은 두번째 나오는 "유아(有, BC 1000, " 를 보면 더욱 뚜렷해 집니다.
    거기에 나오는 유아는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몸은 생멸하지만 그런 몸을 전전하는 한상하는 아트만을 보면서 유아라고 하지요.

  • 작성자 14.09.10 19:18

    부처님께서 가르치는 무아는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을 부정하는 것만은 아니지만..
    우파니샤드의 아트만으로 보면 세존께서 가르치는 무아가 무엇인지 보다 선명하게 이해됩니다..^^

  • 작성자 14.09.10 19:32

    이어지는 "유아(有, AD 100, 유아론적 불교 출현)" 과 "무아(無, AD 660, 혜능출현)" 이 나에게는 조금 애매한 구분으로 보입니다.
    나가루주나의 반야공이 나오던 시대가 CE 2, 3세기 경인데.. 용수보살님이 비판한 상좌부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혜능조사가 부정한 유는 당시 어떤 불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인지? 선명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 주장이 작자가 의도하는 근본 주장을 흐리게 할만큼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기에 작자의 의도를 아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현대를 강교수처럼 "유아(有, 현재 만개상태)로 변천한 것이다." 로 보질 않고..
    유아와 무아가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시대로 봅니다.

  • 작성자 14.09.10 21:38

    혜능 출현 전을 유아로 보는 배경을 강 교수는 이렇게 설명하네요.

    "그것도 자그마치 우주크기의 아我인 ‘브라흐마(梵)’의 출현이다.
    물론 불성, 여래장, 주인공이니 하는 말로 교묘히 변장·위장을 하고 나타났다. "//본문

    곧 대승불교 출현을 유아로 복귀로 본다는 겁니다..^^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강교수가 간과하고 있는 게 있습니다.

  • 작성자 14.09.10 21:29

    @효진 대승불교가 나오기 전인 상좌부 불교의 주체는 수행자인 반면에..

    대승불교에서 주체는 보살과 보살의 대상인 일반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대승경전은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주로 일반인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기술되고 있다는 겁니다.

  • 작성자 14.09.10 21:35

    @효진 물론 대승불교의 유식학을 전하는 해심밀경은 수행자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그것은 대승불교를 '상구보리 하화중생'할 때.. 유식학은 상구보리 내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요.

  • 작성자 14.09.10 21:43

    물론 불성, 여래장, 주인공이니 하는 말로 교묘히 변장·위장을 하고 나타났다. "//본문

    그러기에 강교수가 말하는 불성이나 여래장, 주인공을 마치 실체가 있는 것처럼 받아들이는 자는 일반인의 세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실체가 없는 무아로 알아듣는 것은 보살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같은 말에 대해 보살과 일반인은 전혀 다른 이해를 하니.. 말로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또 보살과 일반인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유아로 살아가면 일반인이라 하고, 어느 순간 무아를 이해하고 그렇게 살아려 하면 보살이라 불리는 것이니..

  • 작성자 14.09.10 21:44

    아무튼 이런 대승불교의 맥을 잡지 못하고.. 불성, 여래장, 주인공을 실체가 있는 것으로만 받아들여..
    그것을 유아라 하고 글을 전개하면 바른 결론에 이를 수 없겠지요.

  • 14.09.11 13:57

    불교교리적 측면에서 대단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한때 교리공부를 한다고 이책 저책을 보았는데, 읽을수록 헤깔리더군요.
    심지어는 같은 불교테두리에 있다고 하는데 10만 8천리입니다. 물론 제 수준에서요.^^
    더이상 책을 찾아 읽기를 포기하고,

    불교는 양파까기가 아니라,
    양파를 까니깐 당근이 나오고,
    당근을 잘라 보니깐 감자이고,
    감자껍질을 벗겨 보니깐 고추더라하는
    좌절감에 젖어있을때
    어느날 불현듯 위와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브라만교)--무(석가모니부처님)--유(부파불교)--무(중관)--유(유식, 여래장, 불성, 참나,진아 etc)

  • 14.09.11 13:56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으로 치부는 하였으나
    이렇게라도 정리를 하고 나니깐
    다시 공부에 흥미가 생기더군요.()()()

  • 작성자 14.09.12 01:18

    @king콩 우리끼리 하는 말이지만..
    공부라는 게 일어났다 꺼지구.. 다시 일었났다고 또 꺼지구.. 이게 익어가는 건지.. ㅎㅎㅎ^^
    전생의 뭔 업이 있어 끊지를 못하나.. 하면서 지나가지 않던가요?..^^

    레고처럼 나중에 가면 다아 부술 지언정.. 여기서는 뭔가를 세워나야 고치던지 다시 만들던지 할 것입니다..^^

  • 14.09.12 11:29

    @효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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