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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몸의 갖춰짐과 사라짐
허준은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는 조선시대의 신체관을 완성한 인물이다. 퇴계 이황이나 율곡 이이 등의 유학자가 성리학적 세계관과 윤리관을 정립했듯이, 그는 생명관과 신체관을 정립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가?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원천은 도대체 무엇인가? 왜 생명은 노쇠하는가? 노쇠를 피해 다시 생명의 불꽃을 되살리는 방법은 무엇이며, 그 원리는 어떤 것인가? 허준은 질병을 이해하여 처방 내리기에 앞서 그보다 본질적인,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내경(內景)」편의 '신형', '정', '기', '신' 등 네 문(門)은 주로 이 주제와 관련된다. 이 가운데 '신형' 부분에서는 사람 몸의 갖춰짐과 사라짐에 관해 논의한다. 아울러 특수한 양생법을 사용하면 몸의 노쇠를 막고 건강과 장수를 누릴 수 있다는 관점에서 복식(服食), 내단(內丹), 복이(服餌) 등 구체적인 양생 방법의 원리와 테크닉을 제시한다.
『동의보감』의 본문은 그림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음의 '신형장부도'가 그것이다. 그 그림을 보고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 몸 바깥에 머리눈, 코, 귀, 입이 있고, 몸통에 배꼽외형
몸 안에는 오장(五臟)인 간, 심장, 비(脾), 폐(肺), 신(賢)이 있고 육부(六勝) 가운데 위, 소장, 대장, 담(膽), 방광 등 다섯 부(勝)가 위치한다. 육부 중 나머지 하나인 삼초(三焦)는 특정한 부위가 없으므로 그려져 있지 않다. 이밖에도 대변과 소변이 통하는 길인 곡도(穀道)와 수도(水道)가 그려져 있다.
몸 안 기관 가운데 특히 주목할 부분은 척추의 삼관(三關) 부위이다. 이곳은 양생을 위해 기를 수련할 때 정기가 오르내리는 길이다. 척추 맨 아랫부분을 미려관(尾間關), 중간부분을 녹로관(轆轤關), 맨 윗부분을 옥침관(玉枕關)이라 한다. 옥침관은 정신 활동을 주관하는 뇌(腦)로 연결된다.
오장, 육부, 인후내경
위에서 말한 신형장부도는 분명히 해부도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양 해부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어떤 이는 그것이 서양 근대 의학의 해부도에 비해 정교함이 떨어진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같은 그림이라도 추구하는 목적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서양 해부도가 기계론적 해부도라면, 신형장부도는 철저히 기능적 해부도이다. 여기서는 구조를 상세히 그려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으며, 몸 안의 기가 어떻게 비롯되며, 그것이 어떻게 오장육부 등 생리 작용과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실제로 이 그림은 『동의보감』 「내경」편의 전반적인 구성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된다.
신형장부도에는 몸의 세세한 부분이 나타나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동의보감』은 그려지지 않은 부분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의 둥긂을, 사람 발이 각진 것은 땅의 각짐을 본받는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으니 사람에게는 사지가 있다. 하늘에 오행이 있으니 사람에게 오장이 있으며, 하늘에 여섯 극점이 있으니 사람에게 육부가 있다.
하늘에 여덟 방위에서 부는 바람[八風]이 있으니 사람에게 여덟 군데 마디[八節]가 있고, 하늘에 아홉 별이 있어 사람에게 아홉 구멍[九穴]이 있다. 사람의 열두 경맥(經脈)은 하늘의 12시를 본받고, 사람의 스물네 개 혈(穴)자리는 하늘의 24절기를 본받는다. 또한 하늘에 365도가 있기 때문에 사람에게도 365관절이 있다.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 눈과 귀가 있다. 하늘에 낮과 밤이 있듯이 사람에게 잠듦과 깸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기쁨과 노함이 있다. 하늘에 비와 이슬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눈물과 콧물이 있다. 하늘에 음양이 있듯이 사람에게 추위와 신열(身熱)이 있다. 땅에 샘물이 있듯이 사람에게 혈맥이 있으며, 땅에서 초목이 자라듯 사람 몸에서 털과 머리카락이 자란다. 땅에 금석(金石)이 있듯이 사람에게 치아
손사막(581~682)의 글을 인용한 이 문장은 대우주와 소우주의 관계를 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신체 부위 중 오장육부 이외에도 사지, 12경맥, 24혈자리, 365관절은 물론이고, 진액
의학의 대상은 몸이다. 따라서 『동의보감』은 책 첫머리에서 몸이 어떻게 생기는지 묻는다. 아이는 부모에게서, 부모는 또 그들의 부모에게서……. 이렇게 생명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생명의 근원은 결국 우주의 근원과 닿는다.
우주의 생성 과정 중 생명은 어느 단계에서 생겨났는가? 다른 보통 의서와 달리 『동의보감』은 생명의 궁극적인 기원에 대한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의학 서적이 아닌 『주역건착도(周易乾鑿度)』나 『주역참동계주해(周易參同契註解)』, 『주역(周易)』, 『열자(列子)』 등 사상서에 담긴 우주생성론에서 생명의 근원을 찾는다.
우주와 생명의 형성 단계는 기(氣), 형(形), 질(質)이 생기는 시기에 따라 태역, 태초, 태시, 태소 등 넷으로 나뉜다. 기가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태역(太易), 혹은 홍몽(鴻濛)이라고 한다. 이때는 아직 아무 것도 생기지 않은 시기이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비로소 무엇인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것이 바로 기이다. 이처럼 기가 생성되는 상태를 태초(太初)라 한다. 기가 생기면 형체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며, 이때를 태시(太始)라 한다.
아직 기와 형체가 서로 분리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혼륜(混淪)이라고도 한다. 형체가 갖추어지게 되면 만질 수 있는 물질이 생기게 되며, 이때가 마지막 단계인 태소(太素)이다. 이 중 생명은 이미 우주의 시초인 태역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생명이 곧 우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은 그보다는 나중 단계인 태소 때부터 생긴다. 병이란 기의 부조화 상태이며, 그렇기에 기와 형체가 갖추어진 이후에야 생긴다.
아기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기는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질문에 이어 『동의보감』에서 당연히 던지는 질문이다. 물론 하늘과 땅의 정기가 새 생명의 시원이 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는 천지의 정기가 어버이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정기는 양(陽)의 정화인 혼(魂)이 되고 어머니의 정기는 음(陰)의 정화인 백(魄)이 된다. 양과 음, 더 정확히 말해 혼과 백이 화합하면 새 생명이 잉태된다.
임신 기간은 열 달, 그 동안 태아는 어떠한 변화를 겪는가? 『동의보감』에서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임신 한 달이 되면 태가 졸아든 소의 젖과 같고, 두 달이 되면 오얏나무 열매만해진다. 석 달이 되면 사람 형태가 이루어지며, 넉 달이 되면 남녀가 구별된다. 다섯 달이 되면 뼈와 힘줄이 생기고 여섯 달쯤 되면 머리카락이 생긴다. 일곱 달에는 혼의 작용이 있고 오른손을 움직인다. 여덟 달에는 백의 작용이 있고 왼손을 움직인다. 아홉 달이 되면 몸이 세 번 돌아가며, 열 달에는 그 모든 것이 갖추어지며 모체로부터 떨어져 해산한다.
이런 설명은 오늘날 의학에서 열 달 동안 태아의 발생 과정을 관찰하여 기술한 것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는 태아의 발육을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설명했기 때문이다.1)
만일 아기가 열 달에 못 미치거나, 열 달을 넘겨서 태어나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그 아이의 인품이나 운수의 길흉과 관련된다. 열 달을 넘겨 태어난 아이는 잘 살면서 오래 살고, 열 달이 차기 전에 태어난 아이는 가난하게 살면서 일찍 죽는다. 달을 넘겨 태어난 아이는 상등 인품을 갖추게 되며, 달을 채우고 태어난 이이는 중등 인품, 달을 못 채우고 태어난 아이는 하등 인품을 갖추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칠삭둥이니 팔삭둥이니 하는 말의 의학적 기초를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 몸의 각 부위는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동의보감』은 이 질문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흙, 물, 불, 바람 등 4대 원소를 주축으로 하는 불교 의학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
힘줄, 뼈, 힘살, 손발톱, 털, 이 등 딱딱한 것은 모두 흙 기운에 속하며, 정액, 피, 콧물, 진액 등 흐르는 것은 모두 물 기운에 속한다. 호흡과 체온 등은 불 기운에 속하고, 정신 활동은 바람 기운에 속한다.
사람은 이 네 가지가 배합되어 생명을 유지한다. 흙 기운이 왕성하면 뼈가 쇠처럼 굳고, 물 기운이 왕성하면 정액이 구슬처럼 맑다. 불 기운이 왕성하면 기운이 구름처럼 뻗치며, 바람 기운이 왕성하면 지혜가 많아진다.
사람이 늙어 죽고, 수명에 한계가 있는 것은 하늘로부터 받은 원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체로 원기는 40세까지 왕성해지지만, 그 나이를 넘기면서 쇠약해지기 시작한다. 40세를 넘기면 어떻게 원기가 쇠약해지는가?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의학의 제왕인 황제(黃帝)와 그의 스승인 기백(岐伯)의 문답을 싣고 있다.
40세 이후 오장육부와 12경맥의 왕성함이 정지되고, 땀구멍이 성겨지기 시작하고, 영화가 퇴락하여 차차 흰머리가 생겨나고, 시력이 떨어지며…… 근심과 슬픔이 많아져서 눕기 좋아하며…… 피부
태어나면서 하늘에서 받은 기가 마르기 때문에 죽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왜 사람마다 수명이 다른가? 옛 사람은 100세도 넘게 살았는데 왜 요즘 사람은 50세만 되어도 헐떡거리는가? 왜 갑(甲)은 장수를 누리는데 을(乙)은 요절하는가?
『동의보감』은 사람 수명의 차이를 두 가지 요인으로 설명한다. 첫째는 천명(天命)이 다르기 때문이다. 천명은 부모를 통해 실현된다. 아버지는 하늘이 되고 어머니는 땅이 되는데,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혈(血)이 합쳐져 아이를 만든다. 만일 부모의 원기가 모두 좋으면 그 자녀는 오래 살 수 있다. 반면에 부모의 원기가 모두 쇠약하면 잘 보양해도 짧은 수명을 면할 수 없다. 이런 견해는 좋은 유전인자를 받아야 오래 산다는 오늘날의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둘째는 섭생(攝生)하는 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최상의 원기를 가지고 태어났다 해도 음식을 제대로 먹지 않는다면 천명대로 살 수 없다. 옛 사람이 모두 100세 수명을 누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양생하는 도리를 잘 알아 음양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았고, 몸 단련에도 능숙했다. 또 음식을 먹는 데도 절도가 있었으며, 일상 생활도 규칙적이었다. 반면에 지금 사람들은 어떠한가? 술을 물 마시듯 하고, 취한 상태에서도 성생활을 마구 즐겨 정액을 함부로 낭비하여 그 진기를 간직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동의보감』은 요즘 사람이 50세도 못 되어 쇠약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옛 사람'이란 황제(黃帝)가 살던 시대보다도 훨씬 앞선 시대 사람을 말하고, '지금 사람'이란 먼 옛날 황제가 살던 시대의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지금 사람'이란 『동의보감』을 편찬하던 시기인 16세기 말 사람을 지칭한다 해도 전혀 다를 것이 없다. 현대인의 평균 수명이 과거보다 수십 년 더 늘었지만, 여전히 70~80세를 넘기지 못하는 것은 현대인 또한 섭생의 도리를 잘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양생의 가르침을 단지 과거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의학 최고 경전인 『황제내경』2)은 「소문」과 「영추」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소문(素門)」에서는 '늙으면 왜 자식을 낳지 못하는가'에 큰 흥미를 보이고 있다. 『동의보감』도 이 질문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로무자(年老無子)'라는 항을 설정하여 황제와 기백의 문답을 싣고 있다.
황제와 기백의 문답 요점은 늙어가면서 하늘로부터 선천적으로 받은 생식력이 고갈되기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로부터 받은 생식력은 본문에서 '천계(天癸)'라는 말로 표현된다. 여기서 '천'이란 하늘을 뜻하며, '계(癸)'란 십간(十干)의 열 번째로서 오행으로 따지면 수(水)에 해당된다. '천계'는 남자에게는 정액, 여자에게는 월경혈(月經血)로 구현되며, 오장 가운 데 신이 이를 주관한다.
사람은 일정한 나이가 되어 신의 기운이 왕성해져서 천계가 생기면 생식 능력을 갖게 된다. 반면에 나이가 들어 생식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신의 기운이 쇠약해지면서 천계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여자는 7의 배수로 신의 기운과 천계의 생장 쇠약이 결정되며, 남자의 경우에는 8의 배수로 신의 기운과 천계의 생장 쇠약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여자는 7세가 되면 신의 기운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며, 14세가 되면 천계가 와서 월경을 제때에 하게 되므로 아이를 낳을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남자는 8세가 되면 신의 기운이 왕성해지기 시작하며 16세가 되면 천계가 와서 정액이 나와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그런데 여자는 49세(7×7)가 되면 신의 기운이 쇠약해지고 천계가 약해져서 월경이 없어지므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며, 남자는 64세(8×8)가 되면 천계가 끊어지고 정액을 낼 수 없으므로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다.3)
『동의보감』은 사람의 외형과 피부색을 보고 건강함과 그렇지 않음을 판별할 수 있다는 학설을 취하고 있다. 이 학설에 따르면 키 큰 사람은 작은 사람만 못하다. 또한 우람한 사람이 왜소한 사람만 못하며, 살찐 사람이 마른 사람만 못하다. 얼굴과 피부색이 흰 사람은 까만 사람만 못하다. 아리따운 사람은 씩씩한 사람만 못하다. 엷은 사람은 짙은 사람만 못하다. 왜 그럴까? 살찐 사람은 습한 기운이 많은 반면, 마른 사람은 불 기운이 많다고 보는데 불 기운은 생명력을 지피는 것으로, 습한 기운은 생명력을 잠식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흰 사람은 폐의 기운이 허약하고 까만 사람은 신의 기운이 풍족하다고 봄으로써 수명에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또한 『동의보감』에서는 몸의 형체, 기혈, 피부, 맥의 크기, 뼈
먼저 자기 몸의 형체와 몸 안의 기가 서로 부합하는 사람이 오래 산다. 또한 살갗과 힘살이 부합되면 오래 산다. 마찬가지로 혈기와 경락이 형체보다 튼튼하면 오래 산다. 형체가 충실하고 살결이 부드러운 사람은 오래 산다. 형체가 충실해도 살갗이 팽팽한 사람은 일찍 죽는다. 형체가 충실하고 맥이 크고 굳건한 사람은 오래 산다. 그러나 형체가 충실해도 맥이 작고 약한 사람은 기가 쇠약한 것이고 기가 쇠약하면 위험하다. 형체가 충실해도 광대뼈가 나오지 않은 사람은 뼈가 작으며, 뼈가 작으면 일찍 죽는다. 형체가 충실하고 큰 힘살이 단단하면서도 구별이 되는 사람은 힘살이 단단하니, 힘살이 단단하면 오래 산다. 형체가 충실하여도 큰 힘살들이 구별이 없고 단단하지 못한 사람은 힘살이 연약하니, 힘살이 연약하면 일찍 죽는다.
맥의 형상만으로도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을 가려낼 수 있다. 성질이 급하면 맥도 급하고 성질이 느긋하면 맥도 느리다. 맥이 늘어지고 느리게 뛰면 오래 살고, 맥이 급하고 자주 뛰면 오래 살지 못한다. 맥이 급하고 자주 뛰는 사람은 기혈이 허해지기 쉽고 몸 안 생명의 기틀이 멎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에 맥이 느리고 늘어진 사람은 기혈이 고르고 생명의 기틀이 잘 상하지 않는다.
『동의보감』은 이 같은 맥 형상의 이치를 옛 철인이 말한 밀물·썰물과 인간의 호흡에 비유한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은 천지의 호흡인데 하루 두 번 오르내릴 뿐이지만 사람은 하루에 1만 3500번 숨을 쉰다. 때문에 천지의 수명은 오래 가고 끝이 없지만 사람의 수명은 아무리 길어도 100세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 그것이다. 『동의보감』에서 이 말을 소개한 의도는 분명하다. '느긋하게 살아라. 그리고 정신을 딴 데 쏟지 마라. 그러면 오래 살지니……'
사람은 천지의 좋은 기운을 받고 태어나며 음양에 의해 형체를 이룬다. 몸을 이루고 유지하게 하는 기운은 성질에 따라 정·기·신,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정(精)은 몸의 근본이 되고 기(氣)는 신(神)을 주관한다.4)
정·기·신은 한정되어 있어 많이 쓰면 말라 없어진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촛불과 제방에 비유한다. '정·기·신이 말라 없어지는 것은 초가 다 타면 불이 꺼지는 것과 같으며, 둑이 무너지면 물이 고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어서 『동의보감』에서는 '수양하는 사람이 자기 몸을 수양한다는 것은 곧 정·기·신의 세 가지를 단련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양생의 원리는 나라를 다스리는 이치와 같다. 『동의보감』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가슴과 배 부위는 궁실(宮室)과 같고 팔다리는 교외(郊外)와 같으며, 뼈마디는 온갖 관리와 같다. 신(神)은 임금과 같고, 혈은 신하와 같으며, 기는 백성과 같다. 자기 몸을 간수할 줄 알면 나라도 잘 다스릴 수 있다. 대체로 백성을 사랑함으로써 그 나라가 편안하듯 자기 몸의 기를 아껴 씀으로써 그 몸을 보존할 수 있다. 백성이 흩어지면 나라가 망하듯 기가 마르면 몸도 죽어버린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듯 망한 나라가 온전하게 회복되기 힘들다.
훌륭한 군주는 재난이 생기기 전에 막는다. 마찬가지로 양생의 원리를 지키는 사람은 병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관리한다. 둘 다 일이 생기기 전에 대책을 세우며, 최선을 다했으나 혹여 잘못된 경우에라도 그 일을 추궁하지 않는다. 몸 안 장부(藏府)의 운용도 국정과 비슷하다. 오장육부는 각자 직위와 맡은 일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장은 군주에 비유되니 신명(神明)이 여기서 생긴다. 폐는 재상이나 왕실의 스승에 비유되니 조절 작용이 여기서 생긴다. 간은 장군에 비유되니 꾀와 묘책이 여기서 생긴다. 쓸개는 사리를 판정하는 기관에 비유되니 결단성이 여기서 생긴다. 전중(膻中)은 신하를 부리는 기관에 비유되니 기쁨과 즐거움이 여기서 생긴다. 비위(脾胃)는 창고에 비유되니 5가지 맛이 여기서 생긴다. 대장은 수송 기관에 비유되니 변화가 여기서 생긴다. 소장은 받아서 담는 기관에 비유되니 물질을 소화하여 내보낸다. 신은 강함을 만드는 기관에 비유되니 기교가 여기서 생긴다. 삼초는 도랑을 뚫는 기관으로 비유되니 물길이 여기서 나온다. 방광은 지방관에 비유되니 진액(津液)을 저장하였다가 기화시켜 내보낸다.
이 12기관5)
황제(黃帝)는 말한다. 내가 듣건대 상고시대에 진인(眞人)이 있었다. 그는 자연 법칙을 잘 알아 음양을 잘 파악하였고, 정기를 호흡하여 홀로 서서 정신을 지켜 몸과 기운이 한결같았으므로, 수명이 하늘, 땅과 같아 끝이 없었다. 이는 그가 양생하는 법칙에 맞추어 살았기 때문이다.
중고시대에는 지인(至人)이 있었다. 그는 덕을 순박하게 하고, 도를 온전하게 하며 음양에 잘 조화하였다. 사철의 기후 변화에 잘 맞추어 생활하였고 세속을 떠나 정(精)을 간직하고 신(神)을 온전히 하여 천지 사이를 오갈 수 있었으며 먼 곳의 일까지도 보고 들었다. 그리하여 그는 오래 살았으며 건강해서 진인에 귀속되었다.
그 다음에 성인(聖人)이 있었다. 그는 천지 조화에 맞추어 지냈으며 병을 일으키는 8풍각 방위에서 부는 바람의 이치에 잘 적응하였다. 또한 보통 사람들처럼 하고 싶은 것에 맞추어 살았지만 성내는 일이 없었다. 어떤 일을 행함에도 세상과 괴리되려고 하지도 않았고, 행동함에 세상 사람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았다. 밖으로는 일 때문에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았으며, 안으로는 생각으로 근심하지 않아 음을 편안히 함을 힘써, 스스로 얻음으로 공을 삼았으니 몸이 상하지 않았다. 그 또한 100세까지 살 수 있었다.
그 다음에 현인(賢人)이 있었다. 그는 자연의 법칙에 따랐고, 해와 달을 본받았고, 별들을 분별하여 음양의 변화를 좇기도 하였고, 사철을 가릴 줄 알았다. 이처럼 상고시대 사람을 따라 양생의 법칙에 부합하기를 힘쓰면 수명을 연장하여 오래 살 수 있다.
이는 『동의보감』이 의학의 고전인 『내경』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자연의 음양변화는 만물의 근본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본 것처럼 성인은 봄과 여름에 양기를 보양하고 가을과 겨울에 음기를 보양하여 그 근본에 순응하면서 만물과 같이 생겨나고 자라나는 속에서 지내는 것이다. 근본에 어긋나면 생명의 근원이 상해서 진기가 어지럽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철 음양의 변화는 만물의 시초인 동시에 끝이며 죽고 사는 것의 근본이다. 이것을 거역할 때에는 해를 입으며 이에 순종하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 이래야만 양생법을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절에 순응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동의보감』에 그것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첫째, 봄에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여름과 가을에는 밤이 깊으면 자고 일찍 일어나며, 겨울에는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도록 하라. 그러면 좋다. 일찍 일어난다 하여도 닭이 울기 전에는 일어나지 말 것이며, 늦게 일어난다 해도 해가 뜬 후까지 있지 말아라.
둘째, 겨울에는 머리를 차게 하고 봄과 가을에는 머리와 발을 모두 차게 하라. 이것이 성인이 일상적으로 행하는 방법이다.
셋째, 그믐날에는 늘 목욕을 하고 초하루에는 머리 감는 것이 좋으며, 배고플 때에는 목욕하지 말고 배부를 때에는 머리를 감지 말아라.
넷째, 봄과 여름에는 동쪽을 향해서, 가을과 겨울에는 서쪽을 향해서 누우며 머리를 북쪽으로 향하여 눕지 말아라.
다섯째, 큰 바람과 큰 비, 짙은 안개와 심한 더위, 심한 추위와 모진 눈을 모두 조심하라. 갑자기 폭풍우나 천둥 번개 또는 몹시 어두운 때가 닥치는 것은 온갖 용과 귀신이 행동하고 지나가는 것이므로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향을 피우며 단정히 앉아 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몸이 상할 것이다.
사계절 중 여름 한 철은 사람의 정신이 피곤해지는 계절이며 심장의 기운은 왕성한 반면, 신의 기운이 쇠약해지는 계절이다. 그러므로 『동의보감』에서는 사계절 중 여름철이 가장 조섭하기 힘든 계절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름철 건강법을 실천할 것인가? 『동의보감』에서 그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보신할 약을 갖추어야 하며 싸늘하게 식은 음식을 입에 대지 말라.'
둘째, '문을 닫고 누워 자거나 정신을 함부로 많이 써서도 안 된다.'
셋째, '얼음물과 찬 과실을 삼가라.' 자칫하면 가을철 학질
넷째, '더운 음식을 먹고 뱃속을 따뜻하게 하라'
이런 점을 실천한다면 여름에 온갖 병에 걸리지 않으며 혈기가 왕성해질 것이다.
뜻이 한가롭게 되어 욕심이 줄어들고, 마음이 편안해져 두려움이 없고 육체적으로는 수고롭지만 권태롭지 않아 진기가 보존되고 순조로워서 각각 그 하고자 하는 일을 좇아서 하면 모두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므로 먹는 것이 맛있고, 그 의복이 직분에 맞고 그 풍속을 즐기며 직위가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과 함께 서로 탐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백성들은 질박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좋아하고 욕심 내는 것이 눈을 괴롭힐 수 없고 사특한 것이 마음을 유혹할 수 없으니, 어리석은 사람이나 영리한 사람이나 착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할 것 없이 사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고, 양생의 도리에 부합되어서 100세가 되어도 동작이 쇠약해지지 않는다. 이는 덕이 온전하여 위태롭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동의보감』에서는 잡념을 끊고 정신을 통일하는 것이 장생약(長生藥)인 금단(金丹)을 몸 안에 만들기 위한 제일의 요령이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도사 백옥섬(白玉蟾, 1194~1229)은 '없을 무(無)'자 한 글자를 양생의 요체로 삼았고, 도사 송제구(宋齊丘) 또한 '잊을 망(忘)'자 한 글자를 수양의 근본으로 여겼다는 것을 예로 들면서 '본래 이무 것도 없는데, 어느 곳에 티끌인들 붙겠는가?'라고 말한다.
왜 잡념을 버리고 정신을 통일해야만 단(丹)을 연성(鍊成)할 수 있는 것일까? 그래야만 텅 빈 수양자의 마음인 인심(人心)이 하늘의 마음인 도심(道心)과 통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을 보자.
도는 마음으로써 작용된다. 마음을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은 도(道)로써 마음을 본다. 마음이 곧 도이다. 마음으로써 도를 통하므로 도가 곧 마음이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하늘의 마음이다. 하늘의 북극에 있으면서 조화의 축이 되는 것이 이 마음이다. 그러므로 두표(斗杓, 북두칠성에서 자루에 해당하는 다섯째에서 일곱째까지의 별)가 한 번 움직이매 사계절이 순응하며 오행이 차례로 돌고 추위와 더위가 도수(度數)에 맞으며 음과 양이 고르게 된다.
이렇듯 텅 빈 마음으로 자연의 객관적 질서를 따를 때 사람과 자연이 하나로 합치되어 자연의 신묘한 영물인 금단이 몸 안에서 만들어지게 된다. 비단 금단을 만들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는 데에도 수양이 제일이다. 『동의보감』에서 태백진인(太白眞人)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병을 치료하려면 먼저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반드시 마음을 바로잡아야 양생의 도에 도움이 된다. 환자로 하여금 마음속에 있는 의심, 염려, 생각, 그리고 일체 헛된 잡념과 불평, 타인과 나 사이에 후회할 평생 행한 과오들을 다 없애버리고 곧 몸을 내버려두어야 한다. 마음을 나의 하늘로 삼아 섬기는바 하늘과 부합시키면 오랜 후에 결국 정신이 통일되어서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품이 화평해져…… 병이 자연히 낫게 된다.
『동의보감』에서는 요즘 의사들이 옛 성현과 달리 단지 사람의 병만 치료할 줄 알지, 마음 다스리는 방법을 깨치지 못함을 안타까워한다. 그들을 향해 '이는 근본을 버리고 말단을 좇는 것이며 원인을 찾지 않고 눈앞의 증상만 치료하여 병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설령 요행히 병이 나았다 해도 이것은 세속의 저급한 의사이므로 믿을 바가 못 된다'는 명대의 명의 구선(臞仙, 명초 주권의 호)의 말을 전한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수양하고 섭생하는 방법이 따로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태아처럼 숨쉬는 태식법(胎息法), 몸의 사지를 움직여 기를 운행하는 안마도인법(按摩導引法), 금단을 만드는 환단내련법(還丹內煉法) 등의 방법을 소개한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양생법을 실천하는 데에는 나이 제한이 없어서 늙어서도 이 법을 배울 수 있다고 한다. 만약 이름난 선생을 만나 결심하고 노력한다면 120세 노인도 튼튼한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그 예로 마자연, 여순양, 갈선처럼 64세에 스승을 만나 양생의 도를 닦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든다. 하지만 몸이 상하고, 정기가 소모되기 전에 선생을 만나 수양하면 훨씬 더 좋다. 또한 특별히 되는 사람과 안 되는 사람은 없다. 요체는 '한 번 깨달음'에 있기 때문이다.
태식법
어떻게 태아가 어머니 뱃속에서 숨을 쉴 수 있는가? 『동의보감』에서 말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밤 1시경에 눈을 감고 동쪽을 향하여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힘써 뱃속에 있는 나쁜 공기를 2~3번 내뿜은 뒤에 숨을 멈추고 코로 맑은 공기를 천천히 몇 모금 들이마신다. 혀 밑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서 아래로 신(腎)과 통한다. 혀로 입천장을 받치고 숨을 한동안 멈추면 침이 절로 나와서 입 안에 찬다. 그것을 천천히 삼키면 저절로 오장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하는 것이 기를 단전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밤 1시부터 3시까지 하되 4시가 되기 전에 하는 것도 좋다. 누워서 하는 것도 괜찮다. 태식법이란 다름 아닌, 배로 숨쉬는 과정에서 나온 침으로 양치해서 삼키는 것을 일컬을 따름이다.
안마도인법
안마도인법에서도 침을 만들어 삼키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구선(臞仙)의 『활인심방(活人心方)』6)
눈 감고 마음을 고요히 하고 앉아 주먹 쥐고 정신을 모은다. 위아래 이를 36번 부딪치고 나서 두 손을 목덜미 뒤에서 교차시키고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뒷머리 튕겨주기를 24번 한다. 어깨의 힘을 빼고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주고 입 안에서 혀를 돌려 침을 낸 후 침으로 36번 입가심하고 입 안에 침이 가득 고이면 세 번으로 나누어 소리를 내면서 삼키는데, 이에 용의 움직임에 호랑이가 달려가듯 한다. 이어 숨을 들이쉰 후 멈춘 상태에서 두 손을 비벼 뜨겁게 한 후 숨을 내쉬면서 두 손으로 허리를 문질러 뜨겁게 한다. 그리고 배꼽 밑에 불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두 어깨를 좌우로 흔들면서 불 기운을 척추를 따라 돌려 뇌로 들여보내고 팔다리를 쭉 펴준다. 다음에는 손을 깍지 껴서 허공을 받들고 이어서 두 손을 내려 발끝에 갖다대기를 여러 차례 한다. 입에 침이 고이기를 기다려 여러 번으로 나누어 삼킨다. 이와 같이 세 번 반복하면 침을 아홉 번 삼키는 것이 된다. 그러고 나서 어깨와 몸통을 돌려 불 기운을 일으켜 전신을 데워준다.
『동의보감』은 이런 안마도인법을 계속 수행하면 병마가 접근할 수 없고 꿈자리도 편안하며, 추위도 안타고 더운 줄도 모르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복잡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밤잠에서 깨어나 이를 마주치고 침을 삼키며 코의 양끝을 문지르고, 손바닥과 양쪽 눈을 비벼주기만 해도 좋다고 하며, 이마를 문지르거나 귀 끝을 문지르는 것도 수양에 효과가 크다고 한다.
환단내련법
금단을 만드는 환단내련법에서도 침이 가장 중요하다. 『동의보감』은 침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훌륭한 수양자는 신기(神氣)를 얻어 입 안에 넣고 몸의 진화(眞火)를 돌려 그것을 기른다. 운행 도중에 갑자기 꽁무니에 무엇인가가 척추를 끼고 쌍관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쪼록쪼록 소리가 나면서 상단전인 머리의 이환궁으로 치솟아 올라가고 다시 이환궁에서 입천장으로 돌아와 방울방울 입 안에 떨어진다. 그 맛이 얼린 건락(치즈)과 같으며 향기롭고 단맛이 난다. 문득 이런 느낌을 갖게 된다면 그것이 바로 금액환단(金液還丹)이다.
환단법은 모든 정신 수양법 가운데 으뜸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소개한다. '여보소 벗님네들, 이내 말을 들어보소. 수련법에 묘한 법이 따로 없다네. 맹호[陽]가 고함치고 용[陰]이 우는 야삼경에, 하거(河車, 곧 神氣)를 빨리 굴려 잠시도 쉬지 말고 이환궁(뇌) 높은 곳에 쏜살같이 몰고 가서 옥화로에 불을 피워 백설같이 구워내, 입 안에 가득 고인 맑고 맑은 그 진액이 금단으로 바뀔 무렵, 한시라도 놓칠세라 자주자주 삼키면, 팔다리가 더워지고 얼굴빛이 좋아지네.
대수롭지 않은 술수가 수천이나 되지만, 오직 이 방법이 올바르다네.'7)
『동의보감』에서는 건강하고 오래 살게 하는 약으로 경옥고, 삼정환, 연년익수불로단, 오로환동단, 연령고본단, 반룡환, 이황원, 현토고본환, 고본주 등을 소개한다. 약의 효능과 제법, 복용법을 간단히 살펴보자.
• 경옥고-정(精)을 억누르고 수(髓)를 보태주고 진기를 고르게 하며 성품을 길러주고 늙은이를 젊어지게 하며, 모든 허약·손상하는 병증을 보하며 온갖 병을 낫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정신을 좋게 하고, 오장을 충실히 하며, 흰머리를 검게 하고, 빠진 이를 다시 나오게 하며, 힘이 넘쳐 말처럼 뛰어다니게 하고 밥을 안 먹어도 배고프지 않도록 하는 명약 중의 명약이다. 생지황, 인삼, 백복령, 꿀 등을 기본 약재로 한다.
제법이 좀 복잡하다. 위의 약을 고루 버무려 사기 항아리에 넣고 항아리 아가리를 기름종이로 5겹 싼 다음, 여기에 두꺼운 베천을 한 겹으로 단단히 싸서 봉한 후 이를 구리솥에 아가리가 물 속에 잠기지 않도록 매달아 뽕나무 장작으로 3일 동안 달인다. 항아리 속의 물이 줄어들면 따뜻한 물을 보충해주면서 한다. 날수를 채우면 솥에서 꺼내 다시 밀 먹인 종이로 항아리 아가리를 잘 싸서 봉한 후 우물물에 하루 동안 넣어둔다. 다시 꺼내 먼저 끓이던 물에 넣어 24시간을 달인 뒤에 물기가 다 없어지면 꺼낸다. 이렇게 하면 항아리 안에 끈적끈적한 것이 남는데 그것이 바로 경옥고이다.
경옥고는 영약이므로 먼저 조금 떼내어 천지신명에 제사를 지낸 후 복용한다. 한 번에 한두 숟가락씩 데운 술에 타 먹는다. 술을 못 먹는 경우에는 끓인 물에 타 먹는다. 하루에 두세 번씩 복용한다.
• 삼정환-오랫동안 먹으면 몸이 가벼워지고 오래 살며 얼굴이 젊은이와 비슷해진다. 약재로는 창출, 지골피, 익은 오디를 쓴다. 창출은 하늘의 정, 지골피는 땅의 정, 오디는 사람의 정을 간직한 것이다. 오디즙을 내어 나머지 두 약 가루를 넣고 반죽하여 단지에 넣어 봉한 후 낮에는 햇빛, 밤에는 달빛을 받아 끓어올라 마르게 한다. 마른 것을 가루 내어 꿀로 반죽한 다음 팥알만하게 알약을 만들어 한 번에 10알씩 끓인 물로 먹는다.
• 연년익수불로단-이 약은 여조라는 도사가 신선 공부할 때 쓴 이후부터 알려졌다. 천 가지 만 가지로 몸을 보하며, 10일 또는 한 달 동안 먹으면 몸이 몰라보게 좋아진다. 약재로는 적하수오, 백하수오, 지골피, 백복령, 생건지황, 천문동, 맥문동, 인삼 등을 쓴다. 각기 다른 방법으로 처리한 위의 약재를 보드랍게 가루 내어 졸인 꿀에 반죽한 다음 벽오동씨만하게 알약을 만들어 먹는다. 한 번에 30~50알씩 먹는다.
• 하령만수단-누군가 하령만수단의 신묘한 효과를 시로 찬양했다. '하령 만수단만 먹으면 혼과 백이 편안해진다네. 암탉이 알 품듯 약을 양성하여 날짜를 정확히 지켜야 하며, 약 만드는 곳을 비밀로 해서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하여 갑자일, 경신일 밤에 알약을 지어 바깥에 드러나지 않게 하네. 한 알이 60년, 두 알은 120년이네. 약을 먹으니 뼈마디 평범치 않고, 목숨이 하늘, 땅과 같아진다네. 신비하고도 오묘하도다!'는 구절이 그것이다. 약재로는 복신, 적석지, 조피나무 열매(천초), 주사, 유향 등을 쓴다.
제법이 독특하다. 주사(朱砂)와 유향을 흰자위, 노른자위를 제거한 각각 다른 달걀 껍질 안에 넣고, 일곱 겹으로 종이를 바른 후 푸른 비단 주머니에 넣는다. 그런 후에 정기가 충실한 부인으로 하여금 그것들을 품게 하여 따뜻하게 한다. 주사 계란 주머니는 35일, 유향 계란 주머니는 49일 품는다. 이후 이를 꺼내어 다시 갈아서 복신, 적석지, 조피 열매를 고루 섞이게 한 후 찐 대추살로 반죽하여 녹두알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날마다 30알씩 데운 술로 빈속에 먹는다. 인삼 달인 물에 먹기도 한다. 한 달 후에는 양을 늘려 40알씩 먹는다.
• 연령고본단-온갖 허증과 여러 가지 허손증, 중년의 성 기능 약화, 50세가 되기도 전에 수염과 머리카락이 세는 것을 치료한다. 이 약을 반 달만 먹으면 성 기능이 세어지고 한 달을 계속 먹으면 얼굴이 젊은이와 같아지며 능히 10리를 볼 수 있게 된다. 석 달 동안 먹으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오랫동안 먹으면 정신과 기운이 쇠약해지지 않으며 몸이 가뿐해지고 건강해져서 오래 살 수 있다.
약의 재료로는 새삼씨(토사자), 육종용, 천문동, 맥문동, 생지황, 숙지황, 마(산약), 쇠무릎(우슬), 두충, 파극, 구기자, 산수유, 백복령, 오미자, 인삼, 목향, 측백씨, 복분자, 질경이씨(차전자), 지골피, 석창포, 조피나무 열매, 원지, 택사 등이 쓰인다.
위의 약재들을 보드랍게 가루 내어 술을 넣고 쑨 묽은 밀가루풀로 반죽한 다음 벽오동씨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한 번에 80알씩 데운 술로 빈속에 먹는다.
• 반룡환-늘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 중국 촉나라 때 한 노인이 이 약을 시장에서 팔았는데, 나이가 380세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미려관(척추 맨 아래에 위치함)을 막아서는 안 되니 창해(척수)가 마른다. 불사약 구전금단이 있단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오직 반롱의 머리 위에 구슬이 있어 가슴속의 피를 도울 수 있다네.' 이 노래를 부른 노인은 백학을 타고 하늘로 날아갔고, 그 도를 배운 사람이 처방을 얻어 세상에 전했다고 한다.
녹각교, 녹각상, 새삼씨, 측백씨(백자인), 숙지황 등이 재료이다. 이 약들을 보드랍게 가루 내어 술을 넣고 쑨 쌀풀로 반죽한 다음 알약을 만든다. 또는 녹각교를 좋은 술에 넣고 끓여 녹인 것을 반죽한 다음 벽오동씨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한 번에 50알씩 생강과 소금 끓인 물로 먹는다.
• 인삼고본환-이황원이라고도 한다. 대체로 사람의 심장은 혈을 저장하고 신은 정액을 저장한다. 정과 혈이 충실하면 머리털이 세지 않으며 얼굴빛이 좋아져 오래 산다. 이 약은 정과 혈을 보한다.
약재로는 생지황, 숙지황, 천문동, 맥문동, 인삼을 쓴다. 약으로 보양하려면 생지황과 숙지황보다 나은 것은 없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생지황, 숙지황을 먹을 줄만 알지 천문동과 맥문동으로 약 기운을 끌어낼 줄은 잘 모른다. 이렇듯 이 네 가지 약은 상호 작용하여 약의 기운을 극대화한다. 한편, 인삼은 심기를 통하게 하므로 주약(主藥)으로 삼는다.
이 다섯 가지 약을 갈아 진흙처럼 만들거나 절구로 찧어 살구씨(행인) 달인 물에 풀어서 깨끗이 거른 다음 찌꺼기를 다시 갈아서 거른다. 이 즙을 가라 앉혀서 웃물을 버리고 나머지를 햇볕에 말린다. 여기에 인삼 가루를 넣어 꿀물로 반죽한 다음 벽오동씨만하게 알약을 만든다. 한 번에 50~70알씩 데운 술이나 끓인 소금물로 먹는다.
• 인삼고본환과 동일한 목적으로 쓰이는 처방으로는 현토고본환, 고본주, 오수주 등이 있다. 모두 생지황, 숙지황, 천문동, 맥문동 등이 들어가지만 몇몇 약재가 더 첨가된다. 고본주와 오수주는 술에 담가 먹는다.
• 처방을 만들지 않고 한 가지만으로도 몸에 좋고 오래 살게 해주는 약재로는 황정, 석창포, 감국화, 천문동, 지황, 창출(삽주), 새삼씨(토사자), 백초화, 하수오, 송진, 괴실(홰나무 열매), 백엽(측백나무 잎), 구기자, 복령, 오가피, 오디, 연밥, 검인, 해송지(잣), 호마(참깨), 만청자(순무씨), 인유즙(사람의 젖), 흰 쌀죽 등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약을 복용하는 방법은 아니나 외부로부터 신령스러운 기운을 흡수하여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을 두 가지 소개한다. 그것은 신묘한 베개를 만드는 방법인 신침법(神枕法)과 몸 안의 양기와 배꼽을 튼튼히 해서 수명을 늘이는, 배꼽을 뜸뜨는 방법인 연제법(煉臍法)이다.
도교 경전의 정화만을 가려 모은 『운급칠첨(雲笈七籤)』에 따르면 신침법의 유래는 한나라 무제 때로 거슬러올라간다. 『동의보감』에는 그 내용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어느 날 한무제가 동쪽 지방을 지나다가 길 옆에서 김매는 늙은이를 보았다. 잔등에 두어 자 되는 흰광채가 빛나므로 무제가 이상하게 여겨 그에게 "도술을 쓰지 않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늙은이가 대답했다. "제가 일찍이 85살 때 노쇠하며 죽을 지경이었고, 머리가 희며 이가 빠졌는데 도사란 사람이 저에게 알려주기를, 대추를 먹고 물을 마시면서 음식을 끊는 동시에 신묘한 베개를 만들어 베라고 하였습니다. 그 베개 속에 32가지 약을 넣었는데 그 가운데서 24가지의 좋은 약은 24절기에 맞는 것이고 나머지 8가지는 독약인데 8풍에 상응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방법대로 만들어 베었더니 도로 젊어져서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오고 하루에 300리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금년에 180살이며 인간 세상을 떠나 산 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자손들이 그리워 인간 세상에서 도로 곡식을 먹은 지 이미 2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신기한 베개의 효력으로 늙지 않았습니다." 무제가 그 늙은이의 얼굴
이 처방을 받은 무제는 역사상 유명한 도사인 동방삭(東方朔)에게 "진짜로 이렇게 효과를 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 그 처방의 유래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나서 "약 베개가 병을 일으키는 풍의 사기를 막아주기 때문에 효력이 있는 것"이라 대답하였다.8)
『동의보감』에서는 이 베개를 100일 베면 얼굴에 윤기가 나고, 1년을 베면 몸에 있는 온갖 병이 다 낫고 몸에서 향기가 풍기며, 4년을 베면 흰머리가 검어지고 빠진 이가 다시 나오며 귀와 눈이 밝아진다고 한다.
배꼽에 뜸을 뜨는 연제법(煉臍法)은 양생법의 일종으로 배꼽에 여러 가지 약을 채워 넣는다는 점에서 신침법과 유사하다. 『동의보감』에서는 약이 채워진 배꼽에 쥐똥 등을 이용하여 배꼽 한가운데에 뜸을 뜨라고 한다. 연제법을 시행하면 얼굴색이 건강할 뿐 아니라 잡병이 깃들지 않고 오래 산다고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신형'문에 특별히 노인 보양법을 덧붙였다. 여기에는 늙으면서 나타나는 몸의 증상, 노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 노인의 건강을 지켜주는 몇몇 처방이 담겨 있다.
사람은 왜 늙는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동의보감』에서는 근본적으로 혈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늙는다고 말한다. 원래 사람의 양쪽 신 사이에는 몸의 생명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움직이는 기운이 있다.9) 이 기운이 발동하여 온 몸을 끊임없이 돌면서 상초, 중초, 하초 등 삼초를 훈증하여 음식을 소화시키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갖가지 사기(邪氣)를 막아내며, 정신 활동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어찌 하랴! 나이가 들면서 그 기운이 약해진다. 그것은 정과 혈의 화약으로 나타난다. 늙어 정과 혈이 약해지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가?
정과 혈이 약해지면 몸에 있는 일곱 구멍, 곧 두 눈, 두 귀, 두 콧구멍, 입 등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울 때에 눈물이 나지 않고 오히려 웃을 때 눈물이 흐른다. 늘 걸쭉한 콧물이 많이 나오고 귀에서는 늘 매미 우는 소리가 들린다. 음식을 먹을 때 입이 마르며, 잘 때에 침을 흘린다. 자기도 모르게 오줌을 찔끔거리며 매우 굳거나 설사하는 똥을 싼다. 낮에는 졸음이 많고 밤에는 누워도 정신이 또렷하며 잠이 오지 않는다.
노인은 기와 혈이 약하므로 노인에게 약을 쓸 때는 젊은이에게 약을 쓸 때처럼 센 약을 써서는 안 된다. 비록 사기가 침범했다 해도 맛이 쓰고 찬 약과 땀을 많이 내는 약을 써서는 안 되고, 몹시 토하게 하거나 강제로 설사시키는 약도 금물이다. 될 수 있으면 순한 약으로 조리하면서 치료해야 한다.10)
『동의보감』의 '신형'문의 상당 부분은 세종 때 편찬된 『의방유취』에서 관련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의 구성은 『의방유취』나 중국의 『천금방』, 『의학입문』 등 양생과 의학을 함께 논한 저작과 매우 다르다. 이런 의서들이 생명에 관한 논의를 의학의 한 분야인 '양생'에서 다룬 데 반해, 『동의보감』은 그 생명관을 바탕으로 전체 저작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조선 의학사의 전통에서 볼 때 양생과 의학은 『동의보감』에서 일단 통일된 후 18세기부터 다시 분화되기 시작하며 양생 부분은 전문 양생 서적에서 취급하게 되고, 전문의서는 양생 부분을 배제한 임상 부분만 다루게 된다.
『동의보감』 '신형'문 편집의 가장 큰 특징은 유·불·선 사상을 비교적 자유롭게 수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심(人心)-도심(道心) 논의는 성리학의 대표적인 논의이고, 연단법, 조식법 등은 도가의 수련법들이며, 인체가 흙·물·불·바람 등 사대(四大)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불교의 가르침이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다양한 도교의 양생법을 소개하였으며, 그 가운데에는 신침법과 같이 요즘 시각으로 볼 때에 신비한 구석이 있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그런 내용조차도 다소 과장이 섞였다 해도 그 내용이 외부 세계와 몸 안 세계의 기의 상호작용이라는 절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양생 원칙이 절제와 금욕을 강조하고 있음은 의학사상도 성리학이 심화되던 17세기 조선의 사상계의 흐름과 동일한 맥락에 있었음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신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