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거역하고 버리며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배반하게 되면 아래 본분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게 되고 기뻐 역사하실 수가 없는 것인데 그러한 이치와 실제는 생각 이상으로 단순하고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말씀이신 것이고, 진정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실행하시면서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반대로 아래 본문 직전의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12명의 정탐꾼들과 관계된 사건, 곧 그 중의 열 명의 인간적이고 불신앙이 가득한 보고로 인해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들 전체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거역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되면서 40일간 정탐한 각 날의 수를 1년으로 환산해서 40년을 광야에서 방황케 된 것일 뿐 아니라 그때의 장성한 자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 전에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됨이 예고된 사건에 있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갈렙과 여호수아 두 사람은 그들과 달리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도 조금도 다르지 않은 이치와 원리인 것으로 다름 아닌 그들만이 인간적으로 힘들 수 있고 세상적으로 위험할 수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최우선으로 했고, 실상은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면서 말씀대로 믿고 의지하며 선포했기 때문인 것이며, 바로 그와 같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께 합당했을 뿐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자 약속의 땅이고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땅인 가나안에도 합당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오늘날의 우리 인생들이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됨과 함께 하나님의 것,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실제로 거룩하게 되고 의롭다고 칭함 받을 수 있게 되는 것도 그와 조금도 다를 수 없는 이치와 원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인데..
실상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 졌고 단절케 되었으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게다가 말씀의 동산인 에덴 동산도 박탈당하게 된 것이며,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나 그 위치와 역할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을, 다시 말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담과 하와 때부터 미리 구주 예수님에 대해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다양한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했든지, 또는 오늘날 우리들과 같이 오신 메시야를 믿고 의지하고 있든지 간에 어쨌든 반드시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 곧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의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의 길과 통로와 접점 등의 위치와 역할이신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만 값없이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는 것이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서는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모두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말씀의 백성으로 뒤바뀌게 하시는 것이고, 그렇기에 추상적, 이상적이 아니라 실질적, 경험적으로 이신칭의의 구원도 가능한 것이며..
그렇기에 그렇게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되는 처음의 믿음, 처음의 사랑이야 말로 근원적으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조금만 통찰해 봐도 그러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역할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분, 특히 모든 구원의 일들을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날마다 실제로 누리게 되고 제대로 경험케 됨에 있어서도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가 근본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주인이시며, 본질적으로는 하나님의 법이자 절대 진리인 말씀이 모든 중심인 것이고, 오직 바로 그러한 말씀으로 통치하는 나라인 것이기에..
따지고 보면 다른 그 누구도 아닌 처음에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사랑, 이치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어떤 식으로든 오직 한 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의 시공을 넘는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며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고 돌이키면서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읽고 들으며 묵상하고 실천하며 증거하는 등과 같은 결단과 몸부림들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는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 곧 깨어 있고 살아 있는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실제로 누리게 되고 더욱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께서 더욱 충만하시게 되는 것이고,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으로 인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들에 있어서의 예배의 열납, 기도의 응답 한 번까지도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더욱 치열하고 절실하며 뜨거운 말씀의 열정과 생각 이상으로 직결되고 모든 전제와 기준, 관건과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그 이유는 결코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그 예배라는 것이 구주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진정 영과 진리로 드릴 때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러한 영과 진리의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해 가능한 것이며, 그를 위해서는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며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실질적인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으며 오직 말씀으로, 진정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고..
특히 그와 마찬가지로 기도라는 것이야 말로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말씀 그대로, 오직 말씀 안에서, 말씀을 위해, 말씀의 약속된 것을 구하고 의지하며 누리는 것이고, 그때 반드시 그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며, 게다가 그렇게 실질적으로 기도를 할 수 있는 말씀대로의 믿음이 될 수 있게 하시는 분인 것일 뿐 아니라 말씀 그대로의 응답과 역사들, 실제와 누림들, 생생함과 강렬함들에 있어서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시공을 넘어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힘과 권능이 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해 말씀의 영이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너희 앞에 있으니 너희가 그 칼에 망하리라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나"
(민수기14:43)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4월 4일(목)1/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