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즈음
최 병 창
처음부터 아닌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언제 또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으니
빈자리를 채우려면
잠시 또 시야를 내려놓아야겠다
마침내 남는 지면은 그리 흔치 않았다
긴 인사말이나 단순 명료한 수식어조차
새로운 화재일 것 같았지만
따지고 보면 전혀 새로운 것은 없다
오른손을 들고 왼손을 흔들어본다
입을 닫는 표정하나로
남은 몸을 구분한다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듯 전혀 할 수 없는 일
불사조가 불길에
스스로 타 죽었다는 말은 있지만
타 죽지 않았다는 사실은
속살을 거침없이 밟고 지나갈 뿐이다
그즈음 틈을 비집고
직진하는 줄 알았지만
우회전이나 좌회전을 하는 차량들은
깜빡이 지시 등도 켜지 않고
제갈 길을 마구 달리고 있었으니
몸과 마음은 애초보터 달랐다는 말 마냥 기다리는 것도
마음을 열 수 없어
언젠가처럼 한참을 다듬어야겠는데
어디선가 바람 한 점
바람같이 날아든다
어느 누구의 가슴한쪽
드문드문 적막을 드러내듯이.
< 2011. 11. >